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20
420회. 너는 ‘왕들의 하늘’에서 왔느냐?
산서성.
교구현.
풍지산.
해거름 무렵.
유명교 성지로 알려진 풍지산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인적이 끊긴 산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어 별천지를 보는 듯했다.
고요한 산속에 ‘스스스’ 하고 풀잎 스치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초상비’의 수법으로 산을 달려 오르는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 중 하나는 어깨에 중년 남자를 둘러메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마혈과 아혈이 점혈된 듯 미미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세 사람은 협곡에 도달해서야 달리기를 멈추었다.
이윽고 십두마병 등추경이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중년 남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사방에서 메아리치듯 맑고 담담한 음성이 들려왔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팔황의 일인인 구궁천녀(九宮天女)였다.
유명교주가 왔다는 뜻이다.
십두마병들은 허리를 숙이고 자신의 발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팔황신모가 유령처럼 협곡에 내려섰다.
그녀의 시선이 중년 사내에게로 향했다.
그는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아마도 처음 내려놓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쯧쯧!’ 혀를 차던 팔황신모가 손가락을 튕겼다.
격공타혈이다.
움찔움찔 몸을 떨던 중년 사내가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귀하는 누구요?”
그윽한 눈으로 그를 보던 팔황신모가 되물었다.
“당신이 여량 정인문의 문주 우인몽인가요?”
“그렇소. 당신들은 누구며, 왜 나를 납치한 거요!”
“여기는 풍지산이에요. 그럼 우리가 누군지 알겠죠?”
“…….”
풍지산이라는 말에 우인몽은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팔황신모가 손을 들어 올렸다.
우인몽은 보이지 않는 잠력이 옭아 매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여량의 문파들을 선동해 호천맹에 가입시키는 것은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본교에 대한 악담을 많이 했더군요.”
“악담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오!”
“비록 사실이라 해도 당사자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는 벌을 받아야 마땅해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어디 있냐고요? 여기에 있지요. 그러니 당신이 내 앞에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나를 어쩌겠다는 거요? 수도사가 아니니 제물로 쓸 수는 없을 테고, 죽일 거요?”
생사관이 뚜렷한 우인몽은 두려워하지 않고 팔황신모를 쏘아보았다.
팔황신모는 그런 그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고강한 무공에 꺾이지 않는 의지, 수도사보다 더 좋은 제물이 될 것 같았다.
“후후. 그런 악담은 하지 말아요. 우리 유명교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아요.”
“허튼소리!”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본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손을 쓰지 않아요.”
“그래서 나를 어디에 쓰려고 납치했다는 거요?”
“이제 곧 알게 될 거예요.”
팔황신모가 반대편에 매여 있는 검은 염소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검은 염소가 허공에 둥둥 떠서 그녀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는 검은 염소를 품 안에 안고 잠시 머리를 쓰다듬었다.
매에에-.
부드러운 손길에 검은 염소가 가볍게 울 때다.
그녀의 손이 검은 염소의 머리통을 움켜잡고는 그대로 뽑아 버렸다.
붉은 피가 솟구치자 팔황신모는 익숙한 동작으로 역오망성을 그려 나갔다.
역오망성 주위로 원을 그릴 즈음, 피도 말랐는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팔황신모는 몸통을 한쪽으로 집어 던진 후 우인몽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요.”
“오냐! 요녀야! 죽일 테면 죽여라. 그런다고 내 뜻이 꺾일 줄 아느냐!”
“후후. 점점 마음에 드는군요.”
팔황신모가 손짓하자 우인몽의 몸이 둥둥 떠올라 역오망성 중심으로 날아갔다.
뒤이어 그녀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레나 티아그 아이에 야하 자두 삼라트!”
주문에 진심이 담겨 있었던지 처음부터 역오망성이 반응했다.
역오망성이 그려진 바닥에서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화르륵-.
불꽃이 피로 옮겨 가자 역오망성은 이내 시커먼 연기로 뒤덮였다.
악의(惡意)로 가득한 연기에 놀란 우인몽은 눈을 부릅떴다.
“이게 무슨…….”
연기가 차오르면서 잠력에서 풀려났지만 그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시커먼 연기가 뱀처럼 거칠고 난폭하게 온몸을 휘감은 까닭이다.
검은 연기는 잠력보다 더 강한 힘으로 그를 옥죄었다.
“크윽!”
우인몽은 버둥거렸지만 검은 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종국에는 검은 연기가 그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곧바로 뭔가를 토해 냈다.
“캬아아아!”
“크르르.”
“캬아!”
검은 연기가 사라진 역오망성에 기괴한 생물이 떡하니 나타났다.
황소만 한 몸통에 머리가 셋 달린 괴물이었다.
팔황신모가 눈을 찌푸렸다.
저건 십두마병이 죽어서 나타난다는 마물과 비슷해 보였다.
‘속은 건가?’
이래서야 염마왕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왕들의 하늘’을 지배하는 천자마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이게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그때 세 개의 대가리를 가진 괴물이 팔황신모에게 다가왔다.
팔황신모는 괴물을 자세히 살폈다.
칠흑처럼 시커먼 피부에 대가리는 개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몸통이 황소처럼 크지 않았다면 그냥 대가리 셋 달린 개라 해도 믿을 정도다.
“끄응.”
“끼잉.”
“끙…….”
괴물이 그녀의 발치에 와서 끙끙거렸다.
하는 짓도 영락없는 개다.
기막힌 얼굴로 바라보던 팔황신모가 혹시나 하고 손을 뻗었다.
지옥에서 튀어나온 몰골을 한 괴물 개가 머리를 숙였다.
복종의 표시다.
그제야 팔황신모의 안색이 조금 풀어졌다.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맞았다.
역오망성에서 나온 것은 소환자인 자신을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능력은 어떨까?
팔황신모가 멀리 시립하고 있는 십두마병 중에 하나를 가리켰다.
“너, 이름이 무엇이냐?”
“전종오라 하옵니다.”
“전종오. 이 머리 셋 달린 괴물을 죽일 수 있겠느냐?”
“명만 내려 주십시오!”
“죽여라.”
그녀는 괴물 개에게도 같은 지시를 내렸다.
“크르르르-.”
“크르르-.”
“캬아아-.”
세 개의 대가리가 전종오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더니 벼락처럼 튀어 나갔다.
괴물 개와 십두마병의 싸움이 시작됐다.
아니 시작됐다고 생각한 순간, 전종오는 허무하게 개에게 목을 물려 죽고 말았다.
먼저 칼을 휘두른 건 전종오였다.
그러나 그의 칼은 괴물 개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대가리 하나가 연속으로 휘둘러지는 칼을 물었고, 그 틈에 다른 대가리가 전종오의 목을 물어뜯음으로 싸움은 끝났다.
전종오의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된 직후 그의 시체에서 마물이 몸을 일으켰다.
정수리에 하나의 뿔이 돋아난 일각 마인이었다.
“크라라라라-!”
일각마인은 특유의 괴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뒤이어 괴물 개와 일각마인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다.
괴물 개는 일각마인을 물어뜯으려 했지만 일각마인은 빠른 속도로 회피했다.
일각마인의 손톱이 괴물 개의 목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가가각-.
불꽃이 튈 정도였지만 목은 잘리지 않았다.
그 대신 검기가 실린 칼에도 끄떡없던 피부가 갈라지며 속살이 드러났다.
“캬악!”
대가리 하나가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다른 대가리들도 고통을 나누어 받았는지 더욱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상처를 입은 괴물 개의 입에서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화르륵-.
불길이 일각마인을 덮쳤다.
그러나 일각마인은 불에 대한 내성이라도 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달라붙었다.
딱! 딱!
두 주둥이의 입질을 피한 일각마인이 낫 같은 손톱으로 상처 입은 개를 공격했다.
손톱이 벌어진 상처를 훑고 지나가자, 이번에는 섬뜩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콰드드득-.
대가리 하나가 고개를 툭 떨구었다.
목이 거지반 잘린 개의 대가리는 몸통의 격렬한 움직임에 따라 덜렁거렸다.
그러나 일각마인도 무사하지 못했다.
일각마인의 손톱이 목에서 떨어질 즈음, 대가리 하나가 그의 팔을 문 것이다.
꽈드득.
놀랍게도 단 한 번의 물림에 팔목이 떨어져 나갔다.
“캬아아아!”
일각마인은 다급히 뒤로 몸을 뺐지만 괴물 개가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공수가 뒤바뀐 셈이다.
피차 중상을 입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일각마인의 피해가 더 컸나 보다.
일각마인은 끝내 괴물 개를 떨쳐 내지 못했다.
일각마인의 손톱이 대가리 하나를 내려찍는 동안 다른 대가리가 일각마인의 목을 물었다.
“끄아아아-.”
대가리가 일각마인의 목을 물고 힘차게 좌우로 머리를 흔들어 댔다.
무지막지한 턱 힘에 일각마인의 목이 뚝 끊어졌다.
흥분한 두 개의 대가리가 일각마인의 몸통에 달라붙어 막 뜯어 먹으려 할 때다.
푸스스스-.
일각마인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뒤이어 파란빛 덩어리들이 나와 하늘로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괴물 개는 다시 팔황신모를 향해 달려가 그녀의 앞에 버티고 섰다.
마치 주인을 지키는 충직한 개처럼 보였다.
팔황신모는 한참 동안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십두마병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지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파란 빛들이 수도사의 영혼이라는 것을.
저들은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곳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혹 불로불사는 육체가 아닌 영혼의 영역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자신은 이미 염마왕에게 바쳐진 까닭이다.
만약 영혼이 불로불사한다면 기한은 영원일 것이다.
육체로 사는 짧은 시간 동안의 계약으로 영원히 종노릇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말이다.
그럴수록 육체의 불로불사에 대한 열망은 더 강해졌다.
죽지 않으면 염마왕에게 종속될 일도 없을 테니까.
“끼잉.”
괴물 개의 끙끙거림에 팔황신모는 잡념에서 깨어났다.
놀랍게도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덜렁거리던 목은 어느새 단단히 붙어 있었다.
세 개의 대가리가 화등잔 같은 눈으로 팔황신모를 빤히 바라보았다.
설마 이 괴물은 불로불사인가?
그녀는 목이 잘려 덜렁거리던 대가리의 잘린 부위를 확인했다.
‘헛!’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설마 너는 ‘왕들의 하늘’에서 왔느냐?”
괴물 개는 알아듣지 못한 듯 주먹만 한 눈으로 그녀를 보기만 했다.
***
무한 외곽의 연강촌.
연적하는 타고 다니던 마차를 팔았다.
탈혼마검 노도경이 ‘관도보다 뱃길이 훨씬 빠르고 편하다’고 해서다.
마부와도 작별한 두 사람은 나루터로 이동했다.
“이거 괜한 짓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여산에 없으면 천아산으로 가야 하는데. 그럼 다시 마차를 구해야 되잖아요. 그냥 마차로 갈 걸 그랬나?”
연적하가 미련이 가득한 눈으로 뒤를 힐끔거렸다.
‘그게 낫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도로 달려가 마차를 되찾아올 얼굴이다.
“여산이 맞으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말게.”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세상 물정을 나만큼도 모르는 사람이.”
“하아! 자네와 세상 물정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고 싶지 않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했나? 자네 얼굴에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야. 아, 물론 자네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모르겠군.”
“혹시 다 나았나요?”
“그건 아니지만 무한에 처음 왔을 때보다 좋아졌네. 지금은 여드름이 십여 개 보일 뿐이야. 만약 자네 목표가 천아산이라면 그러지 않았겠지. 이제 알겠나?”
“오! 머리 좀 쓸 줄 아시네.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
노도경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무슨 법보를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가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