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14
414회. 거참, 아저씨 아니라니까
두두두두-.
말과 마차 뒤로 자욱한 흙먼지가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마차가 가까이 오자-찢어진 채로 나부끼는-깃발에 적힌 글자가 보였다.
단심표국.
뒤늦게 탈혼마검 노도경이 투덜거렸다.
“도적이라도 만났나? 꽁지에 불붙은 개처럼 달려오네. 어이쿠! 저 먼지 어쩔 거야?”
연적하와 노도경은 관도 밖으로 급히 몸을 피했다.
먼지도 먼지지만 그보다 미친 듯 달려오는 마차에 치일 것 같아서다.
두두두두-.
세 명의 표사들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두 대의 마차가 그 뒤를 이었다.
연적하와 노도경의 옆을 스치듯 지나쳐 가던 마차 창문이 한순간 살짝 열렸다가 닫혔다.
자욱한 흙먼지만 남기고 마차는 한순간에 멀어져 갔다.
연적하와 노도경은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에도 노도경은 한참 동안 마른 기침을 해댔다.
“쿨럭, 쿨럭! 커억, 퇫! 내 저것들을 다시 만나면 기필코…….”
“어쩌시게요?”
“따져 묻고 사과를 받아야지.”
“난 또 죽이겠다는 줄 알았네요.”
“어허, 함부로 살생을 하면 쓰나.”
“객점에서 아홉 명이나 죽인 건 누군데요?”
“오해하지 말게. 우형(愚兄)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손을 쓰지 않는다네.”
“우형이라니요. 자신을 너무 낮추시네요. 아저씨.”
“아저씨라니. 보기보다 내 나이는 그렇게 많지 않네. 그냥 노형이라 부르게.”
“내가 그렇게 싸가지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호칭 문제를 두고 연적하와 노도경이 신경전을 벌일 때다.
뒤쪽에서 다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힐끔 돌아보니 십여 명의 무인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선두에서 달려오던 중년의 무인이 급하게 말고삐를 잡아챘다.
달리던 말이 앞다리를 치켜세우고 남은 힘을 허공에 쏟아 냈다.
히히힝-.
뛰어난 기마술이었다.
뒤이어 무인, 낙성검 추성래가 날카로운 눈으로 연적하와 노도경을 훑어보았다.
“실례하오. 두 분은 혹시 마차 두 대가 가는 걸 보았소?”
“단심표국의 마차를 말하는 거라면 보았소.”
노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성래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마차가 보강현 방향으로 갔소?”
상대가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노도경은 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마차를 왜 찾는 거요?”
“아, 급한 마음에 소개가 늦었구려. 나는 단심표국의 총표두 낙성검 추성래요. 비적들에게 탈취당한 마차를 뒤쫓고 있는 중이오.”
그제야 노도경은 손가락으로 보강현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갔소. 반 각(약 7분)쯤 됐을 게요.”
“고맙소!”
추성래와 십여 명의 무인들이 보강현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관도가 흙먼지로 뒤덮이자 연적하와 노도경은 길옆으로 피했다.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에야 두 사람은 다시 관도 위로 올라섰다.
몇 걸음 걷던 노도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이상해.”
“뭐가요?”
“앞서간 사람들을 비적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랬죠.”
“비적들치고는 일사불란해 보이지 않던가? 나는 그런 비적들을 본 적이 없는데.”
“그렇기는 하네요. 그럼 뭘까요?”
“단심표국 표사들에게 쫓기는 단심표국 마차라. 재미있군.”
노도경의 말에 연적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같은 표국의 표사들에게 쫓기는 마차라니? 확실히 보기 드문 경우였다.
“어떤가? 싸움 구경이 가장 재밌다고 하던데, 한번 볼 텐가?”
“그러죠. 어차피 가는 방향도 같은데.”
노도경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싸움도 구경하고, 연남천의 재주도 확인하고, 그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였다.
“마차를 따라잡으려면 경신술을 써야 하네. 괜찮겠나?”
“괜찮으니까 그러자고 했죠.”
“그럼, 가세.”
말과 함께 노도경은 공력을 끌어 올렸다.
이윽고 천마행공을 펼치자 그의 몸은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한번 도약할 때마다 거의 십여 장(약 30미터) 거리가 뒤로 밀려났다.
유사종교 단체인 마교는 천인(天人), 상생(上生), 하생(下生)으로 서열이 나누어진다.
천마행공은 상생부터 배울 수 있는 경신술로 축지술에 가까웠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멀어져 가자 연적하도 구천기를 끌어 올리고 지면을 박찼다.
절정에 이른 비연보로 연적하의 신형은 한 마리 제비처럼 보였다.
오 성의 공력으로 출발했으나 노도경과의 거리는 좁아지지 않았다.
약이 오른 연적하는 구 성까지 끌어 올렸다.
쉬이이익-.
주변 경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훌렁 벗겨진 죽립이 뒤로 날아가고 등짐도 요동쳤다.
그래도 그는 노도경의 뒤통수만 보며 구천기를 발바닥 용천혈로 밀어 넣었다.
그제야 노도경과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이십 장(약 60미터)쯤 따라붙었을까?
노도경이 힐끔 뒤를 돌아보는가 싶더니 거리가 갑자기 더 멀어졌다.
‘젠장!’
연적하는 이를 악물고 십성 공력을 끌어 올렸다.
그렇게 전심전력으로 달렸지만 노도경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돼.’
연적하는 비연보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단거리라면 모를까?
지금 같은 장거리에서는 도무지 노도경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았다.
곧이어 말에 탄 십여 명의 표사들이 보였다.
노도경은 돌아가지 않고 놀랍게도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올라 추월해 버렸다.
표사들이 가까워지자 연적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들을 피해 숲으로 돌아가면 노도경과 더 멀어지니 표사들을 뛰어넘어야 했다.
하지만 비연보에는 그런 공능이 없다.
‘비연보는 그저 제비처럼 날쌔게 달릴 뿐 허공을 날아갈 수가…… 있다?’
문득 구천구검 구 식 능운소요(凌雲逍遙)가 떠올랐다.
능운소요는 일종의 ‘어검비행술’이다. ‘어검술’인 만큼 공력의 소모도 크다.
여기서 검을 빼면 비행(飛行)이 남는다.
그것은 영감이라 해도 좋았다.
연적하는 비연보에 능운소요의 구결을 끌어 왔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한다 해도 크게 잘못될 일은 없었다.
‘표사들 머리 위로 떨어지기밖에 더하겠어?’
후미의 표사와 점점 가까워지자 연적하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천마행공으로 표사들을 뛰어넘은 노도경이 뒤를 힐긋 돌아보았다.
기를 쓰고 달려오는 연남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이군.’
축지술이라 불리는 천마행공을 따라오다니 단지 술사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그는 연남천이 자신처럼 표사들을 뛰어넘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천마행공과 같은 경신술이 천하에 또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표사들 위를 넘으려면 곤륜의 운룡대팔식이 필요하지만 그건 운신법이다.
‘단지 운신법으로는 달리면서 건너 뛸 수가 없…….’
노도경이 눈을 부릅떴다.
허공으로 도약한 연남천이 구름을 탄 신선처럼 유유히 날아오고 있었다.
‘무당파에 저런 경신술이 있다고?’
노도경은 급히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전력 질주했다.
과거 칠파이문의 내로라하는 경공의 고수들도 천마행공 앞에서 무너졌다.
그런 천마행공이 고작 무당파 속가제자 따위에 따라잡히게 둘 수는 없었다.
작정하고 달리자 노도경의 신형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얼마쯤 달렸을까?
노도경의 앞에 마차가 나타났다.
마침내 종착점에 도착한 것이다.
노도경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연남천과의 거리는 아직도 십여 장(약 30미터)이나 남아 있었다.
노도경은 속도를 떨구고 연남천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하하. 소형제도 제법 하는구먼.”
“헉, 헉! 표사들 뒤만 슬슬 따라가도 되는데 왜 추월했어요? 힘들어 죽겠네.”
“오랜만에 달리다 보니 흥이 나서 그렇게 됐네. 그나저나 소형제가 사용하는 경신술의 이름은 어찌 되는가?”
“비연보요.”
“비연보? 일각(15분)만 배우면 누구나 펼칠 수 있다는 그 비연보?”
“맞아요.”
“농담이 지나치군. 자네가 표사들 머리 위로 날아가는 걸 보았네. 비연보에 ‘능공도허’의 묘용이 들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능운소요에서 따온 거예요.”
“능운소요?”
노도경은 속으로 몇 번이고 ‘능운소요’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천마행공에 버금가는 경신술치고 참으로 부드럽다는 느낌이다.
그때 ‘덜그럭’ 소리와 함께 마차가 흔들렸다.
곧이어 한쪽 바퀴 축이 떨어져 나가면서 달리던 마차가 기울어졌다.
마차 바닥이 노면을 긁으며 거친 소리를 냈다.
콰드드득-.
“이크! 저리로 가세.”
마차에 변고가 생기자 노도경은 연적하를 이끌고 숲으로 들어갔다.
바퀴가 빠진 마차는 얼마 못 가서 멈춰 섰다.
주저앉은 마차에서 사십 대 남자와 이십 대 여자가 힘들게 빠져나왔다.
다행히 그 일로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남은 마차 한 대가 저만치 멀어져 갔지만 누구도 소리쳐 잡으려 하지 않았다.
피칠갑을 한 세 명의 무인이 남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 하나가 마상에서 말했다.
“차 방주는 내가 맡겠다. 용 표두는 신 행수를 태워라.”
그가 차 방주를 뒤에 태우자, 용지명 표두도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 소저.”
“…….”
머뭇거리던 신지의는 결국 용지명의 손을 잡고 말 위로 올라갔다.
무리인 줄은 알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라도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세 마리 말에 다섯이 탄 셈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출발한 지 채 반각도 지나기 전에 멈춰야 했다.
십여 명의 표사들에게 뒤를 잡히고 만 것이다.
낙성검 추성래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차 방주, 이제 그만합시다. 당신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이게 무슨 꼴이오?”
그를 뒤에 태운 중년의 사내, 단심표국의 표두 하신우가 소리쳤다.
“추성래! 총표두란 자가 임무 수행 중인 표사를 공격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하 표두, 너무 욕하지 말게. 나도 임무 수행 중이라는 걸 자네도 알지 않나.”
“개소리! 강도짓을 하고서 무슨 임무!”
“자네와 자네 수하들은 어제 날짜로 단심표국에서 퇴출되었네. 그러니 강도는 자네들이지.”
“헛소리 마라! 국주님께서 그랬을 리가 없다!”
“차 방주의 삼진상방은 사라졌네. 자네와 차 방주의 의리를 모르는 바가 아니나. 그건 그야말로 죽은 자식 부랄 만지는 격에 불과해. 국주님이 운학상방과 손을 잡았는데 자네가 차 방주를 도우면 쓰나?”
“국주님이 운학상방과 손을 잡았다고?”
단심표국과 운학상방, 삼진상방은 모두 무한에 본점을 두고 있다.
상권을 두고 싸우는 상방과 달리 표국은 중립적인 위치를 지켰다.
그런데 운학상방과 손을 잡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삼진상방의 차 방주를 노리는 걸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네. 대신에 삼진상방이 가진 차용증을 넘겨받기로 했지.”
차용증이라는 말에 삼진상방의 방주 차금손이 소리쳤다.
“날강도가 따로 없구나! 너희 단심표국 국주가 나에게 빌려 간 돈이, 올해에만 금 일만 냥이다. 그걸 떼어먹자고 벌인 일이라는 걸 모를 줄 아느냐!”
추성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나는 당신이 가지고 달아난 차용증만 회수하면 돼. 다른 곳에 빌려준 돈은 우리가 알아서 받아 낼 테니 염려 말고.”
“의리를 배신한 것으로도 모자라 차용증까지 빼앗아 가겠다고? 하늘이 두렵지도 않으냐!”
“배신이라니? 삼진상방의 권리증을 운학상방에 판 건 당신이라고.”
“거짓말! 나는 그런 권리증 따위 본 적도 없다!”
“그건 나중에 운학상방과 이야기하고, 좋은 말로 할 때 차용증이나 내놔.”
추성래가 차금손을 겁박할 때 수풀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아저씨, 차용증은 뭐고 권리증은 뭐예요?”
“거참, 아저씨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