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60
560회. 제가 화풀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가볍게 시작된 술자리는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다.
만취하도록 마신 신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차례 비틀거렸다.
하지만 연적하는 잡아 주기는커녕 괜찮냐고 묻지도 않았다.
신연은 야속하다는 듯 가볍게 연적하를 흘긴 뒤에 마루로 나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맞은편 방에서 네 명의 호위가 나타났다.
그중에 둘은 여자였는데 그들이 신연을 좌우에서 부축했다.
신연은 남녀 호위들의 물샐틈없는 경호 속에 현천문을 떠나갔다.
연적하가 멀어져 가는 신연 일행을 보며 중얼거렸다.
“개인 호위까지 있는 걸 보면 진짜 잘 사나 보네.”
“조부가 판서(判書)였다면 조양성에서 손에 꼽히는 가문일 겁니다.”
“판서가 뭔데?”
연적하는 소천우에게 아예 말을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거슬렸는데 오늘 공지유의 일로 완전히 눈 밖에 난 탓이다.
“수약주를 다스리는 육조(六曹)의 수장을 판서라고 합니다. 성주를 보필하는 자리라 백성들에게 육성조(六星曹)로 불리기도 합니다.”
별이라고까지 떠받드는 걸 보니 정말 위세가 대단한 모양이다.
연적하는 소천우를 뒤에 남겨 두고 휘적휘적 객사로 걸어갔다.
객사 앞에서 연적하는 우뚝 멈춰 섰다.
‘그런데 그 여자는 왜 나를 찾아온 거지?’
소천우의 망발로 한바탕 소란이 있었지만 그 뒤로도 이야기할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신연은 끝내 구회일과 관계된 이야기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신세 한탄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갔을 뿐이다.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는 객사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자신이 관부를 드나들 일은 없을 테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현천문이 산음현에서 크다고는 하지만 제자의 숫자가 많지 않다.
하루 만에 시비들을 통해 신연과의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이 퍼졌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묘하다.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까지 공지유를 비난하고 나섰다.
스스로 ‘비승과해’의 참가를 포기했어야 하는데 욕심을 부려 생긴 일이라고 했다.
소문은 돌고 돌아 결국 공지유와 공지섭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동문.
점심을 먹고 천막으로 돌아가는 연적하의 뒤를 공지섭이 따라붙었다.
“연 대협.”
“예?”
“잠시 말씀 나눌 시간이 있을까요?”
“예, 무슨 일인데요?”
공지섭은 연적하를 동문 근처의 찻집으로 데리고 갔다.
한겨울이라 찻집은 텅텅 비어 있었다.
두 사람은 거리가 잘 내다보이는 창가 쪽 자리에 마주 앉았다.
잠시 후 주문한 다과(茶菓)가 나왔다.
공지섭이 연적하의 찻잔에 끓는 물을 따르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어젯밤 형부의 관리가 연 대협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랬었죠. 왜요? 뭐 지은 죄라도 있어요?”
연적하는 공지섭이 형부의 일로 자신을 찾아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지인들이 그러더군요. 그 자리에서 연 대협께서 소 문주님을 나무라셨다고.”
“아…….”
연적하는 슬쩍 공지섭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무덤덤한 얼굴만 보아서는 그의 심정이 어떤지 알기 어려웠다.
“어제 제 동생의 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연 대협은 제 동생이 ‘비승과해’를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그 부분에 대한 솔직한 말씀을 듣고 싶어서요. 연 대협의 눈이 가장 정확할 테니까요.”
“왜요”
연적하는 공지섭이 왜 그걸 궁금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자신이 소요종 제자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안다고?
공지섭이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산음현의 문파 출신 중에 지금까지 ‘비승과해’를 통과한 사람은 없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비승과해’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넘을 수 없는 벽만 확인하고 돌아왔지요.”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승과해’란 ‘하늘로 날아올라 바다를 건넌다’는 뜻이다.
그런 시험이니 쉬울 리가 있나.
수천 년을 살아가는 종문 입장에서는 급할 게 없으니 아무나 뽑지도 않을 게다.
이래저래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아시겠지만 내년 봄이 제 동생의 차례입니다. 십중팔구, 아니 보나 마나 통과하지 못할 겁니다. 제 동생보다 더 뛰어난 기재들도 떨어졌으니까요.”
‘응?’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이야기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소 문주님은 호인(好人)이지만 속이 좁고, 뒤끝이 아주 긴 분이십니다. 제 동생이 ‘비승과해’를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오면 오래도록 원망할 겁니다. 너 때문에 내가 연 대협에게 욕을 먹었다고 말이죠.”
“혹시 공 소저가 포기하기를 바라는 건가요?”
“저는 지유가 고향에 돌아와서 고통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연 대협께서 힘들 것 같다고 하시면 제가 만류하겠습니다. 괜히 욕먹지 말고 그냥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라고.”
“공 조장님.”
“예.”
“저도 ‘비승과해’에 지원하는 사람이에요. 기준도 모르고,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도 몰라요. 그런 제가 어떻게 가능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안목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연 대협 정도의 무위면 우리와는 다른 뭔가가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까?”
연적하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어느 정도 사람의 역량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단 자신은 종문에서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모른다.
종문 제자도 아닌 사람이 뭘 안다고 ‘된다, 안 된다’ 말한단 말인가.
“공 조장님의 말은 알겠는데 솔직히 나도 자신이 없어요. 내가 소요종에서 원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해요. 모든 사람은 쓰임새가 다르다는 거. 공 소저가 소요종에서 원하는 사람이라면 뽑힐 거예요. 아니라면 떨어지겠죠. 공 소저가 직접 불우산에 올라가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떨어질 겁니다.”
순간 연적하는 기가 막혔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은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찾아온 것이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내 의견을 물어봐요?”
“연 대협께서 통과할 것 같다고 하셨으면, 저도 보내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내가 모른다고 했으니 공 소저의 ‘비승과해’ 참가를 반대할 건가요?”
“예.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하겠습니다. 그래도 고집을 부린다면,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못 가게 막을 겁니다.”
“추천장은 어쩌고요? 그것 때문에 그 난리가 난 건데.”
“제가 못 가게 막으면 ‘욕심부렸지만 떨어졌다’는 욕은 안 먹어도 되니까요.”
연적하는 반박하지 않았다.
기괴한 논리지만 그가 동생을 아끼는 마음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공 조장님.”
“예.”
“끝까지 가 봐야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아요. 뒤에서 손가락질 좀 당하면 어때요? 구주의 사람들치고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을 못 봤어요. 공 소저가 자신을 위해 욕심 좀 부리면 안 돼요? 왜 공 소저에게 주어진 기회를 포기하라고 해요?”
“그 일로 그 애가 평생 상처받으며 사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공 조장님이 못 가게 막는 건 상처가 안 될 것 같아요? 그거 알아요? 남들이 주는 상처보다 가족이 주는 상처가 더 깊고 아파요.”
“…….”
그 말에는 공지섭도 아니라고 하지 못했다.
묵묵히 찻잔을 내려다보던 공지섭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저는 적안금저와 동생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게 정말 싫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입에 그 일이 다시 오르내리니 돌아 버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공 소저에게 화풀이를 하지는 마요.”
“제가 화풀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공 소저가 가겠다고 고집부리면 다리를 부러뜨려서 못 가게 할 거라면서요.”
“그건 말씀드렸다시피…….”
“뭐라고 변명해도 내 눈에는 화풀이로밖에 안 보이네요. 뺨은 현천문 사람들에게 맞고서 왜 공 소저의 다리를 부러뜨리려고 해요?”
“말씀드렸다시피 차라리 제가 욕을 먹더라도…….”
“다른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여서 공 소저 인생을 조져 놓으시겠다?”
“저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그럼, 다리를 부러뜨려 공 소저 평생의 꿈을 짓밟는 걸 뭐라고 해요? 망가트렸다?”
“…….”
공지섭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그런 그를 보며 연적하가 차갑게 말했다.
“공 조장님, 걱정과 분풀이를 착각하지 마요. 그렇게 공 소저가 걱정되면 불우산까지 동행을 해요. 만에 하나 공 소저가 실패하면 위로도 해 주고. 못 가게 막고, 다리를 부러뜨리겠다는 건 그냥 분풀이야.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풀어 놓을 곳이 없으니까, 만만한 동생에게 쏟아 내는 거라고. 화가 나면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과 싸워. 걱정을 핑계로 공 소저를 괴롭히지 말고.”
말하다가 감정 조절에 실패한 연적하는 공지섭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가 화를 내자 공지섭은 감히 입도 벙끗하지 못했다.
씨근덕거리던 연적하는 미지근하게 식은 찻물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화기가 치밀어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느낌이다.
어딜 가나 저런 사람들이 있다.
밖에서 쌓인 분노를 가족들에게 풀어 놓는 모지리들.
그들은 자기 속에 쌓인 감정을 배설하고서 그걸 ‘상대를 위해 한 행동’으로 포장한다.
‘쯧쯧!’
연적하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때다.
계산대에 서 있던 찻집 주인이 창가로 쪼르르 달려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머? 북문 쪽에서 봉화(澤火)가 올라오네? 저긴 갑자방(甲子坊)이 있는 곳인데…….”
구주의 주요 도시는 모두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쟁에 대비해서가 아니라 야수로부터 거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다.
현청이 있는 산음현의 중심부에도 성벽이 세워져 있었다.
동문과 북문의 거리는 대략 오리(약 2km).
관병들은 봉화가 사람의 발걸음보다 빨라 촌각을 다투는 일에 사용했다.
어색하게 앉아 있던 연적하와 공지섭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닌 게 아니라 붉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동급(銅級)’ 이상의 야수가 출몰해 인명 피해가 극심하다는 뜻이다.
경험 많은 공지섭이 조심스레 말했다.
“연 대협, 아무래도 북문으로 지원을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내가 가 볼 테니 강 조장님께도 그렇게 전해 줘요.”
“예.”
연적하가 먼저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바람처럼 사라지자 비로소 공지섭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공지섭이 계산대로 걸어가 계산을 하려 할 때다.
서둘러 자리로 돌아온 삼십 대 여주인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동문의 자경단이시죠? 오늘은 그냥 제가 대접한 것으로 할게요.”
공지섭은 돈을 도로 넣고 꾸벅 묵례를 해 보였다.
겨울에 돌아다닐 때는 종종 사람들이 알아보고 공짜로 해 줄 때가 있다.
특히나 지금처럼 야수의 침입이 일어났을 때는 더했다.
자경단이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주고 있으니 보답으로 그러는 것이다.
찻집 문을 밀고 나가는 공지섭의 귓가로 여주인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종종 들러 주세요.”
공지섭은 여주인의 음성이 얼굴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거리로 나간 그는 갑자기 오싹한 한기가 느껴지자 옷깃을 여미었다.
그때 북문 쪽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우-.
아우우-.
아우우-.
여기저기서 화답하는 걸 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다.
한 마리만 해도 관병과 자경단이 감당하기 어려운데 저렇게 떼거리로 몰려오다니!
이전 같았으면 수십 명이 물려 갔을 게다.
공지유처럼.
분노와 자책감에 이를 악물고 서 있던 공지섭은 서둘러 동문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