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64
464회. 내가 원하는 건 곡성이다.
갑자기 청운검 남궁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연적하가 물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그러자 남궁천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요즘 모용가에서 자꾸 사람을 보내. 나와 ‘항아검’을 맺어 주려고.”
“‘항아검’요?”
“모용소희라고 새로 가주가 된 반천일검 모용문 대협의 조카야.”
“형님 마음에 안 드시나 보다.”
“그보다는 험, 내가 험, 좋아하는 여협이 따로 있거든. 그래서 조금 곤란하게 된 거지.”
“아하!”
그제야 연적하는 남궁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편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 남궁천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다관이 어쨌다고?”
“아, 다관 앞을 지나는데 설화인이 재밌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서안의 대자은사에서 일하던 불목하니가 무슨 탑을 청소하다 고서(古書)를 발견했대요. 현장 법사가 남긴 책들이라는데……. 그걸 ‘왕부’와 ‘풍지산’에 팔았대요. 아니, 상방에 팔았는데 상방이 뇌물로 줬다고 했나?”
연적하가 오락가락하자 남궁천이 손을 휘저었다.
“팔았든 줬든 하여간 고서를 ‘왕부’와 ‘풍지산’에 보냈다는 거지?”
“예.”
“무슨 고서인지는 모르고?”
“설화인은 ‘불로장생’에 관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왕부’와 ‘유명교주’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건 그것밖에 없다면서. 누님도 그렇게 생각해요?”
연적하가 바라보자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방에서 상납한 게 고서밖에 없다면 그의 추측이 맞을 거야. ‘왕부’도 유명교주 못지않게 그런 데 관심이 많으니까.”
“누님도 백화상방에서 고서를 선물로 받지 않았어요?”
“받기는 했는데 그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창고로 보냈어. 그러고 보니 그 고서도 서안에서 온 거라고 했는데.”
“그래요? 아무리 백화상방이 급해도 ‘왕부’로 가는 고서를 빼돌리진 않았겠죠?”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천이 끼어들었다.
“그랬을 수도 있지. 고서는 응천부(남경)에서 대충 채워도 되니까. 상방이야 고서를 전해 주고 확인서만 받으면 되지 않느냐?”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안에서 응천부의 일을 알 수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혹시 모르니 고서를 확인해 봐야겠어요.”
“왜? 정말 불로장생법이라도 적혀 있을까 봐?”
“그보다는 고서가 정말 대자은사의 물건인지 확인해 두어야 할 것 같아요. 만약 그런 거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순간 남궁천의 얼굴이 가볍게 굳었다.
확실히 대자은사의 고서가 유명교주의 관심을 끌게 되면 강호에 풍파가 몰아칠 터였다.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설화인이 이런 말도 했어요. 그 고서가 정말 값어치 있는 물건이면, 불목하니가 빼돌린 게 있는지 의심할 거라고.”
“그렇게 되면 불목하니는 물론 상방까지도 빠짐없이 조사할 게다. 강호의 생리상 그러고도 남지. 백화상방이 쓸데없는 짓을 했어.”
남궁천이 남궁연을 보았다.
지금은 동생의 안목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백화상방에서 두고 간 고서가 대자은사의 것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 미안해진 연적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고서를 백화상방에 돌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그게 대자은사의 것이라면 우리를 의심할 게다. 한번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까. 유명교주가 고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게 최선이야.”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
이건 고서를 돌려준다고 해서 간단하게 정리될 문제가 아니었다.
‘뭐 이런 더러운 경우가 다 있지?’
속에서 열불이 치밀었지만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하남성.
정주.
이른 아침.
유엽도를 허리에 찬 염소수염의 노인이 정주로 들어섰다.
구천노도 심통이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감회 어린 눈으로 번화한 거리를 둘러 보았다.
“흐흐. 대범한 놈.”
연적하의 마차를 훔쳐 달아난 도둑의 흔적은 정주로 이어졌다.
낙양이나 허창으로 멀찍이 튀었을 줄 알았는데 정주로 갔다니?
연적하를 그저 그런 뜨내기로 알았던 게 틀림없다.
놈도 알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펄펄 뛰다가도 결국 체념하고 갈 길 간다는 것을.
심통의 경험에 의하면 도적은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거다.
시간과 인력이 없으니까 더 큰 일에 집중하다가 서서히 잊혀진다.
하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고 끈기가 있으면 잡을 수 있다.
예전에 객점으로 사기 치고 달아난 사기꾼들도 끝내는 잡지 않았던가.
심통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일단 반점을 찾아갔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휘적휘적 가까운 마방(馬房)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방.
심통이 건초를 한 아름 들고 걸어가는 중년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너, 마방의 일꾼이냐?”
“보면 모르…… 예, 그렇습니다요.”
퉁명스럽게 대꾸하던 원상한은 급히 말을 올렸다.
노인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유엽도를 보고도 막 나갈 수는 없었다.
“보름 전후로 작은 마차 한 대를 맡긴 놈이 있느냐. 곡성이라는 중년 남자인데, 얼굴이 온화하게 생겼다. 누구는 생불(生佛)이라고 하더라만.”
‘생불’이라는 말에 원상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 있었습니다. 말과 마차를 싸게 팔겠다고 해서 저희 마방에서 샀습니다. 그런데 그를 왜 찾으시는 겁니까?”
“알 거 없고. 어디로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느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야 말과 마차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
그의 말에 심통이 히죽 웃었다.
“흐흐. 이거 참, 내가 호구로 보인 모양이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중무현에서 말과 마차를 훔친 놈이 정주로 되돌아왔어. 대가리가 있는 놈이라면 당연히 ‘낙양’이나 ‘허창’으로 갔어야 하는데 말이야. 왜 그랬을까?”
“저희야 모르지요.”
“아니야. 알 거야. 알아야 돼.”
심통이 스산한 눈으로 중년인을 쳐다보았다.
마치 마차 도둑을 눈앞에 두고 있기라도 한 듯 살벌한 표정이다.
“왜, 왜 그러십니까요? 나으리.”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모르니까 나를 호구 취급하는 거야. 그렇지?”
“나으리는 누구십니까?”
“녹림의 ‘구천노도’라고 들어 보았느냐? 그게 바로 나다. 아직도 내가 호구로 보이느냐?”
“…….”
하얗게 질린 원상한의 손에서 건초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구천노도 심통.
녹림 태상호법인 연 공자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녹림의 대마두.
요즘은 녹림의 마두들도 그를 피해 다닌다는 말이 있다.
그는 일단 빌기 시작했다.
“사, 살려 주십쇼. 나으리.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녹림의 어르신 앞에서 이빨을 털면 되나. 네가 도둑놈들 생리를 나만큼 알아? 마지막 기회를 주지. 계속 시치미 떼면 너를 죽이고 다른 놈에게 묻겠다.”
심통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본래 도둑들은 장물을 여기저기 다니며 처분하지 않는다.
장물이 마차와 말이라면 더 그렇다.
개인 간의 거래라면 모를까?
마방이나 상방에서 매입할 때는 판매자의 신원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그런데 곡성은 정주로 되돌아와서 팔았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낙양’이나 ‘허창’을 두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심통은 눈앞의 중년인을 장물아비로 생각했다.
설사 장물아비가 아니라도 곡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놈이라 믿었다.
원상한은 자포자기한 얼굴로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아무래도 곡성과의 인연은 오늘로 끝인 것 같다.
“살려만 주신다면 소인이 아는 것을 전부 말씀 올리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곡성이다.”
그제야 원상한의 얼굴에 조금 핏기가 돌았다.
“그는 지금 옥로점(玉露店)의 별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나돌아다니지 않을 겁니다.”
순간 심통의 눈에서 광망이 번득였다.
루(樓)나 각(閣)이라고 하지 않고 점(店)이라는 걸 보니 싸구려 기루인 모양이다. 하기야 도둑놈에게 고급 기루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군. 역시 네놈이 장물아비였느냐?”
“어이쿠! 아닙니다. 장물아비라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두어 번 그가 가져온 마차나 말을 사 준 것밖에 없습니다. 재물에 욕심이 나서 그만……. 다시는 장물에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흥! 미친놈. 내가 무슨 포두라도 되는 줄 아느냐?”
심통이 짐짓 눈을 부라렸다.
녹림의 마두에게 ‘장물에 손대지 않겠다’고 맹세하다니?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인지 모르겠다.
“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원상한은 허리가 부러지도록 굽실거렸다.
“옥로점은 어디 있느냐?”
“번화가 북쪽에 홍등가(紅燈街)로 불리는 골목이 있습니다. 옥로점은 그 길의 끄트머리에 있습지요.”
“오늘 나를 만난 것을 잊어라. 이후로 옥로점을 기웃거린다거나, 정주에서 내 이름이 들리면, 너는 죽는다.”
“예, 예.”
원상한은 손바닥으로 제 입을 후려 쳐 막았다. 어찌나 세게 쳤던지 ‘철썩’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의 각오를 확인한 심통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무릎에 힘이 빠진 원상한은 제가 흘린 건초 위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곡성에 대한 미안함이나 후환에 대한 염려는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녹림의 대마두 구천노도가 노리고 있으니 그는 이미 끝난 목숨이었다.
“그놈은 대체 무슨 깡으로 저런 마두를 건드린 거야?”
죽어도 싸다.
아니 죽어 마땅한 놈이다.
자칫 잘못하면 아무 죄도 없이 자신까지 죽을 뻔하지 않았나 말이다.
***
정주 북쪽 홍등가.
옥로점 별채.
사시 정(오전 10시).
염소수염의 노인이 별채 앞마당에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마방을 떠난 심통이다.
별채를 드나들던 일꾼들은 뒤늦게 불청객을 발견하고도 본체만체했다.
그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유엽도 탓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 충성심이 뛰어난 누군가가 호위무사들에게 달려갔다.
잠시 후 호위무사 셋이 별채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위 도장호는 노인이 비범해 보이자 조심스레 물었다.
“옥로점은 궁도방이 관리하는 곳입니다.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요?”
“방주가 누구냐?”
“쌍수도 전궁도입니다. 노사(老士)의 존성대명은 어찌 되십니까?”
“쌍수도?”
심통이 눈살을 찌푸렸다.
생전 처음 듣는 별호인 걸 보니 잡배가 분명했다.
‘어쩐다.’
이전 같았으면 만사 귀찮아서 칼질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업(業)의 무게를 알게 된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호위들을 보니 가란다고 순순히 갈 얼굴이 아니었다.
“구천노도다. 물러가라.”
순간 도장호와 두 명의 호위가 흠칫 놀란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뒤늦게 실태를 깨달은 도장호가 급히 읍(損)을 했다.
“무림말학 도장호가 인사 올립니다! 무엇이든 하명하시면 분골쇄신 받들겠습니다!”
심통이 묘한 눈으로 도장호를 보았다.
어려운 말이 술술 나오는 걸 보니 왕년에 글줄 꽤나 읽은 모양이다.
스스로 분골쇄신하겠다는데 막으면 쓰나.
“별채에 곡성이라는 좀도둑이 하나 머물고 있다. 지금 당장 그를 끌어내거라.”
“존명!”
절도 있게 답한 도장호가 한 마리 호랑이처럼 별채로 뛰어들었다. 두 명의 호위도 그를 따라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지키던 별채로 난입했다.
“꺄악!”
“왜 이래요! 미쳤어요?”
“뭐야? 도 호위?”
기녀들의 뾰족한 비명이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별채를 흔들어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