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47
547회.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 어디 하나뿐이던가
영천주.
청산성.
낙일현 유명산.
천뢰종 종단.
이른 아침, 종단에서 운영하는 객사(客舍)의 문을 열고 한 노인이 밖으로 나왔다.
염소수염의 그는 구천노도 심통이었다.
그가 천뢰종 종단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옥청 진인의 권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돈이 없어서다.
물론 돈은 옥청 진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심통의 법기(法器)에 관심이 생긴 옥청 진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심통을 곁에 잡아두지 못해 안달이었다.
결국 심통은-연적하가 그랬던 것처럼-돈벌이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온통 하얀 눈에 덮인 유명산을 보던 심통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녹림도들에게도 겨울은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계절이었다.
하물며 이 강추위에 정상적으로 돈을 벌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게다.
마음은 급하지만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산을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침부터 웬 한숨인가?”
불쑥 들려오는 말에 심통은 급히 돌아섰다.
언제 바로 뒤까지 왔는지 옥청 진인이 웃으며 서 있었다.
심통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급히 답했다.
“아, 예, 언제쯤 겨울이 지날까 생각하니 조금 답답해서 말입니다.”
“아, 참, 일행을 찾아야 한다고 했지?”
“예.”
“한산주라고 했나?”
“예, 예.”
심통은 팔황신모의 권유에 따라 한산주부터 가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행이 한산주로 갔을 거라고 했다. 물론 그 일행은 연적하다.
“겨울에는 이동 수단이 없으니 봄에나 가능할 걸세.”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문득 옥청 진인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자네는 끝내 한산주에 가지 못할 걸세.”
“예? 제가 한산주에 못 간다고요?”
심통이 놀란 눈으로 옥청 진인을 보았다.
한산주에 가지 못한다니?
설마 자신을 천뢰종에 잡아 둘 셈일까?
그가 그럴 작정이라면 자신은 꼼짝 없이 천뢰종에 묶이고 말 터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심통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애석하게도 자네의 수명이 거의 다 되었네.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게야.”
“제가 죽는다고요?”
심통은 옥청 진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치고는 너무 표정이 진지했다.
게다가 그가 자신에게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내 나이가 몇인 줄 아는가?”
“백 살은 넘어 보이십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나를 그렇게 젊게 봐 주었다니 고맙군. 내 나이는 칠백서른두 살이네.”
“치, 칠백요?”
심통이 황당한 눈으로 옥청 진인을 훑어 보았다.
백여 살쯤 됨 직한 외모인데 칠백 서른두 살이라니 기가 막혔다.
아니, 그보다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나?
“종문 제자가 되면 비로소 ‘연단’의 길에 들어서지. 연단을 십 성을 이루면 ‘연허’가 된다네. ‘연허’까지는 종문 제자라 해도 보통 인간의 수명과 같아. 백 살까지 살면 천수(天壽)를 누린 셈이지.”
“허면, 그 이상의 경지에 들면 수명이 늘어납니까?”
심통은 문득 팔황신모를 떠올렸다.
불로불사가 꿈인 교주가 ‘왕들의 하늘’에 목을 매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까?
“득도(得道)는 하루아침에 가능한 게 아니야.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애초에 인간의 몸으로 도를 이룬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득도를 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긴 수명이 필요하다네. 그 첫걸음이 ‘원영’이지. ‘원영’의 경지에 들어서면 삼백 살을 살 수 있네.”
“아!”
심통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삼백 살이라니?
그 정도만 살아도 소원이 없겠다.
“하지만 ‘원영’은 구도의 길에서 고작 첫걸음에 불과하다네. 나처럼 ‘독요’의 경지에 들면 구백 년을 살 수 있거든.”
“구, 구백 년요?”
심통은 옥청 진인이 독요의 경지라는 것보다 구백 년을 산다는 말에 더 놀랐다.
“쯧! 고작 구백 년에 놀라서야. ‘독요’의 위가 ‘현인’이라네. ‘현인’이 되면 그 상태에서 천 년의 수명이 더 늘어나네.”
“지금 구백 년에 천년이 더 늘어난다고 하셨습니까?”
“이 사람, ‘종사’의 수명을 들으면 입게 거품을 물겠군. ‘현인’ 위로 ‘종사’가 있는데, ‘종사’가 되면 다시 삼천 년의 수명이 늘어나네. 그 정도는 수련을 해야 도에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지.”
“…….”
심통은 실감이 나지 않는 얼굴로 옥청 진인을 보았다.
삼백 살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데 삼천 년이라니!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 그러나 도란 일조일석(一朝一夕) 간에 깨칠 수 있는 게 아니네. 그건 인간이 제멋대로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해. 하루살이가 대자연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절레절레.
심통은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주워듣기로 공자가 그 비슷한 말을 했다는데 구주에도 그런 인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말이 길어졌네만, ‘독요’에 들면 어지간한 것들은 눈으로 봐서 알 수 있네. 이대로라면 석 달 후에 자네는 죽고 말 걸세.”
“서, 석 달요? 머리칼이 검게 변하고 있는데 석 달밖에 못 산다는 겁니까?”
“드물게 반로환동이 함께 왔지만 정해진 수명을 넘기지는 못하네. ‘연허’의 경지에서 반로환동을 경험하고 죽은 사람이 한둘인지 아는가?”
“그, 그렇군요.”
심통의 어깨가 축 처졌다.
석 달이라니?
연적하를 찾기는커녕, 이대로 유명산에서 죽을 걸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한편으로는 미치도록 오래 살고 싶었다.
그동안 팔황신모를 비웃었는데 이제야 그 심정을 알겠다.
“살고 싶은가?”
순간 심통의 귀가 번쩍 뜨였다.
살고 싶냐고?
당연한 소리를.
“예, 살고 싶습니다. 아니, 살려 주십쇼. 어떻게 하면 더 살 수 있습니까?”
“그건 실로 어려우면서도 쉬운 일이네.”
“어려우면서도 쉽다고요?”
심통이 눈을 끔뻑였다.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 하지 마시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자네가 ‘원영’의 경지에 도달하면 절로 수명이 늘어나니 하는 말일세.”
“아…….”
그제야 심통은 옥청 진인의 말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공염불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어떻게 ‘원영’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신선 어르신, 저 같은 놈도 ‘원영’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까?”
“종문의 제자가 되면 비법을 전수 받게 되네. 자네가 얼추 ‘연허’에 도달했으니 노력하면 ‘원영’도 가능할 걸세. 나는 솔직히 자네가 ‘원영’의 경지에 올라 내 곁에 오래 남았으면 하네.”
그건 사실이었다.
옥청 진인은 ‘심통’과 그의 ‘법기’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풀고 싶었다.
그러려면 심통이 살아 있어야 했다.
“종문의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래 종문에서는 스물다섯 살 이전에 ‘비승과해’를 통과한 사람만을 제자로 받아들인다네. 하지만 꼭 그 길만 있는 건 아니야.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 어디 하나뿐이던가.”
“다른 길이 있습니까?”
“나와 같은 인선(人仙, 독요의 경지)부터는 나이를 불문하고 직접 제자를 거둘 수가 있네. 그렇게 거두어진 제자를 ‘외문 제자’라 하지. ‘비승과해’를 통과하고 들어온 제자와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랄까.”
“아! 그럼 ‘비승과해’를 통과한 제자는 ‘내문 제자’라고 부릅니까?”
심통의 눈이 반짝였다.
강호에서도 그렇게 제자들을 구별해서 받아들이는 문파가 종종 있었다.
“허허,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아듣는 사람이로군. 맞네. ‘외문 제자’보다는 ‘내문 제자’가 더 대접을 받지만, ‘외문 제자’도 종문 제자임에는 틀림이 없네. 자네가 내 제자가 되겠다면 종문의 공법을 가르쳐 주지. 어떤가?”
심통은 잠시 망설였다.
지금까지 연적하를 스승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으면 아무 소용없다. 연적하도 자신의 상황을 알면 이해해 줄 게다.
“예, 신선 어르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허허, 신선 어르신이라니. 나에게 세 번 절하고, 앞으로는 스승님이라 부르거라.”
심통은 그 자리에서 옥청 진인에게 세 번 절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
수약주.
조양성.
산음현 현천문.
눈은 장장 칠 일이나 내렸다.
산과 도시는 온통 흰 눈 속에 파묻혔다.
그래도 거리는 평소처럼 깨끗했다.
사람들이 눈을 맞으면서 쓸어 댄 덕분이다.
물론 골목의 눈을 치운 건 자경단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거리는 정리되었지만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에 아무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다.
연적하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외출을 자제했다.
아침부터 방에서 뒹굴거리던 그는 몸이 근질근질하자 연무장으로 나갔다.
단단하게 다져진 눈 위로 사람들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이 추위에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무기대에서 검 하나를 집어 들고 구천세법과 구천구검을 천천히 펼쳤다.
한 식경(약 30분)쯤 지났을까?
조용하던 현천문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곧이어 상체를 피로 물들인 공지섭이 연무장으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연 대협!”
“예?”
“도와주십쇼! 지유가, 지유가…….”
“공 소저가 왜요?”
“자경단과 함께 적안금저(赤眼金豬)를 상대하다가……. 그만 놈에게 잡혀갔습니다.”
“적안금저요?”
“예, ‘금급(金級)’의 야수입니다. 야수라기보다는 요괴에 가까운 놈이지요. 붉은 눈에 금색으로 빛나는 몸을 가진 돼지인데, 여자를 잡아가곤 합니다.”
“그러니까 금급의 야수가 공 소저를 잡아갔다 이건가요?”
“예, 예…….”
연적하가 확인하듯 묻자 공지섭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금급’ 야수는 연적하의 무위로도 상대하기 어려운 괴물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아온 것은 달리 하소연할 사람이 없어서였다.
월악산에서 마물인 독안귀마를 쫓아냈다는 소문도 한몫했다.
‘흐음…….’
연적하가 인상을 찡그렸다.
예전처럼 구주에 대해 전혀 몰랐다면 앞뒤 없이 나섰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난 두 달여 기간 동안 웬만한 일은 거의 다 배웠다.
‘가만, 금급 야수는 원영의 고수만 상대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물론 마물로 알려진 독안귀마와 싸워 본 적이 있어서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싸움에는 상성이 존재한다.
자신과 독안귀마의 관계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원영의 고수만 상대할 수 있다’고 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요괴 소리까지 나올 정도면…….’
‘금급’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연적하의 대답이 늦어지자 공지섭은 고개를 툭 떨구었다.
그에게 동생을 구해 달라는 말이 얼마나 황당한 요청인지를 알아서다.
“……안 되겠습니까?”
공지섭은 연적하에게 떼쓰듯 매달리지 않았다.
사실 종문 제자도 피해 다니는 야수에게서 동생을 구해 달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요구였다.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가 들고 있던 검을 무기대에 세워 놓고 돌아섰다.
“적안금저는 돼지 아닌가요? 여자를 왜 잡아간답니까?”
공지섭이 이를 악물고 답했다.
“인간의 몸으로 변해 제 욕심을 채우고, 끝내는 잡아먹는다 들었습니다.”
뭐? 욕심을 채우고 잡아먹어?
산 넘어 산이다.
창조신은 왜 이따위 세상을 만들었을까?
연적하는 흉측한 적안금저는 물론 창조신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돼지 새끼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요?”
“동문 밖에 가리산이라고 있습니다. 그리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지섭이 연적하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그때 연적하가 공지섭에게 다가가 그의 허리를 한 손으로 휘감았다.
“내가 길눈이 좀 어두워서요. 가리산까지 길 안내를 좀 부탁할게요.”
공지섭이 ‘예’라고 답하자마자 연적하는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으아아-.”
갑자기 몸이 오 장(약 15미터) 위로 솟구치자 공지섭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