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02
402회. 그럴 일은 없을 걸세
산월 도사는 깜짝 놀랐지만 그렇다고 연남천을 나무라지 않았다.
이미 연남천과 양사강의 관계는 파탄이 난 상태.
여기서 한 대를 더 맞으나 덜 맞으나 결과는 같을 것이었다.
“그만하도록 해라. 계속 손을 쓰면 나도 너를 도울 수가 없다.”
연적하는 호의가 느껴지는 산월 도사의 말에 선선히 뒤로 물러났다.
최근 여동빈의 관리자로 온 산월 도사는 청선 도사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양사강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는 것 같았다.
양사강도 앓는 소리를 그치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자신을 편들던 청선 도사가 사라졌으니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산월 도사가 정중히 물었다.
“양 공자. 숙소로 돌아가 쉬시겠소? 아니면 의각으로 가시겠소?”
양사강은 지체없이 답했다.
“이런 모습으로 수련은 힘들 것 같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집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을까 합니다.”
하산하겠다는 소리다.
그래도 눈치는 있어서 복수와 관계된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산월 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죄를 저질렀다면 모를까?
아무리 무당파라도 현령의 아들을 무작정 잡아 둘 수는 없었다.
“알겠소. 그래도 청선 도사께 말씀은 드리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소?”
최소한 ‘이철괴’의 관리자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해 본 소리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양사강이 선선히 응했다.
그를 통해 무당파에 자신의 입장을 전하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다.
양사강이 떠나자 멀찍이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흩어졌다.
산월 도사가 연남천에게 말했다.
“양 공자의 부친은 이번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게다. 나는 궁주님을 만나 볼 테니 자중하고 있도록 해라.”
“숙소에서 나오지 말라는 건가요?”
“하하. 그럴 리가. 불미스러운 일에 얽히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소리다.”
“아, 예.”
산월 도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오룡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마조마한 얼굴로 보고 있던 손가인과 백설연이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사제, 고마워.”
백설연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의 무위를 알기에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그에 반해 손가인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연 소협,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양 공자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괜찮아요. 그래 봐야 하룻강아지들에 불과해요. 백 사저, 그렇지 않나요?”
연적하가 백설연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무심코 녹림 시절에 지인들에게 하듯 장난을 친 것이다.
“마, 맞아. 하룻강아지.”
당황한 백설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평소 무덤덤하던 그가 갑자기 친근하게 구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왠지 그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손가인은 연남천의 농담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언니, 정말 괜찮을까요?”
“그럼. 연 사제는 오룡궁 최고의 술사라고.”
백설연은 그가 ‘이기어검의 고수’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건 오룡궁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밖에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그녀는 누구와도 그걸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설사 상대가 의매(義妹)라 할지라도.
***
팔선각.
이철괴.
‘이철괴’의 관리자인 청선 도사가 면목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양 공자, 송구하오. 빈도(貧道)도 연남천이 그처럼 무도한 자인 줄은 몰랐소. 감히 나까지 제압하고 양 공자에게 손을 쓰다니.”
“집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아버지께 아뢰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오룡궁에 자초지종을 묻게 될 터인데……. 오늘 본 것을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염려하지 마시오. 양 공자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소이다. 다만 부친께서 이번 일로 오룡궁에 실망하지는 않을지 그게 걱정이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아까 그 도사는 누구입니까? 노골적으로 연남천의 편을 들던데.”
“궁주가 새로 임명한 ‘여동빈’의 관리자요. 궁주의 측근이기도 하고. 연남천이 청불노의 기명제자라서 그를 보호하려는 걸 게요. ‘오룡칠사’의 교분이 남달랐으니. 그래도 그렇지, 공사조차 구별하지 못하다니. 쯧!”
청선 도사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궁주의 인맥과 무관한 그로서는 궁주나 산월 도사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궁주의 측근이 연남천의 편이면 올바로 된 징계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원로원에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오. 원로원으로 넘어가면 오룡궁뿐 아니라 무당파 전체의 일이 되오. 원로원은 궁주의 입김이 닿지 않으니 공정하게 처리해 줄 게요.”
“도사님도 보셨다시피 저들의 숫자가 셋이나 되는데 내가 불리하지 않겠습니까?”
“숫자가 백 명이라도 소용없소. 양쪽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 원로원은 대체로 무당파에 도움이 되는 쪽의 손을 들어 주니까.”
“아…….”
그제야 양사강의 얼굴이 펴졌다.
연남천이 청불노의 기명제자라고 해도 그건 오룡궁 안에서나 통하는 소리다.
‘무당파 원로들이 현령과 척을 지면서까지 속가제자 편에 서지는 않겠지.’
그건 청선 도사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부친은 누가 뭐래도 무당파의 귀빈이다.
‘무당파의 일은 알아서 잘 처리해 줄 테고. 남은 건 복수인가?’
무당파 내부의 징계 따위로는 자신의 한이 풀릴 것 같지가 않다.
‘스승님께 찾아가 봐야겠다.’
오룡궁에서 연남천을 최고의 술사라 떠받들고 있지만, 그래 봐야 술사다.
도하방이라면 그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연남천의 술법을 견식한 적 없는 양사강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
무당파.
오룡궁.
금정각.
양사강이 하산하자마자 산월 도사는 곧바로 궁주인 천명 도사를 찾아갔다.
“어서 오시게.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네.”
천명 도사의 말에 산월 도사는 벌써 소문이 돌고 있음을 알았다.
하기야 오룡궁 경내에서 그 소란을 피웠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다.
“혹, 오늘 있었던 연남천과 양사강의 다툼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얼핏 전해 듣기는 했네만. 자세히는 모르네.”
“실은…….”
산월 도사는 양측의 주장을 최대한 공정하게 옮겼다.
어차피 위에서 조사하면 다 밝혀질 일인지라 숨길 수도 없었다.
“……양 공자는 ‘이철괴’의 관리자인 청선 도사를 만나고 하산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구먼.”
궁주인 천명 도사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연남천의 무위와 술법의 경지를 아는지라 딱히 할 말도 없었다.
“헌데 청선 도사가 이 일을 오룡궁이 아니라…….”
“원로원에 올리겠다고 했나?”
“예. 무당파 원로가 결정할 일이라고 했으니 그럴 것 같습니다. 원로원은 무당파의 이익을 앞세우는지라 이대로 둬도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무당파의 이익이라…….”
천명 도사가 피식 웃었다.
무당파 장문인은 연남천의 무위를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처음부터 이상하기는 했다.
하기야 검왕 남궁벽이 어떤 위인인데 무명소졸을 무당파에 추천했겠는가!
분명히 검왕과 장문인 사이에 교감이 있었을 것이다.
무림에서 연남천과 같은 천외천의 고수는 그냥 움직이는 법이 없으니까.
천명 도사가 웃기만 하자 산월 도사는 속이 탔다.
“분명히 양 공자가 잘못한 일입니다. 치정에 얽힌 일은 제삼자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오룡궁에서 오룡궁 제자를 욕하고 협박했습니다. 그가 한 짓을 생각하면 연남천의 행동은 과하지 않습니다.”
산월 도사는 열변을 토했다.
무림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목숨을 잃는다.
솔직히 양사강은 얻어맞고 끝난 걸 다행으로 알아야 했다.
그나마 오룡궁이니까 그 정도로 끝난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두시게.”
“내버려 두다니요? 원로원에서 존장을 능멸한 죄를 묻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연남천을 파문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남을 분들 아닙니까?”
“원로원에서 연남천을 파문시킨다고? 허허허! 그럴 일은 없을 걸세.”
“예?”
산월 도사가 의아한 눈으로 천명 도사를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문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이는데 아니라니?
“설사 원로원에서 그걸 요구하더라도 장문인이 허락하지 않을 걸세.”
갑자기 장문인이 나오자 산월 도사는 멈칫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오룡궁의 술사들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장문인이 원로원과 싸우면서까지 연남천을 지키려 할까?
평소 무인이 술사를 경원시하는 걸 생각하면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지금까지 오룡궁은 무당파 내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장문인이 정말 연남천을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걸세. 연남천은 오룡궁뿐 아니라 무당파의 보물이니까.”
“…….”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산월 도사가 눈을 끔뻑거렸다.
점입가경이라고, 이제는 연남천을 두고 ‘무당파의 보물’이란다.
이유를 물었지만 천명 도사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결국 대책을 세우러 갔던 산월 도사는 빈손으로 물러나야 했다.
막 밖으로 나가던 산월 도사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이철괴’의 관리자 청선 도사였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눈인사만 주고 받으며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몇 걸음 걷던 산월 도사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궁주의 집무실로 들어가는 청선 도사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나 마나 양사강의 문제로 찾은 것이리라.
다시 걸음을 떼어 놓는 산월 도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무당파를 생각하는 청선 도사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하다 싶다.
옳고 그름보다 배경을 먼저 생각하다니.
‘이게 다 오룡궁이 만만하게 보여서겠지.’
만약 오룡궁의 힘이 강했다면 양사강도 언행에 조심했을 것이다.
무공을 배우러 온 상청궁이나 태허궁 수련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
호북성.
십언.
죽산현.
현령 양호주의 집이 발칵 뒤집혔다.
무당파 오룡궁에 술법을 배우러 간 장자가 처참한 몰골로 돌아와서다.
안채.
묵묵히 아들의 말을 듣고 있던 양호주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니까 너를 이렇게 만든 놈이 연남천이라는 속가제자다 이 말이냐?”
“예. 청불노라는 노사의 기명제자입니다.”
“오룡궁의 도사들은 네가 이 꼴이 되도록 구경만 하고 있었단 말이냐?”
“이철괴의 청선 도사가 만류하기는 했습니다만 그자의 완력을 당해 내지 못했습니다.”
“개판이로군. 속가제자라는 놈이 오룡궁의 도사를 완력으로 제압했다고?”
“예. 그뿐 아니라 놈은 아버지가 죽산현 현령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미친. 네가 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고?”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심지어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르라고까지 했습니다.”
“지금까지 네 말에 거짓이 없으렷다.”
양호주가 진위를 파악하려는 듯 아들의 눈을 응시했다.
십언의 패자인 무당파와 관련된 일이니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다.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요. 허나 소자 생면부지의 사내에게, 이 지경으로 맞을 정도의 죄는 짓지 않으며 살았습니다.”
“알겠다. 뒷일은 아비에게 맡기고 정양하도록 해라.”
“예.”
양사강이 인사를 한 후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던 양호주가 탁자를 후려쳤다.
쾅-.
“천명 도사, 당신이 내 자식에게 그러면 안 되지. 지금까지 가져다 바친 돈이 얼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