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1
41회. 녹림은 번거로운 건 부탁하지 않는다.
연적하는 총채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봉산으로 돌아가면 꼼짝도 안 할 텐데 그런 자신에게 뭘 도와 달라는 건지?
“저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라.”
말과 함께 파천마군 석무해가 은패를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
“총순찰의 신분을 증명하는 영패다. 본래는 십이마군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네가 받아야 할 것 같다.”
“총순찰요?”
“별거 아니다. 혹시라도 순찰이 문제를 일으키면 네가 정리하라는 뜻이다.”
“전 오봉산에 있을 건데요?”
“평생 오봉산에 있지는 않을 거 아니냐? 살다 보면 지금처럼 산을 내려갈 수도 있는 거고. 그냥 마음 편히 지내다가 순찰들이 잘못한 게 네 눈에 띄면, 그때 정리하라는 거다. 마주칠 일이 없으면 마는 거고.”
석무해가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말을 해서 연적하는 덥석 은패를 받았다.
“그러니까 애써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우리 녹림은 번거로운 건 서로 부탁하지도 않는다. 일 때문에 뭔가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건 관원들이나 하는 짓이지. 제 앞가림하기도 바쁜 도둑들이 누굴 찾아다니겠느냐?”
“총순찰이면 채주보다 높은 거예요?”
“많이 높지. 총채주인 나를 대신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와! 좋은 거네.”
연적하는 은패를 품에 갈무리했다.
돌아다니지 않고 그냥 마음 편하게 살아도 된다는 소리에 홀랑 넘어간 것이다.
***
낙양.
백세상방.
본격적인 상행을 앞두고 방주 이세창의 집무실에 네 사람이 모였다. 대행수 이연복과 청룡대 대주 연무도, 백호대 대주 백도진이다.
이세창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두 명의 대주에게 덕담을 건넸다.
“연 대협, 백 대협, 이제부터 나는 두 분만 믿겠소이다. 연 대주와 백 대주가 와룡장 천단의 최고수시라는 이야기는 들었소. 낙양에 소문이 자자합디다. 와룡장의 천단 고수들은 칠파이문 제자들 못지않다고. 아무쪼록 우리 백세상방을 잘 부탁드리오.”
연무도가 떨떠름한 얼굴로 화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전처럼 물건을 도적들에게 헌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사실 연무도는 월봉 문제로 자존심이 꽤나 상한 상태였다.
‘칠파이문 제자 못지않다고 띄워 주면서 월봉 한 냥 오백 문이라니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세창은 연무도의 표정이 좋지 못한 걸 보고 슬쩍 한마디 했다.
“월봉이 좀 박한 것 같아 그 점은 미안하오. 하지만 두어 차례 상행을 마치면 월봉은 정상적으로 지급될 게요. 이번에 무한의 태평상방과 교역을 하기로 계약하였소. 이 거래가 잘 유지되기만 한다면 월봉 석 냥도 가능하오. 부디 애써 주시오.”
월봉 석 냥도 가능하다는 말에 연무도의 표정이 풀어졌다.
뒤이어 대행수 이연복이 무한으로 가는 상행의 주의 사항을 설명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남양 방면이 아니라 평정산을 거쳐 탑하로 가는 게 나을 게요.”
연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하탕진에 삼악산채가 악명을 떨치고 있다지요?”
하탕진은 낙양과 남양의 중간쯤 되는 지역이다. 그곳에 있는 삼악산채의 채주가 탐욕이 많고 악랄해서 상인들은 지나기를 꺼려 했다.
“삼악산채와는 대화가 어려워서 사실상 대규모 상행이 아니면 안전하질 않소.”
“탑하로 가는 길목에 적풍채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아래의 오봉산채야 은자 한 냥 짜리로 소문이 났지만 적풍채는 좀 까다로웠다.
“적풍채주는 성질이 더러울 뿐이지 탐욕이나 잔혹함은 무난한 편이오. 이쪽의 무력이 뛰어남을 증명하면 나머지는 큰 문제가 없을 게요.”
“처음에는 싸워야 한다는 말입니까?”
“적풍채주는 한두 사람을 내보내서 상대를 떠보는데 그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통행세가 정해지오. 그냥 가거나, 은자 오십 냥을 내거나, 최악의 경우 백 냥까지도 각오해야 하오.”
“이전에는 얼마나 주고 다녔습니까?”
“창해무관 출신의 무사들이 얕보여서 백오십 냥까지 내고 다녔었소.”
“헐!”
“그 바람에 와룡장에 기회가 갔으니 잘 좀 해결해 주시구려. 이번에 두 분 대주께 거는 기대가 크오. 은자 오십 냥만 해도 좋겠소.”
연무도가 피식 웃었다.
“은자 오십 냥도 많지요. 가급적 그냥 지나치는 방향으로 해 보겠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평정산을 지나면 오봉산이 나오는데, 오봉산채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게요. 상인 한 사람당 은자 한 냥. 그 정도는 부담이 가지 않으니 그냥 주고 가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오.”
“두세 개의 상방이 토벌을 갔다가 실패했다면서요?”
“만수상방이 쉬쉬해서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무당파의 천지상인도 패했다고 하니……. 그냥 비위를 맞춰 주는 게 나을 게요.”
“상인들에게만 받는다면 쟁자수나 잡부, 무사들은 안 내도 되는 겁니까?”
“그렇소.”
“그럼 상인들이 잡부로 위장하면 돈을 더 절약할 수 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방주 이세창이 한마디 했다.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자들이오. 괜한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현장에서 상인들과 이야기를 해 보고 제가 적절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연무도는 방주와 대행수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최대한의 실적을 보여 주고 싶어서다. 그래야 빨리 월봉이 오를 테니까 말이다.
대행수 이연복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말을 이었다.
“탑하 이후로는 쉬울 것이오. 무한으로 가는 길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운이 좋으면 탑하에서 다른 상방들과 만날 수도 있을 텐데, 그때는 무한까지 함께 가도록 하시오. 두세 개의 상방이 뭉치면 상행도 수월할 게요. 그걸 감당할 산채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오가는 데 넉넉히 잡으면 두 달 보름쯤 걸릴 게요. 서두르면 두 달도 가능하겠지만 짐이 많으니 무리하지는 마시오. 연 대주의 청룡대가 내일 출발하고, 한 달 뒤에 백 대주의 백호대가 가게 될 것이오. 물론 백호대의 출발은 사정에 따라 며칠 당겨지거나 늦춰질 수는 있소.”
백도진이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법 길었던 방주와의 면담이 끝나자 연무도와 백도진은 집무실을 나갔다.
숙소로 가던 연무도가 백도진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는 백가장 출신으로 백미주의 심복인지라 대하기가 껄끄러웠다. 백미주가 꽂아 준 사람만 아니었으면 벌써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백 대주, 오늘 나와 한잔하겠나?”
“하하! 아닙니다. 내일 상행 가실 분을 잡고 있으면 안 되지요. 백 부인께서 엄청 기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시작도 하기 전에 초를 치고 싶지 않습니다.”
“뭐 그러든가.”
연무도는 씁쓰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백 부인이 먼저다. 와룡장의 가주 자리는 아직 공석이다. 모두 연무백이 이어받을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재 와룡장의 실무는 백미주가 맡아서 하고 있다. 백세상방과의 계약만 봐도 알 수 있다. 연무백은 천지인 삼단의 제자들만 열심히 가르칠 뿐이다. 와룡장이 커져도 그 역할은 바뀔 것 같지가 않다.
“아, 참. 백 부인께서 또 오십 명의 제자를 받아들이실 계획이라고 하던데?”
“우리가 와룡장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빈자리를 채워야겠지요.”
“허어. 그럼 제자가 백여 명에 달하게 되는데……. 괜찮으려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상방에 자리를 잡으면 추진한다고 하셨으니까요.”
“아, 그럼 다행이고.”
연씨 일족의 중진인 자신보다 백도진이 더 많은 걸 안다는 게 조금 서글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것이 와룡장의 현실인 것을.
***
남직례성.
합비.
녹림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 그런지 오봉십걸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제 슬슬 놀면서 돌아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북적거리는 거리를 걷던 한채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아! 진짜 사람들 많다.”
“그러게요. 지난번에 지나갈 때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오늘 무슨 날인가?”
하소백이 신기한 듯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이 있었다.
오봉십걸은 사람들에게 떠밀려 한쪽 방향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 무슨 일인지 구경이나 하고 가자는 마음에 쓸려 간 것이다.
성문 밖 공터에 두 남자가 마주 보며 서 있다.
이십 대 중후반의 두 남자는 당장이라도 칼부림을 할 기세로 서로를 쏘아보고 있었다.
호남형으로 생긴 사내가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황염동, 내가 광불사의 실종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고 하는데, 모든 화가 입에서 나오는 것임을 잊지 마라.”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냉소를 치며 화답했다.
“흥! 절에서 승려 하나가 사라진 게 무슨 대단한 사건이라고 음모니 뭐니 한단 말이냐? 아무것도 아닌 일을 침소봉대하면 대단한 일로 바뀐다더냐? 그렇게 명성을 얻고 싶으면 산채나 토벌하든가.”
“너, 너, 감히……. 내가 명성 하나 얻자고 그런 말을 한 것 같으냐? 우리가 모르고 있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승려와 도사들이 사라진 줄 아느냐?”
“그래, 내가 좀 물어보자. 몇이나 사라졌는데?”
“나도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쯧쯧! 얼마나 사라졌는지도 모르면서 많은 사람이 사라졌다고? 그냥 가까운 산채나 토벌하러 가라니까.”
황염동의 말에 빙 둘러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와아’ 하고 한차례 웃었다.
호남형의 사내 등초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황염동! 나를 모욕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칼을 뽑아라.”
“등초, 내가 칼을 뽑으면 돌이킬 수 없는데. 정말 그걸 원하느냐?”
“잔말 말고 뽑아라!”
말과 함께 등초가 장검을 뽑았다.
그제야 황염동도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천천히 뽑아 들었다.
본격적으로 싸움이 벌어질 듯하자 구경꾼들도 두어 걸음씩 물러섰다.
그 와중에 누군가 알은척 입을 열었다.
“고학검이 요즘 좀 떴지만 그래도 아직 패산도에게는 안 될 텐데.”
“나는 오십 초를 보네. 그 전에 패산도가 이길 거야.”
“오십 초도 길지. 삼십 초 정도 버티려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철산이 불쑥 끼어들었다.
“형씨, 그런데 광불사의 실종 사건이라는 게 뭡니까?”
“아, 보름쯤 전에 광불사에서 중 하나가 사라졌지 뭐요. 그걸 두고 고학검과 패산도가 주루에서 말다툼을 벌이다가 싸움이 난 거요. 고학검은 광불사에서 몇 년마다 한 명씩 사라진다고 하는데, 그게 그냥 다른 지역으로 떠난 건지, 사고를 당한 건지 확인할 길이 없지 않소?”
사내의 말에 이철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유랑 걸식하다가 죽는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은 터라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은 별일도 아니었다.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설명하듯 말했다.
“고학검의 형이 광불사에 출가를 해서 조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오.”
그러자 이번에는 한채연이 물었다.
“고학검이라는 사람은 그렇다 쳐요. 그런데 패산도라는 사람은 왜 저렇게 시비를 걸지 못해서 안달이래요? 떠난 거든 실종이든 그런가 보다 하면 되잖아요.”
“고학검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니까 패산도가 조금 부러웠던가 보오. 본래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질 않소? 자꾸 유명해지려면 산채나 토벌하라고 하는 거 보면 틀림없을 게요.”
누군가 한마디 거들었다.
“둘이 약간 경쟁 관계이기도 했고.”
“경쟁은 무슨. 엄밀히 말해서 고학검이 후기지수지.”
“내 말은 후배가 치고 올라오니까 선배가 긴장한 거라고 이 사람아.”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고학검과 패산도의 싸움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싸움을 구경하던 연적하가 알은척하는 남자에게 물었다.
“아저씨, 그런 일로 서로 죽이기도 해요?”
“둘 다 정파의 협객들이라 그 정도까지는 안 가지. 어쩌다가 운 없으면 크게 다쳐서 죽을 수는 있어도.”
“아닌데…….”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패산도의 칼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어떻게든 상대를 격살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데, 그 정도까지 안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