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57
557회. 구 형, 사매를 많이 좋아하나봐?
연적하는 녹림 출신이다.
녹림에는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들끓는다.
먹고살기 위해 녹림도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살인, 강도 등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흉악한 짓을 저지른 자도 많았다.
오봉산채의 풍연초가 그를 구해 준 건 그의 나이 열여섯 되던 해다.
그즈음 풍연초는 녹림에 들기 위해 온갖 잡배들을 다 받아들였다.
눈떠서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런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저절로 배워지는 게 있다.
그중에 하나가 ‘도전’과 ‘응징’이다.
수그리면 적당히 눈감아 주지만 끝까지 맞먹으려 들면,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들어 준다.
연적하는 다래원의 터 위에서 구회일을 두들겨 팼다.
무공의 고수보다는 시정잡배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마구잡이식 폭행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구회일은 뭔가 잘못됐음을 알았다.
그는 몸을 한껏 웅크린 채로 잘못이 뭔지를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모든 건 연적하가 천지종의 상급 검법인 천붕낙월에 직격당하면서 시작됐다.
‘윽! 윽! 그 뒤로 그의 몸이 유령처럼 변했지…….’
그는 두드려 맞는 와중에 연적하와의 싸움을 하나씩 복기했다.
천붕낙월에 맞은 뒤 그의 육신은 사라지고 혼백만 남았다.
그래서 검은 물론, 진검강도 통하지 않았다.
악귀가 나타난 건 그다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자신을 따라다니며 때렸다.
‘저놈이 악귀가 되어 나를 따라다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프다.
원귀에게 맞는데 뼈에 골병이 드는 느낌이다.
이럴 수도 있나?
귓가로 계속해서 ‘퍽퍽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슬프고도 처량한 온갖 감정이 밀려들었다.
천지종에 입문한 뒤로 까맣게 잊고 살던 연약한 인간의 감정이다.
이런 고통을 악귀가 줄 리가 없다.
자신이 누구던가!
천지종의 기재로 눈빛만으로도 악귀를 녹여 없앨 수 있는데 맞다니?
퍽!
뒤통수를 세게 걷어차이는 순간 구회일은 깨달았다.
자신이 개처럼 얻어맞고 있다는 것을.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로 소리쳤다.
“그, 그만!”
“그만? 말이 짧다?”
연적하는 망설임 없이 바로 구회일을 걷어찼다.
“악!”
허리로 극통이 밀려오자 구회일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만해 주십쇼! 제발요! 너무 아픕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뭘 그만해 달래? 조금 전에 마음대로 하라고 했잖아? 내가 귓구멍이 막혀서 잘못 들은 거야? 응? 그런 거냐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존광대하던 구회일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연적하에게 매달렸다.
그제야 연적하는 들었던 발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 누구라도 꽉꽉 밟아 주면 보통 사람들과 똑같아진다.
내심 ‘종문의 제자들은 좀 다를까?’ 싶었는데, 다르기는 개뿔. 오히려 숙이고 들어오는 게 강호의 악인들보다 조금 빠른 것 같다.
‘이 정도가 적당하겠지?’
괜히 그를 죽였다가 천지종의 집요한 추격을 받으면 그것도 낭패였다.
반드시 죽여야 할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잘못한 거 맞지? 괜히 나한테 맞았다고 원한 같은 거 품고 그러는 거 아니지? 확실하게 말해. 난 구질구질한 거 딱 질색이니까.”
“…….”
순간 구회일은 알았다.
만약 여기서 자신이 뒤끝 있는 모습을 보이면 망설이지 않고 죽일 놈이었다.
“원한 같은 건 품지 않습니다. 제 잘못이니까요.”
연적하를 향한 구회일의 눈빛은 담담하다 못해 허허롭기까지 했다.
약한 건 죄다.
강한 놈이 무조건 옳다.
사실 그건 모든 종문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삼천(三天)의 신이 되기 위해서 약한 자의 영기를 포식해야 한다.
마치 호랑이나 사자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듯.
그러니까 모든 건 자신의 잘못이었다.
힘이 있는 줄 착각하고 상위의 포식자에게 덤벼들었으니 말이다.
비칠비칠 자리에서 일어난 구회일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히 간청했다.
“살려 주십시오.”
그는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이 순간만큼은 소요종 제자가 아니라는 그의 말을 믿고 싶었다.
만약 그가 소요종 제자라면 자신은 영기를 빼앗기고 말라 죽을 터였다.
“누가 죽인대? 뭘 자꾸 살려 달래? 너 사람 많이 죽이고 다녔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사람만 죽였습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사람’은 약한 주제에 자신의 비위를 거스른 사람을 의미한다. 서문의 관병이나 귀문방 방도들처럼.
하지만 연적하는 자신의 기준에서 ‘구제 못 할 악인을 죽였다’로 받아들였다.
“그래? 보기와는 또 다르네? 그건 그렇고 근처의 전각이 싹 다 부서졌는데 어쩔 거야?”
“현청에서 복구를 지원해 줄 겁니다.”
“현청에서 복구를?”
“예, 종문과 관계된 일은 관부에서 수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너는 안 물어 줘도 되고?”
“구주의 종문은 출신지와 관계없이 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만나면 싸우는 거 같더니 그런 쪽으로는 또 단결이 잘되는 모양이야?”
“종문들이 구주를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켜 주고 있으니까요.”
“외부의 침입?”
연적하는 적당한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종문 제자와 대화할 기회가 흔치 않으니 그에게 조금 더 들어 둘 생각이다.
구경꾼들은 물론 관병들도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서 구경만 했다.
“구주를 둘러싼 산맥이 아니었다면 구주는 벌써 망했을 겁니다. 북쪽 아르카에는 흉포한 수인(獸人)이, 동쪽 마천에는 수인보다 열 배쯤 사악한 마귀들이 살고 있으니까요. 서쪽 바다 너머의 천족들은 인간을 벌레만도 못하다고 여깁니다. 바다가 아니었으면 인간은 천족의 노예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수인, 마귀, 천족이 호시탐탐 구주를 노리고 있다는 거야?”
“예, 창조신이 구주를 만든 이래로 그 싸움은 멈춘 적이 없습니다.”
“남쪽에는 그래도 위험한 게 없나 봐?”
“남쪽으로는 구주만큼이나 넓은 죽음의 사막이 펼쳐져 있습니다. 수인이나 마귀, 천족들도 살아가기 어려운 지역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관부가 종문의 뒤치다꺼리를 해 주고 있다?”
“종문이 아니라면 인간은 구주에서 살지 못할 테니까요. 그들이 종문에 공물을 가져다 바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다 부숴도?”
“평범한 인간은 종문의 가호가 아니라면 살아갈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연적하는 떨떠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종문이 특별 대접을 받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건 그렇고, 천지종 제자가 수약주까지는 무슨 일이야? 천지종과 소요종은 원수라고 들었는데, 설마 염탐이라도 다닌 거야?”
“염탐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사매에게 줄 선물을 찾으러 다니던 중입니다.”
구회일은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기 위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의 환심을 사고 싶었다.
연적하가 반신반의한 눈을 그를 보았다.
한서불침의 몸도 추위를 느낄 정도의 한파에 돌아다니는 이유가 고작 선물 때문이라니?
“이 겨울에 선물을 찾으러 다녀?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수풀이 우거지면 더 찾기 어려운 놈이라서요.”
“놈?”
“사실 금와(金蛙)라고 하는 영물을 찾으러 다니던 중입니다.”
“금와?”
“예, 금색으로 빛나는 두꺼비입니다. 피부의 노화를 막아 준다고 하여 종문의 여자들 사이에서는 신수(神獸)보다 인기가 좋습니다.”
“구 형, 사매를 많이 좋아하나 봐?”
연적하의 얼굴에 모처럼 화기(和氣)가 돌았다.
십전무후 남궁연을 위해 ‘왕들의 하늘’까지 온 자신과 어딘지 닮아 보여서다.
그래서인지 단번에 말투부터 바뀌었다.
그런 그의 마음은 열심히 눈치를 보고 있던 구회일에게 전해졌다.
구회일은 훈훈한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계면쩍은 얼굴로 답했다.
“그런 거 같습니다.”
“옆에 있을 때 잘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예, 그래서 금와를 잡으러 나온 겁니다.”
“잘했어. 여자들 선물 좋아한다. 마음을 본다 어쩐다 하는데 그건 입에 발린 소리야.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남자도 여자 마음만 보는 건 아니잖아.”
한참 동안 ‘선물’과 ‘마음’에 대해 열변을 토해 내던 연적하가 물었다.
“그래서 금와는 잡았고?”
“못 잡았습니다.”
“저런, 그럼 빈손으로 돌아가는 거야?”
“예.”
“쯧쯧! 내 마음이 다 짠하네. 그래서 그렇게 신경이 날카로웠구나?”
“그런 점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고! 그런 사람을 내가 때린 거네? 아, 못됐다. 이제 봤더니 내가 잘못했네. 구 형, 미안해.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많이 미안해하는 거 알지?”
“예.”
구회일은 연적하를 마주 보며 살짝 웃었다.
그 모습에 연적하는 슬며시 시선을 반대로 돌렸다.
양쪽 눈두덩이에 시퍼렇게 피멍이 든 채로 웃는 그를 보고 있으려니 왠지 짠해서다.
“저어, 연 대협. 저는 이제 그만 갔으면 하는데, 그래도 될까요?”
“아, 가야지. 내가 바쁜 사람 붙잡고 말이 길었네. 그런데 금와를 잡으러 어디까지 갔던 거야?”
“무량하와 천관산맥이 만나는 지점에 출몰한다고 해서, 천관산맥까지 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고생 많았겠네.”
“조금요. 충분한 조사 없이 소문만 듣고 움직인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랬구나. 가. 구 형의 사매에게 건강한 모습 보여 줘. 참, 사매는 구형이 금와 찾으러 간 걸 알아?”
“모릅니다.”
“말이나 하고 가지 그랬어? 사매도 구 형이 자기 때문에 개고생하는 거 좀 알아야 한다고. 좋아한다고 너무 손해 보는 짓은 하지 마. 구 형이 받은 만큼만 줘.”
“예, 각골명심하겠습니다.”
구회일이 정중하게 묵례를 했다.
감정은 상대적이다.
연적하의 진심 어린 말에 구회일은 그를 원망하는 마음을 비웠다.
“빨리 가.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연적하가 손짓하자 구회일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바깥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뒷모습 같네. 구 형, 힘내.”
구회일이 사라지자마자 강수성과 공지섭, 천산월, 공지유가 빠르게 다가왔다.
강수성이 연적하의 아래위를 보며 물었다.
“연 대협,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아까 그 사람의 검강에 맞으시는 것 같던데.”
“맞긴 누가 맞았다고 그러세요? 내가 그 사람 때리는 거 못 봤어요?”
“허, 보긴 봤습니다만 정말 믿어지지 않는군요. 종문의 고수를 어린아이 다루듯 하시다니. 이 강 모는 다시 한번 연 대협의 무위에 탄복했습니다.”
“그나저나 전각이 다 허물어져서 어쩐대요? 그 사람 말로는 관청에서 다시 짓는 걸 도와줄 거라고 하던데. 정말이에요?”
“그건 맞는 말입니다만.”
“왜요? 그 사람이 말하지 않은 게 있어요?”
“보통은 사고를 친 종문에서 배상금으로 얼마쯤 내려 주곤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랬는데 천지종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면서요? 그럼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요?”
“연 대협께서도 아시겠지만 천지종과 소요종의 관계가 틀어지지 않았습니까?”
사실 틀어지기보다는 원수에 가깝다. 그래도 강수성은 종문의 일인지라 최대한 조심했다.
“종문과 일반 백성은 조금 다르지 않나요?”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천산월이 조심스레 나섰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소요종과 천지종의 사이가 워낙 안 좋아서요. 한산주와 수약주에서 부딪치는 일이 잦다 보니 배상을 은근슬쩍 넘어가곤 한답니다.”
“그래요? 몹쓸 사람들이네. 지가들 제자가 부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보다는 이번 일로 연 대협이 귀찮아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요?”
연적하가 의아한 눈으로 천산월을 보았다.
전각을 때려 부순 건 구회일인데 왜 자신이 귀찮아진단 말인가?
“피해가 크니 현령이 연 대협에게 책임을 지우려 할 수도 있습니다. 한산주의 천지종보다 연 대협에게 청구하는 게 훨씬 편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