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91
491회. ‘오봉십걸’의 일곱째
하남성.
보봉현.
하가촌.
팔월 말.
정오 무렵, 뜨거운 태양 아래 이두 마차 한 대가 하가촌으로 들어섰다.
연적하 일행의 마차다.
마차 앞에 가는 사람은 청운검 남궁천과 구천노도 심통, 삼보절명 당운망이었다.
마차를 고집하던 심통과 당운망은 남직례성을 벗어날 즈음 마차에서 내려왔다.
마부가 ‘무더위로 말이 힘들어하니 마차 무게라도 줄여 달라’고 애원해서다.
하가촌은 오봉산에 인접한 마을이다.
당연히 심통이 선두에서 길잡이를 자처했다.
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거침없이 달려가 ‘사해루’ 앞에서 멈춰 섰다.
뒤이어 남궁천과 당운망이 접근하자 ‘사해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남궁 대협, 이곳이 인근 백 리 안에서 가장 맛있는 요릿집이오.”
당운망은 의기양양한 심통을 아니꼬운 눈으로 보았지만 시비는 걸지 않았다.
이곳이 연적하와 심통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임을 아는 까닭이다.
곧이어 마차가 도착했다.
마차에서 연적하와 남궁연, 월아, 금아가 내리자 지나던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십전무후 남궁연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실 월아와 금아도 미소녀였으니 당연하다.
보봉현에서 보기 드문 미녀들의 출현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이 느려졌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했다.
남궁연은 물론 월아와 금아까지도 보란 듯이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어서다.
척 봐도 무림인들의 행차인지라 사람들은 멀찍이서 눈 호강으로 만족했다.
자기 집처럼 ‘왈칵!’ 문을 연 심통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계산대를 지키고 있던 주인이 심통을 알아보고 한달음에 뛰어나왔다.
“아니! 심 어르신 아니십니까? 어이쿠! 남천 대협도 오셨군요!”
주인은 심통과 연적하를 알아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심통이 한껏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간 격조했다. 나와 함께 온 분들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좋은 자리로 안내하고, 최고의 음식들로 준비하거라.”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를 따라오십시오.”
주인이 연적하 일행을 그늘이 지고 선선한 자리로 안내했다.
연적하 일행이 자리에 앉자 주인은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뒤이어 점소이가 시원한 냉차 주전자를 가지고 나왔다.
더위와 갈증에 지쳐 있던 연적하 일행은 냉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주전자의 물은 이내 동났다.
점소이가 빈 주전자에 냉차를 채우기 위해 다시 가져갔다.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 돌린 얼굴로 반점을 이리저리 뜯어보기 시작했다.
당운망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흔한 변두리 반점처럼 보이는데 이곳이 정말 백 리 안에서 요리를 가장 잘한다고?”
“속고만 살았느냐? 게다가 아닌 말로 얻어먹는 놈이 뭘 그렇게 따져?”
심통의 타박에 당운망은 ‘울컥’했지만 받아치지 못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산다는 게 본래 그렇다.
돈이나 계산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당운망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빠드득. 당가를 피해 다니느라 시궁창 같은 생활을 하지만 않았어도…….’
그랬다면 저런 개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심통의 장담처럼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오랜 여행에 지쳐 입맛을 잃어가던 연적하 일행은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식사 후에 입가심으로 차를 마시는데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들어왔다.
그들 중 하나인 백추수가 연적하와 심통을 알아보고 후다닥 달려와 허리를 접었다.
“일곱째 형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오봉산채의 도적들은 연적하의 별호나 이름 대신 의도적으로 ‘일곱째’라는 말을 썼다.
그가 ‘오봉산채’에 있는 ‘오봉십걸’의 일인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강호에서 연적하의 명성이 올라가면서 덩달아 ‘오봉산채’의 지위도 수직으로 상승해 지금은 녹림 칠십이채에서 발언권도 강해졌다.
그런 내부적인 사정으로 오봉산채에게 연적하는 영원히 ‘일곱째 형님’이었다.
뒤늦게 백추수와 함께 있던 오봉산채의 녹림도들이 우르르 몰려와 허리를 굽혔다.
연적하가 계면쩍은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어, 그래. 식사들 하러 왔나 보구나. 잘들 먹고, 나중에 보자.”
“연 형님, 오늘 산채에 들러 주시는 겁니까?”
백추수의 물음에 심통이 대신 답했다.
“그럼 여기까지 와서 그냥 지나갈까 봐? 얼른 가서 처먹기나 해라.”
“예, 예.”
백추수와 도적들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소면(素炳)을 시켰다.
가만히 있질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걸 보면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연적하 일행의 자리를 힐끔거리던 백추수가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 튀어 나갔다.
소면 한 그릇보다 산채에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잠시 후.
연적하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허겁지겁 소면을 먹던 사내 셋이 후다닥 일어나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형님! 식사하셨습니까!”
그간 석경장에서 조용히 지내던 연적하가 흠칫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 씨, 깜짝이야. 누가 암습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갑자기 소리 좀 지르지 마. 그냥 앉아서 마저 먹어.”
“예!”
대답과 달리 도적들은 슬금슬금 연적하 일행의 뒤를 따라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남천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 ‘십전무후 남궁연’ 등은 무림의 기인들인지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다.
그들 인생에서 오늘 연적하 일행과 함께한 시간은 두고두고 자랑이 될 터였다.
***
오봉산.
이두 마차를 적당한 곳에 세워 두고 연적하 일행은 산을 올랐다.
사해루에서부터 따라온 사내들 중 하나가 자진해서 마차 곁에 남았다.
멀리 산채 입구가 보이자 연적하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낡은 목책을 보니 산채를 지키겠다고 바둥거리던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
상방들과의 싸움에서 ‘오봉십걸’의 이름을 얻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좋았다.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듯 살았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생사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무료한데 어쩌다 걸리는 일이 위험천만하니 원…….’
그래도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오봉산에서는 의형제들이 있었고, 석경장에는 남궁연과 심통, 당운망이 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인복은 있는 것 같네.’
연적하가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남궁연이 물었다.
“오랜만에 오니까 기분이 좋아?”
“네.”
“석경장과 비교하면?”
의미심장한 그녀의 질문에 연적하는 지체 없이 답했다.
“그야 석경장이 훨씬 좋죠.”
“다행이네.”
남궁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자 연적하는 슬그머니 가슴을 쓸어내렸다.
목책으로 들어가자 앞마당에 가득한 도적들이 보였다.
채주인 마형도와 부채주 허임달이 환하게 웃으며 마중을 나왔다.
연적하와 심통이 오봉산채의 사람들과 회포를 푸는 동안, 남궁천 남매와 당운망, 월아, 금아는 찬모들이 기거하는 전각을 구경하러 다녔다.
오봉산채는 산중의 작은 마을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집이 많았다.
그들 중 절반은 찬모들이 생활하는 곳이고, 나머지는 가정을 꾸린 도적들의 집이었다.
넓은 마당 곳곳에는 어린아이들이 송사리처럼 떼지어 몰려다니며 놀았다.
그 모습을 본 월아가 남궁연에게 물었다.
“가모님, 산채가 원래 다 이런가요?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이곳은 그냥 마을 같네요?”
“오봉산채가 특별한 거란다. 다른 곳은 이렇지 않아.”
“역시. 그렇구나.”
금아가 슬쩍 끼어들었다.
“혹시 장주님께서 만드신 건가요?”
“그래, 장주님과 그분의 의형제들이 마을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장주님에게 의형제들이 있어요?”
“장주님이 오봉산채에 계실 때 아홉 분의 호걸들과 의형제를 맺었단다. 의리와 기개가 있는 그 열 명의 호걸을 사람들은 ‘오봉십걸’이라 불렀지.”
“와아!”
‘오봉십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월아와 금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끄덕이던 당운망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래서 도적들이 장주를 ‘일곱째 형님’이라고 불렀구먼. 난 또 무슨 말인가 했네.”
그러자 곁에 있던 남궁천이 설명을 보탰다.
“채주가 셋째, 부채주가 넷째이니 정중하게 대해야 할 겁니다. 연 장주가 다른 건 몰라도 의형제들에 대해서만큼은 깍듯하니까.”
“녹림의 서열은 무공의 강함에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소. 연 장주의 무공이라면 첫째가 되어야 정상 아니오? 왜 일곱째 소리를 듣고 있는 거요?”
연적하의 과거사를 모르는 당운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월아와 금아도 궁금하다는 얼굴로 남궁천을 보았다.
세간에 알려진 것도 그와 같아서다.
잠시 생각하던 남궁천은 간략하게 연적하의 과거사를 들려 주었다.
기왕지사 오봉산채까지 왔으니 그들의 장주에 대해 아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다.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면 모를까? 생사를 함께하고 있음에야.
“……그렇게 해서 연 장주는 ‘오봉십걸’의 일곱째가 된 겁니다. 목숨을 구해 준 풍 채주와 탁 부채주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와아!”
“멋있다.”
어린 월아와 금아는 달아오른 얼굴로 남궁천을 보았다.
과거 주루에서 일하면서 들었던 설화인들 이야기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연적하의 과거를 알게 되자 막연한 환상은 사라지고, 더 큰 경외감이 생겼다.
당운망이 느끼는 감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가의 방계로 태어나 차별 대우를 받다 도망친 자신을 보는 듯했다.
‘허!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비극도 그런 비극이 없는데.’
반 시진(1시간) 정도 마을을 둘러본 남궁천 일행은 다시 앞마당으로 이동했다.
때마침 연적하와 심통도 대화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왔다.
다시 모인 연적하 일행은 오봉산채 산적들의 배웅 속에 오봉산을 내려갔다.
***
하남성.
낙양.
맹진현 고성촌.
늦은 밤.
연가 무관을 길게 두르고 있는 외벽 아래에 복면인들이 모여들었다.
그 숫자는 무려 여섯.
좀도둑이라 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복면 위로 살짝 드러낸 눈빛이 형형한 것을 보면 죄다 무림의 고수 같았다.
그중 하나가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잊지 마라. 우리가 주의를 끌 동안 너는 빠르게 방을 뒤지는 거다. 금붙이나 장신구 따위는 거들떠볼 생각도 하지 말고. 노파심에 다시 말하지만 연가의 비전(秘傳)에만 집중해라. 알겠느냐?”
그러자 지목당한 복면인, 대도무문(大盜無門) 공화연이 조건을 달았다.
“전각이 두 채니 최소한 일다경(약 20분)은 시간을 끌어 줘야 해요. 아무리 제 손이 빠르다 해도 그 이하로는 죽어도 못해요.”
가늘고 여리여리한 음성이 영락없는 여자다.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라. 와룡검객과 그 동생의 무위가 뛰어나다고 하지만, 우리 강북오적(江北五賊) 또한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말과 함께 강북오적의 첫째인 승야월장(乘夜越墻) 오동진은 연가무관을 노려보았다.
연씨가 큰 세력을 이루었다면 월담은 꿈도 꾸지 못했겠지만, 무관은 다르다.
되든 안 되든 한번 비벼 볼 만했다.
실패하면 마는 거고, 성공하면 남천 연적하의 무공을 훔쳐 배울 수 있게 된다.
잠시 후 강북오적이 연가무관의 담을 넘어갔다.
‘석경장’의 명성이 올라가면서 생긴 부작용에 애꿎은 연가무관만 곡소리가 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