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44
544회. 무월당에도 들러 줘요
싸움은 기세다.
청룡대 대주 유한상은 그렇게 배웠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그래서 처음부터 강하게 나갈 생각이었다.
비록 종문 제자인 조서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지만, 그는 본래 야수 같은 남자다.
청룡대는 천지문의 선봉대로 정예 중의 정예.
그 청룡대를 이끌고 아비규환의 전장(戰場)을 헤쳐 온 사람이 그였다.
그러니 연적하를 보자마자 대뜸 욕부터 퍼부은 건 놀랄 일도 아니었다.
“네가 연적하라는 말종이냐?”
…….
한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천지문은 물론 현천문의 고수들까지 연적하의 반응을 보기 위해 숨죽였다.
흔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한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연적하는 유독 무시당하는 걸 싫어한다.
그러니 지금 유한상은 다리를 아주 잘못 뻗었다.
‘말종’ 소리에 그렇지 않아도 불만 가득하던 연적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돌연 그의 신형이 ‘퍽!’ 하고 사라졌다.
곧이어 유한상 뒤에 나타난 연적하는 그의 머리를 힘껏 걷어찼다.
유한상은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말 아래로 나뒹굴었다.
그러나 그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비칠거리며 일어서는 유한상의 목을 어느새 연적하가 거칠게 움켜잡았다.
“캐액!”
“당신! 내가 말종 짓 하는 걸 봤어?”
“컥! 컥!”
숨통이 막힌 유한상은 대답도 못 하고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대답 안 해?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말과 함께 연적하의 손바닥이 유한상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철썩! 철썩!
유한상의 코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에 쌍코피까지 흘리면서도 저항 한번 못 하는 그의 모습에 천지문 사람들은 기가 죽었다.
펄펄 날아다니던 청룡대 대주가 마치 시정잡배처럼 맥없이 얻어터지니 그럴 수밖에.
보다 못한 백호대 대주 남세호가 종문 제자 조서하를 힐끔 보았다.
역시나 조서하의 표정도 좋지는 않았다.
남세호는 빨리 그녀가 나서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유한상이 얻어맞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사실 조서하는 가볍게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놀랍군.’
유한상이 저항하지 못하고 당하는 것은 단지 급습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지금 유한상은 연적하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잠력에 칭칭 감긴 상태였다.
저렇게 되면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다.
연적하의 수법에 조서하는 그를 무시하던 마음을 버려야 했다.
연적하는 유한상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야 그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리고 꺽꺽거리며 밀린 숨을 들이마시는 유한상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말종 짓 하는 거 봤냐고!”
“모, 못 봤습니다!”
유한상은 자신의 편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종문 제자 조서하가 있다는 것도 잊고 큰 소리로 답했다.
“또다시 유언비어 퍼트리면 진짜 죽는다.”
“예!”
유한상은 자신이 청룡대 대주라는 지위도 잊었는지 씩씩하게 답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연적하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모습이었다.
“가 봐.”
그제야 유한상은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천지문도들을 향해 걸어갔다.
천지문도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이어질 조서하의 반격을 기다렸다.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한 조서하는 허공으로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런 뒤 천천히 허공을 걸어 연적하 앞에 내려섰다.
놀라운 허공답보에 연적하는 눈앞의 소녀가 종문 제자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연적하인가요?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군요. 나는 소요종의 제자 조서하예요.”
“석경장의 장주인 연적합니다.”
조서하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소요종의 제자라는 소리를 듣고도 태연하다니 과연 보통은 아니다.
보통은 겁을 집어먹거나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데, 그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하지만 감탄도 잠깐이다.
이내 조서하의 눈에 날이 섰다.
“당신이 금부진 장로와 천지문도들을 상하게 했나요?”
“전에 금씨 성의 뻔뻔한 강도를 때려잡은 적이 있습니다만, 소요종에서는 강도의 뒤도 봐주나 봐요?”
“…….”
연적하의 막말에 조서하보다 그녀와 동행한 천지문 사람들이 더 놀랐다.
지금까지 소요종을 비난한 일반인이 없어서다.
그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조서하는 한동안 눈만 끔뻑거렸다.
저 정도면 대범한 게 아니라 그냥 미친 거다.
감히 소요종을 강도의 뒤나 봐주는 사람들처럼 말하다니?
“돌았나요? 아니면 자신의 재주에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 건가요?”
그러거나 말거나 연적하는 할 말을 했다.
“금부진은 현천문 제자가 목숨 걸고 캔 영지 선초를 빼앗으려고 했어요. 나는 그걸 말리다가 그와 싸우게 됐고요. 그러니 금부진 장로의 일을 앞세워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은 죄다 도둑 아니면 강도인 거죠. 내 말 틀렸나요?”
“나는 당신과 금부진 장로의 사연에 관심이 없어요. 당신은 지금 소요종을 모욕했어요. 뒷감당할 자신이 있으니 그런 식으로 말한 거겠죠?”
조서하가 기운을 끌어 올리자 그녀의 주변으로 광풍이 몰아쳤다.
휘이이이-.
그것은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자신이 있으면 덤비고 아니면 조용히 무릎을 꿇으라는.
물론 순순히 무릎을 꿇는다고 용서 받지는 못할 테지만 말이다.
그런다고 머리를 숙일 연적하가 아니다.
연적하도 구천기를 끌어 올렸다.
휘리리링-.
청량한 소리와 함께 그의 주변은 오히려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조서하는 ‘흥!’ 하고 냉소를 치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상대를 향해 한차례 가볍게 검을 그었다.
소요종의 초급 검공 일파장천(一派長天)이다.
쉬이이익-.
새하얀 검기가 파도처럼 연적하를 향해 밀려갔다.
연적하는 청사를 뽑아 들고 구천세법 일 식 비룡승천으로 맞받아쳤다.
콰아아-.
하얀 검기의 파도를 부수며 파란 용이 조서하를 향해 날아갔다.
너무도 쉽게 일파장천이 깨지자 조서하는 흠칫 놀란 얼굴로 검을 들어 올렸다.
뒤이어 소요종의 중급 검공 천동굉지(天動轟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이 금방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검기가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검기에 맞은 청룡은 허공에서 사그라졌다.
퍼퍼퍼퍽-.
청룡을 부수고 남은 검기가 연적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오히려 연적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일파장천이나 천동굉지는 모두 그가 경험한 검공인지라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연적하는 원상한에게 했던 것처럼 운룡풍호(雲龍風虎)를 펼쳤다.
콰콰콰콰-!
청사의 끝에서 일어난 광풍이 소나기처럼 퍼붓는 검기를 밀쳐 냈다.
조서하가 황망한 눈으로 정면의 하늘을 응시했다.
용형(龍形)의 검기가 자신의 천동굉지를 손쉽게 부수고 있었다.
이윽고 용형의 검기와 천동굉지의 검기가 공멸했을 때다.
막 한숨 돌리려는 순간 사나운 바람이 덮쳐 왔다.
조서하는 바람 속에서 자신을 노리고 달려오는 하얀 호랑이를 보았다.
풍호(風虎)였다.
순간 천중(天中)을 가리키고 있던 그녀의 검이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최근 익힌 상급 검공 낙일귀망(落日晷罔)이었다.
하늘에 자욱하던 먹구름이 그물처럼 퍼지며 풍호 위로 떨어져 내렸다.
검사(劍絲)보다 더 강력한 검기의 그물인 귀망(晷罔)에 풍호가 버둥거리다 소멸했다.
조서하는 검끝을 연적하에게 돌렸다.
하늘에서 다시 한번 귀망이 연적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천라지망처럼 빠져나갈 틈도 없이 촘촘한 그물에 연적하의 온몸이 갇혔다.
멈칫하던 연적하는 구천세법 칠 식 용조할지(龍爪割地)로 귀망을 갈랐다.
촤아악! 최악!
시커멓던 허공에서 비단 찢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하지만 용조할지는 그저 찢기만 했을 뿐, 귀망을 소멸하지는 못했다.
귀망의 잔재가 연적하의 주변으로 떨어져 내리자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으악!”
귀망에 걸린 천지문과 현천문 제자들이 피를 토하며 풀썩풀썩 쓰러졌다.
하지만 조서하는 신경 쓰지 않고 연이어 검을 휘둘렀다.
다시 연적하의 머리 위로 귀망이 펼쳐졌다.
용조할지로 맞받아치려던 연적하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가 청사를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자 불의 수레바퀴가 허공에 나타났다.
구천세법 사식 풍화겁륜(風火劫輪)이다.
화기를 머금은 검풍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귀망을 빨아들였다.
촤라라락-.
풍화겁륜에 빨려 들어간 귀망이 갈려 나갔다.
마침내 하늘에 검은 구름 한쪽 남아 있지 않게 되자 연적하는 풍화겁륜을 조서하에게 던졌다.
화기를 머금은 불의 수레바퀴가 조서하를 깔아뭉갤 듯 굴러갔다.
대경실색한 조서하는 또다시 천동굉지를 펼쳤다.
수백 개의 검기가 풍화겁륜을 강타했지만 풍화겁륜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조서하는 황급히 옆으로 몸을 날려 수레바퀴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그녀가 겨우 자세를 바르게 했을 때다.
그녀의 뒤에 귀신처럼 솟아난 연적하가 한 손으로 그녀의 작은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이봐, 적당히 하지?”
“……설마 나를 죽일 셈인가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겠다는 듯 조서하의 검 끝이 지면으로 축 늘어졌다.
“동문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럴 수는 없지. 그만하겠다면 놓아줄 생각인데 어때?”
순간 조서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동문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보니 내년 봄의 ‘비승과해’를 볼 모양이다.
“그만할게요.”
어차피 자신은 연적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억지로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봤자 추하기만 하니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낫다.
조서하의 말에 연적하는 손을 떼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우두커니 서 있던 조서하는 납검을 한 후에 유한상과 남세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봤죠? 연허 구 성(九成)인 나로서도 그의 상대가 안 되네요. 그는 아직 종문에 입문도 하지 않았는데,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담? 여하튼 난 할 만큼 했으니까 뭐라고 하면 안 돼요. 약속을 못 지켰으니까 그냥 간다고 금 문주에게 전해 줘요.”
“예? 예.”
“……예.”
유한상과 남세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경천동지할 싸움을 보았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조서하는 미련 없이 자신의 백마 위로 몸을 날렸다.
백마의 말고삐를 움켜쥔 그녀가 복잡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연 소협, 오늘의 일은 기억해 두겠어요. 당신의 말대로 동문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불우산에 오르게 되면 무월당에도 들러 줘요.”
불우산에 소요종의 종문이 있고, 무월당은 조서하의 스승이 머무는 곳이다.
그녀는 무월당으로 돌아가 연적하의 방문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답했다.
“시간이 나면요.”
일단 거절은 아니다.
살포시 미소 짓던 조서하는 가볍게 묵례를 한 뒤 말을 몰아 멀어져 갔다.
연적하가 유한상과 남세호를 향해 신형을 돌렸다.
“자아, 미뤄 둔 얘기나 계속해 봅시다. 여기에 왜 왔다고 했죠?”
그러자 남세호가 흠칫 놀란 얼굴로 답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돌아가 문주님께 상황을 잘 설명드리겠습니다. 문주님께서 오늘의 일을 전해 들으면 분명히 송구하다고 하실 겁니다.”
“오해는 무슨 얼어 죽을 오해. 오해할 건덕지도 없구만.”
순진한 연적하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남세호는 낭패한 얼굴을 했다.
적당히 모르는 척해 줘야 물러설 텐데 이건 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
그가 속으로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현천문주 소천우가 나섰다.
“남 대협, 먼 걸음 오셨는데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한시름 놓았습니다. 아무쪼록 금 문주님께도 잘 말씀해 주십시오.”
그제야 남세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천우와 남세호가 웃는 얼굴로 말을 섞자 연적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돌아섰다.
종종 느끼는 바이지만 사람의 얼굴은 참 두꺼운 것 같다.
불편한 속내를 감추고 저렇듯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고 떠드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