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10
510회. 종문, 하늘로 오르는 문(門)
공지유는 어감이 조금 이상했던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가 처음 본 사내에게 믿는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야릇하게 해석할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지섭이 히죽히죽 웃으며 한마디 했다.
“믿긴 뭘 믿어? 금방 연 가가(哥哥)라 부르며 따라다닐 기셀세.”
그러자 공지유가 얼굴을 붉히며 받아쳤다.
“가가는 무슨 가가예요! 처음 만난 소형제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조원인 정우생이 슬쩍 끼어들었다.
“조장님, 제가 봐도 가가는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어이쿠!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벼드네. 알았다. 알았어. 연 형제, 농담이니 한 귀로 듣고 흘리게.”
공지섭은 질린 얼굴로 머리를 설레설레 젓다가 다시 걸음을 떼어 놓았다.
조원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적하는 종문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다시 묻지 않았다.
조금 전의 농담 때문에 공지유에게 말을 걸기가 민망해서다.
하지만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아 풀렸다.
서너 걸음 앞서가던 공지유가 속도를 늦추었다.
그녀는 연적하가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이 따라붙자 작게 말했다.
“구주에는 모두 아홉 개의 종문이 있어요. 그들이 각 주를 지배하고 있지요. 한산주(漢山州)에는 천지종, 수약주(首若州)에는 소요종, 황천주(黃泉州)에는 광염종, 하서주(河西州)에는 태상종, 완산주(完山州)에는 천태종, 웅천주(雄川州)에는 혈주종, 무진주(武珍州)에는 무극종, 영천주(靈泉州)에는 천뢰종, 사벌주(沙伐州)에는 법요종.”
구주와 아홉 종문의 긴 이름 앞에서 연적하는 눈만 끔뻑거렸다.
“굳이 외울 생각은 하지 마세요. 자기가 살고 있는 주의 종문만 알고 살아도 충분하니까요.”
“다른 종문은 몰라도 돼요?”
“종문 제자를 만날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저만 해도 소요종의 종문 제자들을 본 적이 없는데, 다른 종문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죠.”
“아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살던 세계로 치면 종문은 칠파일문쯤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도 대다수 일반인은 칠파일문의 제자와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운이 좋은 편이에요. 지금까지 종문 제자를 만난 적이 없으니까.”
“그게 운이 좋은 거예요?”
순간 공지유는 황당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당연한 소리를 묻다니?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다.
“아니, 연 형제는 다른 세상에서 살다 왔어요? 종문 제자라고요. 그들은 자기 기분에 따라 사람을 죽이거나 살려 줘요. 착한 사람도 많지만, 독한 사람을 만나면 즉사라고요. 즉사.”
“살인을 하면 처벌받지 않나요?”
“누가 종문 제자를 벌해요? 종문의 장로들이 상벌을 준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잖아요? 기껏해야 야단이나 치고 말겠죠.”
“국법(國法)이 있잖아요?”
“성주를 종문에서 임명하는데 법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
멈칫하던 연적하는 급히 말을 돌렸다.
“그런데 종문은 뭐 하는 곳이에요?”
순간 공지유의 음성이 다시 한번 올라갔다.
“와아! 살다 살다 그런 질문은 처음 들어 보네요. 종문이 뭐 하는 곳이냐니. 그런 것도 모르는 걸 보면 정말 오랫동안 갇혀 있었나 봐요?”
“십 년요.”
“어머, 지금 나이가?”
“스물셋요.”
“그럼 거의 반평생을 갇혀 있었던 거네요? 참고로 난 스물둘이에요.”
“아, 네.”
연적하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기다렸다.
솔직히 공지유의 개인사보다 종문이 더 궁금한 까닭이다.
“종문은 창세 신화와 관계가 있어요. 창조신께서 구주(九州)를 만드신 후에 하늘로 돌아가셨는데, 가시면서 시중들던 구주의 종들에게 ‘하늘로 오르는 문’을 맡기셨대요. 거기서 구주의 아홉 종문이 출발하게 된 거예요.”
“종문에 ‘하늘로 오르는 문’이 있다고요?”
“종문 제자들의 능력을 보면 있고도 남음이 있죠. 일반인들은 백 번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종문 제자의 발끝도 못 따라가거든요.”
“그렇게 뛰어나요?”
“종문의 제자들은 신선이나 다름없어요.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왜 종문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지 알아요?”
“몰라요.”
“종문의 제자가 되면 ‘하늘로 오르는 문’을 통해 진선(眞仙)의 세계로 갈 수 있다고 해요.”
“진선의 세계요? 그건 무릉도원 같은 건가요?”
“맞아요. 불완전한 현세와 달리 그곳은 완전한 세계예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없는 진짜 신들의 세계.”
그녀는 이곳이 가짜 신들의 세계인 것처럼 말했다.
‘왕들의 하늘’에 오는 게 목표인 팔황신모가 알았다면 입에 거품을 물었으리라.
“이 세계는 불완전해요?”
“생각해 보세요. 종문의 제자들이 사람을 가축처럼 대하잖아요. 종문까지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주변을 둘러보세요. ‘동급’ 이상의 야수가 무서워서 우리 오라버니가 뱅뱅 돌고 있어요. 구주만 봐도 우리는 ‘종문’이나 ‘야수’의 먹이에 불과하다고요. 다른 데라고 괜찮을 것 같아요? 마천(魔天)의 마귀들은 더 끔찍해요. 그나마 구주에 살고 있는 게 축복이라면 어떤지 아시겠어요?”
“마천은 또 어디에 있는데요?”
“이 천관산맥 너머에 있다고 들었어요. 천관산맥 덕분에 구주가 보호받고 있는 셈이랄까?”
“마천의 마귀들은 그렇게 무시무시하다면서 천관산맥을 못 넘어요?”
그러자 공지유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이봐요. 연 형제. 우리는 지금 천관산맥의 초입에 있어요. 고작 초입의 야수들도 위험해서 피해 다니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세요. 천관산맥 더 안쪽으로는 야수만 있는 게 아니라 영물(靈物)과 신수(神獸)까지 나온다고요. 영물과 신수는 종문 제자들도 어려워해요.”
“아, 몰랐네요.”
“구주 쪽으로 영물과 신수가 있지만, 마천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마물(魔物)과 마수(魔獸)가 나와요. 영물 과 신수가 마천의 마기에 노출돼서 그렇게 변한 거라는데, 아무튼 아무리 마천의 존재라 해도 그 괴물들을 뚫고 오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럴 때는 천관산맥의 괴물도 도움이 되네요?”
“어쩌다 천관산맥을 넘어오는 마귀들은 수약주, 영천주, 완산주의 종문이 처리해 줘요. 그것에 대한 감사로 사람들은 열심히 공물을 바치죠.”
“그렇군요.”
연적하가 고개를 주억거릴 때다.
오 장(약 15미터)여 앞에서 부지런히 숲을 헤쳐 나가던 공지섭이 멈춰 섰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작지만 환희에 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천년화령적지(千年火靈赤芝)다!”
순간 조원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본래 그들이 찾던 것은 ‘금란축여(金欄祝余)’라는 선초다.
하지만 ‘천년화령적지’는 ‘금란축여’보다 훨씬 뛰어난 ‘영지 선초’였다.
‘금란축여’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귀하게 대접받는다면, ‘천년화령적지’는 종문에서도 높이 쳐준다.
법보의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복용하면 수련에 큰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공지섭은 거대한 나무 밑둥에 돋아난 ‘천년화령적지’를 조심스럽게 채취했다.
‘흐흐흐, 이게 웬 횡재냐!’
그의 입이 귀에 걸렸다.
장장 칠 일간의 여정 끝에 얻은 수확이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이 한 덩어리면 ‘금란축여’를 백 뿌리라도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금란축여’가 귀하다 해도 종문의 눈에는 그저 풀뿌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천년화령적지’는 종문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구하는 선초 중의 선초.
어쩌면 이 한 덩어리의 ‘천년화령적지’로 ‘소요종’의 입문 제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좀 심했나?’
뒤늦게 정신을 차린 공지섭이 한껏 들떠 있는 조원들에게 말했다.
“본래 열흘을 잡고 들어왔는데 그만 나가도 될 것 같다. ‘금란축여’보다 더 귀한 걸 얻었으니 문주님도 좋아하실 게다.”
“좋아하다 뿐입니까? 그거 하나면 ‘금란축여’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포상까지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우생의 말에 다른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종문에서 사들이는 ‘영지 선초’의 가격이 비싸다면서요?”
“못해도 황금 백 냥은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바치기에는 너무 큽니다.”
‘천년화령적지’가 워낙 귀한 영지 선초라 그런지 다들 욕심을 부렸다.
보다 못한 공지유는 참견을 하려다가 말았다.
비록 발견한 사람은 오라비지만, 조원들의 공도 일부분 있어서다.
곰곰 생각하던 공지섭이 조원들에게 말했다.
“우리 문주님은 좋은 걸 독식하는 분이 아니시다. 섭섭지 않게 보상해 주실 테니 너무 안달하지들 말아라.”
정우생이 불안한지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슬쩍 언질 정도는 주셔야 할 겁니다. 견물생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눈치껏 할 테니 너무 염려 마라. 내가 누구냐? 현천문에서 십 년이나 문주님을 보아 왔다. 그럴 분도 아니시지만, 그럴 일도 없게 하겠다.”
그제야 조원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칠 일간의 개고생 끝에 발견한 천고의 보물이니 그럴 만도 하다.
공지섭이 문득 연적하를 향해 말했다.
“이제 보니 소형제가 복덩이야. 자네를 만나기 전까지 선초(仙草)는커녕 약초 한 뿌리 보질 못했거든? 현천문까지 함께 가면 우형이 한턱 내도록 하지.”
“예, 감사합니다.”
연적하는 사양하지 않았다.
공지섭을 통해 구주, 그중에서도 특히 ‘완산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잠시 후 공지섭과 조원들은 산을 되짚어 나갔다.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험난했지만 누구도 힘들다고 투덜거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흘이 지났다.
정오 무렵.
공지섭이 맞은편에 보이는 눈이 하얗게 내려앉은 산 정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옥룡설산이 보이는 걸 보니 수약주의 경계가 멀지 않은 것 같다. 힘들 내자.”
지쳐 있던 조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옥룡설산에서 수약주의 경계까지 사흘 거리인 것도 있지만, 그 사이에 있는 야수라고 해 봐야 ‘초목급’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기운을 회복한 조원들이 다시 움직였다.
무성한 잡목을 헤치며 반 시진(1시간)쯤 걸었을까?
답답하던 시야가 확 트이며 온통 바위로 뒤덮인 계곡이 나타났다.
산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가 바위 계곡을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물줄기를 본 조원들이 앞다퉈 달려갔다.
콰콰콰!
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소리를 질러야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
조원들은 나흘간 흘린 땀으로 진득거리는 몸을 곳곳에 고인 물웅덩이에서 씻어 냈다.
유일한 여자인 공지유는 조원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의 물웅덩이를 사용했다.
조원들이 한창 때를 벗겨 내고 있을 때다.
‘우지끈!’ 하며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반달곰 한 마리가 숲에서 튀어나왔다.
크기가 십 척(약 3미터)이 넘는 거대한 곰이었다.
곰은 곧바로 공지유를 향해 달려갔다.
때마침 요란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공지유는 늦지 않게 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빨리 물 밖으로 튀어나간 그녀는 바닥에 두었던 도를 들고 곰에 맞섰다.
“‘장생불사 곰’이에요! 어떻게 해요!”
뾰족한 공지유의 외침에 뒤늦게 다른 조원들도 병기를 들고 달려갔다.
“우어! 우어! 우어!”
위압적인 체구만큼이나 울음소리도 우렁차서 바닥이 가볍게 울릴 정도였다.
곰이 공지유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공지유는 검 끝으로 곰을 견제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곰은 그 큰 체구에도 불구하고 민첩하게 그녀를 압박하며 몰아붙였다.
누가 봐도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공지섭과 조원들은 우물쭈물하며 곰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곰 주위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공지섭에게 연적하가 소리쳐 물었다.
“공 조장님! 저건 ‘초목급’이 아닌가요?”
“제길! 가슴에 하얀 반달무늬가 있는 저런 곰을 ‘장생불사 곰’이라고 하네. ‘초목급’이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이 잡아서는 안 될 영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