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94
394회. 빨리 하산하는 게 답이겠네요?
산서성.
교구현.
풍지산 협곡.
초저녁.
팔황신모가 바닥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몇 달 전 천자마(天子魔)를 불러낼 때 그린 역오망성(逆五網星)이다.
그림이 완성되자 그녀는 한쪽으로 팔을 뻗었다.
줄이 ‘툭’ 끊어지며 말뚝에 매여 있던 검은 염소가 그녀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매에에-.
얌전히 붙들려 있던 검은 염소의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됐다.
뒤이어 역오망성 주변에 검은 염소의 피가 흥건하게 뿌려졌다.
준비를 마친 팔황신모가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 승려 하나가 오돌오돌 몸을 떨고 있었다.
“두려워할 것 없다. 너를 염소처럼 제물로 바치지는 않을 것이다.”
“사, 살려 주십쇼.”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소관이 아니냐. 내가 하늘이 아닌데 어찌 나에게 살려 달라고 하느냐?”
팔황신모가 손을 까닥이자 대기하고 있던 십두마병이 승려를 역오망성으로 끌고 갔다.
승려는 몇 번이나 살려 달라 빌었지만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십두마병은 승려를 점혈 한 뒤 역오망성 한가운데 주저앉히고 물러났다.
곧이어 팔황신모의 입에서 청류신이 가르쳐 준 주문이 흘러나왔다.
“레나 티아그 아이에 야하 자두 삼라트!”
그러나 신심(信心)이 부족했던지 역오망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팔황신모가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늘 이런 식이다.
주문을 맞게 외웠음에도 한 번에 되지를 않는다.
천자마(天子魔)는-현세에 있지도 않으면서-어떻게 진심과 단순한 암송을 구별해 내는지 모르겠다.
팔황신모는 다시 한번 주문을 외웠다.
이번에는 ‘왕들의 하늘’에 있는 천자마에게 자신의 기원이 닿기를 간절히 바랐다.
순간 역오망성이 그려진 바닥에서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화르륵-.
불꽃이 피로 옮겨 가자 역오망성 주변은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찼다.
연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메케함이 아니라 악의(惡意)였다.
섬뜩한 악의에 놀란 승려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염불이 터져 나왔다.
“나무아미…….”
그러나 승려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악의로 가득 찼던 검은 연기는 물론 승려까지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흐음!”
팔황신모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분명히 제물이 오망성의 중심에 서면, 왕이 그를 가져갈 거라고 했다.
승려는 정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를 취한 왕의 분신은 현현(顯現)하지 않았다.
제물만 쏙 빼먹은 격이다.
그때 문득 팔황신모의 뇌리로 청류신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왕들의 격에 맞는 인간을 바치세요. 그럼 그의 자리에 왕이 강림할 거예요.
분명히 청류신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왕들의 격에 맞는 인간을 바치라’고 했었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이라는 말에 계속 수도자들을 제물로 바쳤다.
유명교의 제물은 수도자였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왕의 분신은 현현하지 않았고, 다섯 차례나 제물만 사라졌다.
평범한 수도자들은 왕들의 격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제물의 격(格)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때 문득 그녀의 눈에 멀뚱멀뚱 서 있는 십두마병들이 들어왔다.
혹시 격이 공력과 관계된 것은 아닐까?
무림인 눈에 수도자들은, 믿음이 깊고 얕고를 떠나 범부(凡夫)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뭐, 제물을 바꿔 보면 알겠지.’
팔황신모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십두마병들에게 손짓했다.
제단 주위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다섯 명의 십두마병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요즘도 풍지산에 오르는 무림인들이 있느냐?”
십두마병 중에 하나가 재빨리 답했다.
“없습니다.”
천지맹에서 염탐을 왔다가 간 뒤로 무림인의 발걸음은 끊어진 상태였다.
풍지산이 유명교 성산(聖山)으로 알려진 뒤로는 사냥꾼들도 입산하지 않았다.
“쯧!”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팔황신모가 인상을 찌푸렸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딱 그 꼴이다.
“물러가라.”
“존명!”
우렁찬 대답 소리와 함께 십두마병들이 십 장 밖으로 물러났다.
“구궁천녀(九宮天女) 있느냐?”
팔황신모가 허공을 향해 묻자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성이 들려왔다.
“하명해 주세요.”
“제물을 바꿔야겠다. 내일 술시 초(오후 7시)까지 본교에 적대적인 현급(縣級, 현 단위) 무인 하나를 사로잡아 오도록 해라.”
“예.”
구궁천녀의 기운이 사라지자 팔황신모는 제단을 힐끔 바라보았다.
피로 그린 역오망성은 지워졌지만 불탄 자리가 역오망성의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든다.
천지를 혼돈에 빠트릴 역천(逆天)의 술법치고는 너무 쉽고 간단하지 않은가!
누구라도 역오망성과 검은 염소의 피만 있으면 천자마를 불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대단한 술법을 짧은 주문 하나로 통제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고개를 젓던 팔황신모가 손을 한차례 흔들었다.
콰드드득-.
땅거죽이 뒤집히며 역오망성의 흔적을 집어삼켰다.
팔황신모는 제단이 깨끗하게 지워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자리를 떠났다.
***
하남성.
십언.
무당산.
이른 아침.
대나무로 만든 등짐을 진 청년이 무당산 초입으로 들어섰다.
고성촌을 떠나온 연적하다.
구천노도 심통과는 고성촌의 객점에서 헤어졌다.
심통이 못내 아쉬워했지만 여름까지 술법 공부를 마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연적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을 올랐다.
하산할 때는을씨년스러웠는데 봄이 되니 초록이 무성해 보기에도 좋았다.
해검지에 도달하자 어디선가 도사둘이 나타났다.
그들은 연적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말 한마디 없이 스르륵 사라졌다.
워낙 개성이 강하다 보니 새삼 신원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해검지를 지나친 연적하는 단숨에 오룡궁까지 올라갔다.
두 달여 만에 돌아온 오룡궁은 새로운 수련자들로 북적거렸다.
열 명 중에 한두 명이 낯선 얼굴이었다.
강론 시간이 임박해서 그런지 모두가 바쁘게 서두르는 모양새다.
무심코 오룡궁으로 걷던 연적하는 다시 금정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룡궁 궁주인 천명 도사에게 적선 수행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다.
“그래, 갔던 일은 잘 해결이 되었느냐?”
천명 도사가 관심 어린 눈으로 남천을 보았다.
그는 여러모로 특이한 제자였다.
처음에는 검왕 남궁벽의 추천으로 온 천둥벌거숭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청불노가 그를 기명제자로 삼았다.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청불노에 대한 존중으로 받아들였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지도하는 오룡궁 도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의 술법은 뛰어났다.
아니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궤를 달리했다.
분명 술법은 처음인데 법력이 오룡육사를 능가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구천현녀’의 이름으로 벽력부를 발현시켜서 일대 소란이 일어난 적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자은사에서는 이기어검으로 마교 고수인 수라마존을 물리치기까지 했다.
‘청불노가 제자는 잘 받아들였다니까.’
우화등선하기 직전까지 고민하더니 저렇게 대단한 제자를 받으려고 그랬나 보다.
“그럭저럭요.”
“허허, 표정이 시원치 않은 걸 보니 결과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구나?”
“남진무사가 절반의 성공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나저나 그 일로 무당파에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어요.”
“항의?”
잠시 망설이던 연적하는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유명교에서 무당파 제자가 관여한 것을 알게 될 테니 감춰서도 안 됐다.
“사실 금의위가 제거하려던 사람이 유명교 현장 법사였거든요.”
“혹, 그들에게 너의 신분이 알려졌느냐?”
“그건 아니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제가 오룡궁 제자라는 것을 알아서요.”
그 말에 천명 도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무당파 본산 제자들이라면 모를까?
금의위와 건국사 사람들까지 있었다면 소문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다면 유명교에서 알 수도 있겠구나.”
“그럴 것 같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너는 속가제자가 아니더냐? 본래 속가제자들은 본산(本山)의 방침을 잘 따르지 않느니라. 저들도 상황을 알면 뭐라 하지 못할 게다.”
“그럼 다행인데…….”
“일이 그렇게 됐으니 최대한 빨리 공부를 끝내고 하산하도록 해라.”
“제가 하산만 하면 되나요?”
“아무렴. 그런 게 속가제자의 좋은 점이니라. 본산은 속가제자를 지휘 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없다. 네가 하산하면 유명교도 무당파에 책임을 묻지 못한다.”
“그럼 그들이 지랄하기 전에 하산하는 게 답이겠네요?”
“허허.”
천명 도사는 웃기만 했다.
분명 검왕의 인맥인데 말하는 게 거칠기 짝이 없다.
그러고 보니 팔선각에 처음 와서 한 행동들도 평범하지 않았다.
평소 엄한 남궁세가의 가풍을 생각하면 정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내 너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구나.”
“뭔데요?”
“나는 네가 검왕의 추천으로 본파에 왔음을 알고 있다. 검왕과는 어떤 관계이냐?”
“검왕님이 선친(先親)의 의형이세요. 저에게는 숙부인 셈이죠.”
“아! 그랬구나. 선대인(先大人)의 존함은 어찌 되시고?”
“연, 무 자, 룡 자를 쓰십니다.”
천명 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술법만 수련한 그는 연무룡의 이름에서 연적하를 떠올릴 수 없었다.
“그래, 선대인께서 너를 보면 기뻐하실 게다. 하산하는 그날까지 더욱 정진하거라.”
“예.”
연적하는 천명 도사에게 인사를 올리고 금정각을 나섰다.
오룡궁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니 강론 소리가 마당까지 은은하게 울렸다.
속가제자들에게 술법을 가르치는 백운 도사였다.
‘아하! 그래서 궁주님이 금정각에 계셨구나.’
오룡육사들은 지금처럼 후배의 강론에는 종종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초짜에게는 큰 배움의 기회다.
연적하는 조용히 오룡궁으로 들어가 뒷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뇌법(雷法)은 오룡궁의 법술로 내단(內丹)을 근본으로 하여 부적과 주문을 함께 사용합니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옥추보경(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玉樞寶經)에 의하면 뇌정을 주재하는 대신(大神)은 뇌성보화천존(雷聲普化天尊)입니다. 우리가 뇌법을 실행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강론을 이어 가던 백운 도사의 눈에 남천이 들어왔다.
한순간 백운 도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연남천은 ‘뇌성보화천존’이 아니라 ‘구천현녀’를 통해서 뇌법을 발현시켰다.
적선수행을 나갔다고 하더니 왜 하필 자신의 강론에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그가 ‘구천현녀에게 빌어도 됩니다!’라고 소리칠 것만 같았다.
“알아야 할 것은…….”
입안에서 같은 말이 뱅뱅 돌았다.
‘뇌성보화천존’과 ‘구천현녀’가 머릿속에서 엉켜 버린 탓이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여동빈’의 담당자 무위 도사가 나직이 속삭였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은 모든 군생(群生)의 아버지이며 만영(萬靈)의 스승이시다.”
진땀을 흘리던 백운 도사가 뒤늦게 마무리에 들어갔다.
“구.천.현.녀.뇌성보화천존은 모든 군생의 아버지이자 만영의 스승이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