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30
530회. 목숨 걸었다는 말을 했다니까
다음 날.
이른 아침 공지유는 눈을 뜨자마자 금단문 사람들이 머물던 자리를 보았다.
언제 갔는지 텅 비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넓은 야영지가 더 휑한 느낌이다.
우두커니 금단문의 자리를 보고 있는 그녀에게 유익현이 말했다.
“새벽에 갔어요.”
“새벽 언제?”
“해가 뜨기도 전에 가더라고요. 오줌이 마려워서 잠깐 깼다가 봤어요.”
“부지런하네.”
그러자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저도 새벽에 얼핏 들었는데 우리를 의식해서 그러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를 의식한다고요?”
공지유가 의아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 위험하다는 월악산에 고작 세 사람이 왔는데 의식할 게 뭐가 있다고?
“우리보다 자기들이 먼저 결과를 내야 한다나?”
“아,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공지유는 안타까웠다.
이전처럼 어느 정도 안전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월악산은 열 번 생각하고 한 번 움직여야 한다.
아니, 설사 충분히 조심해서 움직인다 해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런데 저렇게 서두르다니.
동방유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연적하 일행은 아침을 든든히 먹은 뒤에 조심조심 월악산으로 들어갔다.
“하아!”
연적하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서너 번 산행을 나가면 한 번 발견한다고 하던가.
오전 내내 월악산의 외악(外岳)을 돌아다녔지만 영지 선초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일엽선초’라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과욕이었다.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공지유가 피식 웃었다.
“쉽지 않죠? 처음 산행이시니까 더 힘들게 느껴지실 거예요.”
연적하는 속으로 ‘산행은 많이 했는데요’라고 중얼거렸다.
일반적으로 ‘산행’이 ‘산에 가는 것’이라면, 녹림에서는 ‘산중에서의 노략질’을 뜻한다. 그런 ‘산행’이라면 질리도록 했었다.
녹림의 산채를 생각하던 연적하가 물었다.
“구주에는 산적들이 있나요?”
“있죠.”
“산적들의 연합도 있어요?”
“그런 건 없어요. 애초에 떼거리로 몰려다닐 수가 없거든요. 큰 문제가 된다 싶으면 인근의 문파에서 토벌해 버려서요. 숨을 곳이 없으니까 커질 틈도 없죠.”
“아!”
연적하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강호의 경우 관군이 토벌을 나오면 깊은 산으로 숨어들어 화를 피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야수 때문에 그러지 못하니 토벌 앞에 속수무책이리라.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갑자기 일행의 움직임을 제지했다.
“멈춰요.”
그의 지시에 공지유와 유익현은 몸을 움츠리고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기감을 넓혀 주위를 두 번 세 번 확인한 연적하가 나직이 말했다.
“내가 과민했나 봐요. 뭔가 삼백 장(약 900미터) 밖에서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는데. 아니네요.”
공지유와 유익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점심은 건량으로 때웠다.
요리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자칫 냄새로 독안귀마를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거름 무렵까지 산을 몇 개나 넘었지만 영지 선초는커녕 약초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잡목림 사이의 공지에 쪼그리고 앉아 쉬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어렵다 어려워. 영지 선초를 캐는 건 무인보다 약초꾼들이 훨씬 유리하겠는데?”
그러자 유익현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약초꾼들은 영기가 충만한 산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거든요. ‘초목급’의 야수를 만나면 죽임을 당하니까요.”
“아. 야수가 있구나.”
연적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야수 때문에 그렇게 조심을 하면서도 자꾸만 깜빡한다.
듣고 있던 공지유가 보충 설명을 했다.
“약초꾼들이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월악산 같은 곳에 입산 했다가는 하루를 넘기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약초꾼들이 다니는 산은 따로 있어요.”
“맞아요. 그들이 다니는 산을 ‘잡산(雜山)’이라고 해요. ‘잡산’은 영기가 희박해 야수들도 좋아하지 않거든요. 물론 ‘잡산’에서 드물게 영지 선초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길 가다 벼락을 맞는 것만큼이나 보기 드문 일이죠.”
약초상이 꿈인 유익현은 그런 쪽에 해박했다.
해거름 무렵인지라 일어나자고 재촉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지유가 슬쩍 연적하를 보았다.
“연 대협, 야영지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지금까지 그의 기감으로 ‘초목급’ 야수를 피해 다녔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그에게 주변 감시를 맡길 수는 없었다.
연적하의 생각도 같았다.
“야영지로 가요. 여긴 야수가 너무 많아요. 야행성 야수도 있을 텐데, 위험할 것 같아요.”
‘초목급’ 야수는 별것 아니지만, 어딘가에 있을 독안귀마가 신경 쓰였다.
결국 연적하 일행은 하산을 결정했다.
어차피 외악의 초입에서만 맴돌아서 야영지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렇다 해도 그들이 야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멀리서 불빛을 본 유익현이 말했다.
“사저, 금단문 사람들이 돌아왔나 봐요.”
“그러게. 우리보다 일찍 출발하더니 돌아오는 것도 빠르네.”
유익현이 불을 피우고 솥단지를 걸었다.
물이 끓어오를 즈음, 금단문 제자 구석정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어떻게, 소득이 좀 있소?”
구석정은 탐색하듯 연적하 일행의 얼굴을 살폈다.
솥에 막 요리 재료를 넣으려던 유익현이 잠시 행동을 멈추고 답했다.
“아직 빈손입니다. 금단문은 어떤가요?”
“우리는 ‘초급(草級)’ 야수 두 마리를 잡았네. 그중 하나는 들고 와서 구워 먹었지. 또 죽을 끓이는 걸 보니 야수도 못 잡은 모양이야? 운이 좋은 건가? 나쁜 건가?”
구석정이 애매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야수와 만나지 않았다는 자체만 보면 운이 좋은 거다.
하지만 이 깊은 산에서 사냥도 실패해 죽을 먹어야 한다는 건 좀 아쉽다.
요리에 집중해야 하는 유익현을 대신해 공지유가 슬쩍 끼어들었다.
“우리는 괜히 독안귀마의 신경을 건드릴까 봐 사냥은 하지 않았어요. 그 바람에 연 대협이 고생을 하셨죠.”
구석정이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또 그놈의 ‘대협’ 타령이다.
무위를 확인해 보고 싶지만 현천문도들이 ‘대협’이라니 은근 꺼려진다.
‘대단한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문제는 그가 현천문의 귀빈이라는 사실이다.
‘혹시 영지 선초를 채집하기 위해 영입한 놈인가?’
순간 머리가 뻥 뚫리며 의혹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그렇다면 귀빈이니 대협이니 하는 소리를 들을 만도 했다.
“소저, 고기가 좀 남았는데, 원한다면 드리리다.”
“괜찮아요. 금단문에서 목숨 걸고 잡은 야수를 그냥 얻어먹을 수는 없죠.”
공지유는 그렇게라도 금단문에 경고를 보냈다.
우리는 산짐승도 건드리지 않고 있으니까 그쪽도 조심하라고.
“싫다면 어쩔 수 없고.”
구석정은 현천문의 체면 때문에 사양하는 줄 알고 더는 권하지 않았다.
모닥불 주위를 얼쩡거리던 그는 아무도 말을 걸어 주지 않자 금단문의 자리로 돌아갔다.
구석정이 오자 동방유가 물었다.
“얻은 게 있다더냐?”
“허탕이랍니다.”
“그렇구나. 하기야 영지 선초가 쉽게 구해지는 물건이 아니지.”
“연적하라는 청년 말입니다.”
“응? 그가 왜?”
“약초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현천문에서 평범한 사람에게 제자들을 딸려 보냈겠느냐?”
스승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자 구석정은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경험과 연륜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제야 깨달은 자신과 달리 스승은 전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일도가 실실 웃으며 끼어들었다.
“사제, 사실은 현천문 소저에게 관심이 있어서 기웃거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닙니다.”
“에이, 아니긴. 현천문 아가씨와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는 걸 봤구먼.”
“오햅니다. 저 사람들은 아주 영지 선초에 목숨 걸고 있습니다.”
“목숨을?”
“예, 말하는 걸 보니 제법 깊숙이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설마. 독안귀마가 돌아다니고 있는데.”
“정말 목숨 걸었다는 말을 했다니까요.”
구석정은 공지유의 말을 엉뚱하게 받아들였다.
사실 관계를 잘 모르는 동방유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저들이 그 정도의 각오로 월악산에 왔을 줄은 몰랐다. 내일부터 우리도 좀 더 과감하게 행동해야겠구나. 다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거라.”
“예?”
구석정이 불안한 얼굴로 스승을 보았다.
현천문은 야수와의 접촉을 피한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더 과감하게 행동하겠다니?
“네가 조금 전에 현천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우리도 좀 더 세게 나가야지. 그들이 영지 선초를 얻었는데 우리가 빈손이면 입산하지 않은만 못하게 되느니라.”
“……예.”
구석정은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현천문을 경쟁 상대로 여긴다면 그들만큼 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
다음 날 새벽.
금단문 사람들은 동이 트기도 전에 월악산으로 들어갔다.
어제 외악 초입에서 맴돌았다면 오늘은 조금 더 과감하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고자 하면 하늘이 돕는다고 하던가.
외악의 중심부에 도달하자마자 구석정이 들뜬 얼굴로 소리쳤다.
“스승님! ‘일엽선초’입니다!”
동방유와 정일도의 시선이 구석정의 손끝을 따라갔다.
커다란 바위 사이의 양지바른 곳에 부추처럼 생긴 ‘일엽선초’가 보였다.
동방유의 입이 귀에 걸렸다.
무려 삼 년 만에 나온 월악산의 ‘일엽선초’다.
값은 둘째치고, 월악산에서 구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송받으리라.
“장하구나!”
“구 사제! 부럽다! 기어코 한 건 하는구나!”
스승과 사형의 칭찬 속에 구석정은 조심조심 ‘일엽선초’를 파냈다.
한자리에 열두 개나 자라고 있었다.
얼추 금 열두 냥이다.
그가 입을 헤 벌리고 일엽선초를 캘 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근처를 살피던 정일도의 눈에 기이한 게 보였다.
그것은 머리가 사라진 백호의 몸통이었다.
“스승님! 여기 백호의 몸통이 있습니다.”
“백호? 몸통이라고?”
흐뭇한 눈으로 구석정을 지켜보던 동방유는 황급히 정일도의 곁으로 달려갔다.
죽은 지 얼마 안 지난 듯 햇살 아래 은빛 털이 반짝이고 있었다.
동방유는 즉시 검으로 백호의 몸통을 찔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이 튕겨 났다.
순간 동방유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은급’의 백호로구나. 독안귀마가 근처에 있음이야.”
그의 말에 구석정이 캐고 있던 ‘일엽선초’를 팽개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독안귀마가 있다고요?”
정일도가 백호를 가리키며 대신 답했다.
“봐, ‘은급’의 백호야. 스승님이 찔러 봤는데 칼도 안 들어가더라고. 그런 놈을 대가리만 잘라 먹었어. 독안귀마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이런 제길. 큰일 났네요.”
“우리가 너무 안쪽까지 들어온 것 같아. 그냥 어제처럼 외곽에서만 돌았어야 하는데. 욕심이 과했나?”
“아직 외악인데 왜 독안귀마가 있죠? 미치겠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하더니만. 하필 ‘일엽선초’를 캐자마자 이게 무슨 일이래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동방유가 말했다.
“호들갑들 떨지 마라. 백호의 사체를 보니 하루는 지난 것 같다. 지금은 외악이 아니라 내악(內岳)에 있을 게다. 그러니 석정이는 ‘일엽선초’를 마저 캐고, 일도는 주변을 살피거라. ‘일엽선초’를 끝으로 돌아갈 터이니 그런 줄 알고.”
스승의 지시에도 구석정과 정일도는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 정도로 독안귀마에 대한 공포는 컸다.
구석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스승님, 그냥 돌아가면 안 될까요? 이제 고작 세 뿌리를 캤을 뿐입니다. 남은 아홉 뿌리를 캐려면 한 식경(약 30분)은 더 걸릴 텐데요.”
“쯧쯧! 사내 놈의 담이 그리 작아서야. ‘일엽선초’ 세 뿌리를 가져가자고? 백호 사체에 놀라 도망쳤다고 하면 사람들이 비웃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