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15
415회. 삼살(三殺)의 율법
대부분의 마교도가 그렇듯 노도경의 부모는 하생(下生)이었다.
천인(天人)의 자녀는 다섯 살, 상생(上生)의 자녀는 여섯 살, 하생의 자녀는 일곱 살에 ‘연신당(練身堂)’에 입당한다.
부모의 후광이라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질을 고려한 것이라 믿는다.
‘연신당’의 천 일 수련에서 걸러진 아이가 가는 곳이 ‘연기당(練氣堂)’이다.
‘연기당’의 천 일 수련에서 ‘하생’과 ‘상생’이 갈린다.
‘연기당’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소년 소녀 들은 ‘멸천각(滅天閣)’으로 넘어간다.
‘멸천각’에 들면 자동으로 ‘상생’의 신분을 얻는다.
‘연신당’이나 ‘연기당’과 달리 ‘멸천각’의 수련은 정해진 기간이 없다.
마교의 진산절학을 단시일 내에 터득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노도경의 경우 ‘멸천각’을 나오는 데 십 년이 걸렸다.
그가 처음 ‘멸천각’에 들어갔을 때 마교도들은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고 했다.
왜냐고?
‘천인’과 ‘상생’의 부모는 자녀에게 영약을 먹이고, 비전의 심법까지 가르쳐 준다. 그에 반해 ‘하생’의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생’의 자녀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
그 어려운 ‘상생’의 관문을 자신의 자질과 노력으로 통과한 이가 노도경이었다.
마교의 아이가 처음 ‘연신당’에 들어가면 ‘삼살(三殺)’의 율법을 교육받는다.
첫째, 악인을 죽여라[惡人殺].
세상을 더럽히는 원흉이니 죽여야 한다.
둘째, 선인을 죽여라[善人殺].
타락한 세상에 진정한 선인은 없으니 위선자는 죽어 마땅하다.
셋째, 배교자를 죽여라[背敎殺].
마교를 배신한 자는 죽여라.
두 번째 ‘선인살’의 율법만 아니었어도 마교는 무림공적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교는 ‘삼살’에 대해서만은 타협이 없었다.
오십 년 전 처음 ‘연신당’에 입당한 탈혼마검 노도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미 죽일 자를 결정했다.
‘악인살’에 의하면 단심표국 총표두 낙성검 추성래와 그의 일행은 죽어야 한다.
그게 율법이다.
노도경이 관도로 나간 것은 마교의 율법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연남천이 따라붙으며 물었다.
“아저씨, 차용증은 뭐고 권리증은 뭐예요?”
“거참, 아저씨 아니라니까.”
“괜히 말 돌리지 말고요. 아저씨도 모르죠?”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외모만큼은 중년인 노도경이 버럭 소리쳤다.
“알아! 너만 빼고 천하가 다 알 거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안다고 말만 하지 말고 말해 봐요.”
“돈 얼마를 빌려줬다는 내용이 적힌 게 차용증이야. 권리증은 상방을 매도할 때 자기가 주인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고. 그걸 꼭 말로 들어야 아나?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대충 눈치로도 때려 맞추겠다.”
“그 정도는 나도 알죠. 난 또 다른 뜻이 있는 줄 알았네.”
연남천의 뺀질뺀질한 말대꾸에 노도경은 한순간 살심(殺心)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이내 사라졌다.
마교도가 살인을 즐긴다고 하는 건 오해다.
‘삼살’에 해당되지 않는 한 마교도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물론 ‘삼살의 율법’이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지만, 대체로 그랬다.
노도경의 눈에 연남천은 ‘삼살’의 율법과 무관했다.
악인은 아니고, 말하는 꼬라지를 보면 선인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마교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당장에 그를 쳐 죽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불청객들의 면면을 살피던 총표두 낙성검 추성래는 암암리에 탄식했다.
‘이런 제길.’
시커먼 흑의와 대나무 등짐.
조금 전 관도에서 자신들을 추월해 간 고수들이었다.
저들이 왜 끼어드는지 몰라도 결코 좋은 뜻 같지는 않았다.
휘하의 표사들도 두 사람을 알아보았는지 잔뜩 겁먹은 얼굴들이다.
그래도 이대로 달아날 수도 없는 노릇.
추성래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운을 뗐다.
“본인은 단심표국의 총표두 낙성검 추성래요. 여러분은 누구…….”
“알 것 없다. 어차피 죽을 놈이 그런 걸 알아서 무얼 하게.”
대뜸 노도경이 장검을 뽑아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살수에 연적하가 발바닥으로 노도경의 엉덩이를 슬쩍 밀었다.
쉬이이-익.
검 끝에서 뻗어 나간 검기는, 추성래에 이르지 못하고 급격하게 꺾여, 말 머리를 댕겅 잘랐다.
그 모두가 한 호흡에 일어난 일이었다.
머리가 잘린 말은 이내 중심을 잃고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추성래는 말의 몸통에 다리가 깔리기 직전 가까스로 뛰어내렸다.
“무슨 짓이냐!”
노도경과 추성래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엉덩이를 차인 노도경은 연남천을, 기습받은 추성래는 노도경을 노려보았다.
칼부림이 나자 아홉 명의 표사는 말에서 뛰어내려 추성래 뒤에 도열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표두 하신우와 삼진상방의 방주 차금손도 말에서 내려왔다.
하신우의 수하들과 신지의도 마지 못해 내려와 차금손 옆에 섰다.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아니 아저씨는 눈만 마주치면 사람을 죽여요? 아저씨야말로 다짜고짜 무슨 짓이에요?”
“너도 듣지 않았느냐? 저놈들은 신의를 배신하고 강도 짓을 하려던 악한 종자들이다. 악인은 죽어 마땅하거늘 왜 방해하느냐?”
“그렇다고 막 죽여요?”
“악인을 죽이는 것이 잘못된 일이란 말이냐?”
노도경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만약 연남천이 ‘그렇다’고 하면 연남천은 위선자이니 죽여야 한다.
“아저씨가 무슨 황제라도 돼요? 자기가 즉석에서 판결을 다 내리게.”
“답해라. 악인을 죽이는 것이 잘못된 일이냐?”
“잘못은 아닌데 그래도 이러는 건 아니죠.”
“…….”
일순 노도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연남천의 대답만으로는 위선자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연남천. 악인을 죽이는 것은 본교의 율법이다. 나를 방해하면 너부터 죽이겠다. 그래도 막겠느냐?”
“이 아저씨가 중간이 없네. 내 언제고 이런 날이 올 것 같더라니까. 입 그만 털고 덤벼 봐요. 강호에 규 칙이나 율법이 어디 있어요? 힘 센 놈 꼴리는 대로 하는 거지. 딱 보니까 아저씨도 그렇게 살아왔구만.”
말과 함께 연적하는 품에서 청사를 꺼내 들었다.
노도경이 피식 웃었다.
맞는 소리다.
마교가 삼살의 율법을 가르치지만, 그것도 통하는 곳에서나 가능하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애송이였는데 아쉽게 됐구나.”
자신이 순찰사자만 아니었어도 못 본 척 넘어가 줬을지 모르겠다.
“나는 아저씨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
“후후.”
어딘지 메마른 웃음과 함께 노도경은 장검을 휘둘렀다.
탈혼일절, 환검노도(幻劍怒濤)다.
허공에 생성된 이십여 개의 검영(劍影)이 노도처럼 연남천에게 밀려 갔다.
연적하가 청사에 구천기를 밀어 넣었다.
우우웅-.
유형화된 검기가 청사 밖으로 이 척(60센티)이나 뻗어 나갔다.
그 상태에서 연적하는 구천세법 일 식 비룡승천을 펼쳤다.
지면을 향하던 검기가 갈지자[之]를 그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가가가각-.
검기에 맞은 검영이 기괴한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하지만 검기에서 살아남은 여덟 개의 검영이 좌우에서 연적하를 노렸다.
하늘을 향했던 검기가 이 식 용무천상의 수법으로 떨어져 내렸다.
휘우우웅-.
검기가 만들어 낸 돌풍이 좌우편의 검영을 집어삼켰다.
검영을 없앴지만 연적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노도경의 일 초식을 자신은 이 초식으로 막아 낸 까닭이다.
왠지 손해를 본 느낌이었다.
한편 노도경은 자신의 탈혼일절이 무위로 돌아가자 더욱 진중한 얼굴을 했다.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뛰어나군.’
과거 강호를 종횡할 때도 탈혼일절을 받아 내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이십 대로 보이는 연남천이 그걸 해낸 것이다.
‘아깝지만 여기까지다.’
노도경은 연남천과 거리를 좁히며 연이어 탈혼이절과 삼절을 쏟아 냈다.
연적하의 주변이 검기와 검영으로 가득찼다.
연적하도 구천세법의 삼 식과 사 식으로 맞받아쳤다.
처음에는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안정됐다.
노도경과 연남천의 개세적인 무학에 추성래와 그 휘하의 표사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들이 막 전장에서 벗어나려 할 때다.
돌연 어디선가 한 가닥 검기가 날아와 그들 앞을 길게 긋고 지나갔다.
콰과과곽-.
눈앞에 고랑이 파이자 추성래와 표사들은 석상처럼 그 자리에 굳었다.
꽈르르릉. 꽝.
노도경과 연적하 사이에서 끊임없이 지축을 흔드는 우렛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도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은거하기 전에도 칠절 이상 펼친 적이 없거늘…….’
그런데 무려 구절이나 펼쳤음에도 상대는 여전히 생생했다.
칠파이문의 원로 고수들도 칠절 앞에 달아났는데 구절로도 안 된다니?
천하십대고수들이라면 모를까.
아직 새파랗게 어린 연남천의 나이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십절부터는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만큼 자신에게도 무리가 따른다.
구절이 통하지 않자 노도경은 잠시 갈등했다.
애송이가 생사대적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연남천의 안색을 살폈다.
‘웃어?’
분명히 연남천은 웃고 있었다.
얼굴이 퉁퉁 부어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처진 눈꼬리는 분명 그랬다.
‘이, 나를 상대로, 웃는다고?’
충격도 잠깐, 이내 심장이 벌렁거리며 밑바닥에서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죽인다.
일명 순찰사자로 불리는 동방사자 탈혼마검 노도경의 눈이 뒤집혔다.
잠시 멈칫했던 그의 손에서 마침내 탈혼십절, 탈혼검광(奪魂劍光)이 펼쳐졌다.
우우웅-.
노도경의 장검에서 시퍼런 검강(劍罡)이 일 척(약 30센티)이나 뻗어 나왔다.
무엇이건 잘라 버리는 파괴적인 검강에 따로 초식이 있을 리 없다.
노도경은 수평으로 길게 연남천을 베어 갔다.
연적하는 ‘빛나는 검광’을 검기로 맞받아치지 않고 슬쩍 비켜섰다.
그리고 구천구검 이 식 행지무강(行之無疆)으로 반격했다.
노도경은 느릿느릿 다가오는 단검을 검강으로 후려쳤다.
그런데 기이하게 단검에 닿지 않았다.
오히려 단검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윽!’
어깨가 화끈한 순간 노도경은 이성을 되찾았다.
‘십절이 통하지 않는다고?’
가늠할 수 없는 상대의 무위 앞에 굳게 지키고 있던 마음의 평정이 무너졌다.
잠깐 십일절을 떠올렸지만 차가운 이성이 만류했다.
그는 뒤로 물러나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다시 탈혼일절을 펼쳤다.
일종의 타협을 제시한 셈이다.
수세에 몰린 이 싸움을 평화롭게 무마하려면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십여 개의 검영(劍影)이 연남천을 향해 날아갔다.
조금 전의 긴박한 접근전에 비하면 서로 한결 여유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전력을 기울이지 않아 검영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연적하는 그런 노도경의 깊은 뜻을 알지 못했다.
구천구검 이 식 ‘행지무강’이 삼식 ‘풍천소축(風天小畜)’으로 넘어갔다.
드러나는 성격상 ‘행지무강’이 봄바람이라면 ‘풍천소축’은 태풍이다.
청사 끝에서 강력한 돌풍이 일어났다.
쿠쿠쿠쿠-.
눈앞으로 검기가 태풍처럼 밀려오자 노도경은 저로 모르게 욕을 퍼부었다.
“야! 이 개자식아! 적당히 좀 해라!”
그는 미친 듯 장검을 휘둘러 사방에서 휘몰아쳐 오는 검기를 베어 냈다.
풍천소축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처참했다.
땅에는 깊은 고랑이 파였고, 관도 옆의 나무들도 밑둥만 남아 있었다.
“쿨럭! 퇫!”
기침과 함께 노도경이 핏물을 뱉어 냈다.
머리는 산발을 했고,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유랑 걸식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노도경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어떻게, 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