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16
516회. 무한 경쟁의 전장(戰場)
연적하는 감정적으로 깔끔한 걸 좋아한다.
사실 그건 성격이라기보다 녹림에서의 구질구질한 경험으로 다져진, 삶의 지혜다.
그가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한 곳은 녹림.
녹림의 도적들에게 ‘뒤통수를 치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십 년을 갇혀 지낸 그는 타인과의 교류가 극단적으로 부족했다. 자연히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는다’는 것에 대한 충격이 남달랐다.
살다가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그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면 된다’가 그의 신조였다.
금부진의 태도가 돌변하자 연적하는 불쾌함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야아! 저 늙은이 태세 변환하는 속도 좀 봐. 종문 제자가 아니라니까 바로 눈에서 독기를 뿜어내네? 끝까지 가 보자 이거지?”
그가 노려보자 금부진은 찔끔 놀랐다.
하지만 종문이 아닌 상대 앞에서 계속 저자세로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노부가 이미 사죄를 했는데, 여기서 더 갈 데가 있소?”
“내가 용서를 해야 끝이 나지. 그런데 늙은이 태도를 보니 용서가 안 되네?”
연적하가 벌떡 일어나 금부진의 마혈을 찍은 뒤, 발끝으로 단전을 ‘쿡’ 찍었다.
순간 금부진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은 연적하가 격공점혈의 수법으로 마혈을 풀었다.
“쿨럭!”
금부진이 기침과 함께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탄력 있던 그의 피부는 쭈글쭈글해졌고, 눈빛도 중병을 앓는 것처럼 탁했다.
내공은 물론 원기까지 상실한 모습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제자들의 얼굴이 공포로 얼룩져 갔다.
말라비틀어진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던 금부진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나는 천지문의 장로 금부진이다! 나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어, 별일 없더라고. 내 걱정해 줘서 고마운데, 늙은이나 착하게 살아. 안 그러면 쥐도 새도 모르게 뒤통수를 처맞을 테니까. 그 몸으로 뒤통수 맞으면 병풍 뒤에서 향냄새나 맡게 될걸?”
“차라리 죽여라!”
“늙은이, 그렇게 죽고 싶으면 절벽이나 강으로 가. 칼을 물고 엎어지든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잘 못 죽이는 심약한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망발이야?”
“네놈이 심약하다고? 개소리! 이런 꼴로 어떻게 살라고! 나를 죽여라! 죽이라고…….”
악다구니를 쓰던 금부진이 힘에 부친 듯 헐떡였다.
연적하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공지섭과 조원들에게 말했다.
“세상에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는 거 알죠? 처녀가 시집 안 간다, 장사꾼이 손해 보고 판다, 그리고 늙은이가 죽고 싶다고 한다.”
그러고는 천연덕스럽게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가 다시 먹기 시작하자 공지섭과 조원들도 얼떨결에 동참했다.
공지유도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다.
하지만 맛은 물론, 지금 자기가 뭘 먹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이 사람 뭐지? 잔인한 건가? 관대한 건가?’
일반 문파인지 종문인지 헷갈리는 만큼이나 성정(性情)도 알기 어려웠다.
사죄까지 한 상대의 단전을 무자비하게 부수지만,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금부진은 죽음만도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
천지문의 장로가 하루아침에 저 꼴이 되었으니 살아도 산 게 아닐 게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죽이는 심약한 사람이라고?’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애초에 천지문 같은 거대 문파와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거짓 같은데, 신기하게도 순수한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극과 극.
혼돈이라는 말에 맞는 사람이다.
한편 금부진의 제자들은 연적하가 식사에 집중하자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장승처럼 멍하니 서 있는 스승의 팔을 잡으며 연적하에게 물었다.
“저어, 가도 되겠습니까?”
연적하가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제야 제자들은 중환자처럼 축 늘어진 금부진을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
운문현을 떠난 공지섭 일행은 열흘 만에 조양성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보름쯤 이동했을까?
그들의 눈앞에 건너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물줄기가 나타났다.
“이건 강인가요? 바다인가요?”
연적하가 놀란 눈으로 묻자 공지유가 웃으며 답했다.
“이 강은 조양성에서 가장 큰 ‘무량하(無量河)’예요.”
“조양성에서 가장 크다니, 혹시 다른 성에 이보다 더 큰 강이 있어요?”
“네, 천관산맥이 있는 천문성의 ‘불회하’, 사래성의 ‘백년하’는 ‘무량하’보다 크고 넓어요.”
“물론 수약주에 있는 것들이겠죠?”
“맞아요. 다른 팔주에도 ‘무량하’에 버금가는 강들이 있을 거예요. 어쩌면 더 클지도 모르고요.”
“와! 이 강만 해도 바다처럼 보이는데, 더 클지도 모른다고요? 정말 상상이 안 가네요.”
“훗! 무량하에는 전설이 있어요. 창조신께서 구주를 둘러보았다고 했었잖아요?”
“네.”
“그때 여기서 잠시 실례를 하셨대요.”
“헉! 이게 창조주의 오줌 줄기라는 거예요?”
“전설은 그래요.”
“이거 맑은 물 맞죠?”
“호호! 맞아요. 물고기도 엄청 많이 살아요. 근방의 식당에서 파는 물고기는 다 ‘무량하’에서 잡아 올린 것들이에요.”
“오줌이라고 해서 더러운 물인 줄 알았네요.”
“에이, 그래도 창조신의 오줌인데 더러울 리 있겠어요? 여기서 목욕하면 내세(來世)에 좋은 곳으로 간다고 믿는 사람도 많아요.”
‘내세’라는 말에 연적하는 멈칫했다.
팔황신모 같은 이는 이곳을 불로불사의 세계로 알고 있는데 내세라니?
“이곳에도 내세가 있나요?”
“물론이죠. 사람들이 죽으면 모두 삼천(三天)의 신들에게로 가요. 착한 사람은 광명진천, 보통은 구전범천, 악한 사람은 마하수라천. 그 삼천의 심판을 거쳐 상위의 세계로 옮겨지거나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상위의 세계로 가요?”
“그건 전적으로 삼천의 신에게 달려 있어요.”
“착하다고 좋은 게 아닌가 봐요?”
그러자 공지유가 도리어 반문했다.
“연 소협은 뼛속까지 착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없죠.”
연적하는 망설이지 않았다.
뼛속까지 착한 사람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다.
지금까지 그가 경험한 사람은 모두 적당히 악하고, 적당히 착했다.
“맞아요. 그래서 삼천의 신들은 착함을 기준으로 삼지 않아요.”
“그럼 기준이 뭐예요?”
“후후! 그걸 몰라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무량하’에서 목욕도 하는 거고요. 창조신과 관계된 전설이 있는 곳은 모두 순례자들의 성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상위의 세계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대요?”
“종문 덕분이죠. 종문의 제자가 사문이나 가족들에게 알려 줘서 퍼진 거예요.”
“아! 종문.”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구주의 신비는 모두 종문과 관계된 느낌이다.
문득 ‘종문은 자신들의 세계(왕들의 하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공지유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창조주가 ‘종문’에 ‘하늘로 오르는 문’을 남겨 놓았잖아요. 그걸 보고 아는 거죠. 종사(宗師, 종문의 주인)만 갈 수 있는 상위의 세계가 있음을.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에게도 꿈꿀 자유는 있잖아요. 안 그래요?”
공지유가 연적하를 향해 해맑게 웃어 보였다.
“그렇네요. 그럼 공 소저도 종문의 제자가 되는 게 꿈이겠네요?”
그러자 공지유는 공지섭을 힐끔 쳐다보았다.
대답에 앞서 자격을 잃은 오라비가 신경 쓰이는 눈치다.
이윽고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꿈일 뿐이죠. 연 소협이라면 단번에 종문의 ‘비승과해’를 통과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가 이미 ‘연허’에 이르었으니 종문에서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터였다.
본래 ‘비승과해’의 목적이 재능있는 제자를 받아들이기 위함이니까.
“그 ‘비승과해’라는 건 언제 열리나요?”
“봄요. 삼월이나 사월에 열려요. 종문에서 ‘비승과해’의 초대장을 각 성의 문파에 보내요. 그럼 문파에서 후기지수들을 선발해 종문으로 보내는 식이죠.”
“초대장을 받아야 돼요?”
“초대장은 시기를 알리는 형식에 불과해요. 개인이 날짜를 알고 종문으로 찾아가도 돼요. 종문에서 원하는 건 인재이지 문파의 후기지수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문파에서는 자신들의 제자가 종문에 들어가기를 바라죠. 종문 제자를 배출하면 문파의 위치가 올라가거든요.”
“그런 거로 위치가 올라가요?”
“시비가 일어나면 문파에서 종문에 있는 제자에게 도와 달라고 할 거 아녜요. 그렇게 되면 종문 제자가 있는 쪽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잖아요.”
“양쪽 다 종문 제자를 배출한 상태면요?”
“그때는 어느 종문 제자가 강하냐에 따라 승패가 갈려요. 동문일 경우에는 대화로 타협이 되는데, 종문이 다를 때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요.”
“종문이 다르면 죽여요?”
“일반인보다 종문 간의 경쟁이 더 심하다고 들었어요. 죽여서 ‘영지 선초’나 ‘법기(法器)’를 빼앗는다고 해요.”
“‘영지 선초’는 알겠는데 ‘법기’는 뭐에요? ‘법보(法寶)’ 같은 거예요?”
“네, 맞아요. 예전에는 ‘법보’라고도 불렀다는데 요즘은 ‘법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도 유행을 타나요?”
“훗!”
공지유가 웃는 틈에 정우생이 끼어 들었다.
“유행이 아니라 일관성과 격(格)의 차이를 고려해 그렇게 부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종사가 만든 것을 ‘법기’라 하고, ‘입신(入神)에 든 신’이 만든 것을 ‘신기(神器)’라고 하지요.”
“‘입신에 든 신’이라고요? 종사 위로 더 있어요?”
“‘종사’가 ‘하늘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때부터 ‘입신’이라 합니다. 신격을 얻은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지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분들은 실제로 신입니다.”
“아, 신격.”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건 풍지산에서 팔황신모가 금사를 두고 한 말이었다.
-십전무후를 제물로 강림한 신격(神格)이다. ‘지혜의 신’으로 진명은 ‘우샤스 킨샤사’라고 한다. 제물로 십전무후를 원한 이가 금사다.
정우생이 연적하를 슬쩍 본 후에 말을 이었다.
“여하튼 종문 제자들이 다른 종문 제자의 ‘법기’를 빼앗는 것은 ‘영기’를 취하기 위함입니다. 어지간한 ‘영지 선초’보다 법기에 깃든 ‘영기’가 더 강하니까요.”
“‘법기’를 만들 때 종사의 ‘영기’가 들어가나 봐요?”
“맞습니다. 같은 식으로 ‘신기에는 입신에 든 신의 신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허! 그럼 ‘신격’을 가진 존재들은 자기가 만든 ‘신기’로 싸우겠네요?”
“이치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아직 신들의 싸움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신이 되어서도 싸우다니 진짜 무한 경쟁이네요.”
“그래서 이 세계를 전장(戰場)에 비유하는 ‘현인(賢人)’들도 적지 않습니다.”
“현인요? 현자(賢者)를 말하는 건가요?”
이때까지만 해도 연적하는 ‘현인’을 그저 ‘지혜로운 사람’ 정도로 여겼다.
그러자 정우생이 정색을 했다.
“아니요. ‘현인’은 ‘종사’ 바로 아래의 반선(半仙)들을 말하는 겁니다. 연 소협께서 ‘연허’의 경지가 아닙니까? ‘연허’ 위가 ‘원영’입니다. 그 위가 ‘독요’, 그다음이 ‘현인’이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공지유가 한마디 거들었다.
“‘원영’부터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요. 그걸 바라고 종문 제자가 되려는 사람도 많아요.”
정우생이 말을 이어 나갔다.
“맞습니다. ‘원영’은 삼백 년, 그다음 경지인 ‘독요’는 구백 년, 그다음 경지인 ‘현인’은 천 년을 산다고 합니다.”
‘삼백 년’, ‘구백 년’, ‘천 년’이라는 말에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럼, 종사는요?”
“종사는 이미 신선이라……. 수명을 논하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못 해도 수천 년은 살 테지요.”
공지유가 조금은 들뜬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 너도 나도 종문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거예요. 불로장생은 기본이고, ‘하늘의 문’을 열고 상위 세계로 갈 수 있으니까.”
“허어! 엄청나네요?”
연적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황당함을 넘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어마 무시한 세계에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