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0
40회. 시험을 통과하면 가르쳐 주마
녹림 총채주 파천마군 석무해의 나이는 예순.
이미 반박귀진의 경지를 넘어 평범한 노인처럼 보였지만 전신에서 풍기는 무형의 기운은 사람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찍어 누르는 존재감을 가진 석무해다. 그런 석무해가 돌연 암천수라진공의 공력을 끌어 올려 연적하를 압박했다.
석무해에게서 무형의 기운이 밀려 오자 연적하의 몸에서 저절로 구천기가 움직였다.
고오오오-.
유형화된 기운이 부닥치자 두 사람 사이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렸다.
소리는 점점 커져 귀가 먹먹할 정도였지만 석무해의 표정은 태연했다.
그와 달리 이런 식의 신경전이 처음인 연적하는 가볍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제야 석무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이내 공력을 풀었다.
터질 듯한 긴장은 거짓말처럼 사라졌지만 두 사람 다 입을 열지 않았다.
석무해가 야릇한 눈으로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상대는 스물이 아니라 이제 열다섯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어린 녀석이 자신의 암천수라진공을 받아 내다니 다소 황당하기까지 하다.
“너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열일곱요.”
“헐!”
석무해의 입에서 묘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고작 열일곱 살밖에 안 된 소년이 자신의 내공을 받아 냈다니? 엄마 배 속에서부터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총채주?”
석무해는 곤혹스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녹림 총채주에 천하십대고수 소리를 듣는 사람인데, 그런 자신에 대한 경외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담겨 있지 않은 말투다. 표정 역시 오가다가 만난 노인네와 대화하는 것처럼 심심하다.
“무공은 누구에게 배웠느냐?”
연적하는 잠시 망설였다.
총채주는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강하다. 무당파의 천지상인보다 훨씬 더 뛰어나 보였다.
‘뭐라고 말하지?’
전처럼 하늘을 가리켰다가는 사달이 날 것 같았다.
총채주의 분위기로 볼 때 놀림당한다고 생각하면 참지 않을 것 같다. 그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싸움이 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싸움에서 이길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정도로 눈앞에 있는 총채주의 무위는 측량하기 어려웠다.
창고에서 도망친 이후 처음으로 긴장됐다.
연적하는 대답에 앞서 총채주의 눈을 직시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했는지 알고 싶어서다. 악의가 느껴지면 들이박고 달아날 생각이었다.
석무해는 연적하가 자신의 눈을 빤히 쳐다보자 기가 막혔다. 무공을 누구에게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않고 말똥말똥 쳐다만 본다.
그래도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연적하의 눈망울에서 사기(邪氣)가 엿보이지 않아 참은 것이다. 만약 그의 눈에서 사기가 느껴졌다면 지체 없이 칼을 뽑았을 것이다.
흑백이 분명한 눈을 보니 귀여운 느낌도 든다.
십이마군이 제자지만 그들은 귀여운 맛과 거리가 먼 종자들이었다.
인간의 감정은 상대적이다.
연적하는 총채주가 자신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를 납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전 무공이에요.”
그게 선녀라는 말보다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같은 무공이니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석무해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어쩌면 자신이 알고 있는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부친의 별호가 무엇이냐?”
“참월검객요.”
석무해의 입에서 짧게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십여 년 전 강남에서 유명교를 물리치고 유명해진 청년 검객이 떠올라서다.
“참월검객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과장된 게 아니었던 모양이로군. 헌데 그의 아들이라면서 왜 오봉산채에 있는 게냐?”
“어머니는 저를 낳다가 죽으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저도 쫓겨났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참월검객의 아들인데 누가 너를 쫓아낸다고?”
“아, 좀 복잡한 얘기인데요. 아버지의 본부인인 큰어머니가 저를 쫓아낸 거예요.”
“아하!”
뒤늦게 석무해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런 것치고는 내공이 뛰어난 것 같은데? 무슨 기연이라도 있었느냐?”
“창고에 갇혀 있을 때 신기한 걸 많이 집어 먹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신기한 거?”
“향기가 나는 물이랑 만두요.”
석무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나가다가 이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린지 모르겠다.
‘향기가 나는 물이라면 공청석유 같은 건가?’
그런데 만두는 또 뭐란 말인가?
“어쨌든 기연을 얻어서 내공이 깊어졌다 이거지? 그렇다면 너의 무공이 정말 그 심후한 내공에 걸맞은지 확인해 봐야겠다.”
“어떻게요?”
“따라오거라.”
벌떡 일어난 석무해가 천막 밖으로 나갔다.
연적하는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연적하가 따라 나오자 석무해는 지면을 박차고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단숨에 근처의 나무 꼭대기에 도달한 석무해는 나뭇가지를 밟고 앞으로 쭉쭉 날아갔다.
연적하도 비연보의 수법으로 석무해를 뒤따랐다.
석무해는 마치 산보라도 하듯 두 팔을 자연스럽게 휘저으며 나무 꼭대기를 달렸다.
한참 달리던 석무해가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용케도 연적하는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달려오는 모습이 영 기괴했다.
‘저건 대체 무슨 신법이지?’
두 팔을 뒤로 나란히 하고 하체만으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석무해는 가까이에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가 연적하를 기다렸다.
곧바로 연적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적하의 고른 숨소리를 확인한 석무해의 얼굴이 가볍게 굳었다.
역시 보통의 내공이 아니다.
‘뛰어난 내공과 달리 무공이 조잡하다면…….’
이 녀석 역시 갑자기 내공만 늘어난 도적들과 다를 바가 없다. 모처럼 마음에 든 꼬마가 그런 놈들과 같은 부류라면 왠지 기분이 더러울 것 같다.
“녹림의 총채주로 너의 무위를 확인해야겠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무위를 확인한다고요? 왜 그래야 하죠?”
“그 이유는 네가 이 시험을 통과하면 가르쳐 주마.”
“알았어요.”
석무해가 천천히 검을 뽑자, 연적하도 지체 없이 박도를 손에 들었다.
석무해는 처음부터 암천수라검식을 펼쳤다.
아직 제자들에게 전수하지 않은, 파천마군의 이름이 있게 한, 그만의 검법이다.
쉬이이익.
석무해의 검이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연적하에게 쏘아져 갔다.
연적하는 박도를 휘둘러 검을 막아 냈다.
일 식인 비룡승천에서 이 식인 용무천상, 삼 식인 운룡풍호까지. 마치 실타래에서 실이 풀려 나오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차차차차창. 차창.
검과 도가 닿을 때마다 어둠 속에서 불꽃이 작열했다.
암천수라검식을 펼치던 석무해의 눈에서 신광이 번득였다.
연적하가 흔들리지 않고 받아치는 바람에 모처럼 호승심이 발동한 것이다.
“조심해라!”
뒤이어 석무해의 검 끝에서 검은 빛깔의 검기가 실처럼 풀어져 나왔다.
검기의 실타래가 연적하의 전신을 빙빙 둘러쌌다.
금석을 두부처럼 잘라 버린다는 암천수라검기의 그물에 갇힌 것이다.
처음 접하는 검공에 연적하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어둠 속에서 차갑게 반짝이는 검기의 그물을 보고 있노라니 소름이 오싹 돋는다.
총채주가 조심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위험이 느껴졌다.
‘사방팔방이 꽉 막혔구나.’
이럴 때는 사 식 풍화겁륜이 답이다.
검기의 그물 속에서 연적하의 박도가 쾌속하게 움직였다.
콰콰콰콰.
박도가 일으킨 도풍이 마치 수레바퀴처럼 연적하의 몸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찌지지직.
수레바퀴에 휘말린 검기의 그물이 조금씩 찢어져 나갔다.
애써 만든 검사(劍絲)가 찢어지자 석무해는 공력을 거두어들였다.
휘이이이-.
연적하의 몸을 옥죄고 있던 검은 실타래가 한순간 사라졌다.
그제야 연적하도 박도를 멈춰 세웠다.
풍화겁륜의 수레바퀴가 한순간 ‘퍽’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감탄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던 석무해가 물었다.
“헐! 방금 그 수법의 이름이 무엇이냐?”
“풍화겁륜이라고 해요. 바람이 들불처럼 일어나 굴러간다나 뭐라나. 그냥 펼치면 팔방풍우처럼 정신없어 보이는데, 심통(心通)으로 넘어가면 오묘해져요.”
“대단하구나. 대단해. 나를 감탄하게 만든 도법은 실로 오랜만이다. 내공만 뛰어난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도법을 익히고 있었구나.”
“제가 시험에 통과한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석무해가 복잡한 눈으로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본래 계획은 녹림을 하나로 묶은 뒤에 십이마군을 통해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상한 놈들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됐다. 녹림의 힘을 외부에 과시하기는커녕 무슨 일이 있는지 집안 단속부터 해야 할 상황이다.
문제는 집안 단속이 쉽지 않다는 것.
순찰이 된 다섯 마두는 이미 십이마군의 경지를 넘어선 것 같다. 이래서는 조사는커녕 십이마군이 순찰들에게 휘둘릴 판이다.
처음에는 튀어나온 돌부리처럼 여겨지던 연적하가 갑자기 예뻐 보였다.
‘어차피 십이마군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연적하를 이용해 견제하면 되지 않을까?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는 석무해에게 연적하가 물었다.
“그런데 왜 시험을 본 거예요?”
“아, 그건 말이다.”
석무해는 녹림대회에서 일어난 이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기나긴 석무해의 음모론을 다 듣고 난 뒤에 연적하가 말했다.
“아, 예. 그럼 저는 상관없으니까 이만 가도 되죠?”
“사, 상관이 없다니? 녹림에 이상한 일이 생겼는데 그 무슨 정 없는 말이냐? 너도 녹림의 일원이니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건 위에 계신 분들이 알아서 잘 처리하셔야죠. 그러라고 총채주나 순찰이나 호법이 있는 거잖아요.”
“험, 물론 너의 말에도 일리는 있으나, 지금 상황이 좀 복잡하게 됐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전 모르는 척할게요. 비밀은 확실히 지켜 드릴 수 있어요. 사실 오봉산채에는 그런 거 말할 사람도 없어요.”
연적하가 자꾸 빼자 석무해는 몸이 달았다.
지금 녹림에서 순찰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연적하밖에 없어서다.
“자자, 너무 서두를 것 없다. 그건 그렇고 적사채는 왜 건드린 것이냐? 네가 표국을 도와 적사채를 쳤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석무해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일단 아무 주제로나 대화를 나누면서 연적하의 속을 떠볼 요량이었다.
“와아. 그 도둑놈들이 그렇게 말했어요? 진짜 순 도둑놈들이네.”
“너는 왜 그들에게 손을 쓴 게냐?”
“거기 부채주가 그날 저에게 몹쓸 짓을 했어요.”
“몹쓸 짓?”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모님 욕을 하더라고요. 아무리 같은 녹림이라도 그럼 안 되는 거잖아요? 아닌가? 혹시 녹림은 서로 막 부모님 욕하고 그래도 돼요?”
“헐! 그럴 리가. 나 같으면 처죽였다.”
“아, 나도 다음에는 처죽여야지.”
석무해는 잠시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총채주의 눈치를 살피던 연적하가 슬며시 물었다.
“저 이제 가 봐도 되나요?”
궁지에 몰린 석무해가 비장한 얼굴로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험, 험, 내가 녹림의 총채주로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네가 꼭 들어 줘야겠다.”
다급해진 석무해는 녹림의 총채주라는 지위까지 들먹였다.
“뭔데요?”
“나를 좀 도와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