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03
503회. 황새와 뱁새
연적하가 의아해하는 구천노도 심통에게 말했다.
“욕계라고 다 같은 세상이 아니야. 왕들의 하늘은 욕계 중에서도 깨달음을 얻어야 가는 곳이야. 우리가 사는 곳과는 질이 다르다고. 그러니 당연히 지상낙원이겠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삼두견 같은 건 없지 않습니까? 여기보다 더 좋다면 더더욱 그런 흉물은 없어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삼두견이 흉물이라는 편견을 버려. 누가 알아? ‘왕들의 하늘’에서는 온순한 동물일지? 심 노인의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하려고 하지 마.”
다소 억지스러운 연적하의 말에 심통이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온순이라고요? 그 대가리 셋 달린 괴물이 어딜 봐서 온순합니까? 물어뜯을 게 없으면 제 대가리와도 싸우게 생겼던데.”
“하여간 생각하는 거 하고는. 머릿속에 온통 물어뜯고 싸우는 생각뿐이지?”
“살아 있는 건 뭐든 그러게 되어 있습니다. 먹어야 살지 않습니까? 내 배가 고프면 닭이 알아서 요리가 되어 입에 들어오나요? 달아나는 놈 잡아 죽여서 요리를 해야 입에 들어오지요. ‘왕들의 하늘’도…….”
“어허! 거참 늙은이가 재수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연적하가 짜증을 내자 뒤늦게 심통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그런 뜻에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세상은 약육강식이라는…….”
‘약육강식’이라는 말에 연적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왠지 ‘왕들의 하늘’에서 남궁연이 강자가 아닐 것 같아서다. 평범한 인간이 깨달음을 얻은 존재들의 세계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연적하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누님은 잘 있을 거야. ‘범천욕계왕재천’이라는 책을 외우고 갔으니까.”
“맞습니다. 가모님보다 더 ‘왕들의 하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쩌면 ‘왕들의 하늘’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잘 알지도 모르지요.”
“사람이 살기나 할까 몰라.”
“설마요. 깨달음을 얻은 존재 중에 사람이 없겠습니까? 수도자가 그렇게 많은데?”
“하긴 그렇네. 유명교가 판을 칠 정도로 수도자가 많으니.”
유명교 천두마왕, 백두마군, 십두마병의 존재가 처음으로 위로가 됐다.
그건 역설적으로 제대로 된 수도자가 그렇게나 많았다는 소리니까.
“그런데 공자님. 혹시 유명교주도 ‘왕들의 하늘’에 욕심을 내고 있습니까?”
“어떨 거 같아?”
“‘팔황의 혈사’까지 일으킨 걸 보면 독식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요?”
“맞아.”
“왜요? 거기는 그저 깨달음을 얻은 존재가 가는 곳 아닙니까? ‘왕들의 하늘’에 간다고 불로불사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거의 불로불사를 하는 것 같아. 몇만 년 사는 건 기본이라네? 천자마라는 존재는 십만 년을 살았대.”
“헉! 십만 년요? 지상낙원 맞네.”
“쯧쯧! 오래 산다니까 말 바뀌는 거 좀 봐. 하여간 속물이야.”
속물이라는 비난에도 심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왕들의 하늘’에 가면 수명이 늘어나는 겁니까?”
“가 보면 알겠지.”
“공자님은 교주에게 가실 거죠?”
“가야 누님을 만나지.”
“혹시, 저도 그 ‘왕들의 하늘’에 갈 수 있을까요? 공자님만 혼자 보내자니 마음에 걸려서요. 쿨럭, 쿨럭!”
말끝에 사래가 걸렸는지 심통이 기침을 해 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연적하가 냉소를 쳤다.
“흥!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소리를 해. 어디서 수작질이야? 한참 수명이 늘어나냐 어쩌냐 묻더니 뭐? 공자님만 혼자 보내자니 마음에 걸려? 에라! 이 화상아.”
“허어! 이거 참. 섭섭합니다. 개인적인 호기심과 공자님에 대한 충정을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혼동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오늘내일하니까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 생기나 봐?”
“오늘내일이라뇨? 반로환동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공자님의 수발을 들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응,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잘 하니까 걱정하지 마.”
연적하가 받아 주질 않자 심통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유명교주는 그 좋은 곳에 왜 빨리 안 가고 현세에서 지랄이랍니까?”
“십두마병, 백두마군, 천두마왕은 염마왕의 권속이라서 갈 수가 없대.”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요?”
“‘왕들의 하늘’에 가려면 저승의 문턱을 넘어가야 해. 그런데 저승을 다스리는 게 염마왕이야. 그 염마왕이 자기 수족을 다른 세계로 보내 주겠어? 그래서 염마왕의 권속은 저승 너머로 갈 수가 없어.”
“유명교주는 불로불사에 목을 매는 사람인데 아주 꼴좋게 됐네요?”
“그래서 이 사달이 난 거야.”
“사달요?”
“‘왕들의 하늘’로 가는 방법을 알아내려고 금사를 강림시킨 거래. 그 짓에 누님이 말려든 거지.”
“금사라는 것도 참 요망하네요. 알려 줄 마음이 있으면 그냥 그 신언(神言)인지 뭔지로 가르쳐 주지. 굳이 강림을 해야 할 이유는 뭐랍니까?”
“그러네? 금사는 왜 아득바득 현세에 온 거지? 방법도 별거 아니더만. 신언으로 알려 줘도 됐을 텐데.”
“금사도 ‘왕들의 하늘’에서 왔겠죠?”
“왕들의 하늘에 있는 아홉 군주 중 하나래. 그런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왜 그랬을까? ‘왕들의 하늘’이 현세보다 훨씬 좋을 것 같은데.”
“금사가 신이라고 했죠?”
“어, 정확히는 신격의 일부지.”
“황새의 뜻을 우리 같은 뱁새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냥 신경 쓰지 마십쇼.”
“만나 보니까 황새 같지는 않던데? 그러니까 유명교주도 반신반의하는 거고.”
“그야 공자님이 워낙 뛰어나니까 그렇게 느끼시는 거고요. 그래도 금사는 황새 맞습니다. 신이라면서요? 분명히 사람이 상상도 못 할 한 수를 감춰 두고 있을 겁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도 감추어 둔 수가 많거든?”
“예, 예. 물론 그러시지요. 여하튼 공자님이나 저의 머리로 금사의 계책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가모님이라면 몰라도.”
“쩝. 다시 공부를 시작해 볼까?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 할 사람이라고.”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기도 하니 잘하시겠지요.”
“칭찬이야? 욕이야?”
“이게 어딜 봐서 욕입니까? 칭찬 맞습니다. 하지만 글줄 읽는다고 통찰력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똑똑한 척은 할 수 있겠지만 지혜와는 거리가 멀지요.”
“욕 같은데?”
“사람은 모든 방면에 뛰어날 수 없습니다. 공자님도 머리에는 욕심을 부리지 마십쇼. 공자님 무위에 머리까지 좋기를 바라는 건, 과욕입니다.”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연적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가만, 가만. 내 머리가 그렇게 나쁘다고?”
심통은 얼른 말을 돌렸다.
“전혀요. 공자님의 뛰어난 무위를 칭찬한 겁니다. 공자님은 칼을 쓰시고, 생각은 가모님에게 맡기라는 겁니다.”
“누님의 판단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지금 없으니까 머리를 굴리는 거잖아.”
그러자 심통이 측은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공자님.”
“왜?”
“손톱만 한 돌이 열 번 굴러가는 게 빠르겠습니까? 아니면 집채만 한 바위가 한번 굴러가는 게 빠르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집채만 한 바위지.”
“그렇다면 생각을 멈추고, 그 시간에 칼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십시오.”
“내가 손톱만 한 돌이었어?”
“가모님에 비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심통이 남궁연을 끌어들이자 연적하는 반박하지 못했다.
손님 중에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같은 소리를 할 거라는 걸 알아서다.
***
이월.
산서성 교구현.
풍지산 선녀암.
신당.
외출하고 막 돌아온 팔황신모에게 금사가 말했다.
“요즘은 얼굴 보기가 어렵구나?”
“제물 준비로 조금 바빴어요. 아무나 막 잡아 죽였다가는 천하인들의 공적이 될 테니까요.”
“내가 너와 함께하는데도 천하인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는 말이냐?”
“저는 현세에 속한 사람이라 현세의 규칙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답니다.”
“현세의 규칙이라. 이전에는 우리의 규칙을 따랐던 것 같은데. 믿음이 약해졌구나.”
질책하듯 한 금사의 말에 팔황신모는 힐끔 고개를 돌렸다.
정말 질책이라면 그의 비위를 조금 더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사의 얼굴은 무표정해서 속을 알기가 어려웠다.
그때 금사가 지나가듯 말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냐?”
금사의 말에 팔황신모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자신의 계획을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아셨어요?”
팔황신모는 남아 있는 팔황들을 의심했다.
혹시나 금사가 초능이나 불로불사를 미끼로 팔황을 포섭한 것일까?
그러자 금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너와 나의 심령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었느냐? 더구나 내가 신격을 다소 잃었다 해도 신이다. 설사 그게 아니라 해도 네 생각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라.”
순간 팔황신모는 소름이 오싹 돋았다.
만에 하나 금사가 자신과 연적하의 대화까지도 안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심령이 연결되었다 해도 저는 삼두견과 흑기사의 생각까지 알 수 없던데요?”
“너에게 신격이 없으니 그런 게다. 너에게 신격이 있었다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금사님은 저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건가요?”
팔황신모가 도발적인 눈으로 금사를 응시했다.
그녀는 금사에게 그런 정도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금사는 완벽하지 않다.
그랬다면 자신이 오늘날 염마왕의 권속으로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완전한 신의 흉내를 내지만, 그 정도의 신격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건 아니다.”
금사가 한발 물러서자 팔황신모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역시나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
“내가 아는 것은 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이다. 너의 치명적인 비밀은 감추어져 있으니 안심해라. 현세의 신들이 나에게 허락한 것은 그 정도니까.”
금사는 마치 팔황신모의 걱정을 안다는 투로 말했다.
완전히 여유를 되찾은 팔황신모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어렸다.
“치명적인 비밀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저는 금사님만 믿고 의지할 뿐이에요. 그런데 십만 명을 참수하는 것으로 끝인가요? 다른 절차는 없나요?”
“행위로 쌓는 업에 절차가 필요하겠느냐? 너의 죄업이 무거우면 염마왕도 포기할 것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그렇게 업이 무거우면 오히려 지옥에 떨어지지 않나요?”
“‘염마왕의 권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염마왕의 종’ 아닌가요?”
“비슷하다. ‘염마왕의 권속’은 즉 ‘지옥의 사자’라는 뜻이다. 너는 십두마병의 몸에 현신한 마물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느냐? 지옥이다. 너의 몸과 영혼은 이미 지옥에 떨어진 지 오래니라.”
태연한 금사의 말에 팔황신모는 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지옥으로의 길을 인도한 이가 금사인 까닭이다.
“아시다시피 저는 금사님께서 가르침대로 살아왔어요. 제 소원이 불로불사인 걸 아시잖아요? 그런 저를 왜 염마왕의 권속이 되게 하셨나요?”
지난 몇 달 동안 흉중에 품어온 말인지라 한마디 한마디가 사뭇 격정적이었다.
금사는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령아, 나는 너의 바람과 지금 느끼는 심중의 고통을 이해한다. 왕들의 하늘로 갈 수 없게 되었으니 나에 대한 원망이 클 테지.”
“예, 큽니다. 말할 수 없을 만큼요.”
팔황신모의 음성이 떨렸다.
오죽하면 신살자(神殺者)를 꿈꾸고 있을까!
‘금사를 죽인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금사가 인자한 어조로 말했다.
“여령아, 당시의 너는 너무도 약해서 신들의 콧바람에도 꺼질 촛불이었다. 그때의 너에게 ‘왕들의 하늘’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면, 너는 불로불사는커녕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죽었을 게다.”
“설마 저를 위해서 염마왕의 권속이 되게 했다는 말씀인가요?”
“그러하다. 나는 신의 격을 가진 존재, 하찮은 인간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나는 너를 염마왕의 권속으로 내어 주었다. 덕분에 너는 천두마왕의 초능을 얻었지. 아직도 나의 깊은 뜻을 모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