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28
428회. 나도 부탁하는 거 아니거든?
씁쓸한 눈으로 나무꾼의 자리를 보던 연적하의 귓가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마혈을 찍어 둔 두 십두마병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들도 광범위하게 뿌려진 독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나무꾼보다는 덜했지만 독무에 노출된 몸의 절반이 녹은 상태였다. 그러면서 점혈도 조금 풀렸는지 간헐적으로 몸을 들썩거렸다.
이미 살아나기는 틀렸지만 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걸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연적하는 청사에 검기를 일으켜 북망혈부 오경소의 심장을 찔렀다.
오경소의 움직임이 멎었다.
이윽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오경소의 옷과 피부가 가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졌다.
으드드득.
곧이어 그의 몸에서 키가 일 장(약 3미터)이나 되는 화염마인이 튀어나왔다.
화염마인이 현세에 적응하기도 전에 연적하는 청사로 화염마인의 목을 베었다.
카앙-.
바위 같은 피부에 청사가 튕겨져 나왔다.
불에 달궈진 바위같이 생긴 화염마인의 피부는 뇌신보다 강했다.
“크아아!”
화염마인이 괴성과 함께 입을 쩍 벌렸다.
화르르륵-.
화염마인의 입에서 화염이 쏟아져 나오자 연적하는 급히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불길이 독에 물든 대지를 시커멓게 태웠다.
연적하는 무심코 절반쯤 녹아 있던 또 다른 십두마병에게 시선을 돌렸다.
행여나 그도 죽어 버리면 마물이 둘이나 되는 까닭이다.
아니나 다를까!
꿈틀거림이 멎은 걸 보니 곧 죽을 것 같았다.
‘저자가 죽어 마물로 되살아나기 전에 화염마인을 처리해야 한다.’
화염마인의 주위를 돌던 연적하가 허공으로 도약했다.
연적하가 서 있던 자리로 불벼락이 떨어졌다.
퍼어엉-.
오 장(약 15미터)이나 뛰어오른 연적하는 청사를 앞세우고 화염마인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신검합일이었다.
화염마인은 상대가 허공으로 뛰어 오르자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화르르륵-.
화염마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화염이 연적하를 덮쳤다.
화염 앞에서 연적하는 잠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염을 피하고 다시 기회를 만드느냐, 그냥 무시하고 끝을 보느냐의 기로였다.
‘그냥 간다!’
그는 찰나지간에 구천구검 육 식 뇌풍상여(雷風相與)의 구결을 떠올렸다.
콰르릉! 꽈광!
청사 끝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돌개바람이 일어났다.
그것은 연적하의 의형검기가 만든 뇌풍상여의 구체화된 모습이었다.
바람이 화염을 흐트러뜨리고, 전뢰검기가 화염마인의 정수리에 꽂혔다.
‘꽝!’ 하고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화염마인의 정수리가 움푹 파였다.
“크아아아!”
극심한 충격에 화염마인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상체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순간 신검합일로 떨어져 내리던 청사가 화염마인의 정수리에 깊게 박혔다.
연적하는 다시 흑암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하늘은 물론 암석으로 이루어진 대지도 숯덩이처럼 검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암석군들 속에서 ‘돌로 된 거인’ 하나가 맥없이 거꾸러졌다.
검붉은 바위로 구성된 몸체, 그건 영락없는 ‘화염마인’이었다.
이제는 알 것도 같다.
현세와 이 흑암의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그 현상이 십두마병에 한정된 것으로 보아 유명교 제의와 관계되었으리라.
바위투성이의 대지 곳곳에 돌 거인들이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다.
현세에서는 ‘화염마인’이라 이름 지었지만 여기서 보니 오히려 돌 거인[巨石人]에 가까웠다.
그가 막 돌 거인들에게 한 걸음 내디딜 때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반대로 몸이 뒤로 빨려 들어갔다.
현세로 돌아온 연적하의 눈앞에서 화염마인이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그가 감상에 빠지기도 전이다.
“크라라라라-!”
한쪽에서 일각마인 특유의 목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독무에 절반쯤 녹아 있던 십두마병의 숨이 이제 막 끊어진 모양이다.
***
황방산.
해원사.
대웅전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적월 공취산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온 괴성이 어딘지 신경을 긁어서다.
“밖에 누구 있느냐?”
“예!”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귀천객 강두수가 급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상한 소리가 나던데.”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아니, 그보다 경내에 남아 있는 마병이 몇이나 되느냐?”
“다섯입니다.”
“모두 대웅전 앞으로 모이라 해라. 느낌이 좋지 않구나.”
“존명!”
강두수가 빠르게 사라졌다.
공취산은 대웅전 앞의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한 그 소리는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사람이 아니면 ‘지옥의 마신’일 것이다.
그런데 ‘지옥의 마신’은 십두마병이 죽었을 때나 현세에 강림한다.
‘설마 누가 침입했다는 말인가?’
삼년지약 덕분에 칠파일문의 강호행은 사라졌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명왕교는 유명교가 아닌 까닭이다.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 강두수와 두 명의 십두마병이 대웅전 앞으로 달려왔다.
공취산이 불편한 눈으로 강두수를 보았다.
“다섯이라 하더니 나머지 셋은 어디에 있느냐?”
“북망혈부, 적염수라, 독수미랑은 잠시 자리를 비운 듯합니다.”
“자리를 비워? 내 허락도 없이 하산을 했다는 말이냐?”
그러자 십두마병 구유귀검 이무영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셋이 종종 어울려 황방산을 다니며 술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지옥의 마신이 황방산에 출현한 것 같다. 마병 중에 누군가 당했다는 거겠지. 술자리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당장 주변을 조사해라.”
“예.”
두 명의 십두마병이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연이어 공취산이 강두수에게 말했다.
“해원사의 경계를 늘리고, 산문 밖으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해라.”
“존명!”
***
콰직!
청사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일각마인의 심장을 관통했다.
“캬아아아!”
가슴 어림을 붙잡고 몸부림치던 일각마인의 무릎이 천천히 꺾였다.
털썩.
멍한 눈으로 연적하를 응시하던 일각마인은 이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푸스스-
하늘로 올라가는 빛덩이를 올려다보던 연적하가 걸음을 떼어 놓았다.
한참 산을 올라가자 나무꾼의 말대로 갈림길이 나왔다.
바위 벽에 새겨진 방향을 따라가니 과연 저 멀리 아담한 사찰이 보였다.
잠시 후 산문으로 접어들자 일단의 무인들이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귀천객 강두수가 정중하게 물었다.
“멈추시오. 이곳은 명왕교 사대신군이신…….”
“알아, 알아. 적월인지 적월 진인인지가 있는 곳이라면서? 그에게 가서 손님이 찾아왔다고 해.”
상대의 무례한 행동에 울컥한 강두수가 차갑게 말했다.
“명왕교 사대신군은 칠파일문 장문인보다 위에 계시다! 너는 누구기에 본교에 와서 망발이냐!”
연적하는 상대를 가만히 살폈다.
강하다는 느낌이 안 드는 걸 보니 일단 십두마병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십두마병이 아니구나? 제물은 몇 개나 썼어? 한 번도 안 썼다면 살려는 줄게.”
“미친…….”
거칠게 반응하면서도 강두수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도를 뽑지 못했다.
문득 적월의 말이 떠올라서다.
그는 분명히 ‘지옥의 마신’이 출현한 것 같다고 했다.
유명교도라면 누구나 지옥의 마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다.
비록 얼굴은 어려 보이지만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윗길의 고수였다.
강두수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뒤쪽에서 세 사람이 등장했다.
백두마군 적월과 십두마병 구유귀검 이무영, 천산비마 하소상이다.
적월이 나오자 전면에 나섰던 강두수는 읍을 해 보인 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는 명왕교의 사대신군인 적월이다. 너는 누구냐?”
“나? 연남천.”
순간 적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연남천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 없다. 그렇다고 방심하지는 않았다. 백두마군인 자신의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걸 보면 보통 고수가 아니었다.
“혹시 황방산에서 내 수하들을 죽였느냐?”
“도끼와 구환도, 그리고 성질 더러운 아줌마를 말하는 거라면 맞아.”
적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북망혈부, 적염수라, 독수미랑을 죽였다면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보다 강한지도 모른다.
솔직히 백두마군에게도 마신이 된 십두마병은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우리 명왕교에 은원이라도 있느냐?”
“그런 거 없는데?”
“본교와 은원이 없다면서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였느냐?”
“그들이 먼저 나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그냥 목을 내밀고 죽어 줄 수는 없잖아.”
적월은 복잡한 표정으로 연남천을 보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십두마병을 죽인 죄는 크다.
하지만 그 죄인이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고수라는 게 문제다.
‘지옥의 마신’을 무려 셋이나 죽인 그를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십두마병이나 일반 교도들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 그를 치죄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저놈을 어쩐다.’
적월이 좌우의 구유귀검과 천산비마를 힐끔 보았다.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남의 일 구경하는 얼굴들이다.
심지어 두 사람은 흔한 욕조차 퍼붓지 않고 있었다.
백두마군인 자신이 곁에 있음에도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 ‘지옥의 마신’ 셋을 죽인 자의 위세는 그처럼 크다.
결국 적월은 타협하기로 했다.
백두마군들이 곁에 있다면 모를까?
‘지옥의 마신’을 무려 셋이나 때려 잡은 놈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쉬운 일이나 그들이 먼저 죽이려 했다니 나도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겠다. 그건 그렇고 황방산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당신을 만나려고.”
“나를?”
“어, 나와 같이 어디를 좀 가 줬으면 하는데. 아니, 같이 가야겠어.”
“허허! 내가 너무 점잖게 굴었나 보군. 내가 그렇게 쉬운 사람이 아닌데.”
“나도 부탁하는 거 아니거든?”
적월은 상대의 반응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부하면 강제로라도 끌고 가겠다는 거친 눈빛이다.
‘제길! 여산에 그냥 있었어야 했나?’
그랬다면 저자와 만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루라도 빨리 천두마왕이 되고 싶은 마음에 여산을 떠나온 게 오늘따라 후회스럽다.
“너는 설마 우리 명왕교와 척을 질 생각이냐?”
그는 마지막 수단으로 명왕교를 앞세웠다.
비록 유명교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명왕교의 힘은 칠파일문보다 뛰어나다.
그런 명왕교를 적으로 돌리는 일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것이었다.
“당신 하나 데려간다고 명왕교가 나를 원수로 여길 것 같지 않은데? 뭐,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순간 적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허장성세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진심이 느껴졌다.
저놈은 명왕교가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이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연남천의 정체에 대한 단서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던 적월이 갑자기 구유귀검과 천산비마에게 소리쳤다.
“뭘 보고만 있느냐! 제 입으로 교도들을 죽였다고 하는 놈이다. 쳐라!”
뻔뻔하게도 십두마병들을 사지(死地)로 밀어 넣은 것이다.
구유귀검과 천산비마가 마지못해 앞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미끼라는 걸 알았지만 감히 항명하지 못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연적하가 품에서 부적을 한 움큼 꺼내 들었다.
“이거 이거, 아까운 내 부적 어떻게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