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10
410회. 무슨 이야기를 원하시오?
주루 안이 후덥지근해지자 점소이가 돌아다니며 창문을 열었다.
늦여름 밤이라 그런지 창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이 훅 하고 밀려왔다.
연적하는 신선한 바람이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코를 벌름거렸다.
그런 그에게 점소이가 다가왔다.
“손님, 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합석해도 되겠어요?”
“그러든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혼자서 사인용 탁자를 차지하고 있으니 합석을 허락하는 게 맞았다.
이윽고 점소이가 일 남 일 녀를 데리고 왔다.
남자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고맙소. 나는 백검표국의 이견우요.”
“연 모라고 합니다.”
여자, 유지안은 선객(先客)이 이름을 밝히지 않자 그냥 앉았다.
상대가 통성명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다.
점소이가 탁자 위에 넓게 깔려 있던 음식을 연적하 앞으로 밀어 놓고 떠났다.
그때 문을 열고 노인과 어린 사내 아이가 들어왔다.
노인은 익숙한 동작으로 의자를 집어다가 주루 한쪽 벽을 등지고 앉았다.
“험, 험, 호광성에서 제일가는 설화인(说话人, 전문 이야기꾼) 천우생이 여러분께 인사 올리오.”
주루 안이 조용해졌다.
천우생은 이야기꾼 중에서 제법 유명한 축에 드는지라 다들 관심을 보였다.
이목이 집중되자 천우생은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 서유기)’를 펼쳤다.
“오늘은 후행자(猴行者, 손오공의 전신)가…….”
하지만 그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흑포를 입은 사내가 은자 반 토막(반 냥)을 그의 앞으로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천 대백(大伯)! 후행자와 삼장의 이야기는 들을 만큼 들었소! 천하에 천우생이 모르는 게 없다고 하던데, 죽산현 현령이 옥에 갇힌 사유를 아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천우생이 책을 덮었다.
하늘 같은 물주가 ‘서유기’보다 ‘양호주’에 대해 알기를 원하니 따라 줄 생각이다.
“험, 목이 좀 마른데.”
천우생이 너스레를 떨자 누군가 그에게 술 한 잔을 건넸다.
공짜 술로 목을 축인 그가 말했다.
“보름 전의 일이오. 십언에 있던 천호소 군사가 갑자기 출병을 했소. 왜? 그 전날 천호소 지휘관인 정천호 황부승이 병부(兵部)로부터 명을 받았거든. 무슨 명이냐? 무당파 제자가 국법을 어겼는데, 죽산현의 병졸로 추포하기 어려우니 가서 도우라 이거야.”
술을 마시던 손님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죽산현 현령에 대한 소문은 요란했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다.
“……그런데 여기서 병부에서 갑자기 왜 그런 지시가 내려왔을까? 그 내용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어. 십언에서 이런 것까지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천우생이 자화자찬을 하며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허어, 궁금한 사람이 없나 보네. 그럼 이 부분은 건너뛸까?”
그러자 손님들이 한마디씩 했다.
“말해 주쇼.”
“노인네야, 뜸 좀 그만 들여. 성질 급한 사람은 숨 넘어가겠어.”
“그렇게 궁금하면 한 푼이라도 보태 줘. 누군 땅 파먹고 사는 줄 아나? 하도 못 먹여서 손주 녀석 키가 안 커. 이놈을 좀 봐요. 열두 살인데 아직 일곱 살로 보이잖아.”
천우생이 곁에 공손히 서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이제 고작 예닐곱 살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데 그는 열두 살이라 했다.
몇몇 손님이 동전을 던졌다.
아이가 동전을 수거하자 천우생의 말이 이어졌다.
“고맙수. 애 키우는 데 잘 쓰리다. 그럼 계속하지. 죽산현 현령 양호주에게는 아들이 있어. 양사강이라고 하는데, 이놈이 좀 꼴통이야. 죽산현에서 주색잡기로 이놈을 따라갈 자가 없어. 현령이 아비이고 도하방주가 스승이니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지.”
누군가 딴지를 걸었다.
“아니 병부 얘기를 하다 말고 웬 양씨 부자요?”
“어허! 잠자코 들어요. 듣다 보면 다 알게 되니까.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
천우생이 능청스러운 얼굴로 묻자 누군가 서둘러 답했다.
“양사강이 안하무인이라는 것까지 했소.”
“아, 그랬지. 늙어서 자꾸 깜빡깜빡하니 내가 말할 때 끼어들지 마시우. 이 양사강이라는 놈이 술법을 배워 보겠다고 무당파엘 간 거야. 요즘 술법이 유행이니 한발 걸쳐 보겠다는 거지. 그래서 오룡궁에 갔는데, 개 버릇 남 못 주지. 거기서도 몰래 주색잡기를 하다가, 여제자를 건드렸네? 그런데 하필 그 여제자가, 오룡궁 최고 술사가 연모하던 사저였던 거야.”
“아!”
“와!”
손님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흥미진진한 내용인데 설화인을 통해 들으니 몰입감이 장난 아니다.
“그 일로 오룡궁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어. 도하방주의 제자 양사강과 오룡궁 최고 술사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혈전을 벌인 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평한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할 거야. 술사가 무인에게 상대가 되나? 안 되지.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 거야.”
천우생이 말을 끊고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잠시 쉬어 가는 시늉을 했다.
흑포의 사내가 품에서 나머지 반 토막 은자를 꺼내 던졌다.
다른 손님들도 질세라 동전을 던졌다.
댕그랑. 땡강-.
아이가 동전을 수거하고 제자리로 돌아오자 천우생의 입이 열렸다.
“양사강의 검에서 검풍이 일 장이나 뻗어났는데, 술사도 만만치가 않았어.”
천우생은 자신이 본 것처럼 양사강과 술사의 싸움을 묘사했다.
“……그때 오룡궁의 술사가 부적을 쓴 거야. 갑자기 양사강은 앞을 볼 수가 없게 됐고, 그 뒤로는 앞니가 다 부러지도록 처맞았지.”
그가 또다시 말을 끊자 손님 중 하나가 짜증 어린 투로 말했다.
“작작 하죠. 몇 마디 했다고 쉬어 가려고 해?”
“험, 험. 누가 쉬어 간다고 했소? 목이 컬컬해서 그런 것뿐이우.”
손님들 눈치를 살피던 천우생이 말을 이어 갔다.
“그 길로 양사강은 죽산현의 아비에게 달려가 고했소. ‘아버지, 오룡궁 제자에게 처발렸습니다. 복수해 주세요.’ 하고. 이빨이 다 빠진 아들을 보고 아비가 발끈한 거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상대가 무당파인 거야. 아무리 현령이래도 무당파에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하기는 어렵잖겠소? 그래서 재물을 싸 들고 윗분에게 쪼르르 달려간 거지. 그 윗분이 누구냐? 바로 십언의 안찰사 부사 한경대야.”
“아아!”
“그랬구먼.”
“쯧쯧! 모진 놈 옆에 있으면 벼락을 맞는다니까.”
손님들이 한차례 술렁거렸다.
“뇌물도 받았겠다 한 부사가 꾀를 낸 거지. 천호소를 움직이면 무당파가 꼼짝 못 할 거다. 그렇게 한 부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병부 옆구리를 찔러서 정천호 황부승이 움직였다 이 말이외다. 험, 험. 이제 아시겠소?”
고개를 끄덕이던 흑의의 사내가 말했다.
“그래서 양 현령은 왜 옥에 갇힌 거요? 정작 그 이야기는 빠졌지 않소?”
“아, 그렇군. 여하튼 그래서 양 현령이 천호소 군사와 함께 무당파로 가지 않았겠소? 여기서부터 두 가지 설이 있소. 누군가는 경천동지할 술법에 천호소 군사가 깨져 도망쳤다가 내부 감사에 걸렸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무당산에 금의위가 들이닥쳐 양 현령을 잡아갔다고도 하오. 양 현령과 한 부사의 죄는 천하에 알려진 일이라 새삼 언급할 것도 없고.”
천우생은 돈이 더 나올 것 같지 않자 이야기를 축약해서 들려주었다.
흑의의 사내는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는지 자리로 돌아갔다.
천우생의 이야기가 끝나자 손님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쉬던 천우생이 다시 ‘대당삼장취경시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막 운을 떼려는 순간, 그의 앞으로 은자 하나가 떼구르르 굴러왔다.
장승처럼 서 있던 아이가 번개처럼 달려가 은자를 움켜잡았다.
천우생이 활짝 웃으며 새로 등장한 죽립인을 바라보았다.
“그쪽은 무슨 이야기를 원하시오?”
“명왕교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 봐요.”
“유명교에서 나온 명왕교?”
“네.”
“어험! 그건 좀 생각을 해 봐야겠는데.”
“왜요? 잘 몰라요?”
“모르긴. 아는데, 그걸 들어서 뭐에 쓰려고 그러우?”
“뭐에 쓰긴요.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거지.”
“돈도 많으시네…….”
천우생은 죽립인을 힐끔거렸다.
오늘날 강호에 천하이교(天下三敎, 유명교와 명왕교)만큼 신비하고 두려운 이름도 없다.
이전 같으면 무림공적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은 대놓고 ‘천하이교’로 불린다.
그들을 정죄할 단체가 없어서다.
저 유명한 칠파일문조차 그들 앞에서 몸을 사릴 정도면 알 만하지 않은가.
‘이거 뭐하는 놈이지?’
명왕교를 좋게 말하면 자신만 나쁜놈이 되고, 나쁘게 말하면 칼에 맞아 죽는다.
‘왜 그러는지 알아야 입맛에 맞게 각색해 줄 텐데…….’
고민하고 있는 천우생의 귓가에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할 거예요? 말 거예요?”
“못 할 것도 없지. 해 드리리다.”
청년의 다그침에 천우생이 호기롭게 말했다.
최대한 건조하게, 알려진 대로 묘사하면 자신을 욕하는 사람이 없으리라.
“험, 험. 명왕교가 유명교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그쪽도 알고 있을 게요. 명왕교가 유명교와 갈라서게 된 것은 ‘천두마왕의 진언’ 때문이오. 유명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살아서 천두마왕이 되는 것이오. 그런데 모두 천두마왕이 되면 유명교는 콩가루가 되지 않겠소? 그래서 유명교주는 천두마왕이 될 수 있는 진언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않았소.”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랫사람들 마음이 교주와 같을 수는 없는 법. 백두마군 중에 넷이 공평함을 기치로 들고일어났소. 교주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누구에게라도 천두마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리고 그들은 유명교에서 나와…….”
연적하가 천우생의 입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고 싶은 게 바로 ‘나와서 어디로 갔느냐’였다.
“험, 험, 목이 컬컬해서…….”
천우생은 몇 마디 하지도 않고 목 타령을 했다.
본래 설화인은 청중을 달아오르게 해서 돈주머니를 열게 하는 사람들이다.
성질 급한 연적하는 두말하지 않고 은자 한 냥을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남쪽으로 내려갔소. 물론 유명교 성산인 풍지산을 기준으로 남쪽이오.”
힐끔 죽립인의 눈치를 보던 천우생이 말을 바꿨다.
“명왕교에서 ‘명왕’은 ‘진언을 익힌 위대한 존재’라는 뜻이오. ‘천두마왕’의 진언을 익혀 위대한 존재가 되겠다는 목표를 담은 게지. 아직은 유명교가 명왕교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좋아하지는 않을 게요.”
“명왕교는 남쪽 어디로 갔나요?”
“강서성 ‘여산’이라는 말도 있고, 호광성 ‘천아산’이라는 말도 있소.”
“그 둘 중에 하나다?”
“그럴 거요. ‘여산’인지 ‘천아산’인지 확실히 알 방법이 있기는 한데…….”
“뭔데요?”
“명왕이 진언만으로 되는 게 아니지 않소.”
말과 함께 천우생은 손날로 제 목을 그어 보였다.
인신공양(人身供養)을 주목하라는 뜻이다.
유명교에서 수도자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연적하는 ‘아!’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사의 실종이 빈번한 곳에 명왕교가 있겠다 싶어서다.
“할아버지 생각에는 명왕교가 어디에 있을 것 같아요?”
“나라면 천아산보다는 여산에 자리를 잡을 게요.”
“왜요?”
“왜냐니? 머리는 죽립을 쓰기 위해 달고 다니는 거요? 명왕이 되려면 필요한 게 뭐요?”
주위를 살피던 천우생이 입 모양으로 말했다.
-수도사잖아.
“궁벽한 곳의 천아산보다야 포양호를 끼고 있는 여산이 제격이지.”
“아!”
연적하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에게 구박을 받으니 새삼 십전무후 남궁연이 그리웠다.
그녀가 곁에 있었다면 이런 문답 자체가 불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쪽도 명왕에 관심이 있소?”
얼추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한 천우생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유명교든 명왕교든, 혹은 호천맹이든, 어느 한쪽에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설화인의 위치는 실로 애매해서 자칫 누군가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천우생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도록 대화를 유도했다.
“관심 없어요. 그냥 호기심이지.”
“더 볼일 없으면 가 보시우. 나는 손주를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해서.”
천우생이 다시 ‘대당삼장취경시화’를 손에 잡았다.
그의 축객령에 창가 자리로 돌아간 연적하는 비어 있던 잔에 술을 따랐다.
그가 막 술을 한 모금 마실 때다.
흑의의 사내가 다가왔다.
“합석해도 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