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81
481회. 누란(累卵)의 위기
당가 호법당 당주 귀혼산수 당자안의 말에 연적하는 구천노도 심통을 힐끔 보았다.
삼보절명 당운망이 그랬다고 하면 뒤집어질 분위기였다.
연적하가 머뭇거리자 당자안이 애절한 얼굴로 거듭 부탁했다.
“연 장주, 당가는 현재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소. 정의맹과 천지맹에서 많은 식솔을 잃어 유명교가 기침만 해도 날아갈 판국이오. 과거 천지맹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협조를 부탁드리리다.”
당자안은 연적하에게 매달렸다.
노회한 심통보다는 젊은 연적하에게 동정을 구하기가 수월하다고 생각해서다.
강호의 경험이 부족한 연적하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보다 못한 심통이 끼어들었다.
“어허!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네. 당가는 유명교 편이오? 아니면 무림 동도들 편이오?”
심통의 말에 당자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본가는 정의맹과 천지맹에서 무림 동도들과 함께 싸웠는데 그 무슨 말씀이시오?”
“아니 지금 석경장에 와서 하는 말이 영 이상하지 않소? 석경장은 유명교와 싸우고 있는데, 유명교의 오해를 풀게 도와 달라니? 그게 말이오? 방귀요?”
당자안은 일순 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석경장에서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서다.
심통의 딴지에 그가 난처해하자 보다 못한 내각 장로 당기로가 나섰다.
“조금 전에 귀혼산수가 말씀하지 않았소. 당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솔직히 말해 오늘날 석경장을 제외하고 유명교 눈치를 보지 않는 방파가 어디 있소? 호천맹조차 유명교 행사에 왈가왈부 못 하고 있지 않소? 당가가 유명교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니 판매자를 알려 달라는 게 무어 그리 잘못된 일이오?”
심통은 슬그머니 당기로의 시선을 외면했다.
무림세가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따지니 물고 늘어지기가 어려웠다.
분위기가 무거워졌을 때 단장월녀 당하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어, 연 장주님. 혹시 판매자를 밝히기가 곤란한 상황이신가요?”
그녀의 말에 당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연적하에게로 향했다.
“뭐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네요.”
연적하도 이쯤에서는 어느 정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가의 암기를 사용한 게 알려진 상황에 마냥 시치미를 뗄 수가 없어서다.
그러자 지금까지 정중하던 당자안이 언성을 높였다.
“판매자를 밝히기가 곤란하다니! 지금 우리 당가더러 죽으라는 소리요? 유명교나 당가가 언제 판매자를 죽인다고 위협한 적이라도 했소? 사실 관계만 바로잡으면 누구도 다칠 일이 없는데 곤란하다니!”
“곤란하니 곤란하다고 하죠. 그럼 곤란하지 않은데 곤란하다고 하겠어요?”
연적하도 지지 않고 맞받았다.
연적하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자 당자안이 냉소를 날렸다.
“흥! 유명교와의 싸움에 당가를 끌어들이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꿈 깨시오. 당가는 유명교와 싸울 형편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으니.”
당자안은 연적하를 쏘아보았다.
실제로 본 연적하는 소문과 달리 어리고 여리여리한 게 절대고수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십두마병을 참살해 유명해졌지만, 제대로 된 법보만 있으면 자신도 그럴 자신이 있었다.
‘너 따위 애송이에게 우리 당가가 휘둘릴 것 같으냐!’
당가의 암기에도 서열이 있다.
‘독질려’와 ‘독모래’가 가장 밑바닥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런데 그것으로 팔황을 중독시켰다.
하물며 당가가 자랑하는 궁극의 암기라면?
연적하를 쓰러트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당자안의 자신감은 그의 차가운 눈빛을 통해 객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순간 심통이 스산하게 웃었다.
“흐흐. 유명교에게 뺨을 맞고 석경장에서 큰소리를 치다니? 석경장이 만만해 보이나 보네.”
분위기가 싸해지자 당하연이 급히 말했다.
“오해예요. ‘천하에 오직 석경장만 보인다’고들 하는데 그럴 리가 있겠어요? 호법당 당주님의 말씀은 ‘당가가 싸울 형편이 못 된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이미 속이 뒤틀린 심통은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호법당 당주의 눈은 당 소저 말과 다른데? 저건 한번 해보자고 도발하는 눈빛이야. 귀혼산수, 내 말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해 보거라.”
심통의 반말에 당하연이 애써 수습한 분위기는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당자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구천노도. 너야말로 나를 도발하는 거냐? 호가호위(狐假虎威)도 정도껏 해야지. 이젠 무림세가도 안중에 없다는 말이렷다. 제삿밥을 먹고 싶다면 덤벼 보든가. 당가의 무인은 걸어오는 시비를 피한 적이 없으니까.”
“흐흐, 귀혼산수. 사천성 사람들이 우쭈쭈 해 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심통을 연적하가 제지했다.
“심 노인, 그만해. 석경장을 찾아온 손님과 싸울 생각이야?”
연적하의 만류에 심통은 ‘끙!’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뒤이어 연적하는 당자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 대협, 내 입장은 말한 그대로예요. ‘독질려’와 ‘독모래’는 구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고 들었어요. 아무 이름이나 갖다 붙여도 될 것 같은데, 아닌가요?”
당자안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보다 못한 당하연이 대신 나섰다.
“그렇기는 해요. 하오문에서 가장 많이 구입해 가는 암기거든요.”
연적하는 평소 당가의 독물에 대한 반감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적당히 말을 붙이면 되겠네요. 당가가 오해를 받으면 안 되니까 알아서 하세요. 어차피 우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당하연이 재치 있게 화답함으로 일촉즉발의 긴장은 풀어졌다.
그렇게 당가의 암기 문제가 마무리 될 즈음, 일이 터졌다.
“연 공자! 있는가?”
하필 약제당에 있던 당운망이 객청으로 어슬렁어슬렁 나온 것이다.
반 시진(1시간) 전 약제당.
당운망은 흥얼거리며 새로 만든 일촉절명산을 자기 병에 옮겨 담았다.
풀 죽어 지내던 처음과 달리 그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독질려’와 ‘독모래’가 유명교와의 싸움에서 큰 역할을 한 탓이다.
외부의 적을 상대하다 은연중에 자신이 석경장의 일원이라는 생각도 갖게 됐다.
“가만있자. ‘독질려’나 ‘독모래’ 말고 다른 걸 좀 만들어 볼까?”
솔직히 ‘독질려’와 ‘독모래’는 남들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물건이었다.
시간과 재료만 넉넉하면 그보다 훨씬 좋은 암기를 제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오 장(약 15미터) 안쪽의 생명체를 말려 죽인다는 ‘천지황엽(天地黃葉)’도 어렵지 않다.
“흐음! ‘천지황엽’이라…….”
천지황엽과 같이 지독한 암기를 만들려면 연적하의 동의가 필요했다.
재료비가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독질려’와 ‘독모래’에 맞고도 멀쩡했던 팔황을 생각하니 ‘천지황엽’의 욕심이 커져 갔다.
“설마 이제 와 반대하지 않겠지?”
독물의 제작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면 모를까?
일단 만들기 시작하니 더 좋은 독극물의 욕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약제당을 벗어난 당운망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안채를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다가오는 당운망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내각 장로 당기로였다.
“당운망?”
순간 당운망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렇게 피해 다니던 당가 사람들을 석경장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뒤이어 당자안이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당운망! 네놈 짓이었구나!”
연적하와 당하연이 덮어 두었던 불씨가 당운망의 출현으로 활활 타올랐다.
당운망은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당자안이 빨랐다.
벼락처럼 몸을 날린 당자안이 당운망의 퇴로를 막았다.
곧이어 당기로까지 가세하자 당운망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당운망이 당가 사람들에게 잡힌 마당에도 연적하나 심통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심드렁한 눈으로 구경만 하는 연적하에게 당하연이 조심스레 말했다.
“연 대협, 당운망은 저희 당가의 죄인이라서 저러는 거니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 늙은이가 당가에는 어떤 죄를 지었어요?”
“당가에는 내각과 외각이 있어요. 내각은 직계, 외각은 방계가 사용하지요. 당운망은 외각의 일원인데 어느 날 당가비전을 훔쳐 달아났어요.”
“당가비전요?”
연적하가 관심을 보였다.
당운망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서다.
전에 그는 당가 가주의 견제를 견디다 못해 달아났다고 했었다.
그런데 당가비전을 훔쳐 달아났다니?
“당가에는 절대삼기(絶對三機)라 불리는 암기가 있어요. 각각 만천화우, 천지황엽, 낙월독정이라고 하지요. 대협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거예요.”
연적하는 ‘낙월독정’에 당한 적이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당운망이 훔쳐 간 것은 ‘낙월독정’을 연성할 때 쓰는 백팔독의 독정(毒精)이에요.”
그러자 마당에 있던 당운망이 버럭 소리쳤다.
“너 이년! 어디서 거짓말이냐! 당세호가 백팔독으로 ‘낙월독정’을 연성하다가 실패한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걸 내가 훔쳐 갔다고 뒤집어씌워? 네년은 누군데 뻔뻔하게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냐!”
당하연이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나는 아버지께 들은 대로 말한 것뿐이에요.”
“네년의 아비가 누군데!”
당운망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자 내각 장로 당기로가 호통쳤다.
“이놈! 도둑놈 주제에 감히 가주님을 능멸하려 하느냐!”
“가주를 능멸하다니? 저년이 당세호의 딸이라도 된다는 거냐?”
“닥치지 못할까! 가주님의 장녀에게 저년이라니! 정녕 죽고 싶은 게냐!”
당세호의 장녀라는 말에 당운망은 당하연을 한 번 더 힐끔 보았다.
과연 당세호의 얼굴이 조금 보이는 듯도 하다.
당운망은 억울한 마음에 한마디 했다.
“모두가 당세호의 거짓말이다! 당가가 싫어서 떠나는 마당에 미쳤다고 ‘백팔독정’을 훔쳐 가겠느냐? 평생 당가의 추격을 받으려고?”
그의 말에 당자안이 냉소를 쳤다.
“흥! 이십 년이나 숨어 지낼 정도로 큰 죄를 지은 도적의 변명치고는 궁색하구나.”
“내가 숨어 지낸 것은 당 가주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저 아이는 모르겠지만, 너희는 알 것 아니냐! 당세호가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가주님과 너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건 알지. 하지만 네가 달아난 뒤에 ‘백팔독정’이 함께 사라진 것은 뭐라고 변명할 테냐?”
“말하지 않았더냐! 당세호가 ‘백팔독정’을 사용했다고!”
이번에는 당기로가 버럭 소리쳤다.
“허튼소리! 내각의 장로인 나도 모르는 사실을 한낱 외각의 제자가 어찌 안다고! 순순히 자백하고 당가에 가서 벌을 달게 받아라!”
당자안도 한마디 거들었다.
“네 말대로라면 가주께서 ‘낙월독정’을 연성했다는 건데, 가주님은 ‘낙월독정’을 연성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 말은 모두 거짓이다.”
“연성하지 않은 게 아니라 자질이 부족해서 못했겠지.”
“헛소리! 가주님의 자질은 역대 가주님들 중에 최고다. 당가의 수련을 견디지 못하고 달아난 네놈과 같은 줄 아느냐!”
“최고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당가 최고의 기재는 바로 나다. 그래서 당세호가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했던 거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 마라.”
“착각은 자유지만 ‘백팔독정’을 훔친 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호법당 당주인 당자안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울컥한 당운망이 당자안을 향해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소리쳤다.
“훔치지 않았다고 몇 번을 말하느냐! 당세호가 비록 ‘낙월독정’의 연성에는 실패했지만 ‘백팔독정’의 효과로 공력은 늘어났을 게다! 너는 내각의 사람이니 잘 알 것 아니냐! 당세호의 공력이 갑자기 늘어났느냐 아니냐!”
“…….”
그 질문 앞에서는 당자안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가주의 공력이 어느 날 갑자기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는 그걸 깨달음 덕분으로 알았는데 ‘백팔독정’의 효과였을까?
그렇게 당운망과 당자안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다.
당운망의 뒤에 서 있던 내각 당주 당기로가 슬며시 손가락을 털었다.
‘눈 뜨고 당한다’는 ‘고슬취생(鼓瑟取生, 거문고를 타 생명을 취한다)’의 하독 수법이다.
눈앞에서 펼쳐도 알지 못한다는데 하물며 등 뒤에서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