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45
445회. 혼자 가기 위해서다
적월 공취산은 연적하가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주문을 암송했다.
연적하는 무려 일곱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외웠다.
공취산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로 놀랍구나. 그처럼 평범한 머리로 어찌 천외천의 검공을 익혔느냐?”
“이거 왜 이래? 암기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그래, 너를 보니 그런 것도 같다.”
공취산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이제야 저승에서 스승과 사형제들을 만나도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태일관의 정수를 진인(眞人)에게 전했노라고.
한참 앞서갔던 태백 선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돌아왔다.
잘 따라오려니 생각했는데 뒤에서 노닥거리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도 그쪽이 빨리 가서 놓쳤지 뭐예요. 이 늙은이가 무공을 잃어서 걸음이 좀 느려요.”
능청스러운 연적하의 말에 태백 선인은 공취산을 슬쩍 쳐다보았다.
확실히 백두마군이 보일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한 뒤에야 태백 선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교주님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오. 서둘러 주시오.”
“예, 예. 갑니다. 가요.”
연적하가 다시 공취산을 부축했다.
진언을 가르치는 동안 잠깐 살아났던 공취산의 눈이 다시 칙칙하게 가라앉았다.
***
선녀암.
신당(神堂)에서 홀로 명상에 잠겨 있던 팔황신모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니 공취산을 데리고 온 모양이다.
생각보다 늦었지만 그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명왕교에 뛰어들어 백두마군을 생포해 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건 천하십대고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과거 십두마병들을 척살한 것도 그렇고, 혹시 그는 유명교의 천적인 걸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자신의 목표는 불로장생이지 유명교가 아니니까.
유명교는 염마왕을 위한 것일 뿐, 이제 자신의 목표는 ‘왕들의 하늘’이다.
‘왕들의 하늘’을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연적하와 공취산은 태백 선인을 따라 선녀암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마당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크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던 연적하가 흠칫 놀란 얼굴을 했다.
마당 구석의 축사에 기괴한 것이 보였다.
황소만 한 몸체에 개를 닮은 머리가 셋이나 달려 있는 괴물이었다.
“어이쿠! 저게 뭐야? 개야? 소야? 그런데 머리가 세 개나 되네?”
그때 신당의 문을 열고 팔황신모가 나왔다.
“삼두견이라고 한다. 나의 충직한 심복이지. 짐승이 사람보다 낫더구나.”
공취산이 들으라고 한 소리다.
그렇지 않아도 다 죽어 가던 공취산의 얼굴이 더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태백 선인은 교주가 친히 나오자 읍(損)을 해 보이고 소리없이 사라졌다.
“저게 개라고요?”
“적당한 이름이 없어서 붙여 둔 것이다. 누구라도 저 얼굴을 보면 개를 떠올릴 것 같은데. 아니냐?”
“그렇기는 하네요. 어디서 저런 괴물을 얻으셨대요?”
“왜? 너도 한 마리 얻고 싶으냐?”
“전혀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개까지 키울 자신은 없네요.”
연적하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귀여운 개도 키우기 어려운데 저렇게 흉악한 괴물을 무슨 수로!
팔황신모의 시선이 삼두견에서 공취산에게로 넘어갔다.
“약속대로 살려서 데리고 왔구나. 단전을 부순 게 조금 아쉽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달리 나에게 할 말이 있느냐?”
할 얘기 없으면 이만 가라는 소리다.
바로 작별 인사를 하려던 연적하가 공취산을 슬쩍 본 후에 물었다.
“그를 죽일 건가요?”
“글쎄다. 결국은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
말의 중함을 알기 때문일까? 팔황신모는 어떤 답도 주지 않았다.
“다음에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후후. 내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팔황신모 역시 연적하를 만나는 게 좋은 건 아니었다.
그에게서는 자신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신과 닮은 구석이 싫은 건지, 이질적인 기운이 싫은 건지 모르지만, 불편했다.
불편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그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전 태일관에서 소년 공취산을 데리고 나갈 때처럼…….
팔황신모는 툇마루에 가만히 서서 연적하를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젊은 시절의 공취산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역시 그의 최후는 조금 더 뒤로 미뤄도 될 것 같다.
교주의 시선이 거북해진 연적하는 슬쩍 돌아섰다.
지난 몇 달간 함께 생활했다고 공취산의 신변이 조금 염려됐다.
하지만 이내 관심을 끊었다.
공취산은 수도자를 제물로 백두마군까지 올라간 마두 중의 마두.
이 모든 건 그가 치러야 할 업보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그냥 내려가도 되려나?’
막상 하산하려니 산에 깔려 있는 팔문팔상진이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고 팔황신모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기는 싫었다.
언령에 당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머뭇거리던 연적하가 막 한 걸음 떼어 놓았을 때, 태백 선인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내 뒤를 따라오시오.”
연적하는 무척이나 그가 반가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떠나가자 팔황신모, 양여령의 얼굴에 한 겹 서리가 내려앉았다.
“네가 나를 배신할 줄은 몰랐구나.”
“사저와 저 사이에 배신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요.”
‘사저’라는 말에 그녀의 눈빛이 한 차례 흔들렸다.
유명교를 세운 뒤로 그의 입에서 ‘사저’ 소리가 나온 적이 없어서다.
“옛정을 들먹일 생각이라면 버려라. 그러기에 너는 너무도 큰 죄를 지었다.”
“옛정은 있습니까?”
“훗! 내 앞에서 제멋대로 혓바닥을 놀리는 걸 보니 살 생각이 없구나?”
“어차피 살려 주지도 않으실 테니까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예정된 죽음 앞에서 시들시들하던 공취산이 도발적으로 양여령을 올려다보았다.
한순간 양여령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죽음만 기다리고 있어야 할 공취산에게서 묘한 의지가 느껴져서다.
물론 그래 봐야 죽음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얼마든지.”
옛정이 무섭긴 무섭다.
그녀는 쉽게 공취산을 처분하지 못했다.
“오십 년 전에 사저가 ‘진구정단법(眞九鼎丹法)’의 일부만 제게 알려 줬어도, 저는 사저를 따랐을 겁니다. 그날 밤 왜 저를 태상각으로 부른 겁니까.”
공취산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양여령을 보았다.
그날 밤의 일만 아니었어도 태일관 도사들이 죽을 일은 없었다.
세상은 넓고 제물로 쓸 수도자들은 많았으니까.
하지만 사저 때문에 자신은 손에 스승과 사형제들의 피를 묻혀야 했다.
“신의 뜻이었다.”
“사저가 만난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 그걸 원했다는 겁니까?”
“그래.”
“왜요? 신은 왜 그런 추잡한 장면을 보게 한답니까? 정말 신이 원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때는 나도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납득할 수 있다. 그래, 그건 확실히 신의 뜻이다. 그래야만 했고.”
“확실하다는 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저에게도 좀 알려 주십시오.”
“이제 와 그걸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알려 줄 이유도 없고.”
“…….”
공취산은 양여령의 말에 기가 막혔다.
스승과 제자가 교합하는 것을 보여 주라고 한 신이나, 그 말에 따른 사저나.
미치지 않고서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황망한 가운데 문득 한 가지 섬뜩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승과 사형제들을 죽이려고 그랬던 겁니까?”
양여령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공취산은 그런 그녀를 보고서 자신의 추측이 옳았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에게 스승과 사형제들에 대한 살의를 심어 주었구나.’
거기까지 알게 되자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왜 스승과 사형제들을 죽여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공취산이 물었다.
“……사저가 스승을 유혹했습니까?”
“신의 뜻이었다.”
“미친! 사저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압니까! 세상에 그런 신은 없습니다! 스승을 유혹하고, 죽이다니요! 대체 왜 그따위 말을 따른 겁니까!”
“불로불사.”
처음으로 양여령의 음성에 힘이 실렸다.
그걸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공취산은 한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명왕교가 갈라져 나간 것도 ‘불로불사’에 대한 사저의 집착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뿌리는 생각보다 더 깊고 은밀했다.
‘사저는 불로불사에 미쳤다.’
스승을 유혹하고, 그걸 자신에게 보여 줌으로 사문의 도사들을 제물로 바치게 했다.
그런데 그 모든 패륜이 ‘불로불사’를 위해서였단다.
“왜, 왜 그렇게 불로불사에 집착하십니까.”
“생명 있는 것의 허망함을 보았으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도 결국은 냄새나는 쓰레기임을 알게 되었으니까. 살아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으니까.”
“빌어먹을 불로불사! 그렇다면 혼자 추구하지 왜 주변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듭니까!”
“네 말대로 혼자 가기 위해서다.”
곧이어 양여령이 아차 싶은 얼굴로 얼른 화제를 돌렸다.
“너에게 수없이 많은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끝내 너는 나를 배신했지. 고작 음양고 따위로 나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니 한심하구나.”
공취산은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양고(陽基)를 처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조금 전의 말이 걸렸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혼자 가기 위해 주변 사람을 죽인 게 된다.
태일관의 도사들을 죽이고, 자신을 데려오게 한 것도 그것 때문일까?
태일관에 뭐가 있다고?
천사도(天師道)를 따른 도관들 중에서도 태일관은 특별했다.
귀도(鬼道)라 불릴 만큼 매일매일 신과의 소통을 강조한 때문이다.
태일관을 대표하는 공법은 ‘구정단법(九鼎丹法)’과 ‘진구정단법’이다.
하지만 태일관의 뿌리는 ‘태상정일 강림신주(太上正一降臨神呪)’라 할 수 있다.
그거야말로 신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설마?’
공취산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얼굴로 양여령을 보았다.
“이 모두가 태일관의 공법을 없애기 위해서 한 짓이었던 겁니까!”
순간 양여령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쏘아져 나온 경력이 공취산의 아혈을 찍었다.
“내가 만났던 신은 질투가 많아. 그래서 다른 사람이 신들과 소통하는 걸 싫어해. 나도 최근에야 깨달았는데 사제는 꽤 총명하구나.”
공취산이 분기탱천한 얼굴로 양여령을 노려보았다.
솔직히 아주 가끔은 이 모든 게 애증 탓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과거에는, 사저가 자신의 연심을 알고 괴롭히기 위해서 그런 자리에 불렀다고.
현재는, 믿었던 사제의 배신이 더 쓰라려 자신을 잡아 오게 한 거라고.
하지만 진실은 전혀 달랐다.
사저의 뜻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의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저들은 태일관의 ‘태상정일강림신주’가 존재하는 걸 원치 않는다.
어이없게도 처음부터 배신당한 사람은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