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97
497회. 내가 바로 그다
풍지산 계곡.
하늘에서 팔황신모가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앞으로 직일신장이 다가와 머리를 조아렸다.
십전무후 남궁연을 바닥에 내려놓은 팔황신모가 계곡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직일신장은 열 명의 십두마병들과 함께 계곡을 등지고 일렬로 섰다.
남궁연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팔황신모의 행동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팔황신모가 손을 뻗자 십 장(약 30미터) 밖에 있던 검은 염소가 그녀의 손아귀로 빨려들었다.
메에에-.
영문을 모르고 검은 염소가 처량하게 울어 댔다.
남궁연은 팔황신모의 가공할 허공섭물에 속으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술법뿐 아니라 내공도 천의무봉의 경지에 올라 있었구나!’
그런 점에 있어서는 연적하와 같았다.
대체 연적하와 팔황신모는 어떻게 무공과 술법을 겸비할 수 있었던 걸까?
이윽고 팔황신모는 검은 염소의 목을 자른 뒤 염소의 피로 역오망성을 그렸다.
남궁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문양이지만 왠지 불쾌했다.
기이하게도 문양은 그 자체로 천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이윽고 역오망성을 완성한 팔황신모가 남궁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는 이 문양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겠느냐?”
“그 문양이 천지조화를 거스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겠네요.”
남궁연은 자신이 제물로 사용된다는 걸 알면서도 담담했다.
팔황신모는 그녀의 그런 대범함이 마음에 들었다.
유명교에서 제물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을 텐데 저런 담담함이라니.
물론 자신의 제물은 죽지 않는다. 그렇다고 산다는 보장도 없다.
“후후. 보통 사람들은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데 너는 여장부로구나.”
“여장부가 아니라 헛된 일에 매달리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너무 똑똑해. 그러니 신(神)이 원하는 거겠지.”
말과 함께 팔황신모가 손을 뻗었다.
남궁연이 팔황신모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팔황신모는 남궁연의 뒷덜미를 잡고 역오망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남궁연을 역오망성 중심에 내려놓고 돌아설 때다.
산 위에서 천지를 흔드는 장소성이 들려왔다.
분노를 넘어 광기마저도 느껴지는 소리에 팔황신모는 흠칫 몸을 떨었다.
“연적하가 화가 많이 난 모양이로구나.”
“당신은 그의 노여움을 감당하지 못할 거예요.”
남궁연이 뿌듯한 얼굴로 팔황신모를 보았다.
그녀는 연적하가 자신의 복수를 해 줄 거라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너는 그 아이가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느냐?”
“당신이 유명교는 아니니까요.”
팔황신모는 반박하지 않았다.
연적하가 작정하고 유명교를 적대시하면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는 건 자명한 사실.
어쩌면 호천맹처럼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는 아느냐? 나도 유명교에는 미련이 없느니라.”
팔황신모의 눈이 기이한 열망으로 타올랐다.
사실 그녀에게 유명교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그녀가 원하는 건 불로불사.
자기 사문인 태일관도 몰살시켰는데 이제 와 유명교가 아까울 리 없다.
아니, 애당초 그녀는 유명교에 미련도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랬다면 백두마군들이 배신하고 갈라져 나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남궁연은 씁쓸한 눈으로 팔황신모를 보았다.
지금까지 팔황신모에 대해 오해를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유명교주가 아니라 그저 불로불사에 눈이 돌아간 마인일 뿐이다.
하기사 자기 사문조차 몰살한 사람이 사교 따위에 집착할 리가 있나.
“당신은 정말 불로불사에 미친 사람이군요.”
“천하에서 오직 너만이 나를 이해해 주는구나. 보답으로 마혈은 풀리도록 해 주마. 일각(15분)쯤 지나면 움직일 수 있을 게다.”
남궁연은 팔황신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각 후에 움직이게 해 준다니?
제물로 사용되면 목이 잘릴 텐데, 그때 가서 해혈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팔황신모가 막 역오망성을 벗어났을 때, 청운검 남궁천이 계곡 입구에 나타났다.
“연아! 멈춰라! 이 마녀야!”
남궁천이 계곡으로 뛰어들자 직일신장이 그 앞을 막아섰다.
남궁천은 바로 대연검법으로 상대를 찍어 갔다.
채채채챙-.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사납게 튀었다.
처음에는 팽팽해 보였지만 이내 남궁천이 수세에 몰렸다.
조금 전 태백 선인과의 싸움에서 무리를 한 탓에 내상을 입은 까닭이다.
본래 직일신장의 만일검법은 대연검법에 조금 못 미친다.
그러나 지금 직일신장은 만일검법으로 대연검법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직일신장은 주춤주춤 물러나는 남궁천을 일입공허(日入空虛)의 절초로 찔러 갔다.
남궁천은 황급히 검으로 밀려오는 검광을 걷어 내려 했다.
그러나 마치 허공에 대고 칼질하는 것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일입공허의 검의(劍意)에 눌린 것이다.
그는 다급히 천동망월의 검의로 응대하려 했지만 내력이 받쳐 주지 않았다.
‘헉!’
뒤늦게 몸을 피하려 했지만, 눈앞에서 검광이 번득였다.
번쩍.
남궁천은 부릅뜬 눈으로 자신의 최후를 장식해 줄 검광을 노려보았다.
그것은 무림세가의 가르침이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눈을 감으면, 운 좋게 살아남아도, 그 찰나의 기억에 투기를 잡아먹히고 만다.
그래서 남궁벽은 항상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라고.
-알겠느냐. 그래야 운 좋게 살아남아도 검을 들 수 있느니라. 천운으로 살아남았는데 평생 날 선 검을 마주할 수 없다면, 그보다 비참한 일도 없느니라.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양미간을 찔러 오던 검 끝이 갑자기 한쪽으로 홱 돌아간 것이다.
챙-.
뒤늦게 날붙이 부닥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곧이어 누군가 자신의 머리 위를 타고 넘어갔다.
눈에 익숙한 뒷모습, 연적하였다.
그제야 남궁천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찌나 긴장하고 있었던지 한순간 힘이 풀리며 다리가 휘청거렸다.
연적하는 직일신장을 발로 걷어차고 팔황신모를 향해 다시 도약했다.
마치 길잡이처럼 청사(靑蛇)가 그의 앞에 둥둥 떠 있었다.
급하게 달려가는 연적하의 발목을 다시 열 명의 십두마병들이 잡았다.
역오망성 밖으로 나온 팔황신모는 계곡 입구를 힐끔 보았다.
바람조차 멈추던 계곡이 오늘은 난장판이다.
호천맹이 아닌 석경장 하나만으로 이 정도 소란이라니.
‘막으라는 명을 내린 게 실수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삼두견과 흑기사에게 죽이라고 했으면 결과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 벌어진 일.
그녀는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보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팔황신모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연적하와 남궁연의 운명은 자신과 맞닿아 있다.
그런 믿음으로 주문을 외웠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주문에는 처음부터 진심을 넘어선 혼신의 힘이 담겼다.
“레나 티아그 아이에 야하 자두 삼라트.”
순간 역오망성에서 불꽃이 튀었다.
파파파팟- 화르륵-.
불꽃은 이내 불길로 변해 역오망성을 휘감았다.
화염 아래로 검은 연기가 꾸역꾸역 차올랐다.
악의(惡意)로 가득한 연기다.
저도 모르게 오싹 소름이 돋자 남궁연은 급히 창궁대연신공을 암송했다.
들끓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역오망성을 중심으로 연기가 한쪽 방향으로 구불텅구불텅 움직였다.
‘이건 뭐지?’
남궁연은 악의로 충만한 연기를 응시했다.
술법 같은데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연기의 흐름을 따라가던 남궁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허공에 거대한 역삼각형의 머리가 보였다.
밤하늘에 곧게 몸을 세우고 있는 그것은 아무리 봐도 뱀이었다.
그러고 보니 연기가 뱀처럼 파리를 틀고 있다?
왜?
그때 뱀이 아가리를 벌리며, 먹잇감을 덮치듯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남궁연은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았다.
놀랍게도 쩍 벌어진 뱀의 입천장은 마치 밤하늘을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분명히 반짝이는 저 불빛은 별이었다.
밤하늘이 덮쳐 오자 남궁연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아무리 강심장인 그녀라 해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까지 바라볼 담력은 없었던 모양이다.
콰아아-.
검은 연기가 육망성 위로 쏟아져 내렸다.
십두마병들을 찍어 내며 달리던 연적하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누님!”
청사의 끝에서 검강이 일 장(약 3미터)이나 뻗어 나왔다.
휘잉- 휘잉-.
그가 검강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달리자 십두마병들은 달아나기 바빴다.
당장 몸이 잘릴 판이라 문책을 생각할 틈도 없었다.
연적하가 제단에 도착할 즈음, 계곡에서 불어온 강풍이 연기를 몰아냈다.
휘이잉-.
바람에 검게 탄 육망성 문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남궁연은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꿈에서 보았던 그대로다.
육망성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던 연적하가 팔황신모를 향해 돌아섰다.
“마녀야! 누님을 어떻게 한 거냐!”
팔황신모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옆에 나란히 선 사람만 홀린 듯 바라보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그는 홀연히 자신의 곁에 나타났
경계심보다 짙은 유대감이 느껴지는 걸 보면 역오망성에서 나온 존재이리라.
“나는 천……. 꿀꺽, 그대는 ‘왕들의 하늘’에서 왔나요?”
팔황신모는 의식적으로 ‘천자마’를 생략했다.
오늘의 제물을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 지정해 준 까닭이다.
그 신이 강림하리라고 했던 만큼 ‘천자마’를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강림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다. 내가 바로 네가 기다리던 그다.”
“저, 정말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십니까?”
“그러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연적하가 대뜸 팔황신모에게 청사를 날렸던 것이다.
쉬이익-.
팔황신모가 놀라 대응하려는 순간, 강림자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우웅-.
허공에 멈춰 선 청사가 구슬프게 검명을 흘렸다.
연적하가 중간에 끼어든 사람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너는 누구냐! 누구기에 유명교주와 나 사이의 일에 끼어드는 거냐!”
강림자가 연적하를 향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본래 나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너는 나를 ‘금사(金莎)’라고 부르도록 해라. 유명교주의 오랜 친구이지. 그러는 너는 누구냐?”
“연적하. 유명교주가 내 처를 납치했다. 너는 그래도 나를 막을 테냐?”
그러자 금사가 팔황신모를 힐끔 보았다.
“제물의 남편이더냐?”
“그렇습니다.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금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붙들려 있던 청사가 연적하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갔다.
깜짝 놀란 연적하는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윽고 청사가 발아래를 스치고 지나가자 접인술로 청사를 붙잡았다.
지이잉-.
저만치 멀어져 가던 청사가 힘에 눌려 연적하에게로 얌전히 되돌아왔다.
연적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금사를 노려보았다.
손가락 하나로 자신의 이기어검을 무위로 돌리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건 ‘천하십대고수’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명교주도 벅찬 상대인데 그보다 더한 고수라니?
뒷골이 띵할 정도로 머리가 아팠지만 연적하는 전의를 가다듬었다.
‘인생 뭐 있어?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최악의 경우 달아나면 될 일이다.
이런 곳에서 남궁연의 소식도 모른 채 미련하게 죽을 생각은 없다.
각오를 다지고 앞으로 나가려는 연적하의 어깨를 남궁천이 덥석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