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58
558회. 일로 왔다 생각하지 마세요
산음현.
현천문.
천산월의 예측은 바로 그날 저녁 현실이 되었다.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연적하에게 소천우 문주가 찾아왔다.
“연 대협. 식사 후에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왜요?”
연적하가 의아한 눈으로 소천우를 보았다.
겨울이 시작된 뒤로 한 번도 찾지 않던 문주가 웬일인지 모르겠다.
“손님이 오시기로 해서요.”
“손님요?”
“술시 말(오후 9시)경에 형부(刑部)의 신연 직장(直長)이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관인이 온다고요?”
“예.”
“왜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전각 여러 채가 부서졌다고 들었습니다. 형부의 사람이니 그 일을 여쭙기 위해서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천지종 제자가 부수는 걸 본 사람도 많은데 뭘 더 알아보겠다고.”
“연 대협께서 가장 가까이서 보았으니 그러는 걸 테지요.”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다.
눈치 빠른 소천우는 신 직장이 왜 오는지 대충 감을 잡고 있었다.
보나 마나 연적하에게 일정 부분 책임을 지우려 할 게다.
머나먼 한산주의, 더군다나 천지종에 비용을 청구하지는 못할 테니.
연적하가 엄청난 고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 천지종에 비할까.
“가까이서 본 것 때문이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천산월에게 이상한 소리를 들은 연적하는 영 찜찜했다.
“천지종 제자가 부쉈다면서요? 그렇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연덕스러운 소천우의 말에 연적하는 조금 안심이 됐다.
“혹시나 해서요.”
“괜찮을 겁니다. 그럼 신 직장이 오면 객사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러세요.”
연적하의 답을 들은 소천우는 개운한 얼굴로 돌아갔다.
소천우가 보이지 않게 되자 동석하고 있던 공지섭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연 대협,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 무슨 준비요?”
“형부에서 사람이 찾아온다면서요? 문주님은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겁니다.”
“왜요?”
입맛이 달아난 연적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소천우와 공지섭의 말이 다르니 ‘온탕’과 ‘냉탕’을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목격자들로 차고 넘치는데 밤중에 연 대협을 찾아올 이유라면 뻔하지요.”
“그게 뭔데요?”
“천지종과 함께 엮어서 얼마라도 복구비를 분담해 달라고 할 겁니다.”
“…….”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공지섭을 보았다.
복구비를 분담하라니?
남궁연을 찾는 일에 쓰기도 부족한데?
“에이, 나 같은 개인에게 무슨 돈이 있다고요?”
“관에서는 연 대협이 고수이니 돈 마련하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부서진 전각이 한두 채가 아닌데. 천지종을 찾아가 사정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종문은 성주(城主)도 어쩌지 못합니다. 하물며 현령에게는 하늘과도 같지요. 천지종은 진즉에 포기했을 겁니다. 만약 연 대협이 현령이라면 천지종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까?”
“못 보내죠.”
구주의 생활에 익숙해진 연적하는 고민하지도 않았다.
천지종은 현령이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상대였다.
“형부의 관리가 왜 밤중에 찾아오겠습니까?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자고 할 겁니다.”
“와아! 내가 빨리 소요종에 들어가든가 해야지, 더러워서 못 살겠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구주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종문 제자가 돼야 합니다. 만약 연 대협이 소요종 제자였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거 참! 어쩐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쇼. 관리들도 연 대협의 눈치를 볼 겁니다. 혹시 연 대협께서는 전각의 재건축에 참여하실 뜻이 있으십니까?”
“참여요?”
“예, 건축비를 조금이라도 보탤 의향이 있으시냐는 겁니다.”
“솔직히 그건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연적하가 말끝을 흐렸다.
객점에서 싸우다 기물이 부서진 거라면 은자 반쪽을 던져 주면 된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무려 전각 십여 채가 부서졌다.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구회일이 저지른 일이라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결국 연 대협께서 뜻하신 대로 될 겁니다. 얼마라도 기부를 하시든, 칼같이 끊으시든 말입니다.”
“그런가요?”
“관리들도 이래라저래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연 대협은 천지종의 제자를 제압한 고수시니까요. 그러니 밤에 찾아오는 걸 테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공 조장님의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연적하는 공지섭이 고마웠다.
소천우의 말만 믿고 생각없이 나갔다가는 크게 당황할 뻔했다.
***
술시 말(오후 9시).
현천문의 제자 하나가 객사에서 쉬던 연적하를 안채의 객청으로 안내했다.
툇마루 아래 놓인 섬돌에서 신발을 벗던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섬돌 위에 두 켤레의 신발이 놓였는데 그중 하나가 좀 작아 보인다?
고개를 갸웃하던 연적하는 마루 위로 올라섰다.
이윽고 객청에 딸린 방으로 들어가자 소천우가 호들갑을 떨며 맞이했다.
“어이쿠! 연 대협 오셨습니까? 잘 쉬고 계신데 괜히 번거롭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쪽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말씀드렸던 형부의 신연 직장이십니다.”
연적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천우의 손을 따라갔다.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웃으며 꾸벅 머리를 숙였다.
“연 대협,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형부의 직장 신연이라고 해요.”
“아, 예. 안녕하세요?”
연적하도 간단한 묵례로 화답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치자 소천우가 나섰다.
“자자, 앉으십시다. 연 대협, 신 직장께서 저를 보자마자 말씀하시더군요. 일로 왔다 생각하지 마시라고. 저도 오늘 신 직장께 많이 배웠습니다. 맞는 말씀이지요. 낮에 만나면 공무고, 밤에 만나면 사교지요. 암요.”
연적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더니, 그래도 사교 소리를 듣자 부담이 확 줄어드는 느낌이다.
“허허, 사실 소싯적 노부의 꿈도 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신 직장께서는 나이에 비해 품계가 높으신 것 같습니다?”
소천우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직장이면 종 칠품의 고관.
이십 대로 보이는 그녀가 벌써 그런 자리라니 실로 놀랄 일이었다.
“운이 좋았어요.”
신연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그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적하로 화제를 돌렸다.
“참, 연 대협을 만나 뵈면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어요. 산음현을 지켜 줘서 감사해요. 제가 동문에서 가까운 화양촌에 살고 있거든요. 올 겨울에는 아직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어요. 연 대협은 저희 화양촌의 은인이세요.”
“…….”
연적하는 그냥 웃어넘겼다.
솔직히 어떻게 돈 이야기를 꺼낼지 신경 쓰여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언제고 화양촌에 방문해 주세요. 촌민 모두가 연 대협을 뵙고 싶어 한답니다.”
“아, 네.”
연적하가 건성으로 답하자 신연의 얼굴에 살짝 민망한 기색이 떠올랐다.
자신과의 대화에 저렇게 집중하지 않는 사람도 처음이다.
‘그래도 내가 산음현의 꽃이라고 불리는데. 진짜 너무하네. 혼인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하지만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유부남들이라고 해서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남자들은 혼인과 관계없이 아름다운 여자에게 약하다.
자신의 경험상 그랬다.
그런데 연적하는 마음이 다른 곳에 간 것처럼 보였다.
“저어, 제가 화양촌의 주민들을 대신해서 몇 가지 개인적인 걸 여쭤 봐도 되나요?”
“개인적인 거요?”
“네, 이를테면 현천문의 객사에서 지내신다고 들었어요. 집은 어디세요?”
“소호 인근에 있는 석경장입니다.”
“소호요? 조양성에 그런 호수가 있었나? 제가 모르는 걸 보니 작은 호수인가 봐요?”
“네. 아주 작아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연적하는 그냥 작다고 했다.
사실 구주의 강과 호수에 비하면 작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현천문에는 언제까지 머무르실 생각이세요?”
이 질문에는 소천우도 관심을 보였다.
연적하가 객사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현천문의 위상이 높아졌다.
그는 연적하가 오래도록 객사에 머물렀으면 했다.
“봄까지는 있을 예정이에요.”
“아, 봄까지……. 그 뒤로는 석경장으로 돌아가시나요?”
“아뇨. 불우산이라는 곳에 가 보려고요.”
“불우산이면 혹시 소요종의 ‘비승과해’에 참가하시려는 건가요?”
“네. 종문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연적하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신연을 보았다.
내가 소요종 제자였으면 이렇게 불편한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신연은 오히려 그의 시선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최소한 그가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그러시구나. 사실 저도 ‘비승과해’에 도전한 적이 있어요. 세 번이나 떨어졌지만요.”
세 번 떨어졌다는 말에 소천우가 관심을 보였다.
대부분의 문파에서는 제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보통은 한 번, 집안이 좋아야 두 번이다.
불우산까지 가는 길이 위험한 것도 있지만, 다른 제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그는 불쑥 물었다.
“신 직장은 집안이 어찌 되시기에 세 번이나 기회를 얻으셨소?”
“할아버지께서 판서(判書)를 지내셨어요.”
“아!”
소천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하니 판서였을 줄이야.
판서란 육조(六曹)의 우두머리로 성을 다스리는 고관이다.
무인의 목표가 종문 제자라면, 문인의 목표는 판서라 할 수 있었다.
판서의 말 한마디면 현령의 목이 날아갈 정도.
그녀의 집안을 생각하면 세 번의 기회는 많은 것도 아니었다.
관직 이야기가 나오자 연적하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관부에 당한 적도 없건만 녹림 출신이라 그런지 괜히 거부감이 들었다.
그가 지루해하자 신연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연 대협, 혹시 ‘비승과해’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세 번이나 참석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그제야 연적하가 조금 관심을 보였다.
“‘비승과해’에 참가하려면 문파의 추천장이 꼭 있어야 하나요?”
“왜요? 연 대협은 소 문주님께 말만 하면 될 텐데.”
“에이, 그 추천장은 현천문의 제자가 받아야 되는 거고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사람이 있을 텐데 내가 그 기회를 뺏으면 안 되잖아요.”
연적하는 공지유를 떠올렸다.
그녀의 추천장을 빼앗는다니? 그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편 신연은 혹시라도 연적하가 자신을 비난할까 봐 얼른 그를 치켜세웠다.
“역시 연 대협은 대인배세요. 사실 추천장은 없어도 상관없어요. 그건 그냥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을 걸러 내기 위한 사전 작업이거든요.”
“사전 작업요?”
“‘비승과해’의 최종 목적지는 불우산 정상이에요. 산을 오르는 데 하나의 길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죠.”
“추천장을 제시한 사람들은 문파에서 한번 걸러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 사람들은 소요종의 제자가 불우산 중턱의 진수봉(辰宿峰)까지 직접 데리고 가요.”
“추천장이 없으면요?”
“불우산 초입에 설치된 기본 관문을 거쳐야 해요. 그걸 통과해 진수봉에 도달함으로 자격을 증명하는 거죠. 진짜 ‘비승과해’는 진수봉에서 시작돼요.”
“아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연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연 대협은 초대장을 가진 사람들보다 빨리 진수봉에 도착하실 거예요.”
“…….”
미녀의 칭찬에도 연적하는 돌부처처럼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신연은 소천우를 끌어들였다.
“문주님, 내년 봄에는 누굴 보내실 생각이세요? 이번에 연 대협도 가신다니 누군지 몰라도 불우산까지 정말 안전하게 가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