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28
528회. 월악산으로 가는 사람들
사천왕 신당의 사제 양삼태는 고분고분 물러갔다.
눈치를 살피던 유익현이 준비한 건량을 꺼내 연적하와 공지유 앞에 펼쳐 놓았다.
세 사람은 식사하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 갈 무렵 공지유가 슬며시 운을 뗐다.
“연 대협, 오늘은 양 사제가 머리를 숙였지만 이대로 끝내지는 않을 거예요.”
“이대로 안 끝내면요?”
“소요종에 알릴지도 몰라요.”
“그러라고 해요.”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상관없어요.”
“예? 아직 신당과 종문의 관계에 대해서 잘 모르셔서 그러시나 본데…….”
“상관없다니까요.”
순간 공지유는 답답한 마음에 언성을 높였다.
“아니, 왜 상관이 없어요?”
“내가 비록 녹림 출신이지만 지킬 건 지키면서 살아왔어요. 미혼향으로 사람들에게 음탕한 짓을 하는 거, 절대 못 봐요. 종문이 아니라 종문 할아버지가 뒤에 있어도 상관 없어요.”
멍하니 듣고 있던 공지유가 물었다.
“저어, 그런데 녹림이 뭐예요?”
“그건, 그러니까,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녹림’이라고 그래요.”
그는 대충 얼버무렸다.
두 사람에게 자신이 도둑놈이라는 선입견을 심어 주고 싶지 않아서다.
‘뭐든지’라고 했으니까 틀린 설명은 아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공지유와 유익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구주에서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종문 제자들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가 있다니!
하지만 감탄도 잠깐, 이내 두 사람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누군들 마음대로 살고 싶지 않을까.
문제는 종문.
소요종이 나서면 연적하는 물론 현천문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공지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요종에서 연 대협을 찾아올지도 몰라요. 아니, 찾아올 거예요.”
“오면 만나죠. 나도 묻고 싶은 게 있거든요.”
그는 소요종에서 미혼향의 사용을 알면서도 방치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기준에서 그것은 꽤나 불쾌한 일이었다.
멀쩡하던 공지유가 끈적하게 달라붙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연적하가 소요종을 두려워하지 않자 공지유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다음 날.
연적하 일행은 아침 일찍 광욕천왕의 신당을 떠났다. 다행히 양삼태나 광욕천왕과 관계된 인물들이 귀찮게 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정오 무렵, 세 사람은 월악산이 자리한 공화현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돌아다니며 여러 날 지낼 건량과 생필품들을 사 모았다.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은 금방 마을에 알려졌다.
월악산에 마물이 자리를 잡은 뒤로 보기 힘든 일이니 당연하다.
대충 준비가 끝나자 세 사람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연적하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한 사내가 다가왔다.
“실례합시다. 나는 금단문의 이대 제자 구석정이라 하오. 외지인 같은데 어디에서 오셨소?”
금단문은 공화현에서 알아주는 문파라 그의 어깨에 힘이 가득 실렸다.
공지유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유익현이 답했다.
“저희는 산음현의 현천문 제자입니다.”
“아, 현천문! 반갑소. 그런데 세 분은 존성대명이 어찌 되시오?”
구석정이 세 사람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그가 이름을 밝혔는데 소개하지 않는 것은 실례라 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은 경험이 부족한 유익현의 실수였다.
그제야 유익현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서둘러 일행을 소개했다.
“저는 삼대제자 유익현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분은 제 사저 공지유, 저쪽에 계신 분은 현천문의 손님인 연 대협이십니다.”
유익현은 연적하에 이르러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연적하의 무위가 뛰어난 만큼 눈치껏 적정선에서 끊은 것이다.
구석정은 ‘연 대협’이라는 말에 흠칫했다.
외관상 어려 보이는데 현천문 제자가 대협이라고 떠받들다니?
그는 즉시 연적하에게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연 대협, 혹시 소요종에서 나오셨습니까?”
“아니요. 나는 석경장의 장주입니다.”
석경장이라는 말에 구석정의 허리가 반듯하게 펴졌다.
소요종 제자라면 모를까? 같은 일반 무인이라면 머리를 숙일 이유가 없어서다.
“석경장의 연 장주셨구려. 그런데 공화현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그러자 연적하가 구석정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왜요?”
남이야 오든 가든 무슨 상관이라고 묻는지 모르겠다.
그런 연적하의 반감은 구석정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구석정은 묻는 말에 답이 없어 은근 불쾌했지만 억지로 웃었다.
“하하, 다른 뜻은 없으니 긴장하지 마시오. 지난 삼 년간 공화현에 외부 손님이 없었는데, 모처럼 낯선 분들을 보니 반가워서 그러는 거요. 장비를 보니 어디 산에라도 들어가려는 모양인데 맞소?”
뒤늦게 공지유가 나섰다.
“맞아요. 우리는 월악산에 가 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됐나요?”
‘월악산’이라는 말에 식당이 잠잠해졌다.
독안귀마가 자리를 잡고 난 뒤로 입산이 금지된 터라 놀란 것이다.
“월악산에 독안귀마가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알아요.”
“그런데도 가겠다는 거요?”
“네.”
“그와 같은 사실을 현천문의 문주님도 알고 있소?”
“문주님의 허락도 없이 월악산까지 가겠다고 하겠어요?”
공지유가 빤히 바라보자 구석정은 헛기침을 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험, 험.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오. 우리 금단문에서도 하지 못하는 일에 도전하다니. 현천문의 용기가 가상하구려. 그런데 숫자가 너무 적은 게 아니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공지유는 적당히 말을 끊었다.
머쓱한 얼굴로 서 있던 구석정은 자리로 돌아갔다.
구석정이 돌아오자 일대제자 동방유가 가볍게 혀를 찼다.
“쯧쯧! 일행이 더 있는지 확인을 해야지. 월악산을 셋이서 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
“더는 말해 줄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함께 있던 이대제자 정일도가 알은체를 했다.
“세 사람이 맞을 겁니다. 많은 숫자가 가면 오히려 독안귀마에게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숫자를 줄여서 월악산에 들어가려는 게 분명합니다.”
“흐음! 월악산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정면으로 안 되니까 은밀하게 들어갔다가 나오겠다는 거죠. 월악산의 산세는 조양성에서도 알아주지 않습니까? 소란만 피우지 않는다면 독안귀마가 알 수가 없지요.”
구석정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정일도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월악산은 내악(內岳)과 외악(外岳)으로 부를 만큼 산세가 크고 우람하다.
조심하면 독안귀마를 피할 수도 있을 만큼.
동방유가 물었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어떠냐니요?”
구석정이 의아한 얼굴로 동방유를 보았다.
저들의 무모함을 지적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다른 질문인지 알 수 없었다.
“현천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금단문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소리다.”
“헉! 사부님. 설마 월악산에 가자는 말씀이십니까?”
“정일도가 말하지 않았느냐. 소란만 피우지 않는다면 독안귀마가 알 수 없을 거라고.”
“그, 그거야 어디까지나 가정이고요. 사형, 아니라고 말씀드리십쇼.”
그제야 정일도도 불안한지 조심스레 말했다.
“사부님, 구 사제 말대로 가정일 뿐입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쯧!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현천문 제자들이 월악산에 간 일은 곧 공화현에 퍼질 게다. 만약 저들이 성공한다면 사람들이 우리 금단문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제자들이 슬며시 시선을 떨구자 동방유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동안 월악산을 지척에 두고 구경만 한, 우리 금단문이 바보가 되는 게다. 우리가 현천문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어야겠느냐?”
구석정과 정일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문파들이야 월악산과 멀어서 상관없지만 금단문은 다르다.
금단문에서 월악산은 엎드리면 코가 닿을 거리.
현천문이 월악산을 드나들면 금단문은 조롱거리가 될 게다.
“서둘러 먹고 일어나자. 문주님께 재가를 얻은 후에 우리도 월악산으로 가야겠다.”
“우리가 간다고요?”
구석정이 놀란 눈으로 동방유를 보았다.
금단문에서 사람을 보내는 것까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라니?
왜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독안귀마가 있는 월악산에 가야 한단 말인가.
“월악산의 문제를 공론화한 후에 인원을 뽑으면 늦어서 안 된다. 그러니 우리가 나서 줘야지. 혹시 아느냐? 월악산에서 좋은 영지 선초를 구하게 될지.”
일리가 있는 말인지라 구석정은 차마 반대하지 못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금단문에서 회의를 할 동안 현천문 제자들이 하산해 버리면 늦는다.
동방유와 제자들은 서둘러 식사를 마친 뒤 식당을 빠져나갔다.
연적하가 들고 있던 돼지 뒷다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금단문에서도 끼어들려는 모양이네요.”
“예? 정말요?”
공지유가 눈을 크게 뜨고 조금 전까지 금단문 사람들이 앉아 있던 자리를 보았다.
소곤거리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월악산으로 가자는 말이었을 줄이야.
“문주에게 허락을 받겠다고 서둘러 나간 거예요. 월악산에서 가깝다면서요?”
“그렇긴 하죠. 그렇다고 설마?”
“제일 나이가 들어 보이던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현천문이 성공하면 금단문은 바보가 되는 거라고.”
“아, 그렇기는 해요. 금단문에서는 월악산이 보일 정도로 가깝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사람들이 비웃을까 봐 월악산에 가겠다니.”
공지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을 고작 그런 이유로 하겠다니?
유익현이 한마디 했다.
“윗분들은 체면 상하는 걸 싫어하시니까요. 금단문의 문주님도 허락하실 겁니다.”
공지유가 근심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금단문이 움직이면 다른 문파들도 하나 둘 제자들을 보낼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아무도 하지 않으면 모두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시작하면 눈치를 보다가 슬슬 끼어드는 게 인간이다.
“다 자기 팔자소관이지요. 살고 죽는 게 어디 뜻대로 되나요?”
유익현의 말에 공지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는 말이다.
요즘의 자신을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연적하를 만난 이후로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는지 모르겠다.
***
월악산.
집채만 한 백호(白虎) 한 마리가 공도(公道) 가장자리에 어슬렁어슬렁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털에서 은은한 광채가 흐르는 걸 보니 무려 ‘은급(銀級)’의 야수다.
공도에 ‘은급’ 야수가 나타났으니 사람들이 보았다면 기함할 일이다.
상위의 포식자인 백호는 느긋하게 공도를 가로질러 월악산 자락으로 사라졌다.
월악산에 들어선 백호는 산천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야수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배가 차오르자 바위 위에 길게 누웠다.
한참 동안 꾸벅꾸벅 졸던 백호는 입이 찢어질 듯 하품을 했다.
영역 싸움에서 패한 뒤 떠돌았는데 산세가 웅장한 게 꽤나 마음에 든다.
딱히 위험한 야수의 냄새도 없었다.
자신이 살던 곳보다 좋으면 좋았지 부족하지는 않은 거 같다.
백호가 졸린 눈을 끔뻑일 때다.
휘잉-.
계곡에서 불어온 선선한 바람이 바위 주위를 부드럽게 쓸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 속에서 이질적인 냄새가 느껴졌다.
한 번도 맡아 보지 않은 냄새여서 위험한지 아닌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호기심에 백호는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때 허공에서 발굽 하나가 떨어져 내려 백호의 머리를 ‘콱’ 찍어 눌렀다.
“크허엉!”
깜짝 놀란 백호가 포효를 터트리며 발버둥쳤지만 발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푸르르-.
가볍게 투레질을 하던 흑마(黑馬)가 백호의 머리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외눈박이 흑마, 독안귀마는 백호의 머리만 뜯어 먹은 뒤 바람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