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75
475회. 예상하지 못한 극악의 조합
처음 석경장의 혼천팔괘진에 빠진 사람들은 다섯 명의 십두마병들이다.
팔황은 육통존자와 구궁천녀라는 기문진의 대가로부터 조언을 받았지만, 십두마병들은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인신공양 하나로 절정고수가 된 십두마병들에게 기문진은 미지의 세계.
십두마병들은 자신들이 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혼천팔괘진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물안개가 걷힐 무렵.
“앗!”
가장 먼저 구곡혈장 옥무강이 짧은 비명과 함께 발을 쳐들었다.
십두마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옥무강의 발바닥으로 향했다.
작은 ‘철질려’ 하나가 앞꿈치에 콕 박혀 있었다.
“이런 썅!”
옥무강은 신경질적으로 ‘철질려’를 뽑아 버렸다.
설마하니 석경장에서 하오문들이나 쓰는 ‘철질려’를 밟을 줄이야!
‘철질려’란 본래 잡배나 암살자들이 달아나면서 던지는 암기가 아니던가.
상문객 임소거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조심합시다. 그나저나 ‘철질려’라니. 연적하가 시작부터 밑바닥을 보이는구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철골무정 엽웅도 괴성과 함께 발을 절었다.
“으헛!”
그의 발바닥에서도 철질려가 나왔다.
그 뒤로 다섯 명의 십두마병들은 땅바닥만 쳐다보며 천천히 전진했다.
“우웁!”
채 열 걸음을 가기도 전에 옥무강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뒤이어 엽웅도 같은 꼴로 쓰러졌다.
순간 소면살귀 전우신이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독질려’? 그냥 ‘철질려’가 아니라 당가의 ‘독질려’였구나!”
순간 십두마병들의 얼굴이 노래졌다.
‘철질려’와 ‘독질려’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라 할 수 있었다.
‘철질려’는 그저 발바닥에 구멍이 나고 말지만, ‘독질려’는 중독이 된다.
무인에게 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방(攻防) 시에는 물론, 달아날 때도 중심이 되는 건 발이다.
발바닥에 구멍이 나도 괴로운데, 설상가상으로 중독까지 되면 답이 없다.
그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물러나야 한다.
특히나 당가의 ‘독질려’는 해약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당가 비전의 해약이 아니면 치료도 어렵고, 치료 후에도 후유증이 남는다.
옥무강과 엽웅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력으로 독을 다스렸다.
반각(약 7분)쯤 지났을까?
젖먹던 힘까지 써서 독기를 다리로 밀어 넣은 옥무강이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임 형제, 아무래도 우리는 짐만 될 것 같은데. 어쩌시려오?”
임소거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쩌긴, 두고 가야지.’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상대를 앞에 두고 벌써 둘이나 잃다니 기가 막힌다.
“우리는 먼저 갈 터이니 두 분은 독을 다스리도록 하시오.”
옥무강과 엽웅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십두마병의 공력이니 살아 있지 옛날 같았으면 절명했다.
임소거는 남은 두 사람만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세 사람이 사라지자 옥무강과 엽웅은 다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윽!”
육통존자를 따라가던 음양천선이 황급히 바닥에서 발을 뗐다.
팔황이 무슨 일인가 싶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음양천선이 발바닥에서 뽑은 ‘철질려’를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다.
“제길! ‘철질려요’. 다들 발밑을 조심하시오.”
뒤늦게 팔황들은 땅바닥을 살폈다.
그러나 짧게 자란 풀로 인해 ‘철질려’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육통존자가 선두로 나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연적하! 녹림의 태상호법이나 되는 놈이 비겁하게 제집에 ‘철질려’를 깔아 두느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그러나 석경장은 고요하기만 했다.
상대를 도발했던 육통존자는 다시 목책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안으로 들어갈수록 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에는 판석이 깔려 있었다.
‘철질려’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자 팔황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때다.
갑자기 음양천선이 가슴을 움켜잡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으음…….”
앞서가던 육통존자가 급히 돌아와 음양천선을 살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게 어째 느낌이 싸하다.
“무슨 일이오?”
“아무래도 조금 전의 ‘철질려’에 독이 발라져 있었던 것 같소.”
음양천선의 말에 팔황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설상의 ‘만독불침’이 아니고서야 독 앞에서 담담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곧이어 팔황의 시선이 약선곡 출신인 구궁천녀를 향했다.
음양천선의 상태를 확인한 구궁천녀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당가의 ‘일촉절명산’이네요. 음양 천선이 밟은 ‘독질려’는 사천성에서 유명한 암기예요. 아무래도 당가가 석경장과 손을 잡은 모양이에요.”
음양천선이 다급히 물었다.
“해독이 가능하겠소?”
“임시 처방은 해 줄 수 있지만 완전한 해독은 당가만이 가능해요.”
“임시라도 부탁하오.”
“그럴게요.”
구궁천녀가 붉은빛이 감도는 선단을 꺼내 음양천선에게 건넸다.
“약선곡의 ‘광음용혈단’이에요. 해약은 아니지만 몸을 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다른 분들은 당가 일족을 잡으면 해약부터 얻어 내도록 하세요.”
그녀의 말에 팔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음’이라는 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선단을 복용하자마자 음양천선의 얼굴빛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음양천선은 구궁천녀에게 읍을 해 보였다.
“감사하오. 오늘의 구명지은은 잊지 않으리다.”
음양천선이 회복되자 팔황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사방에 독질려가 깔려 있는 상황에서 구궁천녀의 선단은 구명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구궁천녀는 만일에 대비해 팔황들에게 ‘광음용혈단’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임시방편으로 ‘독질려’ 사태를 수습하고 팔황이 다시 움직이려고 할 때다.
어디선가 젊은 남자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 새벽부터 남의 집에 숨어든 쥐 새끼들! 용기가 있다면 더러운 이름이 뭔지부터 밝혀 봐!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그냥 싹 다 죽여 버린다.”
‘더러운 이름을 밝히라’는 말에 팔황은 이를 갈았다.
저런 소리를 듣고서도 자신의 이름을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팔황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대놓고 자신들을 능멸하는 놈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마음은 아닌 것 같다.
어딘가에서 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유명교 십두마병인 상문객 임소거다!”
“난 유명교의 소면혈귀 전우신!”
“나도 유명교 사람이다! 귀령신도 구회일이라 한다! 너는 누구냐!”
순간 팔황이 얼굴을 구겼다.
십두마병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적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보여서다.
결국 참지 못한 육통존자가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호통쳤다.
“닥치지 못하겠느냐! 저놈이 누군지 알아서 무엇하게! 어차피 석경장에 있는 것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니, 보이는 대로 쳐 죽이기나 해라!”
“…….”
찔끔 놀란 십두마병들이 침묵하자 육통존자는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말끔하게 판석이 깔려 있으니 더 이상 ‘독질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팔황이 그의 뒤를 따라 바람처럼 달려갈 때다.
돌연 허공에서 예의 그 음성이 들려왔다.
“흥! 권하는 술은 사양하고 벌주를 마시겠다[敬酒不吃,要吃罰酒]? 원하는 대로 해 주지. 태양이 먹구름을 만나면 구름에 가려진다. 흑운차일(黑雲遮日)!”
돌연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꾸물꾸물 몰려들기 시작했다.
뒤늦게 태백선인은 저 목소리의 주인이 연적하라는 걸 깨달았다.
“조심하시오. 저자가 바로 연적하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방이 어둠에 휩싸이자 팔황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흙 위에 있는 ‘독질려’보다 판석 위의 ‘독질려’가 더 치명적인 까닭이다.
딱딱한 판석에 놓인 ‘독질려’를 밟으면 쇠못이 발등까지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쉬이익-.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뭔가가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팔황은 병장기를 앞에 세우고 한껏 몸을 움츠렸다.
또 한차례 뭔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직일신장이 맞았는지 ‘윽!’ 하고 짧은 신음을 흘렸다.
태백선인이 급히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강침에 맞았습니다.”
순간 태백선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끙’ 하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암기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
“독은?”
“독은…… 바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태백선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상대에게 상해를 입힐 목적으로 강침을 던진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들 조심하시오.”
태백선인은 팔황들에게 주의를 주고 어둠을 노려보았다.
연적하의 술법이 이토록 뛰어날 줄은 미처 몰랐다.
‘곤란하게 됐군.’
진법에 술법도 모자라 암기까지.
그야말로 예상하지 못한 극악의 조합이다.
쏴아아- 탁탁.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번에는 모래다.
태백선인이 ‘모래를 왜?’라고 생각할 때 구궁천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가가 합류했다면 ‘독모래’일 거예요. 절대로 모래가 맨살에 닿지 않도록 하세요.”
태백선인은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점입가경이라더니 딱 그 꼴이다.
녹림 태상호법과 십전무후가 사는 석경장에 ‘독질려’와 ‘독모래’라니?
하오문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지랄인지 모르겠다.
쏴아아- 투두둑.
따끔.
손등에 모래가 튀었는지 화끈거렸다.
‘미치겠군.’
팔황의 수좌인 자신도 이럴 정도인데 십두마병은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태백선인의 예상대로 세 십두마병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날아온 ‘강침’과 ‘독모래’는 그들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목책에 기대앉은 세 사람의 상체는 토사물과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싸움은커녕 장기간 요양이 필요한 분위기다.
시간이 지나자 흑운은 거짓말처럼 걷혔다.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태백선인은 얼른 허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그의 주위로 팔황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처음 정문을 진입할 때와 달리 지금은 누가 봐도 패잔병들의 모습이다.
육통존자도 크게 데었는지 핼쑥해진 얼굴로 태백선인의 눈치만 살폈다.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진법의 중심.
연적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서 있는 삼보절명 당운망에게 한 소리 했다.
“쯧쯧! 조잡하게 숨어서 암기나 던지고. 사람이 나잇값을 해야지.”
그는 ‘강침’과 ‘독모래’가 영 못마땅했다.
칼질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하오문들처럼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조잡하다니. 나중에라도 당가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소리 하지 말게.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아주 작은 노력과 힘으로 큰 상대를…….”
“크기는 개뿔. 늙은이가 아직 큰 상대를 못 만나 봤구먼.”
이번에는 구천노도 심통이 딴지를 걸었다.
당운망의 활약이 마음에 안 든 그는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했다.
그러자 당운망이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말했다.
“심가야! 길 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봐라. 호천맹도 설설 기는 게 유명교다. 그게 어딜 봐서 작다는 거냐?”
“어딜 봐서 작냐고? 우리 공자님에게 유명교 십두마병은 코딱지만도 못하다. 알아 처먹겠느냐?”
그 말에는 당운망도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과거 연적하가 십두마병들을 척살하고 다녔다는 걸 알아서다.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두고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약한데요? 저 정도면 대화로 돌려보낼 수도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남궁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세등등하던 처음과 달리 불청객들은 전의를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유명교의 힘을 생각하면 이제라도 대화로 푸는 게 나을지도…….’
물론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