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23
523회. 진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원상한은 스물한 살에 비승과해(飛昇過海)를 통해 소요종 입문 제자가 됐다.
종문에 입문하는 제자의 평균 나이가 스물셋임을 생각하면 빠른 편이다.
그는 입문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다 입문 오 년 차에 은하고검 천승학의 제자가 되었다.
‘원영’의 고수인 천승학의 가르침 속에 그가 ‘연허’의 경지를 이루는 데 걸린 시간은 이 년.
입문한 지 칠 년 만에 ‘연허’에 든 그는 소요종에서 천재로 불렸다.
소요종의 후기지수(後起之秀)인 그의 눈에 연적하는 하룻강아지였다.
같은 ‘연허’라도 격이 다름을 보여 주겠다.
원상한의 천동굉지(天動轟地)에는 그런 그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백여 개의 검기가 지면으로 떨어질 때 그는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형제들의 천동굉지는 검기가 오십여 개에 불과한데 자신은 백여 개다.
소요종의 고수들도 중상을 면치 못할 텐데 일반인은 말해 무엇할까.
그랬는데 용의 형상을 한 흙먼지가 소용돌이치며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너무 놀라서 얼떨결에 일파장천(一派長天)으로 맞받아쳤다.
입문하자마자 배운 초급 무공이라 남들 앞에서 잘 보이지 않던 검공이다.
위기의 순간에 그게 튀어나온 것이다.
펑! 펑! 펑!
흙먼지가 터져 나가는 걸 보고 잠깐 안도의 한숨을 돌릴 때였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한 줄기 사나운 바람이 덮쳐 왔다.
정확히는 반투명한 백호(白虎)가 일진광풍을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그 섬뜩한 모습에 원상한은 난생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악!”
그는 비명과 함께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곧이어 백호가 원상한을 집어삼켰다.
콰자자작-.
원상한의 옷가지와 피부가 뜯겨 나갔다.
연적하가 살기를 담지 않았기에 그 정도지 아니면 몸도 찢어졌으리라.
너덜너덜해진 원상한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이게 ‘연허’라고?
그럴 리가 없다.
각기 다른 두 가지 성질의 검기를 어떻게 하나의 검공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양이든, 음이든, 한 번에 하나가 정상이다.
처음의 청룡이 양기(陽氣)였다면 백호는 음기(陰氣)였다.
원상한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너, 너는…… 누구냐?”
“석경장의 장주 연적하라고 했잖아요.”
“…….”
원상한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연무장에서 나왔다.
천승학이 원상한을 유심히 보았다.
중상이라도 입은 줄 알았는데 전신에 피칠갑을 한 것치고는 경상이었다.
연적하가 사정을 봐준 것이리라.
뒤이어 천승학의 시선이 연적하를 향했다.
“확실히 종문에서 나온 무공이 아니구나. 네 나이가 몇이더냐?”
“스물셋요.”
“좋은 나이다. 소요종의 ‘비승과해’가 봄에 열린다는 걸 알고 있겠지?”
“예.”
“너는 소요종에 관심이 있느냐?”
“그건 모르겠네요. 제가 아직 종문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요.”
“너라면 소요종의 제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넘칠 지경이지. 소요종의 ‘비승과해’에 참여할 생각은 있느냐?”
“종문 제자도 좋지만 실은 제가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라서요.”
연적하는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누굴 찾고 있느냐?”
“제 처요.”
‘처를 찾고 있다’는 말에 천승학이 눈을 끔벅였다.
중무의 ‘비승과해’보다 더 중한 일이 설마하니 그런 것일 줄은 몰랐다.
“소요종을 통해 찾는다면 더 빠를 것이다.”
“…….”
연적하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만약 십전무후 남궁연이 수약주에 있다면 소요종을 통하는 게 빠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주에 있다면?
특히나 한산주라면?
소요종 제자 신분으로 한산주에서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현천문의 문주만 봐도 알 수 있다.
한산주에서도 얼마 못 가 천지종의 방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 자신이 소요종의 제자라는 게 밝혀지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결말이었다.
고민에 빠진 연적하를 지켜보던 천승학이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 다른 주에도 가야 한다면 어느 종문에 속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너는 반드시 종문을 선택해야 할 게다.”
“그렇겠죠?”
“그때가 되면 우리 소요종을 우선시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느냐?”
연적하가 천승학을 힐끔 보았다.
그런 약속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냥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예. 만약 그런 날이 오면 소요종을 먼저 생각할게요.”
“그래, 네 말을 믿으마.”
말을 마친 천승학이 품 안에서 오색 빛깔의 막대기 하나를 꺼냈다.
“이것은 ‘천리전송적(千里傳送笛)’이다. 소요종의 도움이 필요할 때 불어라. 근처에 있는 소요종 제자들이 달려가 너를 도울 것이다.”
“예, 감사합니다.”
연적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구주의 살벌한 환경을 생각하면 소요종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다.
연적하가 ‘천리전송적’을 갈무리하자 천승학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원상한이 축 늘어진 어깨로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천승학과 원상한은 한 줄기 바람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현천문 문주 소천우는 두 사람이 사라지자 뻘쭘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자신의 밀고로 소요종의 고수들이 찾아온 터라 그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는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운을 뗐다.
“저어, 연 소협, 아니 연 대협. 오늘의 일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연허’의 고수를 보면 종문에 알리는 게 불문율이라,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건 반만 맞는 말이었다.
오백 년 전 천지종을 몰아낸 뒤로 소요종은 수약주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소요종 내부의 일이다.
일반 문파에서 고수의 출현을 소요종에 알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수약주에 있는 한 한 번은 소요종과 마주쳐야 했다.
“그런데 문주님.”
“예.”
“종문 제자들이 꽤 거칠다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 그렇지도 않네요?”
원상한이야 졌으니 그렇다 쳐도, 천승학이 자신에게 잘 대해 줄 줄은 몰랐다.
“소요종의 고수들이 점잖은 겁니다. 천지종만 해도 무시무시 합니다.”
“종문에 따라 조금씩 다른가 봐요?”
“예, 뭐니 뭐니 해도 그중에 최악은 ‘혈주종’과 ‘광염종’입니다. ‘혈주종’과는 한곳에 있지 말고, ‘광염종’을 보면 달아나라는 말이 있으니까요.”
가만히 듣고 있던 연적하는 문득 천태종의 고수 장천세를 떠올렸다.
“천태종은 어때요?”
“거기 사람들은 천차만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도 있지만 악독한 사람도 많답니다. 천태종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하. 그럼 소요종은요?”
“종문의 규율이 가장 느슨하기로 유명하지요. 오죽하면 이름도 소요종이겠습니까?”
연적하가 피식 웃었다.
소천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소요종과 맞을지도 모르겠다.
***
수미성.
시무현 불우산.
소요종 종단.
종단으로 돌아온 천승학은 곧바로 스승이자 수선당(修仙堂)의 당주인 무종 진인을 찾아갔다.
‘독요’의 경지에 이른 무종 진인이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냐?”
천승학은 스승에게 공손히 예를 올린 후 물었다.
“스승님. 혹시 진선(眞仙)이 속세에 제자를 둔 적이 있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무종 진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선이 제자를?”
“예, 산음현에서 자신의 입으로 그리 말하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런 자를 만났다고?”
“예, 혹시 원상한이라고 기억하십니까?”
“알다마다. 자질이 뛰어나다고 칭찬하던 아이가 아니냐.”
“오늘, 원상한이 자기보다 어린 청년과의 비무에서 대패했습니다.”
“그가 진선의 제자다?”
천승학은 자신이 연적하를 만나게 된 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무공 내력을 확인하기 위해 원상한과 비무를 시켰지요. 단 한 수에 원상한을 격퇴하더군요. 확실히 종문의 검공은 아니었습니다. 스승이 누구냐고 물으니 구천현녀라 했습니다.”
“구천현녀? 정말 구천현녀라고 했느냐?”
“분명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허어! 진선이 속세에 제자를 두었다고? 믿어지지 않는구나.”
“과거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스승님을 찾아왔습니다.”
곰곰 생각하던 무종 진인이 말했다.
“내 기억에는 없다. 허나 그와 비슷한 경우는 알고 있지.”
“무엇입니까?”
“너는 최초의 종사들에게 ‘하늘의 문’을 가르친 존재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창조신이 아닙니까?”
천승학이 스승의 눈치를 살폈다.
창조신을 섬기던 시종들이 훗날 종사가 되었으니 그렇게 답할밖에.
“옳은 대답이 아니다. 창조신으로 알려졌지만, 진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창조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무종 진인이 반문했다.
“범인(凡人)은 하늘에 떠 있는 세 개의 달을 천신으로 믿는다지?”
“…….”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다.
혼란에 빠진 천승학에게 무종 진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창조신인지 진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훗날 종사가 되었다. 종사가 되면 진실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게다.”
“스승님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개인적으로는 진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스승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침묵하던 천승학이 입을 열었다.
“‘입신’에 들어 마침내 ‘천신’이 되면, ‘진선의 세계’로 갈 수 있겠지요?”
“그건 종사에게 물어야지. 나같이 뱀 꼬리도 되지 못한 자가 어찌 알겠느냐?”
천승학의 입가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무려 팔백 년을 수련한 스승조차 종사에 비하면 뱀 꼬리도 못 되는 현실이라니.
“여하튼 진선에게 가르침받은 사람이 있기는 있었군요.”
“그 청년의 이름을 아느냐?”
“연적하입니다. 석경장의 장주라고 하더군요.”
“석경장은 어디에 있고?”
“제 마음속에 있다고 한 걸 보면 실재하는 장소인지, 목표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그를 소요종의 제자로 삼아야 한다. 정말 진선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종사가 될 그릇이야.”
“예, 그럴 작정입니다. ‘다른 종문보다 소요종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약속도 받아 냈습니다. 그에게 ‘천리전송적’도 주었고요.”
“‘천리전송적’? 꽤나 큰 선물을 했구나.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무종 진인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천승학을 보았다.
‘천리전송적’은 단순한 피리가 아니라 기물(奇物)이다.
비록 법기(法器)에는 못 미치지만, 주인에게 위험이 닥치면 스스로 울기까지 하는.
그토록 귀한 물건을 처음 만난 연적하에게 주었다니 보통 일은 아니다.
“처를 찾고 있다 하더군요. 인연이 닿는다면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인연’이라는 말에 힘을 실었다.
사실 수약주라면 모를까?
소요종이 아무리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해도, 다른 주에서 ‘천리전송적’에 응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다.
그 뜻을 간파한 무종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천리전송적’이 간 것도 인연이겠지. 다가오는 봄의 ‘비승과해’가 기대되는구나.”
“스승님께서 소요종의 수련자들에게 잘 좀 말씀해 주십시오. 지나가다 ‘천리전송적’ 소리를 듣거든 바쁘다 외면하지 말고 도우라고.”
순간 무종 진인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허허헛! 무슨 일로 수선당에 왔나 했더니 그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구나. 알겠다. 소요종의 사람들에게 ‘천리전송적’ 소리를 듣거든 달려가라 공지하마.”
천승학이 웃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수선당의 공지가 나가면 ‘천리전송적’이 무시당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