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51
551회. 내가 상남자로 만들어 줄게요
연적하가 ‘소인배 새끼들처럼 뒤에서 욕이나 처하지 말고’라고 한 것은 공지유의 뒷담화를 빗대서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덕행은 그걸 ‘배우고 싶으면 당당하게 앞에서 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무, 무공을 가르쳐 주십쇼!”
순간 연적하가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내가 왜?”
“가르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봐, 혹시 집안 내력에 광증이 있어? 왜 내가 하지도 않은 약속을 들먹여?”
“예? 분명히 자경단에 가입하면 가르쳐 주시겠다고……”
“어이, 어이, 혼자서 막 나가지 마. 내가 정 씨의 부족함을 채워 주겠다고 했지, 언제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했어?”
“가, 같은 소리 아닌가요?”
“같기는 개뿔. 정 씨에게 부족한 건 무공이 아니야. 앞으로 내가 그걸 채워 줄 테니까 부지런히 쓸어 담기나 해.”
“그게 뭡니까?”
연적하는 대답 대신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 하늘이 돕는 건가. 정 씨가 쓸어 담아야 할 게 저기 오고 있는데?”
연적하의 손가락이 뻥 뚫린 공도(公道)를 가리켰다.
잠시 후 공도 끝에 호랑이만 한 크기의 하얀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스스로 상위 포식자임을 알아서 그런지 늑대는 서두르지 않았다.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늑대를 본 정덕행은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순백의 털과 거대한 몸통의 늑대는 예사롭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초목급’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애초에 ‘초목급’은 초식 야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저건 누가 봐도 육식을 하게 생긴 야수다. 정덕행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늑대다! 하얀 늑대가 나타났다!”
그의 외침에 동문을 지키고 있던 관병과 자경단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늑대를 본 자경단 동문 조장 강수성의 입에서 묵직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으음! 무산의 ‘철급(鐵級)’ 야수 ‘무산백랑’인가. 남산현에서 이곳까지 오다니 별일이군.”
그의 말에 관병과 자경단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무산은 산음현에서 삼백 리(약 117km) 정도 떨어진 남산현 북쪽의 산으로, 조양성 중심부를 길게 가로 지른 갈마산맥(羯磨山脈)과 닿아 있어 깊고 험했다.
산세가 그렇다 보니 무산은 온갖 종류의 야수로 들끓었다.
무산백랑은 ‘철급’이지만 떼로 몰려다니는 특성에 상위 야수인 ‘은급’도 피해 다녔다.
‘은급’도 피할 정도니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았다.
그 무산백랑이 산음현까지 오다니?
관병과 자경단원들은 서둘러 공도(公道) 뒤쪽과 좌우의 숲을 살폈다.
혹시라도 다른 무산백랑들이 있는지 찾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다른 무산백랑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산백랑은 동문을 십여 장(약 30미터) 정도 남기고 멈춰 섰다.
마치 동문 앞에서 야수와 인간이 대치한 형국이다.
관병과 자경단은 각자의 병기를 움켜쥐고 무산백랑을 노려보았다.
본래 관병 스물과 자경단 열다섯은 무산백랑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연적하가 있다면 말이 다르다.
관병과 자경단은-연적하의 뒤에서-항전의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크르르르-.”
무산백랑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지금까지 자신과 마주치면 달아나던 인간들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항을 하든 하지 않든 결과는 같다.
인간은 그저 육질이 연한 먹잇감에 불과할 뿐이다.
곧이어 무산백랑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먹잇감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다 삼 장(약 9미터)여 거리에 도달하자, 허공으로 날아오르듯 도약했다.
그때 늘어서 있던 먹잇감 속에서 시퍼런 빛줄기가 뻗어 나왔다.
“크릉!”
단지 먹이인 줄 알았는데 그 속에 자신의 적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무산백랑은 앞발로 빛줄기를 후려쳤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기세 좋게 날아오던 무산백랑의 몸이 지면으로 뚝 떨어졌다.
무산백랑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자신을 공격한 존재를 향해 달려갔다.
“크형! 크헝! 크헝-!”
섬뜩한 소리를 동반한 격한 입질이 시작됐다.
무산백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연적하를 물어뜯으려 했다.
싸우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늑대다.
하지만 그때마다 청사의 강기가 무산백랑의 콧잔등을 후려쳤다.
쾅! 쾅! 콰앙-!
콧잔등에 시뻘건 피가 내비치자 무산백랑은 슬쩍 거리를 벌렸다.
단순한 공격으로 안 되겠다 싶으니 방법을 달리하려는 것이다.
“크르르르-.”
무산백랑이 낮게 몸을 수그리고 연적하의 주위를 맴돌았다.
처음과는 달리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그건 연적하의 싸움을 처음 보는 관병과 자경단원 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공지섭과 공지유 남매만 담담했다.
이미 여러 차례 불가사의한 연적하의 무위를 경험한 탓이다.
일촉즉발의 순간, 돌연 연적하가 왼쪽 손을 들어 올려 까딱이며 말했다.
“정 형, 내 옆으로 나와요.”
자경단원들의 시선이 가장 뒤쪽에 웅크리고 있는 정덕행을 향했다.
정덕행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저요?”
“그래요. 빨리 이쪽으로 와요.”
하지만 정덕행은 더욱 몸을 움츠렸다.
‘철급’ 야수와의 싸움에 미쳤다고 자신이 나선단 말인가!
“안 와?”
연적하의 말이 대번에 짧아졌다.
위기를 느낀 정덕행이 쥐어짜듯 소리쳤다.
“연 대협! 저는 오히려 방해만 될 뿐입니다!”
순간 무산백랑과 대치하고 있던 연적하가 자경단을 향해 돌아섰다.
“정 씨! 지금 내 말 무시하는 거야? 어!”
아까부터 기회를 엿보고 있던 무산백랑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무산백랑이 벼락처럼 연적하를 덮쳤다.
하얀 이빨이 연적하를 물어뜯기 직전, 그는 귀신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사라진 연적하는 정덕행의 옆에 나타났다.
“내가 오라고 했어? 안 했어?”
“저, 저는, 연 대협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닥쳐! 방해가 되든 안 되든 내가 부르면 와! 내 말에 따르기로 약속했잖아! 설마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
연적하는 아예 무산백랑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정덕행을 다그쳤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다.
지금 그는 무산백랑보다 자신의 말을 거역한 정덕행에게 화가 난 상태였다.
제 입으로 ‘어떤 가르침이라도 따르겠습니다’라고 해 놓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바보로 만들다니!
그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갑자기 목표를 잃어버린 무산백랑의 눈이 먹잇감들 뒤쪽으로 향했다.
만약 무산백랑이 영물이었으면 이 틈에 꼬리를 말고 달아났을 것이다.
눈치가 빠른 ‘은급’이나 ‘금급’도 그랬을 게다.
하지만 ‘동급’과 ‘철급’은 생각이라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더 골치 아픈 면도 있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
“크헝!”
무산백랑은 연적하를 노리고 재차 도약했다.
무산백랑이 달려들자 깜짝 놀란 관병과 자경단원들은 옆으로 후다닥 몸을 뺐다.
“크헝! 크헝! 크헝-.”
괴성과 함께 무산백랑의 입질이 다시 시작됐다.
연적하는 청사의 강기로 무산백랑의 콧잔등을 후려치며 정덕행에게 달라붙었다.
쾅! 콰앙-!
콧잔등에서 피가 튀었지만 잔뜩 흥분한 무산백랑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두가 정덕행의 코앞에서 일어난 일이다.
무산백랑의 몸에서 풍기는 노린내와 혈향만 해도 끔찍한데, 무산백랑이 아슬아슬하게 허공에 입질을 할 때마다 그의 얼굴로 침이 튀었다.
“으아아아!”
혼비백산한 정덕행은 미친 사람처럼 눈밭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연적하는 고집스럽게 그런 정덕행을 따라다녔다.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냐고! 대답해! 대답 안 해? 지금 끝까지 해 보겠다는 거야?”
그래도 정덕행이 달아나기만 하자 연적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는 자신이 저 개(무산백랑)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야!”
내력이 실린 그의 호통에 정덕행은 물론 무산백랑까지 움찔 놀라 멈췄다.
그 틈에 연적하는 정덕행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와 동시에 멈칫했던 무산백랑이 두 사람을 덮쳤다.
대경실색한 정덕행이 검을 세워 막자 무산백랑은 앞발로 번개처럼 쳐 냈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리고 정덕행의 머리를 삼키려 했다.
“커헝!”
기다렸다는 듯 청사가 무산백랑의 주둥이를 찍었다.
“깽!”
앓는 소리와 함께 무산백랑의 주둥이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그러나 무산백랑은 ‘철급’ 야수답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정덕행을 물어뜯으려 했다.
위기의 순간 정덕행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 끝으로 무산백랑의 주둥이를 찔렀다.
쿡-.
역시나 그의 검은 통하지 않았다.
무산백랑이 검을 밀어내며 한 아름이나 되는 아가리를 쩍 벌리자 정덕행은 뻗뻗하게 굳었다.
마치 뱀 앞의 개구리처럼,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혼이 나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무산백랑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옆에서 튀어나온 청사가 다시 무산백랑의 주둥이를 찔렀기 때문이다.
“깨갱! 깽!”
이번에는 고통이 제법 컸던지 연거푸 비명을 내질렀다.
하얗던 주둥이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갔다.
강철 같던 거죽이 갈라지면서 나온 붉은 피는 주둥이를 물들이고, 끝내 하얀 눈 위로 뚝뚝 떨어졌다.
어느새 위풍당당하게 솟구쳐 있던 꼬리도 뒷발 사이로 말려 들어갔다.
뒤늦게 무산백랑은 겁에 질려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적하는 다시 정덕행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아랫도리를 자신의 오줌으로 척척하게 적신 정덕행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연적하가 그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집요하게 물었다.
“딱 말해. 나한테 거짓말한 거야?”
“아, 아닙니다.”
“말해 봐. 부르는데 왜 안 왔어?”
“거, 겁이 나서요.”
이미 오줌까지 지린 그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본심을 술술 털어놓았다.
“다음에도 부르는데 안 오면 사지를 부러뜨릴 거야. 알겠어?”
“예…….”
정덕행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말하는 걸 보니 다음에도 이 지옥 같은 싸움에 또 끌어들일 모양이다.
그때다.
아까부터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던 무산백랑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관병과 자경단이 아쉽다는 듯 ‘아!’ 하고 탄성을 흘릴 때다.
연적하의 손에서 빠져나간 청사가 무산백랑의 뒤통수에 ‘퍽!’ 하고 틀어박혔다.
“컹-.”
어딘지 공허한 비명과 함께 거대한 무산백랑의 몸이 눈밭을 굴렀다.
눈 속에 파묻혀 사지를 부르르 떨던 무산백랑은 이내 빳빳하게 굳었다.
관병과 자경단원 모두 뜨악한 얼굴이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는 정덕해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정 형, 내가 부족한 걸 채워 주겠다고 했잖아요. 이제 정 형에게 부족한 게 뭔지 알겠죠?”
“예.”
고분고분한 대답과 달리 정덕행의 속은 용암처럼 들끊었다.
‘모르겠다. 일관성 없는 개새끼야. 나에게 이런 망신을 주고 괴롭히는 이유가 뭐냐?’
대체 무슨 원한으로 그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시발! 씨바알!’
관병과 자경단원들 앞에서 오줌까지 지렸으니 이제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가족들과 산음현을 떠나고 싶지만, 겨울이라 그럴 수도 없다.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한다고 괜찮아질까?
그렇지는 않을 게다.
어디를 간다 해도 오늘의 일은 꼬리표처럼 자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차라리 죽어 버릴까?’
하지만 정덕행은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죽을 용기조차 없으니까.
그랬다면 무산백랑의 쩍 벌어진 아가리 앞에서 오줌을 지리지도 않았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어깨를 연적하가 격려하듯 툭툭 두드렸다.
“괜찮아요. 처음이라 그렇지 자꾸 지리다 보면 익숙해질 거예요. 내가 정 형의 부족한 걸 꽉꽉 채워서 상남자로 만들어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