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03
403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문인
화가 치밀어 오른 양호주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양사강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다.
잘 돌보아 주리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무당파에 보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당파는, 아니 천명 도사는 그런 자신의 기대를 저버렸다.
아들의 얼굴이 묵사발 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명문 도관인 무당파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정사지간인 도하방을 드나들 때도 멀쩡했던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그것도 무당파에서 저런 봉변을 당하고 돌아오다니!
“오룡궁이 나를 우습게 보았음이야.”
아들에게 저런 중상을 입혔으면 궁주가 달려와 용서를 빌어도 시원치 않다.
그런데 오룡궁에서는 별다른 기별이 없었다.
자신의 아들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서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럴 때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면 된다.
“위명이 쟁쟁한 무당파라서 죽산현 현령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거지?”
‘흥!’ 하고 코웃음 치던 양호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갖춰 입고 밖으로 나갔다.
***
호북성.
십언.
초저녁.
안찰사 부사(정사품) 한경대의 자택.
한경대가 모처럼 찾아온 양호주를 환한 낯으로 맞이했다.
인사를 마친 양호주는 가지고 온 목함을 슬그머니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으리를 뵈러 오는데 빈손으로 올 수 없어서 소소하지만 챙겨 왔습니다.”
“허허, 뭐 이런 걸 다.”
웃으며 목함의 뚜껑을 열던 한경대가 흠칫했다.
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금자 열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평소처럼 은자가 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한경대는 차분하게 뚜껑을 닫고 양호주를 바라보았다.
“금자 열 냥이면 인사라고 하기에 과분한 금액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실은…….”
양호주는 오늘 자신의 아들이 무당 파에서 얻어맞고 온 일을 아뢰었다.
“……그자는 ‘현령인 네 아비에게 가서 고하라’며 폭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소관이 참아 넘기려 했지만, 이건 관인(官人)에 대한 도발이라 생각되어 나으리를 찾아왔습니다. 하아! 고작 현령인 저로서는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으리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한경대가 인상을 찌푸렸다.
고작 무림 방파 하나를 두고 왜 저렇게 앓는 소리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양 현령.”
“예.”
“그래 봐야 상대는 무림의 방파가 아닌가? 법도대로 처리하면 될 일을 왜 그리 고민하는가?”
“법도대로 하려 해도 무당파에서 응하지 않으면 도리가 없어서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백한 상황에서 가해자를 내주지 않는다고?”
“아들은 무당파 경내에서 맞았습니다. 무당파는 처참한 몰골이 된 아들을 쫓아내다시피 내보냈고요. 그 냥 조용히 덮겠다는 소리지요. 죽산현의 관병으로는 무당파에 숨은 죄인을 잡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제야 한경대는 양호주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관군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사정을 들어 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과거라면 모를까?
현재 무당파는 유명교에 눌려 전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자네 말을 들으니 무림인들의 방종이 도를 넘었구먼. 그들의 불법 무도함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현령의 권위까지 짓밟다니. 그럼 안 되지.”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합니다.”
“그자의 이름이 연남천이라고 했나?”
“예.”
“오룡궁에서 그를 감싸고 있고?”
“그렇습니다.”
“내일 죄인 연남천의 추포령을 내리도록 하겠네. 원활한 공무 수행을 위해 병부(兵部)에 협조도 구해 주지.”
“병부라 하오시면?”
“정천호(正千戶, 천호소를 지휘하는 정오품 무관) 황부승이라면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걸세.”
“아, 예! 감사합니다. 나으리.”
양호주가 머리를 넘죽 조아렸다.
추포령이 떨어지고 군부까지 움직이면 무당파가 아니라 호천맹이라 해도 뭉갤 수 있다.
“자네의 성의를 봐서 들어주는 부탁이 아님세. 무림인들의 전횡이 도를 넘어섰어. 황실에서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네. 사사로운 복수가 아니라 일벌백계의 자세로 임하도록 하게.”
“명심하여 봉행하겠습니다.”
그렇게 양호주의 복수는 나랏일과 뒤섞여 점점 규모를 키워 나갔다.
***
십언.
무당파.
상청궁.
사시 말(오전 11시).
외부 손님이 무당파 장문인을 찾아왔다.
그는 무당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십언의 도사(都事, 정칠품) 섭원생이었다.
“대인, 어인 일이십니까?”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이 의아한 눈으로 섭원생을 보았다.
그가 종종 무당파에서 제사를 지냈지만 이렇게 자신을 찾아온 일은 없었다.
“장문인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요?”
“혹시 오룡궁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십니까?”
“오룡궁요?”
영결상인은 얼핏 짐작이 갔지만 짐짓 모른 척했다.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섭원생이 찾아왔다는 것은 십언에서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쯧! 양 현령이 손을 썼구나.’
영결상인은 내심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호주는 무당파에 큰손이었는데 이번 일로 떨어져 나갈 게 분명했다.
“오룡궁의 속가제자가 죽산현 현령의 자제를 때려서 반병신을 만들어 놨답니다. 모르셨습니까?”
“아, 그 일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장이 조금 심하게 되었군요. 반병신이 아니라 뺨을 몇 대 때린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일로 오셨습니까?”
꽤나 차이가 나는 이야기지만 섭원생은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어차피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다름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결과다.
“어제 연남천에 대한 추포령이 떨어졌습니다. 관병들이 그를 잡으러 무당산으로 올 겁니다.”
“양 현령이 직접 나선 겁니까?”
“양 현령만이라면 무슨 큰일이겠습니까? 십언에 주둔하고 있던 정천호 황부승이 추포에 협조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병부(兵部)의 허가가 떨어졌으니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들이닥칠 겁니다.”
“이게 군부까지 동원될 일입니까?”
영결상인의 안색이 굳었다.
상대가 현령이라면 산문에서 적당히 어르고 달래 돌려보낼 수 있다.
그러나 군대라면 다르다.
정천호가 거느린 부대는 그 수가 일천일백 명.
그야말로 단숨에 무당파를 뒤집어 엎고도 남음이 있다.
힘들게 만들어진 호천맹의 위상을 생각하면 무당파가 군문에 밟혀서는 안 됐다.
“양 현령이 윗선에 읍소를 한 모양입니다. 무당파가 죄인을 보호하고 있어서 추포가 어렵다고. 윗선에서 병부를 움직여 돕도록 한 것이지요.”
“허어! 우리 무당파는 도관입니다. 도관에 군대를 밀어 넣다니요.”
“그래서 제가 오지 않았습니까. 장문인. 죄인을 양 현령에게 내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대로라면 황 장군의 부대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이 좋아 맞이지 그냥 밟히는 거다.
군대는 관병과 달라 일단 움직이면 뭐든 파죽지세로 밀어 버리니까.
영결상인은 즉답을 피했다.
연남천이 어떤 사람인가.
검왕 남궁벽의 추천은 차치하고, 그는 녹림의 태상호법이다.
천하에 그를 잡을 만한 사람이 있기나 할까?
금의위의 중재도 떠올려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연락할 방법도 없거니와 그와 연남천의 관계를 알 수가 없어서다.
고민하고 있는 영결상인에게 섭원생이 말했다.
“장문인, 무당파를 생각하십시오. 그래 봐야 속가제자가 아닙니까?”
영결상인의 입가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 속가제자가 가히 천하십대고수에 육박하는 고수이니 고민인 것을…….
한참 만에 영결상인이 입을 열었다.
“바쁘실 텐데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빈도가 연남천을 만나 어떻게 할지를 논의해 보겠습니다.”
“논의라니요. 설사 본산 제자라 해도 일이 이 정도로 커졌으면 내주는 게 낫습니다. 하물며 상대는 속가제자 아닙니까? 제자를 아끼는 장문인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이 문제는 빈도가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아! 정히 그러시겠다면 저도 더는 권하지 않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별반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소식을 전해 주신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오늘 무당파에 베푸신 대인의 호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별말씀을요.”
섭원생은 그 뒤로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떠나갔다.
영결상인이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다.
시중을 드는 어린 도동(道童)이 와서 원로원에서 부른다고 알려 왔다.
머리를 설레설레 젓던 영결상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태청각.
영결상인이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회의가 시작됐다.
안건은 속가제자 연남천과 수련자 양사강의 시비에 얽힌 일이다.
먼저 목격자인 산월 도사와 청선 도사가 나와서 증언을 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산월 도사와 청선 도사의 설명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산월 도사가 양사강을 나쁜 놈으로 묘사했다면, 청선 도사는 그 반대였다.
열 명의 장로들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두 사람의 말을 듣기만 했다.
증언을 마친 두 사람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시립하고 섰다.
그 뒤로 장로들은 각자의 의견을 피력했다.
무당파의 자존심 때문인지 연남천을 두둔하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분위기가 ‘양사강의 수련자 지위를 박탈하자’는 쪽으로 굳어 갈 때다.
회의 내내 침묵하고 있던 무양 진인이 손을 들었다.
“장문인, 빈도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영결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고 열린 원로회에서 굳이 저렇게 허락을 받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영결상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오늘 아침, 십언의 도사 섭원생을 만났습니다. 어제 날짜로 연남천의 추포령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추포령 소리에도 장로들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무림인들은 관부의 추포령을 요식 행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들에게 추포령을 집행할 능력이 없어서다.
사파의 잡배들이라면 모를까?
당장 녹림의 마두들만 해도 추포령에 콧방귀를 뀔 뿐 떨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로만 끝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정천호 황부승도 함께 움직일 모양입니다. 병부에서 이미 재가(裁可)된 사항이라고 하는군요.”
조용하던 회의실이 한순간 시끌벅적하게 변했다.
“정천호라면 그 아래 장졸이 천 명은 넘을 터인데!”
“아니! 이런 작은 일에 군문이 움직이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여기서 병부가 왜 튀어나온답니까?”
가만히 지켜보던 무양 진인이 손을 들어 올리자 좌중은 다시 조용해졌다.
“정천호 황부승은 원하는 걸 손에 움켜쥐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이번 싸움의 승자는 양 현령이 될 것 같습니다. 무당파가 병졸들의 발에 짓밟히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문인.”
장로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양 진인의 말대로다.
오룡궁 최고의 술사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무당파가 우선이었다.
장문인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영결상인의 답은 장로들이 생각한 것과 달랐다.
“좋은 말씀입니다만 빈도는 질문이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이요?”
“그렇습니다. ‘무당파 제자를 내어 주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누가 옳으냐?’는 것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옳은 길을 선택해야 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