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83
383회. 연가무관의 안주인이랍니다
안채 앞마당에서 벌어진 와룡검객 연무백과 사망검 이철원의 싸움은 점점 치열해졌다.
연무백이나 이철원 모두 풍부한 실전으로 고수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달랐다.
평생 싸움질만 한 이철원의 검술이 실전적이라면 연무백은 현묘했다.
채챙-.
두 사람 사이에서 다시 한번 불꽃이 튀었다.
이철원은 검신으로 연무백의 검을 밀어내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젠장! 어디서 이런 놈이 나타났지?’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이철원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젊은 놈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
자신은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고 있었는데 상대는 처음과 같았다.
검술은 물론 공력에 있어서도 자신이 밀리고 있었다.
‘미치겠군. 외당 놈들을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자신과 함께 온 삼십 명 모두가 철혈방도는 아니다.
외당 소속의 수하는 열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잡놈들이다.
싸움이 벌어지면 시끄럽기나 하지 도움은 되지 않을 종자들이라 할 수 있다.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이철원에게 연무백이 차갑게 말했다.
“왜? 이제 와 겁이 나나?”
“미친놈! 얘들아! 쳐라!”
연무백의 도발에 이철산은 마지막 도박을 감행했다.
저런 소리를 들었으니 이젠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와아!”
“죽여라!”
삼십여 명의 무인이 각종 병장기를 손에 들고 안채로 달려갔다.
그때다.
정가장의 무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연설주가 검을 들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연설주는 과거의 어리숙한 아가씨가 아니었다. 그녀는 해원상방의 대주 생활을 하면서 잘 벼려진 칼날과도 같았다.
거기에 연적하가 전해 준 무상의 심법까지 더해졌으니 거칠 게 없다.
차창-.
챙-.
그에 반해 철혈방도 개개인의 무력은 철혈방의 명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윽!”
“크윽!”
단번에 철혈방도 둘이 뒤로 나자빠졌다.
예상을 뛰어넘는 연설주의 무위에 철혈방도들은 흠칫 놀란 얼굴들이다.
하늘을 찌를 듯하던 기세가 꺾였다.
자연스럽게 철혈방도들의 움직임도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차차차창-.
차창-.
날붙이 부닥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여덟 명의 철혈방도들은 조금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다.
물론 그녀를 우회해서 안채로 뛰어들 수도 있지만 누구도 앞장서지 않았다.
대청마루에 철탑처럼 서 있는 정가장의 무인들이 두려워서다.
스물이나 되는 잡배들은 철혈방도들이 밀리자 은근슬쩍 관망세로 돌아섰다.
그런 분위기는 이철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하들이 밀리고, 잡놈들은 몸을 사리자 이철원의 정신도 흐트러졌다.
집중력이 흔들리자 날카롭던 실전 검술은 그저 몸부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연무백은 그런 틈을 놓치지 않았다.
구천세법 사 식 풍화겁륜(風火劫輪)이 펼쳐졌다.
태풍처럼 휘몰아쳐 오는 검풍 앞에서 이철원은 속절없이 뒷걸음질 쳤다.
차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이철원의 검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연무백의 검력에 이철원이 손아귀가 찢어지면서 검을 놓치고 만 것이다.
연무백이 검신을 이철원의 어깨에 ‘척’ 얹었다.
외당 당주인 이철원이 패하자 철혈 방도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더 해볼 테냐?”
이철원은 대답 대신 빠드득 이를 갈았다.
수하들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여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지금은 물러나야 했다.
연무백은 이철원에게 살수를 쓰지 않았다.
그의 언행이 추잡한 건 사실이지만 그걸 이유로 철혈방의 당주를 죽일 수는 없었다.
이철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부상을 입은 철혈방도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철혈방도들이 떠나자 양이화는 숨어 있던 여자들을 불러 마당 정리에 들어갔다.
부서진 탁자를 치우자 손님을 접대할 자리가 부족했다.
그녀는 부랴부랴 이웃집에서 탁자를 빌려 빈자리가 없게 만들었다.
개관식은 예정보다 조금 늦게 열렸다.
그래도 염려와 달리 참석한 손님들은 많았다.
개관식을 마친 뒤에도 마을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왔다.
모두가 철혈방 덕분이다.
사람들은 철혈방 외당 당주 이철원을 이긴 젊은 관주를 보고 싶어 했다.
연가무관은 거의 잔칫집 분위기였다.
쉬지 않고 밀려오는 손님들로 양이화와 여자들은 쉴 틈도 없었다.
특히나 양이화는 탁자에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계속해서 마당과 부엌을 들락거렸다.
그러다 잠시 그녀가 부엌에서 한숨 돌리고 있을 때다.
찬모 하나가 들어오며 툴툴거렸다.
“아니, 척 봐도 마마(媽媽, 두창)구만 뭘 자꾸 아니라는지 원. 그만 처먹고 가지. 끝까지 앉아서 뽕을 뽑으려고 그러네. 거지 새낀가.”
무심히 듣고 있던 양이화가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웬 뜨내기 하나가 와서 분위기를 망치고 있네요.”
“소란을 피우고 있나요?”
“아니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 같은데 버티고 앉아서 음식 타령을 해서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니요?”
“얼굴을 보니까 마마에 걸린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눈치를 줬는데도 막무가내예요.”
“마마요? 그거 전염되는 거 아니에에요?”
“전염병이죠. 그래서 가라고 했는데 들어 처먹지를 않아요. 그 사람 때문에 손님들이 나갈 것 같은데 어쩌죠? 마님께서 나가 보시겠어요?”
“…….”
잠시 망설이던 양이화가 일어났다.
피로로 다리가 무거웠지만 그런 일은 자신이 정리를 해 줘야 했다.
마당으로 나간 양이화는 자연스럽게 손님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마마에 걸린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만 사람들이 앉지 않아서 홀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사람들 속에 있지만 왠지 쓸쓸해 보이는 모습에 그녀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냥 모른 척할까.’
때마침 걸신들린 사람처럼 어탕을 먹던 그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양이화와 연적하의 시선이 얽혔다.
그 순간 청년의 순하면서도 상처 입은 눈빛이 양이화의 가슴에 와 닿았다.
강호를 떠돌아다니고 있을 양가장 식구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녀는 왠지 모를 죄책감 속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가 앉은 탁자는 사람들이 흘린 음식 찌꺼기로 더럽혀져 있었다.
음식의 가짓수도 몇 개 되지 않았다.
음식을 나르는 모와 아낙 들이 피해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된 모양이다.
양이화는 급히 부엌으로 돌아가 새 음식을 소쿠리에 가득 담았다.
보낼 때 보내더라도 잘 대접하고 싶었다.
***
객청.
정가장 장주 산해검 정격천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벌집을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게 됐군. 철혈방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연무백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싸움을 걸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오라버니 말이 맞아요.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어요. 그나저나 정파의 무관들이 사파인 철혈방을 끌어들이다니, 미친 거 아니에요?”
연설주는 분한 듯 씩씩거렸다.
정격천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연씨들을 둘러보았다.
오늘의 일을 철혈방이 문제 삼고 나온다면 연가무관에서 당해 낼 수 있을까?
‘연가무관 혼자 힘으로는 안 될 텐데.’
그런데 연씨들은 현실 감각이 없는 건지 겁을 내지 않고 있었다.
“하남성에 인맥이 있나?”
“없습니다. 남직례성이라면 몰라도.”
“허, 거 참. 남직례성에 사람을 보내면 두 달은 지나야 올 텐데…….”
정격천이 말끝을 흐렸다.
두 달이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연승백이 연무백에게 한마디 했다.
“형님,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사람을 끌어모아서 한판 붙어 봅시다. 다른 상방들처럼 우리도 낭인을 고용하는 겁니다.”
“낭인을?”
“어차피 지금 철혈방에 방주도 없잖아요. 부방주와 당주들은 형님과 설주가 상대하고, 낭인들에게 잔챙이들을 맡으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것도 괜찮은 생각 같아요. 어차피 철혈방과 싸워야 한다면 제대로 싸워 봐요. 나도 상방에 조금 더 늦는다고 편지 보낼게요.”
동생들의 말에 연무백은 쉽게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낭인을 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듣고 있던 정격천이 한마디 했다.
“그런데 낭인들이 오겠나? 상대가 철혈방인데.”
“…….”
그의 말에 연씨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연씨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정격천이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네. 이렇다 할 공적도, 명성도 없는 시골 무관을 위해 호천맹이 나서 줄 리도 없고.”
호천맹 이야기가 나오자 연무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지금의 연가무관과 호천맹은 남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시작도 해 보기 전에 포기하지는 말게. 만약 낭인을 고용할 거라면 재정적인 도움은 내가 주겠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오히려 내가 인맥이 없어 더 돕지 못해 미안하네.”
“아닙니다. 연가무관의 은인이십니다.”
“형님, 말 나온 김에 손님들에게 말해 보는 건 어떨까요? 소문도 낼 겸.”
“저도 방금 둘째 오라버니와 같은 생각을 했어요. 손님들 중에 무림인들도 제법 보이더라고요. 지금 당장 모집에 들어가요. 혹시 알아요? 연 가무관의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지.”
동생들의 재촉에 연무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철혈방과 싸우기로 했으면 빨리 움직일수록 유리했다.
***
한창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던 연적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비단옷을 입은 여자가 다가와 탁자를 치우고 있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얼굴로도 그만 가라고 톡톡 쏘아 댈까?
다른 여자들처럼?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자가 말했다.
“미안해요.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탁자 정리가 늦었네요. 다시 차려 드릴 테니 편하게 드세요.”
“괜찮은데…….”
“아니에요.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면 안 되죠. 친정어머니가 보셨으면 저를 혼냈을 거예요.”
“…….”
연적하는 먹던 걸 잠시 멈추었다.
그 틈에 양이화는 재빨리 탁자 정리를 마치고 새 음식을 올려놓았다.
새 음식이 차려지자 연적하는 다시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때 양이화가 말했다.
“그런데 그 얼굴의 부스럼은……. 혹시 전염되는 병인가요?”
“아니요. 약을 잘못 먹어서 그래요. 화기(火氣)가 얼굴에 몰려서 이렇게 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지독한 부스럼일 뿐이에요.”
“역시 그렇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일하는 분들이 심한 소리를 했죠? 이해해 주세요.”
“괜찮아요. 그런데 여기 사는 분이세요?”
“네, 이래 봬도 제가 연가무관의 안주인이랍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양이화는 해맑게 웃어 보이고 돌아섰다.
때마침 그때 연무백과 연승백, 연설주가 대청마루로 나왔다.
젊은 관주의 출현에 왁자지껄 떠들며 음식을 먹던 사람들이 한순간 잠잠해졌다.
“연가무관의 관주인 연무백입니다.”
연무백은 담담한 어조로 연가무관이 처한 문제를 사람들 앞에 밝혔다.
“……우리 연가무관은 철혈방의 횡포에 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개봉 정가장의 협객들께서 동참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연가무관과 함께할 영웅들을 모시고자 합니다. 물론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면 강호 일절이라 할 만한 연가무관의 무공도 전수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