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43
543회. 네가 연적하라는 말종이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던가.
‘종사가 되어 십전무후 남궁연을 찾는다’는 발상은 종사에 대해 수박 겉 핥기식으로 알고 있던 연적하만이 가능한 망상이었다.
연적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물론 진지하게 종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다.
하지만 종문의 제자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공 소저.”
“예?”
“전에 그랬죠? 종문의 고수들은 축지법도 쓴다고. 그거 정말이에요?”
“그럼요. 구주에 흩어져 있는 종문 제자들이 일만 생기면 번개처럼 모였다가 흩어진다잖아요. 그러려면 축지법은 기본이죠. 진짜 고수들은 법기나 영물, 신수들을 타고 날아다닌다고 해요.”
“영물이나 신수를 타고 다닐 수 있어요?”
“아무나 되는 건 아니고요. 독요의 경지부터는 그게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와아! 말보다 훨씬 빠르기는 하겠네요?”
연적하는 문득 흑풍(黑風)으로 변한 독안귀마를 떠올렸다.
그 정도 속도라면 축지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비교도 안 되죠. 주(州) 하나를 지나가는 데 사흘도 안 걸린다는데.”
“그렇게 빨라요?”
연적하는 영물과 신수의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보통 서너 달 걸리는 거리를 고작 사흘에 주파하다니!
“그래서 독요의 경지를 인선(人仙)이라 부르잖아요. 그분들은 사람의 껍데기를 쓴 신선들이에요.”
“인선요?”
“아, 그것도 모르시나 보구나. 원영의 경지부터 따로 부르는 말이 있어요. 원영을 반선(仙)이라고 해요. 아직 신선은 아니라는 뜻이겠죠? 그리고 독요를 인선, 현인을 지선(至仙), 종사를 천선(天仙)이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독요부터 신선의 반열에 든 셈인 거죠.”
“아하!”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들의 기나긴 수명을 생각하면 신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잠시 후 공지유, 유익현이 작별 인사를 건네고 떠나갔다.
방으로 들어간 연적하는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 두고 침상에 드러누웠다.
남궁연을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위험하긴 해도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고, 그녀가 자신보다 지혜로우니 어려움은 없으리라.
다만 그녀와 같은 세상에 있으면서도 함께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남궁연과 석경장의 식솔들을 생각하던 연적하는 뒤늦게 밀려온 피로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
조양성.
양수현.
삼천포.
정오 무렵.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거대한 강물 앞에 이백여 명의 무인들이 도착했다.
원양현에서 출발한 천지문의 고수들이다.
청룡대 대주 유한상이 백호대 대주 남세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포구로 말을 몰아갔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유한상은 남세호와 함께 어디론가 향했다.
두 사람이 멈춰 선 곳은 백마를 탄 미소녀의 앞이었다.
눈처럼 하얀 옷을 입고 백마 위에 앉아 있던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미소녀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바라보자 유한상과 남세호는 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곧이어 유한상이 말했다.
“조 소저, 반 시진(1시간) 후에 무량하를 건너는 배가 출발한다고 합니다. 배에서 쉬시겠습니까? 아니면 이곳에서 잠시 쉬다가 시간에 맞춰 모실까요?”
좌우를 슬쩍 둘러보던 조서하가 입을 열었다.
“포구에서 보는 풍광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이곳만 못하겠지요?”
“예, 배와 건물 들로 막혀 있으니 조금 답답한 감은 있습니다.”
“그럼 여기에 있다가 가는 것으로 하지요.”
“허면 이곳에 천막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유한상이 청룡대에 손짓하자 무인들이 몰려와 부지런히 막사를 세웠다.
그러는 동안 남세호도 백호대의 수하들을 시켜 의자와 탁자 따위를 준비했다.
곧이어 무량하 강변에 하얀 천막이 세워졌다.
백마, 백의, 천막까지 그녀와 관계된 것은 티끌 한 점 없이 하얗기만 했다.
천막 중앙의 탁자에는 찻주전자와 찻잔이 있었는데 그것도 백색이었다.
조서하는 사방 벽을 말아 올린 천막 안에 홀로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무심한 눈으로 무량하를 응시하던 그녀가 찻주전자 옆에 놓인 은종을 가볍게 흔들었다.
딸랑 딸랑-.
소리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유한상과 남세호가 바람처럼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두 사람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조서하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연적하가 석경장의 사람이라고 했나요?”
남세호가 먼저 답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석경장의 장주라고 했다 들었습니다.”
“석경장이 어디에 있는지 아나요?”
“저희도 조사를 했지만 아직 어디에 있는지는 모릅니다. 수약주에 있다고도 하고, 한산주에 있다고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구나. 그가 연허의 경지에 든 것은 확실한가요?”
남세호가 머뭇거릴 때 유한상이 나섰다.
“예, 의기발현(意氣發顯)이 되었다고 하니 연허가 맞을 겁니다.”
“당신들은 의기발현을 본 적이 있나요?”
조서하의 시선은 무량하를 향해 있었다.
그녀의 표정과 말투를 볼 때 ‘의기발현’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유한상과 남세호가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없습니다.”
“질문을 바꿔야겠네요. 천지문의 사람들은 전에 의기발현을 본 적이 있어요?”
남세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조서하의 눈치를 보던 유한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의기발현은 검의(劍意)를 육안으로 볼 수 있게 현실로 끄집어낸 거예요. 종문의 제자가 아니라면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할 절기죠. 검기로 인한 현상을 의기발현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더군요.”
“…….”
유한상과 남세호는 반박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들도 목격자가 아닌 탓에 연적하의 경지를 뭐라 단정하기 어려웠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군요. 당신들이 뭘 안다고. 그래서, 당신들이 원하는 건 뭐죠?”
유한상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금부진 장로와 문도들이 입은 피해의 보상입니다.”
“두 번 말하게 할 거예요?”
그녀의 음성이 냉랭해지자 유한상은 얼른 말을 이었다.
“그들에게 빼앗긴 ‘천년화령적지’를 되찾으려고 합니다.”
“그게 현천문에 있어요?”
“예.”
유한상과 남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영지 선초로 일어난 시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사람을 시켜 은밀히 알아보니 그것은 ‘천년화령적지’였다.
천지문의 대응이 확 바뀐 것은 그때부터다.
“문주님께서는 ‘현천문이 쉬쉬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외부로 반출된 것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천년화령적지’라…….”
조서하가 중얼거리자 유한상과 남세호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괜히 죽 쒀서 개 주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금 문주가 약속한 ‘천년설연화’가 더 좋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요. 금 문주는 ‘천년설연화’도 있으면서 왜 ‘천년화령적지’를 원하는 거죠?”
그러자 남세호가 말했다.
“셋째 공자가 내년 봄의 ‘비승과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셋째 공자의 영기를 채워 주기 위해서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화령의 영기는 오히려 해로울 텐데요?”
“셋째 공자님은 체질적으로 화기를 타고 났습니다.”
“그래도 위험할 텐데, 화기를 다루는 공법이라도 익히고 있나 보죠?”
“예, 셋째 공자님은 화룡심법을 익히셨습니다.”
“화룡심법? 설마 화룡 진인의 심법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조서하가 놀란 눈으로 남세호를 보았다.
화룡 진인은 현인의 경지에 오른 지선으로 소요종의 큰 어른이었다.
속세에 관심이 없는 그분의 심법이 천지문에 전해졌다니?
“맞습니다.”
남세호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번졌다.
천하의 종문 제자가 어린 소녀들처럼 놀라는 걸 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과연! 그렇다면 ‘천년화령적지’가 필요할 만도 하네요. 아직 현천문에 있으면 좋겠네요.”
말과 달리 조서하의 눈빛은 복잡했다.
‘금 문주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는 ‘현천문의 고수를 처리해 주면 천년설연화를 드리겠다’고 했을 뿐이다.
혹시 ‘천년화령적지’를 빼앗길 것 같아서 그랬을까?
하지만 그들이 화룡 진인과 관계있다는 걸 알면 손도 대지 않았을 텐데?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알려지게 될 일을 왜 함구했는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유한상과 남세호가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올렸다.
조서하가 더 말이 없자 두 사람은 조심조심 뒷걸음질 쳐서 천막을 떠났다.
***
무량하를 건넌 조서하 일행은 이틀이 지나자 마침내 산음현에 도착했다.
무려 이백여 명의 중무장한 무인들이 나타나자 산음현은 긴장에 휩싸였다.
거리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노점상도 눈치를 보다가 철수했다.
산음현의 관리들조차 무인들을 피해 다녔다.
이백여 명의 무사들은 현천문 앞에 도착해서야 행진을 멈췄다.
소문을 듣고 걸어 잠갔는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잠시 후 청룡대 무사 하나가 현천문의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쾅쾅쾅!
어차피 좋은 일로 온 게 아닌지라 나무 문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이윽고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곧이어 현천문 문주 소천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천지문의 고수들 앞에 나섰다.
“나는 현천문의 문주인 소천우요. 보아하니 천지문의 형제들 같은데 무슨 일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세호가 호통쳤다.
“무슨 일이라니! 몰라서 묻는 거요! 보름 전에 본문의 사자가 다녀갔을 텐데!”
“물론 사자의 말을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날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말은 무슨! 되지도 않는 변명만 늘어놨다고 하더만!”
“허어! 그래서 배상을 받기 위해 이렇게 몰려왔다는 거요?”
“당신은 본문의 장로와 제자들을 상하게 하고도 그냥 넘어갈 줄 알았소?”
“사자께도 말했지만 먼저 금 장로가…….”
“그 입에서 다시 한번 금 장로의 이름이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소!”
남세호의 협박에 소천우는 부들부들 떨었다.
문주도 아니고 감히 그 아랫사람들이 일문의 문주에게 저런식의 폭언이라니!
보다 못한 총관 만지홍이 나섰다.
“노부는 현천문의 총관인 만지홍이오. 아무리 그래도 우리 문주님에게 너무 말씀이 심하신 것 같소. 예부터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소. 피차간에 허심탄회하게 말해 봅시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그러자 청룡대 대주 유한상이 말 위에서 오연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딱 두 개밖에 없소. 금 장로를 상하게 한 연적하와, 이번 일의 발단이 된 영지 선초를 내놓으시오. 허면 조용히 물러가 드리리다.”
“허, 허어! 연 대협과 영지 선초를 내놓으라는 거요? 노상강도와 같은 소리를 하는 걸 보니 그동안 천지문도 많이 타락했구려.”
“뭐라! 노상강도? 죽고 싶으냐!”
마상에 있던 유한상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바람개비처럼 멋들어지게 허공에서 한 바퀴 돈 그는 만지홍 앞에 떨어져 내렸다.
꽤나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이다.
흠칫 놀란 만지홍이 한 걸음 물러서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새 유한상이 그의 목을 움켜잡고 있었던 것이다.
“윽!”
만지홍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비록 고통에 인상은 찡그렸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목이 졸린 채로 만지홍의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현천문의 일대제자들 속에 연적하가 뾰로통한 얼굴로 서 있었다.
“여, 연 대협…….”
만지홍의 목을 움켜잡고 들어 올리던 유한상이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중년인들 사이에 새파랗게 어린 청년 하나가 보였다.
불만이 뚝뚝 떨어지는 앳된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그가 연적하 같았다.
유한상은 잡고 있던 만지홍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그를 쏘아보았다.
“네가 연적하라는 말종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