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35
535회. 너는 돈 없이 살 수 있어?
사흘이 지나자 날씨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야영지가 서리에 뒤덮였고, 낮에도 입김이 보일 정도로 추웠다.
노점상들이 마을에서 가져와 파는 생필품의 값은 무려 세 배까지 뛰었다.
이제는 무인들도 물건값으로 불평불만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보다는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영지 선초를 캐려고 집중했다.
해거름 무렵.
산 정상에 올랐던 연적하가 일행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이만 내려가죠.”
“네.”
대답하는 공지유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무려 보름 동안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게 정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외악(外岳)이 익숙해진 연적하가 선두에 섰다.
정신적으로 힘들고 지쳐서인지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중간쯤 내려갔을까?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던 연적하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아니, 외악에 영지 선초가 있기는 해요?”
물론 그냥 하는 소리다.
밤이면 ‘일엽선초’를 채취한 무인들의 떠드는 소리가 야영지에 울려퍼졌으니까.
가장 어린 유익현이 눈치 없게 답했다.
“어제도 인덕현에서 온 정무문에서 ‘일엽선초’를 캤으니까 있기는 할 겁니다.”
공유지는 그런 유익현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영지 선초를 구한 문파들이 밤마다 자축을 하는데 그걸 누가 모른다고.
‘일엽선초’처럼 하품(下品)의 영지 선초를 구하면 떠들썩하게 자신들의 행운을 자랑한다.
사람들이 쉬쉬하는 건 상품(上品)이다.
상품은 다른 문파들의 탐심을 자극하기에 모두가 극도로 조심했다.
“그런데 왜 우리 눈에는 안 보이냐고요!”
연적하의 탄식에 유익현은 슬그머니 노을이 비끼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한참을 투덜거리던 연적하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열 걸음쯤 앞서 걸었을까?
후미에서 뒤따르던 유익현은 무심코 연적하가 쉬던 바위 뒤쪽을 보았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냥 어쩌다 시선이 그리로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바위 아래 오목한 곳에 날렵하게 생긴 풀잎이 보인다?
‘부추인가?’
약초학에 밝은 유익현조차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산길에서 가까운 바위인지라 사람들이 쉬었다가 가기 딱 좋은 위치였다.
조금 전에 연적하는 저 바위 위에 앉아서 ‘그런데 왜 우리 눈에는 안 보이냐고요!’라며 탄식까지 했다.
그 정도로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위치이니 영지 선초일 리가 없다.
‘부추’를 떠올렸는데 주책맞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유익현은 재빨리 바위 아래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부추보다 짧은데, 줄기 중심에 황금색 점이 두 줄로 박혀 있었다.
‘일엽선초’였다.
순간 유익현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외쳤다.
“‘일엽선초’다아아아!”
그 소리에 저만큼 앞서 내려갔던 연적하와 공지유가 바람처럼 달려왔다.
서둘러 한 뿌리를 캐낸 유익현이 연적하와 공지유 앞에 내보였다.
그걸 본 공지유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머! 정말 ‘일엽선초’네?”
공지유는 팔짝팔짝 뛰고 싶을 만큼 기뻤지만 그러지 못했다.
연적하의 눈치가 보여서다.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하필 그가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바위 아래에서 발견될 게 뭐란 말인가.
약속대로라면 유익현이 발견한 것은 현천문의 것이다.
그러니 사제의 행운을 마냥 축하할 수만은 없었다.
연적하는 속이 쓰리다 못해 아팠지만 애써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축하해요.”
뒤늦게 감정을 추스른 유익현은 머쓱한 얼굴로 연적하를 올려다보았다.
“저어, 이거 그냥 연 대협께서 발견한 것으로 해도 괜찮은데…….”
어차피 그의 입장에서는 현천문에 바치나 연적하에게 주나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언법(言法)을 수행하는 연적하에게 약속은 천금보다 중요했다.
“약속했으니 그럴 수는 없죠.”
연적하는 근처의 나무 둥치에 앉아 그가 ‘일엽선초’를 다 캘 때까지 기다렸다.
유익현이 채취한 ‘일엽선초’는 열두 뿌리.
그는 담담한 척했지만 그게 오히려 눈에 더 띄어서 연적하를 슬프게 했다.
그날 저녁.
연적하 일행은 일찌감치 잡탕죽을 끓여 먹고 쉬었다.
보름 만에 유익현이 ‘일엽선초’를 캤음에도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공지유는 마음이 불편했다.
약초학에 밝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주지 못하니 영 면목이 없었다.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지던 연적하가 말했다.
“외악은 오늘로 끝낼게요. 내일은 저 혼자 설산으로 가 보려고요.”
“…….”
공지유와 유익현은 올 게 왔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진 걸 생각하면 반대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
공지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제가 함께 가지 않아도 되겠어요?”
“네, 괜찮아요.”
“예…….”
공지유는 월악산에서 조금의 도움도 되어 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하다못해 오늘 ‘일엽선초’만 해도 그렇다.
자신이 먼저 발견했더라면, 그의 소유가 될 수도 있었다.
그걸 놓친 것은 자신의 실수였다.
초보자인 그와 달리 자신은 스쳐가듯 보기만 했어도 알았을 것이다.
‘하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탄식하던 공지유는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지척에 있는 ‘일엽선초’도 못 알아본 그가 설산에서 ‘천년설연화’를 발견할 수 있을까?
“왜요?”
연적하의 물음에 공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독안귀마가 걱정이 돼서요.”
“괜찮아요. 이상한 수법을 쓰기는 하지만 뭐, 그걸로 나를 어쩌지는 못해요.”
“저희는 이곳에서 연 대협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릴게요.”
“그래 주면 고맙죠.”
길눈이 어두운 연적하는 사양하지 않았다.
솔직히 혼자서 산음현에 있는 현천문까지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고산문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산행 준비를 마치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밤 연적하가 설산에 가겠다고 한 말을 들어서다.
백설헌이 조금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스승님, 이제 곧 겨울인데 좀 늦은 거 아닌가요?”
내악(岳)에서 독안귀마를 쫓아냈다고 해도 어차피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월악산에 있을 수 있는 날은 고작 하루 이틀 정도.
지금에서야 내악에 들어가겠다는 연적하의 속셈을 도무지 모르겠다.
“상관없다. 우리가 취할 것은 독안귀마를 쫓아냈다는 명성이니까. 영지 선초를 구하는 일은 내년 봄에 다시 도전해도 된다.”
벌써 철수하는 문파들이 나오고 있었다.
하루 이틀 사이에 영지선초를 구할 가능성은 없으니 올해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곽초성은 연적하가 왜 이런 끝물에 내악으로 가는지가 더 궁금했다.
‘사라진 독안귀마와 관계가 있거나, 혹은 감추어 둔 뭔가가 있겠지.’
명성이든, 감추어 둔 뭔가든, 연적하 혼자 독식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 신성호가 네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중에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남자, 이학주가 급하게 물었다.
“사형, 무슨 일이야? 저 녀석에게 물으니 가 보면 아신다고만 하던데.”
이학주가 자신을 가리키자 신성호는 실실 웃으며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곽초성은 주변 사람들을 물린 뒤 이학주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고산문이 다 함께 내악으로 갔으면 한다.”
“곧 겨울이 시작되는데 지금 내악으로 가자고요? 그것도 확실치도 않은 일로?”
“어차피 지금까지 영지 선초를 구하지 못했다면 남은 하루 이틀도 마찬가지일 게다. 그보다는 연적하의 뒤를 밟는 게 더 확실하다고 보는데.”
이학주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형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뜬금없이 독안귀마가 어쩌고, 설산이 어쩌고.”
“금단문이 외악에서 독안귀마를 물리친 일로 제자가 얼마나 몰릴 것 같으냐? 못해도 이번 겨울에만 기십 명은 갈 게다. 우리가 내악에서 독안귀마를 쫓아냈다면? 못해도 백여 명은 올 게다. 영지 선초를 캔 것과 비슷한 돈이 굴러 들어온다는 말이다.”
그제야 이학주는 솔깃한 얼굴을 했다.
“금단문은 어쩌고요? 그게 사실이라면 금단문에서도 노리고 있을 텐데.”
“지난 며칠간 연적하와 금단문을 지켜봤다. 왕래도 하지 않는 걸 보니 결별을 한 눈치야. 금단문에서는 어차피 외악에서 재미를 보았으니 미련이 없겠지.”
“그러니 내악은 연적하와 손잡고 우리 고산문에서 해결한 것으로 하자?”
“내악에서 연적하를 잡아 독안귀마의 일을 추궁하면 된다. 만약 금단문이 떨어져 나갔다면 그도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할 게다.”
“그놈이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어도 손해 볼 일은 없겠네요. 다른 이들보다 빨리 내악에 들어가서 영지 선초를 찾는다 생각하면 되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다.”
“흠!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이학주는 마음을 정했다.
연적하가 내악에 들어간다면, 내악에도 독안귀마가 없는 게 분명하다.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제 발로 독안귀마의 영역에 뛰어든단 말인가!
연적하 일행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움직였다.
지리에 어두운 연적하를 위해 공지유와 유익현이 내악 입구까지 동행했다.
“연 대협, 저 산을 넘어가면 우측으로 봉우리가 하얀 산이 보일 거예요. 그게 설산이에요. 설산까지 두 시진(4시간) 정도 걸리니까 서두르셔야 할 거예요.”
“예, 예.”
길눈이 어두운 연적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나마 산 하나만 넘으면 설산이 보인다니 다행이다.
만약 찾아가는 설명이 조금만 더 길었어도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럼 다녀오세요. 저희는 전처럼 외악에서 채집을 하다가 돌아갈게요.”
“연 대협,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유익현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얼마나 답답하고 급했으면 설산까지 뒤져 볼 생각을 할까!
그런 그의 앞에서 ‘일엽선초’를 찾았다고 소리소리 질렀으니…….
연적하는 작별 인사를 하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멀어져 가는 연적하의 뒷모습을 보며 유익현이 물었다.
“그런데 사저, 연 대협은 왜 그렇게 영지 선초에 목을 매는 거예요? 무공도 그렇게 뛰어나신 분이.”
“돈이 필요하거든. 아주 많이.”
공지유는 씁쓸한 얼굴로 돌아섰다.
차마 처를 찾기 위해 돈을 마련하고 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왜요?”
“왜는, 너는 돈 없이 살 수 있어?”
“아, 아뇨.”
“그런 거야.”
“그래도 연 대협의 위치쯤 되면 돈이 많은 게 정상 아닌가요?”
“하아! 그러게. 연 대협은 왜 그렇게 돈이 없는 걸까. 나도 궁금하다.”
공지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못해 눈물이 나려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을 두고, 그의 처는 왜 집을 나갔을까?
‘아니 집 나간 사람을 왜 저렇게 찾아다니는 건데?’
자신이라면 절대 저런 남자를 두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걷는 그녀를 향해 일단의 무리가 달려왔다.
고산문의 사람들이다.
뒤늦게 곽초성을 알아본 공지유가 멈칫했다.
하지만 고산문의 일곱 고수는 바람처럼 쌩하니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끔뻑거리고 있는 공지유에게 유익현이 물었다.
“사저, 고산문 사람들이 왜 내악으로 들어가는 거죠?”
“내가 묻고 싶다.”
공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연적하의 과거만큼이나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독안귀마가 버티고 있는 내악으로 저렇듯 씩씩하게 달려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