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27
427회. 아줌마. 나 친구 아냐
“퇫! 퇫!”
나무 앞에 선 이삼은 손바닥에 침을 뱉어 바른 뒤 도낏자루를 단단히 말아 쥐었다.
그리고 도끼를 막 치켜올렸을 때다.
쉬이익- 퍽!
어디선가 손도끼 하나가 날아와 그가 찍으려던 나무에 깊게 박혔다.
깜짝 놀란 이삼이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가 미처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전에 일단의 무인들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적월 공취산의 수족인 북망혈부 오경소, 적염수라 벽무정, 독수미랑 소윤옥이다.
얼굴은 영락없는 사십 대 미부(美婦) 소윤옥이 깔깔거리며 말했다.
“도끼를 한 번 던지면 북망산으로 보낸다고 해서 북망혈부라고 들었는데. 나무에 박혔네요. 요즘 공부가 부족한 거 아니에요?”
“제길, 낮술이 과해서 그런 것뿐이오.”
오경소가 변명하자 벽무정이 딴지를 걸었다.
“내려오는 걸음은 분명히 멀쩡했는데 혹시 수전증이 있으신가?”
“수전증이래. 호호홋!”
시시껄렁한 농담에도 소윤옥은 십 대의 아가씨들처럼 배를 잡고 웃었다.
세 명의 십두마병들은 나무꾼 이삼과 등짐을 진 연적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이삼은 한옆에 도끼를 내려놓고 바싹 엎드렸다.
“아이고! 나리님들 살려 주십쇼. 소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촌무지렁이입니다요!”
이삼이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세 사람은 이삼과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뒤이어 소윤옥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많이 알던데?”
“예?”
“당신 조금 전까지 산에 요괴가 있다는 둥, 두창현에서 조사를 할 거라는 둥 했잖아.”
“그, 그건, 이 사람이 자꾸만 산에 오르겠다고 해서 한 말이었습니다요. 저는 못 올라가게 막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살려만 주시면 다시는 근처에도 오지 않겠습니다.”
“이미 늦었어. 산을 내려가면 우리를 봤다고 동네방네 떠벌릴 거잖아.”
“아닙니다.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제가 그러면 벼락을 맞아 죽을 겁니다.”
“꽝!”
갑자기 옆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나자 이삼은 ‘악!’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내 그게 등짐 진 청년이 입으로 낸 소리라는 걸 알고 멍한 얼굴을 했다.
황당하기는 십두마병들도 마찬가지.
하루살이 같은 놈이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장난질이니 기가 막혔다.
벽무정이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 뭐 하는 놈이냐?”
“왜?”
“뭐? 왜에?”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 반응에 벽무정은 한순간 멍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내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다. 그냥 뒈져라!”
벽무정이 건들건들 들고 있던 구환도를 냅다 휘둘렀다.
도신에 달린 아홉 개의 고리가 기괴한 소리를 냈다.
휘리리링-.
모두가 단숨에 청년의 목이 뎅겅 잘릴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땅-.
청년이 등짐에 길게 올려져 있던 목검으로 구환도를 막아 낸 것이다.
벽무정은 슬쩍 도를 거두어들이는가 싶더니 구벽도법으로 청년의 몸을 했다.
휘링- 휘링- 휭-.
땅. 땅. 땅-.
청년은 마치 장난이라도 하듯 목검으로 구환도를 쳐 냈다.
그럴 때마다 구환도는 가느다란 목검을 잘라 내지 못하고 튕겨 났다.
뒤늦게 상대가 자신보다 고수임을 깨달은 벽무정이 훌쩍 물러났다.
“나는 명왕교 적월 진인의 수하인 적염수라 벽무정이오! 소협은 누구요?”
그제야 오경소와 소윤옥도 느긋하던 태도를 버리고 청년을 예의 주시했다.
“다짜고짜 칼질하더니 이제 말로 할 마음이 생겼나 보네? 그런데 어쩌나? 나는 별로 대화할 기분이 아닌데. 내가 누군지는 알 거 없고, 적월인지 적월 진인인지 위에 있어?”
“예를 지키시오! 적월 진인은 명왕교 사대신군 중에 한 분이시오!”
“사대신군? 유명교에서 나왔다고 ‘백두마군’을 다르게 부르는 거야? 그래 봐야 백두마군이지. 있어? 없어?”
그가 강하게 밀어붙이자 소윤옥이 억지로 웃으며 끼어들었다.
“호호, 소협은 유명교에 대해 잘 아나 봐? 강호에서 백두마군을 친구처럼 부르는 인물은 없는데. 존성대명이 어떻게 되는지 좀 알려 줘 봐. 우리가 사대신군님의 친구에게 실례를 하면 안 되잖아.”
“아줌마. 나 친구 아냐.”
‘아줌마’라는 말에 소윤옥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강호에 나온 이래 그렇게 치 떨리는 호칭은 처음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사대신군의 친구도 아니라면서 뭘 믿고 그렇게 나대? 뭣들 해요! 친구가 아니라잖아요!”
소윤옥이 검을 뽑으며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그러자 오경소와 벽무정도 병장기를 들고 그녀의 좌우에 나란히 섰다.
“와아! 이 아줌마 봐라. 친구가 아니라니까 바로 칼을 뽑네. 중간이 없어, 중간이.”
“흥! 이 바닥에 친구가 아니면 적인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왜? 갑자기 겁이라도 나니?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소윤옥은 계속된 ‘아줌마’ 소리에 단단히 화가 났는지 거침없이 나왔다.
“어, 겁나. 아무리 쓰레기라고 해도 같은 사람이잖아.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 겁나는 게 당연하지. 업보(業 報)라는 게 있다면서? 그래서 기회를 줄까 해. 무기 내려놓고 조용히 사라지면 굳이 잡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나를 죽이겠다고 덤비면, 가루로 만들어 줄게. 당신들이 십두마병이라면 가루가 무슨 뜻인지는 알 거야. 선택해.”
‘가루’라는 말에 세 사람은 흠칫했다.
십두마병이 죽으면 마물로 변하고, 마물마저 죽으면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저 청년에게 정말 그런 능력이 있을까?
허세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 아니면 진실일 텐데, 그걸 확인하려면 죽음을 감수하고 싸워야 한다.
오경소와 소윤옥의 시선이 벽무정에게로 향했다.
유일하게 청년과 손을 섞어 본 그의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벽무정이 짐짓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갑자기 말이 많아진 걸 보니 이빨을 털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인가 보구나. 당금 강호에 십두마병 셋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건 녹림의 연적하라 해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네가 우리를 당해 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오경소와 소윤옥이 연적하의 좌우로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세 십두마병이 품자(品字) 형태로 연적하를 포위한 형국이다.
연적하가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꼭 이렇게 관을 봐야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구천현녀님도 보셨죠? 이런 쓰레기들조차 살려 주려고 하는데 세상이 나를 자꾸 인간 백정으로 몰아가네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끼가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상체를 비틀어 피한 연적하가 오경소의 뒤로 돌아가며 목검을 내질렀다.
푹-.
목검이 그의 천추혈(뒷골의 우묵한 곳)을 찍었다.
순식간에 마혈이 제압당한 오경소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풀썩 넘어갔다.
휘리리링-.
뒤이어 벽무정의 구환도가 연적하의 허리를 자를 듯 파고들었다.
연적하는 목검을 틀어 구환도를 부드럽게 밀어냈다.
그리고 왼손으로 스쳐 지나가는 그의 내간혈(팔이 접히는 부분)을 꽉 움켜잡았다.
“억!”
짧은 신음을 끝으로 벽무정도 뻣뻣하게 굳었다.
연적하가 손을 놓은 뒤에도 벽무정은 목상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삽시간에 두 명의 십두마병이 제압당하자 소윤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순간 연적하의 손에 있던 목검이 화살처럼 소윤옥에게로 날아갔다.
쉬익-.
“아악!”
목검은 소윤옥의 등을 관통한 뒤 하늘로 솟구쳤다가 연적하에게 되돌아왔다.
이윽고 소윤옥의 몸을 찢고 뇌신(雷神)이 나타났다.
인간의 머리에 뱀의 몸통을 한 그것은 연적하를 향해 빠르게 미끄러져 왔다.
“뇌, 뇌신님이다!”
나무꾼 이삼은 달아나지 않고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가 제사 지내듯 큰절을 올리자 연적하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뇌신을 닮은 마물의 모습에 보통 사람들은 저렇게 반응하곤 했다.
그러나 저건 뇌신이 아니라 마물일 뿐이다.
아니 설령 저게 뇌신이라 해도 인간을 해치는 것은 죽어야 마땅하다.
퇴마용 목검을 들고 있어서 그런가?
문득 ‘공진검(空塵劍)’과 ‘포룡검(捕龍劍)’이 떠올랐다.
오룡궁의 광해 도사는 ‘포룡검은 악룡을 잡는 검술이다’라고 했다.
뇌신도 하체가 용과 닮았으니 통하지 않을까?
연적하는 즉시 뇌신에게 포룡검을 펼쳤다.
“동쪽 산이 불을 뿜으면[東山吐焰] 형체를 떠나 참으로 변한다[離形歸眞]……”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순간 구천기가 꿈틀하며 뭔가 검 끝으로 빠져나갔다.
뇌신은 한차례 상체를 움찔거렸지만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산이 갇히고 물이 흐르면[山四水流] 용은 잡히고 마귀는 멸망한다[捕龍滅魔!]”
마침내 연적하가 ‘포룡멸마’를 외치며 검 끝으로 뇌신을 가리켰다.
지척에 이른 뇌신도 상체를 꼿꼿하게 세웠다.
“이런 제길!”
대단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뇌신은 멀쩡해 보였다.
다음 순간 뇌신의 입에서 녹색의 운무(雲霧)가 뿜어져 나왔다.
화아악.
삼 장 높이에서 녹색 안개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아저씨 피해요! 독이라고요!”
그러나 이삼은 오히려 뇌신 앞으로 튀어나가 연신 절을 올렸다.
그에게 뇌신은 숭배의 대상인지라 피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도 소용 없었다.
“죽는다고! 이 아저씨야!”
연적하는 황급히 목검으로 구천구검 삼 식 풍천소축(風天小畜)을 펼 쳤다.
휘이잉. 콰콰콰-.
검 끝에서 일어난 바람은 이내 태풍이 되어 녹색 운무를 사방으로 밀어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이삼은 눈을 감고 치성에 몰두했다.
“피하라니까!”
콰직-.
끝내 구천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복숭아나무로 만든 퇴마용 목검이 터졌다.
안개가 오체투지 하고 있는 이삼의 머리 위로 스르륵 내려앉았다.
연적하는 산산조각 난 목검을 버리고 청사를 꺼내 들었다.
그러는 동안 이삼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청사 끝에서 유형화된 검기가 삼 척(90센티)이나 쭉 뻗어 나왔다.
이윽고 구천구검 사 식 현녀강우(玄女降雨)가 펼쳐졌다.
의형검기(意形劍氣)로 선보이는 구천구검은 무섭고도 아름다웠다.
뇌신의 주위로 시퍼런 검기가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
강철 같은 뇌신의 껍질이 검기에 맞아 쩍쩍 갈라져 나갔다.
뇌신의 전신이 시커먼 피로 물들었다.
“캬아아아!”
뇌신의 처절한 비명이 산천을 울렸다.
이윽고 청사가 고통에 겨워 몸을 뒤틀고 있는 뇌신의 머리를 길게 긋고 지나갔다.
오랜만에 양미간의 신맥이 화끈거리자 연적하는 정신을 집중했다.
역시나 빨려가듯 흑암의 세계로 이끌려 갔다.
이윽고 예의 그 사악한 기운으로 가득한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캬아아아!”
소리를 따라가 보니 거대한 인두사(人頭蛇) 하나가 펄떡거리며 몸을 까뒤집고 있었다.
죽어 가는 인두사 주변으로 수십 마리의 인두사가 꾸물꾸물 몰려들었다.
“크크크.”
“크크크”
인두사들의 소리가 동굴을 가득 메우자 역겨움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때 어둠 속에서 묵직한, 흡사 우렛소리를 닮은 음성이 들려왔다.
“나륵 치 모나!”
음절이 분명한 그것은 언어였다.
흠칫 놀라 본능적으로 움츠리는 순간 몸이 뒤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뇌신의 머리가 땅에 툭 떨어졌다.
곧이어 뇌신의 몸통과 머리는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푸스스-.
먼지 속에서 열 개의 파란 빛이 터져 나왔다.
연적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하늘을 보다가 나무꾼이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맹목적인 믿음으로 오체투지 하던 그는 완전히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