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39
539회. 그런데 괜찮겠어?
연적하는 조금 전까지 자신을 잡아 먹으려 안달하던 독안귀마를 유심히 보았다.
‘무슨 마물의 눈빛이…….’
세상사에 달관한 듯 무사무심(無事無心) 한 눈은 칠파일문 장문인들보다 더 그윽했다.
“이봐. 내력을 알려 달라는 건 그냥 기원만 밝히면 된다는 거지?”
-그러하다.
너무도 간단한 제안에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작 기원을 아는 것으로 뭘 할 수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어렵지 않아. 하지만 내 대답을 듣고 네가 달아날 수도 있잖아? 그러니 영지 선초부터 확인하자고. 내 눈으로 영지 선초를 본 후에 기원을 알려 줄게, 어때?”
연적하가 조마조마한 눈으로 독안귀마를 보았다.
사실 자신이 주기로 한 것은 영지 선초에 비하면 너무도 빈약했다. 그래서 이 기울어진 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자신이 없었다.
-좋다. 나에 대한 인간의 편견을 알고 있다. 영지 선초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
의외로 독안귀마는 선선히 받아들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독안귀마는 설산의 반대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연적하는 급히 경신술로 독안귀마를 따라붙었다.
“이봐! 설산으로 가는 게 아니었어?”
-눈사태로 설산의 영지 선초가 묻혔다. 저 눈이 녹기를 기다리겠다는 건가?
말하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걸 보니 책망이다.
연적하는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독안귀마의 뒤를 따라갔다.
산봉우리를 다섯 개나 넘은 독안귀마는 거대한 협곡 앞에서 멈춰 섰다.
협곡은 형형색색의 야수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많던 야수들은 독안귀마가 안으로 들어서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덤처럼 고요해진 협곡을 느긋하게 가로지른 독안귀마는 작은 동굴 앞에서 멈춰 섰다.
이윽고 독안귀마가 가볍게 발을 굴렀다.
투둑-.
그러자 동굴에서 검은 뱀[黑蛇] 한 마리가 나와 동굴 앞에 파리를 틀었다.
다른 야수들은 독안귀마를 보자마자 피했는데 흑사는 그러지 않았다.
오 장(약 15미터)여 길이의 흑사는 오히려 위협적으로 머리를 세웠다.
머리 좌우 측에 돋아난 한 자(약 30센티)나 되는 뿔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흑사의 입에서 쉬지 않고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독안귀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굴 안에 천년지령선과(千年地靈仙果)가 있다. 상품의 영지 선초라 할 수 있지.
“저 뱀은 뭔데?”
-간덩이가 부은 쌍각흑룡이라는 영수(靈獸)다.
감정이 실린 표현에 연적하는 독안귀마를 힐끔 보았다.
다른 야수들과 달리 쌍각흑룡이 자신에게 맞서자 화가 난 모양이다.
“쌍각흑룡이 동굴에 못 들어가게 막고 있는 거 같은데?”
-선과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러는 게다.
“쌍각흑룡의 선과야?”
-천하만물에는 주인이 없다.
“그건 알겠는데, 내 말은 쌍각흑룡에게서 빼앗아야 하는 거냐고?”
-선과가 너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그래야겠지. 이제 네 영기의 내력에 대해 알려 주기를 바란다.
독안귀마의 말에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쭈? 이게 어디서 약을 팔고 있어?’
선과를 보여 주지도 않고 영기의 내력에 대해 가르쳐 달란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쌍각흑룡까지 떠넘기고 말이다.
“이봐. 약속이 틀리잖아. 나는 아직 네가 말한 그 ‘선과’라는 걸 못 봤다고. 저건 그저 머리에 뿔이 난 뱀이잖아. 안 그래?”
-동굴 안에 있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군.
“원래 눈으로 본 것도 못 믿는 게 인간이야. 하물며 보이지도 않는 걸 어떻게 믿겠어?”
-그런가.
연적하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혹시 저 쌍각흑룡이 부담스러워서 그러는 거야? 영수라는 게 꽤나 강한가 보네? 하기야 그러니까 너를 보고도 피하지 않는 거겠지?”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독안귀마가 신경질적으로 투레질을 했다.
푸륵- 푸르륵-.
“영수랑 신수랑 싸우면 누가…….”
-닥쳐라. 그래 봐야 영수는 신수의 먹이에 불과하다.
말이 끝나자마자 독안귀마는 흑풍으로 변해 쌍각흑룡을 향해 날아갔다.
곧이어 마물과 영수 간에 혈전이 벌어졌다.
아니 혈전이라기보다는 독안귀마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흑풍의 공격을 쌍각흑룡은 온몸으로 받아 냈다.
그러다 틈이 생기면 긴 몸으로 흑풍을 휘감으려 했다.
그럴 때마다 흑풍은 번개처럼 움직여 쌍각흑룡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둘의 싸움은 일다경(약 20분)이나 계속됐다.
독안귀마의 악명을 생각하면 쌍각 흑룡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한편 독안귀마는 쌍각흑룡의 휘감기가 신경 쓰여서 마음껏 공세를 퍼붓지 못했다.
사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끝났을 싸움이었다.
독안귀마가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애초에 쌍각흑룡과의 싸움을 꺼려 한 것은 쌍각흑룡이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다.
강적 앞에서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신격을 잃은 상태에서 영수는 버거운 상대였다.
진경(眞景)을 쓰지 않으면 밤새도 록 뛰어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독안귀마는 ‘진경의 문’을 열기로 했다.
흑풍이 사라지면서 독안귀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독안귀마는 한창 싸우다 말고 마치 석화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연적하는 검결지를 관자놀이에 대고 통천안(通天眼)의 주문을 외웠다.
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갔다.
기회를 엿보던 쌍각흑룡이 벼락처럼 달려들어 독안귀마의 몸통을 휘감았다.
휘리리릭-.
오 장여 길이의 쌍각흑룡에 의해 독안귀마의 몸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 상태에서 쌍각흑룡은 독안귀마의 몸을 칭칭 조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갑자기 쌍각흑룡의 강철보다 단단하던 피부가 쫙쫙 갈라져 나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쌍각흑룡은 죽기 살기로 독안귀마를 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죽은 더욱 깊게 갈라져 나가 마침내 피가 철철 흘렀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자 쌍각흑룡은 괴성과 함께 몸을 뒤틀었다.
“캬아아!”
그럴수록 상처만 늘어났다.
땅바닥 위에서 펄떡거리던 쌍각흑룡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상처는 점점 머리로 올라갔다.
이윽고 무엇에 얻어맞은 것처럼 쌍각흑룡의 머리가 거세게 뒤로 튕겼다.
콰직-.
그것으로 끝이었다.
머리가 함몰된 쌍각흑룡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쌍각흑룡의 둘둘 말려있던 몸통에서 독안귀마가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연적하가 통천안을 풀고 힘차게 박수를 쳤다.
짝짝짝-.
“대단해. 정말 영수는 상대도 안 되네? 몰라줘서 미안해. 영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
-선과나 확인해라.
독안귀마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무뚝뚝했다.
“어, 그래. 잠깐만 기다려.”
연적하는 바람처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삼 장(약 9미터)쯤 들어가니 사람 키만 한 아름드리나무가 서 있었다.
나뭇가지에는 세 개의 노란 열매가 맺혀 있는데 그 크기가 어린아이 주먹만 했다.
그는 세 개를 모두 따서 품에 갈무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쌍각흑룡의 머리를 먹고 있던 독안귀마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벌써 선과를 땄군. 너도 약속대로 영기의 내력에 대해 말해라.
“나는 구천현녀님에게 구천여일진경(九天如一眞經)의 공법을 배웠어. 그게 전부야. 됐지?”
-진선(眞仙)을 만났다고?
독안귀마의 눈에서 광망이 번득였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진선을 만났다니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의 영기는 과거 자신이 섬기던 금화 진인의 것과 확실히 달랐다.
정말 종문의 영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
“어, 그런데 진선이 뭐야?”
연적하가 독안귀마를 빤히 보았다.
언젠가 소요종의 고수 천승학도 진선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천승학은 ‘진선’을 ‘참된 신선’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비승과해를 통해 소요종에 들어오면 가르쳐 준다나?
-구천현녀에게 배웠다면서 진선을 모르느냐?
“모를 수도 있지. 대체 진선이 뭔데?”
연적하가 삐딱한 눈으로 독안귀마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미친 말도 천승학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답답한 얼굴로 잠시 하늘을 우러르던 독안귀마가 말했다.
-종문이 지키고 있는 ‘하늘의 문’에 대해서 아느냐?
“들어는 봤어.”
-‘하늘의 문’을 통해 종문 제자들은 더 완전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곳보다 더 좋은 세상?”
-그렇다. 이곳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한 세상이지.
“그런 세상이 있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는 한때 종사(宗師)와 다닌 적이 있다.
“아하, 그때 주워들었구나. 그래서 그게 진선과 무슨 관계인데? 난 진선이 궁금하다고.”
-바로 그 세상에 속한 신선을 진선이라 한다.
“가만, 구천현녀님이 완전한 세상의 신선이라고? 진선은 다른 세상을 오갈 수 있는 거야?”
-…….
독안귀마는 더 이상은 답하지 않았다.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다.
“왜 말을 안 해?”
-진선에 대해 더 알고 싶으냐?
“당연하지.”
-그렇다면 너도 내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할 것이다.
“뭐가 필요한데?”
-나는 잃어버린 신격을 되찾아야 한다. 그 일에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설마 구천현녀님이 가르쳐 준 공법을 원하는 거야? 진선에 대해서는 종문 제자들도 다 알고 있다고. 그건 내가 종문 제자가 되면 들을 수 있어.”
연적하가 눈을 찡그렸다.
‘종문도 알고 있는 정보’와 ‘자신만 아는 공법’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공법을 원하는 게 아니다. 단지 너의 영기를 조금만 나누어 주면 된다.
“영기를 나누어 달라고? 그게 가능해?”
-종문 제자들이 다른 종문 제자들의 영기를 취할 때처럼 하면 된다.
“흡성대법 같은 건가? 그렇게 했다가 영기를 다 뺏기면 어쩌라고?”
-걱정된다면 네가 나에게 주는 것은 어떠냐.
“어떻게?”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네 영기를 조금만 밀어 넣어라. 그러면 된다.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력을 조금 나눠 달라는 소리 같은데, 그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공짜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내 영기를 줄 수는 있어. 하지만 진선에 대한 이야기로는 부족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아까 쌍각흑룡과 싸울 때 쓴 수법,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 줘.”
-진경을 가르쳐 달라고?
“유체이탈처럼 보이던데, 그게 진경이라는 거야?”
-진경은 종사들만 가능하다. 가르쳐 줘도 너는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다른 영지 선초가 있는 곳을 알려 주겠다. 그렇게 하겠느냐?
“아니, 나는 진경을 배우고 싶어.”
연적하는 단칼에 독안귀마의 제안을 거절했다.
왠지 독안귀마가 진경을 영지 선초보다 더 아끼는 것 같아서다.
독안귀마는 그런 연적하가 못마땅한지 연신 투레질을 해 댔다.
푸륵- 푸륵-.
하지만 연적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독안귀마가 어떤 선택을 하건 자신이 손해를 볼 일은 없었다. 양보는 더 절박한 쪽에서 하게 되어 있다.
연적하의 특별한 영기가 필요했던 독안귀마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어차피 자신도 금화 진인을 따라다니다 배운 것이니 아까워 할 것도 없었다.
-약속해라. 진경을 가르쳐 주면 너의 영기를 나누어 주겠다고.
“그럴게.”
-진경이라 함은 이 세상의 진면목을 의미한다…….
독안귀마는 ‘진경’과 ‘진경의 문’을 여는 방법에 대해 가르쳤다.
장시간에 걸친 강론을 끝낸 독안귀마가 연적하에게 머리를 내밀었다.
-내가 아는 것은 다 전했다. 이제 너의 차례다.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는 독안귀마의 양미간 사이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나야 상관없는데…….”
연적하가 말끝을 흐렸다.
문득 과거 심통의 산공(散功)이 떠올라서다.
이 미친 말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타인의 공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남의 공력을 무슨 영지 선초 씹어 먹는 것처럼 여기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