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12
512회. 종문의 제자가 아니라고?
천태종의 종문 제자 장천세는 이들을 죽이고 ‘화령의 영기’와 ‘쓸개’를 취할 생각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공지섭과 조원들은 눈물을 쏟아 내며 매달렸다.
“크흑! 살려 주십쇼!”
“아이고! 살려 주십쇼! 집에서 병든 노모가 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죽으면 어머니도 곧 돌아가실 겁니다. 제발요. 흑! 흑!”
“으흐흑! 흑흑! 살려 주세요.”
울부짖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장천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빳빳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는 청년 하나가 영 눈에 거슬린다.
분명히 같은 일행으로 보이는데, 용서를 구하지도 않고, 심지어 낯빛도 담담하다?
“흥!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실로 건방진 놈이로구나.”
“누구? 너? 아니면 나?”
장천세가 멍한 얼굴로 청년을 보았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연단 십 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자신의 귀가 그럴 리 없다.
‘설마 다른 종문의 제자인가?’
일반인에게 종문 제자는 천상의 존재라 반말은 꿈도 꾸지 못한다.
“나는 천태종의 종문 제자 장천세라 하오. 귀하는 어느 종문의 제자요?”
“나는 그냥 석경장의 사람인데?”
“종문의 제자가 아니라고?”
“어.”
혹시나 하고 올려다보던 공지섭과 그의 조원들이 격하게 땅에 머리를 박았다.
“살려 주십쇼!”
“용서해 주십쇼!”
장천세가 짜증 어린 얼굴로 지면에 꿇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닥쳐라! 지금부터 입 놀리는 자를 먼저 죽이겠다!”
“…….”
깜짝 놀란 공지섭과 조원들은 입을 꾹 다물고 머리를 땅에 박아 댔다.
조용한 가운데 ‘퍽! 퍽!’하는 파열음만 들려왔다.
장천세가 다시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있는 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허! 종문의 제자도 아닌 놈이 감히 종문 제자에게 반말을 했다 이거지?”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 천태종에는 머리 나쁜 사람만 모였나? 왜 말귀를 못 알아듣지? 귀가 먹은 건가?”
“미친놈.”
장천세는 귀찮은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손끝에서 일어난 잠력이 연적하를 향해 쇄도해 갔다.
휘이잉-.
잠력이 쓸고 지나갔지만 연적하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응? 뭐지?’
장천세가 제 손바닥을 들어 올려 살폈다.
자신이 쏘아 보낸 잠력이면 피를 토하며 날아가야 하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때 연적하가 장천세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쉬이익-.
날카롭게 대기를 가르며 경력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대경실색한 장천세는 ‘태산공허’의 수법으로 경력을 막았다.
두 손바닥에서 일어난 장영(掌影)과 경력이 중간에서 마주쳤다.
콰직-.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장영에 구멍이 났다.
뒤이어 경력이 장천세의 어깨를 때렸다.
“윽!”
짧은 비명과 함께 장천세의 상체가 한차례 흔들렸다.
제대로 맞았는지 오른쪽 어깨 부위의 옷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었다.
장천세가 이를 빠드득 갈며 소리쳤다.
“천태종의 장법을 파훼하다니. 너는 다른 종문의 제자가 분명하다! 비겁하게 감추지 말고 정체를 드러내라! 설마 무극종이냐!”
그는 청년을 천태종과 견원지간인 무극종 제자라 생각했다.
일반인이 ‘태산공허’에 맞서려면 ‘운기(運氣, 반박귀진과 비슷)’의 경지는 넘겨야 한다.
‘일반인이 운기지경에 들려면 환갑은 넘겨야 하거늘…….’
하지만 상대는 아무리 많게 봐도 고작 이십 대 초반의 나이였다.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저 나이에 ‘운기지경’은 불가능하니 다른 종문의 제자가 분명했다.
“석경장이라니까. 종문, 종문, 하더니 별거 없네?”
연적하의 비아냥에 장천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신을 신처럼 떠받드는 일반 무인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니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이놈! 감히! 죽여 버리겠다!”
장천세는 검을 뽑아 들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좌에서 우로 길게 검을 그었다.
하얗게 빛나는 초승달 같은 검형(劍形)이 연적하를 베어 갔다.
천태종의 입문 제자들이 익히는 초급 검공 섬섬초월(纖纖初月)이다.
연적하는 무덤덤한 눈으로 검형을 응시했다.
이곳에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검형만으로 보면 ‘검의발현’의 경지.
구천노도 심통이나 청운검 남궁천보다는 뛰어나지만 자신과 비교하면 멀었다.
연적하는 청사를 꺼내 가볍게 휘둘렀다.
비룡승천을 펼치자 청사 끝에서 청룡이 튀어나와 초승달과 마주쳐 갔다.
꽈르릉!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초승달이 산산조각났다.
뒤이어 청룡이 장천세를 덮쳤다.
섬섬초월에 전력을 쏟아부은 장천세는 피하거나 다른 수로 받아칠 틈조차 얻지 못했다.
그 정도로 연적하의 검공은 장천세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콰아아-.
청룡의 꼬리가 장천세를 스치고 지나갔다.
연적하가 방향을 틀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죽고도 남았다.
그렇다 해도 청룡의 검형에 노출된 터라 그의 전신은 너덜너덜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청년을 보던 장천세가 고개를 숙였다.
“귀하는 어느 종문의 고인이십니까?”
그는 상대가 종문의 제자라고 확신했다.
종문에 ‘입문’하면 ‘초급 공법’과 ‘검공’을 배우는데 그때야 비로서 ‘의기발현’의 단계가 된다.
이를 ‘연단’이라 한다.
‘연단’이 십 성에 이르면 ‘연허’가 된다.
‘연허’의 경지에 오르면 ‘중급 공법’과 ‘검공’을 전수받는다. 그때부터 비로소 ‘의형검기’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중급의 검공은 전부 ‘의형검기’라고 보면 된다.
‘의기발현’이 ‘연단’이라면, ‘의형검기’는 ‘연허’인 셈이다.
연적하가 쓴 수법이 ‘의형검기’라 장천세는 그를 ‘연허’의 고수라 생각했다. 종문의 공법 없이 일반인의 몸으로 ‘연허’에 들려면 백 세를 넘겨야 하는 까닭이다.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귀 먹었어? 석경장이라고 몇 번을 말해?”
“거짓말하지 마시오. 귀하의 검공은 분명 ‘의형검기’였소. ‘의형검기’를 쓰려면 ‘연허’의 경지에 들어야 하오. 종문의 제자라면 모를까? 구주에서 백 세 이전에 ‘연허’에 도달한 일반인은 없었소.”
그건 장천세의 말이 맞았다.
무인들이 기를 쓰고 종문 제자가 되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일반인은 ‘연허’에 도달한 뒤로 나이를 이기지 못해 점차 기력이 쇠해졌다.
그에 반해 종문의 제자들은 공법을 익혀 백 세를 청춘이라 했다.
‘연허’에 든 종문 제자들은 수련을 계속해 ‘원영’, ‘독요’, ‘현인’, ‘종사’까지 올라갔다.
‘입문 제자’에서 시작해 ‘현인’에 도달하는 기간이 대략 천 년.
‘현인’에서 ‘종사’가 되기까지는 다시 천 년의 세월로도 부족했다.
그러니 일반 무인의 입장에서 종문 제자는 불로장생으로 가는 길이나 다름없었다.
“나를 뭐라고 생각하든 당신 자유니까 안 말릴게. 그런데 나를 죽이려고 한 건 용서가 안 되네?”
말과 함께 연적하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격공점혈의 수법을 쓴 것이다.
몸이 뻣뻣하게 굳자 장천세는 ‘아차!’ 싶었다.
섬섬초월이 깨졌을 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아났어야 했다.
종문의 제자끼리도 거리낌 없이 살수를 쓰는데, 그게 뭐라고 따졌는지 모르겠다.
“살려 주시오.”
“장난해? 당신도 우리를 죽이려고 했잖아.”
연적하는 장천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팔을 척 걸쳤다.
뒤늦게 공지섭과 조원들이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이마가 깨져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밝았다.
공지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 형제, 아니 소협. 정말 종문의 제자가 아닌 게 맞아요?”
“아니라니까요. 종문이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제자가 돼요?”
그의 말에 공지유와 다른 조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야 지금까지 그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 종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 ‘연허’의 검공은 어떻게 된 거예요? 일반인이 ‘연허’에 도달하려면 백 살은 넘어야 하는데.”
“좋은 스승을 만났어요.”
연적하는 구천현녀를 그렇게 얼버무렸다.
공지유와 조원들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설사 그가 종문의 제자라고 해도 자신들을 죽일 것 같지 않아서다.
공지섭과 조원들은 장천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슬쩍 거리를 벌렸다.
비록 장천세가 제압당했지만 종문의 제자와 얽혀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연적하만 천하태평이었다.
“이제 어쩐다? 죽여? 아니면 점혈한 상태로 그냥 버리고 갈까?”
그러자 장천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살려 주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천태종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소.”
다급해진 장천세는 천태종의 이름까지 걸었다.
죽이는 것과 그냥 점혈한 상태로 버리고 가는 것은 같은 소리였다. 점혈 된 상태에서 야수를 만나면 바로 먹이가 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녹림 출신인 연적하는 약속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나는 약속 같은 거 안 믿어. 그보다는 지금이 중요하지. 당신의 목숨 값에 어울릴 만한 게 있어? 없으면 그냥 가고.”
“나는 이제 입문 단계의 제자라 ‘혼석’이나 ‘영석’ 같은 건 먹고 죽을래도 없소. 오죽하면 ‘영지 선초’를 구해 보겠다고 혼자 다녔겠소?”
“‘혼석’은 뭐고 ‘영석’은 뭐야?”
장천세가 어이없는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자그마치 ‘연허’의 지경에 있는 이가 ‘혼석’과 ‘영석’을 모르다니?
‘아니, 연허가 아니라 일반인도 알고 있는 그걸 왜?’
그런데 맹한 표정을 보니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공지유가 넌지시 한마디 했다.
“연 소협은 정말 모를 거예요. 폐관 수련만 하다 와서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시더라고요.”
그녀는 눈치껏 ‘갇혀 지냈다’를 ‘폐관 수련’을 한 것처럼 바꿔 말했다.
장천세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운을 뗐다.
“천관산맥처럼 영기가 많은 지역에는 ‘영물’이나 ‘신수’가 살고 있소. 영물을 죽이면 종종 ‘혼석’이, 신수를 죽이면 ‘영석’이 생기오. ‘내단’이 단지 육체의 공력을 증진시켜 준다면, ‘혼석’과 ‘영석’은 경지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오.”
“경지?”
“그렇소. 종문에 입문하면 공법을 배우게 되오. 그 공법을 연성하면 ‘연단’, ‘연허’, ‘원영’, ‘독요’, ‘현인’, ‘종사’의 경지에 도달하오. 상위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수련해야 하는데, ‘혼석’과 ‘영석’이 시간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되오.”
“‘혼석’과 ‘영석’이 뭔데 그런 효과를 준다는 거야?”
“우리 종문에서는 그것을 영물과 신수가 쌓은 격(格)이라고 믿고 있소.”
“그럼 너도 나도 영물이나 신수를 사냥하겠네?”
“그렇지도 않소. 천관산맥의 초입에 있는 야수에도 급이 있소. 초, 목, 동, 철, 은, 금의 순이오. ‘동급’부터는 종문 제자라 해도 ‘연허’의 경지라야 사냥이 가능하오. 그런데 ‘영물’과 ‘신수’의 능력은 야수보다 윗길이오. 허면 어느 경지라야 사냥을 할 수 있겠소?”
“아주 높아야겠네?”
“맞소. 영물을 잡으려 해도 최소한 ‘원영’의 경지가 돼야 하오. 신수는 그보다 상위인 ‘독요’의 경지에서나 가능하다 들었소. 물론 어려운 만큼 그 효과도 ‘혼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오.”
“어쨌든 ‘원영’이나 ‘독요’의 경지에서 잡을 수 있다는 말이네?”
연적하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원영’과 ‘독요’가 나오자 장천세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원영’과 ‘독요’의 경지에 든 분들은 ‘영물’과 ‘신수’에 관심이 없으시오. 그렇다 보니 ‘혼석’과 ‘영석’의 값어치는 따질 수가 없소. 솔직히 나는 연단급이지만 지금까지 구경해 본 적도 없소.”
연적하가 장천세를 힐끔 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종문 제자라고 목에 잔뜩 힘을 주더니 지금은 강호 낭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