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31
531회. 자신이 있나 보죠
사실 그들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면 동방유의 말대로 놀림감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일엽선초’는 언제나 열 뿌리 이상의 단위로 거래되었으니까.
훔쳐 온 것도 아니고, ‘일엽선초’ 세 뿌리는 자투리 같은 느낌마저 든다.
구석정이 머뭇거리자 동방유가 눈을 부릅떴다.
“서두르지 않고 뭘 멍하니 서 있느냐? 그럴 시간이면 한 뿌리를 캤겠다.”
스승의 채근에 구석정은 ‘일엽선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정일도는 스승의 명대로 주위를 경계했다.
동방유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뻥 뚫린 백호의 목구멍에 손을 쑥 집어넣고 이리저리 휘저었다.
내단을 찾는 것이다.
백호의 내부를 더듬던 동방유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깨가 피에 젖을 정도로 밀착했지만 손에 와 닿는 특별한 느낌이 없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손을 뽑아야 했다.
손끝부터 어깨까지 백호의 피로 붉게 물들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의 관심은 온통 반짝이는 백호의 가죽에 있었다.
‘은급’ 백호의 가죽은 일반인들에게 무가지보(無價之寶)인 까닭이다.
백호의 혈향이 주변에 퍼져 나갔다.
코끝으로 진한 피 냄새가 밀려오자 정일도는 뒤를 힐끔거렸다.
‘저러면 안 될 것 같은데…….’
피 냄새야 나든 말든 스승은 백호 가죽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피부터 좀 닦으시라고 해야 하나.’
시간이 지나도 피 냄새가 사라지지 않자 정일도는 스승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승님, 피 냄새가 좀 심한데 괜찮겠습니까?”
“괜찮고말고. 월악산이 얼마나 넓은데 피 냄새를 걱정하고 있느냐? 외악에서도 산 하나만 넘어가면 맡지 못할 게다. 하물며 내악에서야. ‘초목급’ 야수는 오히려 마물의 냄새 때문에 다가오지도 못하니 일석이조니라.”
“아……. 그런가요.”
정일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산행 경험이 많은 스승의 말이니 아마도 옳을 것이다.
그가 막 시선을 정면의 숲으로 돌릴 때다.
푸륵-.
어디선가 가벼운 투레질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는 전신에서 소름이 오싹 돋았다.
“스, 스승님, 투레질 소리가 들립니다.”
백호 가죽에 매달려 용을 쓰던 동방유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투레질이라고?
오늘날 월악산에서 투레질 소리는 곧 독안귀마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는 한달음에 정일도의 곁으로 달려갔다.
“어느 방향이더냐?”
정일도가 떨리는 손으로 측면의 숲을 가리켰다.
‘일엽선초’를 캐던 구석정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스승의 옆으로 다가왔다.
세 사람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이윽고 크고 분명한 투레질 소리가 들려왔다.
푸르륵-.
뒤이어 우지끈뚝딱하며 나무 부러 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동방유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오십 장(약 15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뭔가가 나무를 수수깡처럼 꺾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무를 부수며 다가오는 속도가 어지간한 고수들의 경신술보다 빨랐다.
“독안귀마다!”
말과 함께 동방유는 반대 방향으로 치달렸다.
그의 뒤로 정일도와 구석정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절간처럼 고요하던 월악산에 쉬지 않고 폭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나무는 뒤쪽에서만 부러지지 않았다.
동서남북 시시각각 바뀌어 그럴 때마다 동방유는 방향을 틀어야 했다.
어딘지 의심스러웠지만 동방유와 제자들은 그런 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들은 무작정 나무가 부러지는 방향의 반대편으로만 달려갔다.
그렇게 동방유와 제자들은 조금씩 외악의 중심부에서 벗어났다.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고 나가던 연적하가 멈춰 섰다.
보통 때와 달리 그는 귀를 쫑긋 세우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던 공지유가 슬쩍 물었다.
“왜요?”
“멀리서 소리가 들려서요.”
“무슨 소리요?”
“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요.”
“월악산에서 들리는 거 맞아요?”
공지유는 반신반의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벌목지라면 모를까? 그가 말한 내용들은 월악산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점점 우리 쪽으로 오고 있네요. 무슨 일이지?”
연적하의 말에 공지유와 유익현은 눈까지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나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만 어쩌다 들릴 뿐이었다.
공지유와 유익현은 다시 눈을 떴다.
굳은 얼굴로 맞은편 산봉우리를 응시하고 있던 연적하가 물었다.
“독안귀마는 머리가 좋은가요?”
공지유가 답했다.
“그럼요. 저도 못 봤지만 신수(神獸)들은 사람보다 똑똑하대요. 독안귀마도 과거에는 신수였다니까 그럴 거예요.”
“곤란하게 됐네요. 아무래도 독안귀마가 금단문 사람들을 우리 쪽으로 몰아오는 것 같아요.”
“예에?”
공지유와 유익현이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 연적하를 보았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적하가 계속해서 말했다.
“투레질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독안귀마 맞네요. 우리 쪽으로 금단문 사람들을 몰고 있어요. 가요!”
말과 함께 연적하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공지유와 유익현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그렇게 반각(약 7분)쯤 달렸을까?
돌연 연적하가 달리던 방향의 앞쪽에 있던 나무들이 ‘쾅! 쾅!’ 소리와 함께 부러져 나갔다.
깜짝 놀란 연적하가 멈춰 서자 숲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제야 공지유와 유익현은 연적하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연 대협, 다른 쪽으로 달아나야 하지 않아요?”
“소용없어요. 너무 빠르네요.”
“그, 그래도 움직이는 게…….”
“경고를 한 거예요. 금단문 사람들을 몰아올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고.”
“겨, 경고요?”
공지유는 연적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독안귀마가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우리가 가고 있던 방향의 나무를 밟아 놨잖아요. 조금만 더 갔으면 금단문 사람들보다 우리가 먼저 독안귀마와 만났을 거예요.”
그러자 유익현이 물었다.
“독안귀마는 왜 그런 짓을 할까요?”
“글쎄요. 사람들을 가지고 놀 만큼 자신이 있나 보죠.”
연적하의 말에 유익현과 공지유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구주에서 타락한 마물보다 더 끔찍한 공포도 없다.
마천의 마귀가 무섭다지만 놈들은 종문 고수들이 알아서 척결해 준다.
그러나 신수에서 타락한 마물은 종문 고수에게도 버거운 상대였다.
신수는 사람으로 치면 신격(神格)을 얻은 존재.
신격은 인간과 야수를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그래서 ‘종사’나 ‘현인’이 아니면 그들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한다.
소요종에서 월악산의 독안귀마를 방치해 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반선(半仙)이라 불리는 ‘원영’의 고수에게 ‘법기’가 있다면 퇴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영’의 ‘반선’들은 속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하루빨리 ‘독요’의 경지에 올라 ‘인선(人仙)’이 되는 것만 생각했다.
심지어 속세에 관여하는 것을 ‘입마(入魔)’로 여기는 ‘반선’도 많았다.
그러니 ‘법기를 지닌 반선’이 우연히 월악산을 지나다 마주쳤다면 모를까?
월악산의 독안귀마가 죽을 일은 없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물어뜯던 유익현이 공지유에게 말했다.
“사저, 우린 다 죽겠죠?”
“거의 그렇겠지?”
공지유의 얼굴에 자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문주나 연적하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월악산에 독안귀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따라왔으니 자신의 잘못이다.
그의 무위에 혹해서 잠시 독안귀마의 공포를 잊었다.
단 한 번이라도 그의 약한 모습을 보았다면 여기까지 따라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천관산맥에서 종문 제자를 만났을 때부터 곡수현의 천년호리(千年狐狸)까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싸움에서 그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래서 독안귀마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월악산까지 동행했다.
그라면 무슨 수를 내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도 역시 인간.
신격을 가진 존재 앞에서 무력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다?
무심코 연적하를 보던 공지유가 눈을 깜빡였다.
절망에 빠져 있어야 할 그의 얼굴은, 믿을 수 없게도 평소처럼 무덤덤했다.
정확히는 광욕천왕의 신당에서 자신을 밀어내던 바로 그 표정이다.
절망 속에서 희망의 싹이 텄다.
“연 대협, 혹시 독안귀마를 상대할 방도가 있으신가요?”
그녀는 연적하에게 ‘법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워낙 도깨비 같은 사람이라 ‘법기’ 하나쯤 가지고 있다 해도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곧 허물어졌다.
“없는데요?”
“법기 같은 거 없으세요?”
“네.”
공지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니! 법기도 없으신 분이 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냐고요!’
이 순간만큼은 독안귀마에 대한 공포보다 그를 향한 답답한 마음이 더 컸다.
“하아! 연 대협.”
“왜요?”
“어떻게 좀 해 봐요.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
연적하는 그녀의 기대와 바람을 알지만 침묵했다.
신수니 마물이니 하는 것들은 아직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몸으로 직접 부딪쳐 볼 때까지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독안귀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생각이세요? 우리를 옆구리에 끼고 달아나면 되잖아요. 목숨이 붙어 있는데 왜 포기하시냐고요.”
유익현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습니다. 연 대협, 저희를 데리고 달아나 주세요.”
두 사람의 애절한 호소에 연적하가 답했다.
“소용없어요. 내가 독안귀마의 속도를 얕잡아 봤어요. 놈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빨랐어요. 나 혼자라면 모를까? 두 사람을 데리고 달아날 수는 없어요.”
“…….”
사형선고와도 같은 그의 말에 공지유와 유익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공지유가 그를 힐끔 보았다.
대책 없는 그에게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와중에 혼자 달아나지 않아 고마웠다.
그때다.
멀리서 ‘쿵! 쿵! 쿵!’ 하고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땀에 흠뻑 젖은 금단문 사람들이 숲에서 튀어나왔다.
“헉! 헉! 헉!”
동방유와 두 제자는 어깨를 들썩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뒤늦게 연적하 일행을 발견한 동방유의 눈이 번득였다.
새로운 먹잇감이 나타났으니 어쩌면 독안귀마의 집요한 추격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
그는 현천문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달아나시오! 독안귀마가 오고 있소!”
그런데 현천문 사람들 반응이 어째 이상하다.
월악산의 마물인 독안귀마의 이름을 듣고도 달아나지 않는다?
‘흥!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아니,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저들이 독안귀마에게 잡아먹히는 동안 더 멀리 달아날 수 있을 테니까.
동방유가 마지막 공력까지 쥐어짜 속도를 높일 때다.
돌연 사방에서 광풍이 몰아치더니 주위의 나무가 일제히 터져 나갔다.
콰콰콰쾅!
삽시간에 빽빽한 잡목림 한가운데 공터가 만들어졌다.
달려 나가던 동방유와 정일도, 구석정은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곧이어 숲에서 칠흑처럼 시커먼 말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외눈박이의 흑마, 독안귀마였다.
독안귀마의 등장과 함께 태산과 같은 암경이 장내를 찍어 눌렀다.
“크윽!”
“악!”
연적하를 제외한 전원이 짧은 비명과 함께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상상을 초월한 거력에 관절이 꺾인 것이다.
마치 독안귀마에게 인간들이 복종하는 듯한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독안귀마의 외눈이 인간 중에 유일하게 서 있는 연적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