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48
448회. 지금 나를 여물이라고 한 거야?
만탄진에서 마차를 도둑맞은 연적하는 걸어서 개봉까지 가야 했다.
길눈이 어두운 연적하는 우직하게 황하강변을 따라 걸었다.
마차와 함께 음식 재료까지 몽땅 도둑맞은 상황.
그는 인가(人家)에서 음식을 얻어 먹으며 나흘 동안 걸어 마침내 화상촌에 도착했다.
남연객점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한 말은 ‘초반(볶음밥) 줘’였다.
걸신들린 사람처럼 초반을 먹고 있는 연적하에게 남수경이 물었다.
“연 공자, 중무현의 만탄진에서 마차를 도둑맞았다고 했죠?”
“어.”
“중무현이면 마차로 하룻길인데 나흘이나 걸었어요?”
“길을 몰라서 황하를 따라왔거든. 강물은 한곳으로 흐르니까.”
“아! 많이 돌아오셨구나. 그래서 도둑은 어떻게 됐어요? 이름이 곡성이라고 했나요?”
“찾아봐야지. 어렵지 않을 거야. 요리 잘하는 마부가 흔한 건 아니니까.”
연적하가 남수경과 한참 곡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구천노도 심통이 찾아왔다.
“공자님, 오셨다는 소식 듣고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적월이라는 놈이 속을 제법 썩였나 봅니다? 완전히 지친 기색이시네요?”
그러자 입에 초반을 한가득 물고 있는 연적하를 위해 남수경이 나섰다.
“중무현에서 마차를 도둑맞아서 그래요. 마부가 실컷 먹인 뒤에 마차를 가지고 달아났대요.”
“쯧쯧! 내가 옆에 있었어야 하는데. 어떤 미친놈이 우리 공자님 뒤통수를 쳤을꼬?”
“이름이 곡성이라는데 설마 진짜 이름은 아니겠죠. 아! 그리고 요리를 아주 잘한대요. 전에 숙수를 했다나 뭐라나. 그 도둑이 얼마나 요리를 잘해 먹였는지 돌아오자마자 초반을 찾더라고요.”
“초반?”
“도둑이 초반을 잘 만들었대요. 그렇게 입에 짝짝 붙는 맛은 처음이었다나?”
“공자님, 사실입니까?”
“어. 우리 객점 밥보다 더 맛있어.”
그 말에 객점을 운영하는 남수경이 발끈했다.
“쳇! 그렇게 오래도록 떠돌아다니면 뭐라도 맛있을걸요?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 몰라요?”
“그런가.”
연적하는 그녀의 지적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왠지 자신이 사기꾼의 요리 솜씨를 칭찬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요리를 잘하는 사기꾼이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데……. 다른 특징은 없습니까?”
“인상이 후덕하니 착하게 생겼어. 얼굴만 보면 그냥 생불(生佛)이야. 심 노인이 만났으면 아마 간까지 빼 줬을걸? 그나마 나니까 마차로 끝났지.”
“흐흐, 그럴 리가요. 제가 중들을 싫어하는 거 모르십니까? 생불처럼 생겼으면 더 경계했을 겁니다.”
“말은 젠장. 막상 만나면 속옷까지 뺏길 위인이.”
“그건 공자님처럼 마음이 여린 분들에게나 해당되는 겁니다. 저같이 닳고 닳아 보십쇼.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저는 거지 입에 들어간 것까지 빼앗아 먹을 사람입니다.”
“어이구, 자랑이다.”
심통의 큰소리를 보다 못한 남수경이 한마디 했다.
“심 할아버지도 남 얘기할 처지는 아닐 텐데요. 남연객잔 살 때 같이 사기당하신 거 잊었어요?”
“험, 그건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거고. 마차를 도둑맞은 건 경험 부족이지.”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둘 다 사람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거 같은데요. 아닌가요?”
“거참.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거래도. 그나저나 공자님이 먹는 걸 보니 나도 땡기네. 나도 오랜만에 초반이나 먹어 보게 하나 가져오거라.”
변명이 궁색해진 심통은 초반으로 화제를 돌렸다.
심통의 얕은수를 알면서도 남수경은 군말 없이 주방으로 걸어갔다.
물론 초반 한 그릇이라도 더 팔기 위해서다.
“나는 남궁세가로 가야 돼. 심 노인이 그놈 좀 잡아 놔.”
“곡성이라고 하셨지요?”
“어, 후덕하게 생겼어. 보면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바로 알 거야.”
“산서성의 마방을 뒤져 보면 나오겠지요. 전처럼 황하에 던질까요?”
“아냐. 요리 실력이 아까우니까 좀 부려 먹어야지. 심 노인도 그놈 초반을 먹으면 생각이 달라질걸?”
“그 정도로 요리를 잘합니까?”
“다른 건 모르겠는데 초반은 내가 지금껏 먹어 본 것 중에 최고야.”
“그러니까 초반 실력 때문에 살려 두라는 말씀이신 거지요?”
“그놈이 만들어 준 초반에 비하면 이건 그냥 돼지기름 묻은 밥이야. 마차를 도둑맞았는데도 ‘초반을 못 먹게 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니까.”
“허!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꼭 잡고 싶어지네요. 공자님을 위해서라도 잡아 두겠습니다. 초반에 질리시면 그때 강에 던지겠습니다.”
심통은 사기꾼이 정말 싫은지 끝까지 ‘강에 던지겠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손가락 하나 다치게 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심통이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연적하의 뒤통수를 치고 달아난 놈이니 어떻게든 잡을 생각이다.
그때 남수경이 초반과 계란탕을 직접 들고 왔다.
딱히 할 일도 없는 데다 상대가 심통인지라 상도에게 맡기지 않은 것이다.
“계란탕은 공짜로 드리는 거예요. 연 공자의 계란탕에 숟가락 담글까 봐.”
“흐흐, 잘 먹으마.”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실실 웃는 심통의 눈은 계란탕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남수경은 심통 앞에 초반과 계란탕을 내려놓고 계산대로 돌아갔다.
심통이 초반을 먹다 말고 물었다.
“남궁세가로 가신다고요?”
“어.”
“흐흐, 이번에 가시면 날짜라도 잡으십쇼.”
“몰라. 그냥 인사하러 가는 거야.”
연적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이 재밌어서 심통은 계속해서 혼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공자님이야 그렇다 쳐도 남궁 소저는 혼기를 넘기지 않았습니까? 더 늦기 전에 날을 잡으셔야죠.”
“뭘 자꾸 날을 잡으래.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이야? 백부님께서 해 주시는 대로 따라야지.”
“남궁세가에서 십전무후를 쉽게 놓아 주려고 하겠습니까? 좀 더 부려 먹으려고 할 테니 공자님께서 먼저 나서야 합니다.”
“뭘 부려 먹어. 능력 되는 누님이 집안일 돕겠다는데.”
“바로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공자님이 아직 몰라서 그러시는데 집안일이라는 게 끝이 없습니다. 돕다 보면 이십 대를 훌쩍 넘긴다니까요.”
“설마……. 그 정도까지야 하려고.”
말과 달리 연적하의 표정은 살짝 어두웠다.
폐허가 된 남궁세가를 재건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통의 말대로 어영부영하다가 이십 대를 훌쩍 넘길 수도 있었다.
“그 정도까지라니요. 무림 세가가 그저 되는 것인지 아십니까? 제갈가 보셨잖습니까? 수백 년을 버둥거렸지만 세가 소리도 못 듣고 절단 났습니다. 남궁세가가 유명교와의 대전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윗대가리들만 남았지 허리 아래로는 싹 다 죽었습니다. 그걸 복구하려면 최소한 십 년입니다. 아니 십 년도 빠른 거죠. 누가 남궁세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검왕 그분은 칼질만 잘하지 세가 운영에는 재주가 없습니다. 이제 제가 서둘러 날부터 잡으라고 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끙! 알았으니까 밥이나 먹어. 체하겠다.”
“공자님! 지금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십니까? 십 년 후에나 첫날밤을 보내시게 생겼는데.”
‘첫날밤’이라는 말에 연적하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아, 좀, 알았으니까 그만하라고.”
“공자님 편에서 챙겨 줄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그러는 겁니다. 남궁세가에 질질 끌려다니지 마시고 가시면 화끈하게 지르십쇼.”
“뭘 질러?”
“남궁 소저를 달라고 하란 말입니다.”
“하아! 그것도 고민이야. 바쁜 누님을 모셔 와도 할 일이 없잖아. 할 일이.”
“왜 없습니까? 객점의 절반이 공자님 건데요.”
객점 이야기가 나오자 남수경은 안 듣는 척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십전무후 소리를 듣는 누님에게 객점을 부탁해? 사람들이 알면 나만 욕먹어. 남궁세가 사람들을 볼 면목도 없고.”
“뭐, 할 일이 없다고 하시니 그건 아니라는 차원에서 드려 본 말씀입니다.”
심통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야 십전무후가 객점을 운영한다고 하면 남궁세가뿐 아니라 강호가 뒤집힐 게다.
계산대에서 듣고 있던 남수경이 입술을 삐죽였다.
“흥! 객점이 뭐가 어때서? 안 그래? 상도야?”
“그렇기는 하지만 저는 반대하고 싶네요.”
“왜?”
“십전무후가 오면 여러 사람이 불편할 것 같아서요.”
“그렇지? 우리가 불편해서 별로지?”
남수경의 말에 상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사람이라고 했지만 실은 남수경을 위해서 반대라고 한 것이었다.
그녀와 연 공자의 부인이 한자리에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초반을 입에 넣고 쩝쩝거리던 심통이 문득 연적하를 올려다 보았다.
“공자님?”
“왜?”
“데릴사위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더러 남궁세가로 들어가서 살라는 거야?”
“데릴사위 말이 나올 수도 있어서 드려 본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십전무후도 계속하던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객점보다 남궁세가를 운영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그럼 나는 뭐 하고?”
“공자님이 할 게 뭐가 있습니까? 객점에서 뒹굴거리시나 남궁세가에서 뒹굴거리시나 매한가지죠.”
“그럼 면이 안 서잖아. 면이.”
“십전무후가 객점 운영을 하는 게 더 면이 안 서지 않을까요?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고 사람들이 공자님을 욕할 것 같은데요.”
“‘여자 팔자 뒤웅박’이 뭐야? 그런 욕도 있어?”
말뜻을 모르는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심통이 설명했다.
“뒤웅박은 꼭지 부근에 구멍만 내고 속을 파내어 말린 바가집니다. 이 구멍 속에 곡식이나 씨앗을 담아 두는 거죠. 부잣집에서는 당연히 ‘쌀’을 담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집의 뒤웅박이냐에 따라서 담을 수 있는 내용물이 바뀐다’, 뭐 대충 그런 뜻입니다.”
“…….”
순간 연적하는 충격받은 얼굴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지금 나를 여물이라고 한 거야? 가축이나 먹이는 여물?”
그러자 심통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여기서 왜 공자님이 나옵니까? 제 말은 ‘남궁세가’를 운영하던 사람이 ‘객점’에 있으면 그런 소리가 나올 거라는 겁입니다.”
“아, 그래?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객점’이 ‘여물’이라는 거지?”
“그런 셈이지요.”
사실 엎어치나 메치나 같은 소리였지만 연적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한편 계산대에서 훔쳐 듣고 있던 남수경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물론 심통의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다.
솔직히 무림세가인 남궁세가에 비교하면 남연객점은 여물도 과분하다.
그래도 막상 객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었다.
남수경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상도는 슬그머니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연적하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자 심통이 실실 웃었다.
“흐흐. 복잡하지요? 본래 어른이 된다는 게 그런 겁니다. 남자 혼자서 살 때와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게 싫어서 제가 혼자 사는 겁니다.”
“심 노인을 좋아하는 여자도 없었을 것 같은데 뭐.”
“그건 아닙니다. 공자님이 늙은 모습만 봐서 그러시는데, 저도 공자님 나이 때에는 훨훨 날아다녔습니다.”
“어이쿠! 날기까지 하셨어? 대단한 분이셨네.”
“여하튼 공자님도 잘 생각하십쇼. 십전무후를 모셔다 놓고 뭘 할지 말입니다. 정히 할 일이 없으면 데릴사위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아!”
연적하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잠깐 쉬어 가려고 남연객점에 들렀다가 실로 뼈아픈 지적을 받았다.
혼자라면 모를까?
남궁연과 함께하는 삶은 그것대로의 길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길은 자신이 바라던 ‘객점에서 뒹굴거리기’ 따위와는 크게 다르리라.
‘이거 어쩐다. 연 누님이 뒤웅박 팔자라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