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38
438회. 그런 거창한 일은 다른 누군가가 할 거야
적월 공취산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연적하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왜? 진심이 안 느껴져서 그래? 그럼 다르게…….”
“교주의 이름은 양여령, 사천성 도강언 출신이지. 어려서 돌림병으로 가족을 잃고 거리를 전전하다 고명산 태일관에 입관했다. 때마침 적선 수행을 하던 태일관 관주의 눈에 들었다고 하더군. 그 점은 나와 비슷하다. 나 역시 세상을 전전하다 태일관 도사를 만나 입산했으니까.”
“아, 몰랐네. 원래 도사였구나.”
연적하는 도사가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물으려다 참았다.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이야기가 끊어지기라도 하면 곤란한 까닭이다.
“태일관 관주는 무광 진인이라 불렸는데 사천성 일대에서 유명한 도사였다. 사저와 달리 나는 나중에야 자질을 인정받아 그의 제자가 되었지. 나를 비롯해 사형제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스승에게 인정받아 ‘진구정단법(眞九鼎丹法)’을 배우는 것. 그것을 목표로 우리는 매진했다.”
“진구정단법?”
“천사도(天師道) 비전의 토납법으로 숨만 쉬어도 신선이 된다는 비기 중의 비기다. 태일관 관주에게만 전해지기에 한 세대에 한 명만 익힐 수 있었지.”
“그런 좋은 비술을 왜 관주만 독식하게 했대?”
“너무 뛰어나니까, 널리 알려지면 자칫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믿었다.”
“아.”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자신도 그런 이유로 구천여일진경의 법문을 가르치지 않고 있었다.
“태일관은 ‘천사도’의 원류로 중요한 가르침을 신들에게서 배운다.”
“신들이 가르친다고?”
구천현녀에게 ‘구천구검’과 ‘구천여일진경’을 배운 그는 묘한 인연이라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자신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인 까닭이다.
“태일교의 도사가 되면 가장 먼저 신들과 소통하는 주문을 배운다. ‘태상정일강림신주(太上正一降臨神呪)’라고 하는데,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그 주문을 외웠다. 신들과 만나기 위해서.”
“당신도 만난 적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주문을 외우는데 못 만나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나 역시도 자칭 신선이라는 존재를 만나 대화한 적이 있다. 물론 그가 신선이라는 걸 확인할 길은 없지만.”
“와아! 세상에 별 공법이 다 있구나.”
“태일관은 특히나 신들과의 만남을 중요시했다. 귀도(鬼道)라고 불릴 정도로. 신선의 일을 인간이 알 수 없으니 신들에게 물었다고나 할까. 스승은 언제나 그렇게 가르쳤다.”
“귀도? 무시무시하네.”
“그래, 누가 어떤 신을 만나느냐에 따라 실로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지.”
예컨대 ‘사저’와 그녀가 만난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 그랬다.
사십칠 년 전.
사천성 서량설산.
백사강 근처의 산마루.
공취산과 양여령이 태일관을 떠나 정착한 곳은 서령설산의 음양계(陰陽界)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공취산은 ‘진구정단법’을 수련했다.
사실 그게 천사도의 비전 공법이 아니었다면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게다.
알아낸 과정이 너무도 역겨웠으니까.
하지만 단지 역겹다는 이유로 버리기에 ‘진구정단법’은 너무도 뛰어난 공법이었다.
그런데 양여령은 ‘진구정단법’보다 ‘태상정일강림신주’의 수련에 매달렸다.
그녀는 스승을 싫어하면서도 스승의 가르침만은 믿고 따랐다.
공취산은 그게 이상했다.
“사저는 왜 ‘진구정단법’보다 ‘태상정일강림신주’를 더 중요시하나요?”
“스승님의 가르침을 잊었어? 신선의 일은 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그런 그녀의 집념은 일 년 만에 꽃을 피웠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 그녀에게 촉산으로 가서 수련할 것을 명한 것이다.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던 공취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수련 중에 사저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신’과 조우했다. 사저는 그 신에게 빠져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바뀌었다. 아니, 바뀐 게 아니라 사저의 본성이 서서히 깨어난 것인지도.”
촉산에서 사저는 단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다. 그 변화는 ‘본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너도 술사이니 염매(透壓)가 뭔지는 알겠지?”
“사악한 수법으로 만들어진 귀물을 말하는 거야?”
“잘 아는구나. 사저가 익힌 공법들은 대부분 염매를 통해 배운 것들이다. 처음으로 만든 염매가 ‘소천무령’이라는 방울이었지. 그 염매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 이가 바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다.”
“이름도 이상하네.”
연적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느니 그냥 이름을 짓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 당시 십두마병인 사저의 법력으로는 다른 세상의 신과 오래 소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신이 중개자로 세운 게 ‘소천무령’이었다. ‘소천무령’이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였던 셈이지.”
“아하.”
“사저에게 유명교 공법을 가르친 신이 바로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다. ‘소천무령’은 그 신언(神言)의 전달자로 사용되었고.”
충격으로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저 악독한 유명교의 인신공양(人身供養)이 신의 가르침이었다니?
“그러니까 유명교 교주를 만든 존재가 바로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라는 거야?”
“제대로 들었군. 맞다. 사저가 알고 있는 유명교 공법은 모두 그 신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공취산은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사저는 그 신의 꼭두각시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물론 사저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참 할 짓 없는 신이네. 자기와 전혀 상관없을 텐데 왜 유명교를 만들었대?”
“십두마병을 보면 전혀 상관이 없지는 않다.”
“무슨 소리야?”
“너도 보았겠지만 십두마병이 죽으면 마신으로 변한다. 마신이 어디에서 왔겠느냐?”
“설마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의 세계에서 왔다고?”
“그건 나도 확신할 수 없다. 사저라면 알고 있을 테지. 그들이 어디서 왔으며, 왜 유명교를 만들었는지.”
“와아! 나는 유명교가 그냥 사교(邪敎)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
“후후. 유명교가 평범한 사교였다면 삼십 년 만에 군림 천하 하지도 못했을 게다.”
공취산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란 지금의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천두마왕이 되어 천하에 우뚝 서고 싶었는데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갔으니.
“나 때문에 폭삭 망해서 아쉬운 얼굴이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내 끝이 좋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 그렇게 악독한 짓을 했는데. 잘되기를 바라는 게 웃긴 거야.”
공취산은 부인하지 않았다.
스승과 사형제들을 제물로 사용했으니 악독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여하튼 교주를 조심해라. 교주가 쓰는 모든 공법은 이 세상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어쩌면 교주도 ‘소천무령’처럼 이용당한 것일지 모른다.”
“이용당했다고?”
“사저는…….”
공취산은 언젠가 보았던 사저를 떠올렸다.
사저는 바위 끝에서 슬픈 얼굴로 발아래 깔린 운무를 보고 있었다.
마치 투신자살이라도 할 것처럼.
어쩌면 그게 사저의 진면목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를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저는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공취산은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 냈다.
“아니다. 여하튼 만약에 그런 것이라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야말로 모든 일의 배후라 할 수 있다. 사저를 지금의 그 자리로 인도한 존재가 그니까.”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잖아.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신이라면서? 다른 세계도 그렇지만, 신을 뭐 어쩌라고?”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지옥의 마신’을 죽인 너라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신’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건 나의 추측일 뿐이지만.”
“못해. 안 해. 그런 거창한 일은 다른 누군가가 할 거야. 나는 그저 도적들의 태상호법일 뿐이라고. 나 먹고살기도 빠듯해. 알면서 왜 그래?”
“허면 교주에 대한 이야기를 그 누군가에게 전해 줄 수는 있겠지? 그렇게라도 해다오.”
“거 듣다 보니 이상하네. 교주를 죽여 달라는 것도 아니고. 마치 교주를 위해 복수해 달라는 것 같잖아? 말해 봐. 내가 잘못 들은 거야?”
“네 마음대로 생각해라. 나는 교주가 가진 힘의 근원에 대해 다 말했다. 네가 직접 해결할 생각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전해도 된다. 아무리 귀찮아도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알았어.”
연적하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 정도라면 딱히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공취산은 피식 웃었다.
그저 원수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부탁까지 하게 될 줄이야.
세상일은 정말 모르겠다.
***
십이월.
호광성 무당산.
연적하가 공취산과 함께 정주를 지날 때, 일단의 관인들이 무당산을 방문했다.
호광성 안찰사 부사 구양수와 그의 수행원들이다.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은 산문까지 그들을 마중 나가 영접했다.
관리들은 객청으로 가는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굳어진 얼굴로 보아 좋은 일로 온 게 아니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객청.
구양수는 수행원들을 물리고 홀로 객청에 들어갔다.
조용히 그를 뒤따르던 영결상인은 구양수가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대인, 이 추위에 무당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영결상인이 구양수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엉덩이가 무거운 고관이 엄동설한에 무당산까지 왔으니 보통 일은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관리들과 관계된 사건 사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기억으로는 연적하와 금의위가 전부였다.
‘설마 양사강의 일로 따지러 온 것은 아니겠지?’
영결상인은 마음속으로 빠르게 죽산현 현령과 연적하의 일을 되짚었다.
지금은 그것 외에 달리 떠오르는 게 없어서다.
역시나 호광성 안찰사 부사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무당파 속가제자 중에 연남천이라는 자가 있소?”
“아, 예.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요?”
“그가 호광성 안찰사 장 대인의 아들에게 상해를 입혔소. 장 대인께서는 무당파에서 그를 잡아 넘기면 조용히 넘어갈 것이라 하셨소.”
“끙! 상해요?”
영결상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현령의 아들 양사강에 이어 이번에는 안찰사의 아들까지 때린 모양이다.
“양쪽 어깨에 구멍을 내고, 남근에는 젓가락을 박았다 하더이다.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오? 장문인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
뜻밖의 소리에 영결상인은 한동안 눈만 끔뻑였다.
남근에 젓가락을 박아 넣다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려 왔다.
하지만 전후 상황을 모르면서 무작정 제자를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
그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젓가락에 관해서는 저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연남천이 자유분방한 사람이기는 하나 함부로 사람을 상하게 한 적은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장문인도 알다시피 나라에는 법이 있소. 그런데 무림인들은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오. 이번에 벌어진 일도 그렇소. 장 공자가 선상에서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던 모양이오. 장 공자와 호위들이 상대를 때렸는데, 연남천이라는 자가 맞은 자를 도왔소. 그것까지는 본관도 이해할 수 있소. 하지만 연남천은 너무 나갔소. 그는 호위들의 단전을 폐하고, 장 공자의 돈까지 빼앗았소.”
“허.”
영결상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단전을 폐한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돈까지 강탈한 건 자신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