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64
564회.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은 예측하기 어렵다
정경우는 조카인 정덕행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연 대협, 개똥도 약에 쓰일 때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살려만 주십쇼.”
“누가 죽인대요?”
“예? 그럼?”
“불우산까지 짐꾼 확정. 어이! 정 씨, 그때까지 열심히 체력을 키워 둬.”
“설마 돌아오는 봄에 덕행이를 데리고 가시려고요?”
“왜요? 사람 구실도 못 하는 놈이니 그냥 여기서 끝을 볼까요? 하긴 저런 거 데리고 다녀 봐야 구더기만 끊겠죠? 그냥 깨끗하게 정리할까?”
“아, 아닙니다. 그래도 쓰임새가 있을 겁니다. 짐꾼으로라도 써 주십시오. 이 녀석아! 뭐하고 섰느냐?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리지 않고!”
정경우의 채근에 정덕행은 급히 허리를 숙였다.
“대협!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어, 야수 밥이 되고 싶지 않으면 그래야 할 거야. 일을 제대로 못 한다 싶으면 그냥 버리고 갈 거니까.”
“마, 맡겨만 주십쇼!”
정덕행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자리에서 맞아 죽는 것보다는 일꾼이 백배 나은 선택이었다.
“정 씨, 오늘부터 무공은 때려치워. 대신에 눈 녹기 전까지 열심히 요리를 배워 둬. 음식 맛이 없으면 게으름을 피운 것으로 생각할게. 게으른 놈에게는 매가 약이더라고.”
한마디로 음식을 못하면 때리겠다는 소리다.
정덕행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짐이나 짊어지고 가면 될 줄 알았는데 음식까지 만들어야 한단다.
하지만 누구 말이라고 거역할까.
그는 망설임 없이 결기 어린 음성으로 답했다.
“예!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열심히는 하지 않아도 돼. 요리만 잘하면 돼.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정덕행은 가슴이 싸했다.
열심히 배우라는 말보다 더 무서웠다. 그건 결과만 본다는 소리인 까닭이다.
요리사라면 모를까?
평생 차려 준 음식만 먹어 온 정덕행에게는 실로 소름끼치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서 정덕행의 운명은 느닷없이 짐꾼이자 요리사로 결정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겨울은 할 일이 없는 계절이다.
농사꾼은 물론 대부분의 상인들조차 유동 인구가 줄어 일손을 놓아야 했다.
겨울에 바쁜 사람은 ‘관병’과 ‘자경단’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관병도 자경단도 아닌데 혼자 바쁜 사람이 생겼다.
정덕행이다.
그는 현천문의 출입을 끊고 매일 요리를 배웠다.
물론 그에게 현천문에 드나들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연적하가 ‘오늘부터 무공은 때려치워’라고 했기에 가지 못했다.
정덕행은 마치 숙수가 삶의 목표인 사람처럼 요리를 배우고 익혔다.
산음현 사람들은 그런 그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야수 앞에서 오줌을 지리는 사람이니 무인보다 요리사가 어울린다고 생각해서다.
***
영천주.
청산성.
낙일현 유명산.
무망각(无妄閣).
옥청 진인이 마당에 들어서자 염소 수염의 노인이 급하게 달려 나왔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순간 옥청 진인이 묘한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자신의 기척을 벌써 느끼고 마중 나올 정도로 발전했다니 기대 이상이다.
그의 남은 수명은 이제 한 달 남짓.
어쩌면 정말 원영의 경지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련에 진전은 있더냐?”
“이제야 ‘검강’과 ‘진검강’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오호라! 그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그렇다면 거의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네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더욱 정진하도록 해라.”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에 심통은 움찔했다.
그에게 상승의 경지는 강해지기 위한 욕망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예.”
“그리고 네 법기(法器)를 돌려주마.”
말과 함께 옥청 진인이 며칠 전에 빌려 갔던 금강저를 심통에게 내밀었다.
심통이 두 손으로 공손히 법기를 받았다.
“그 법기를 신당을 지키던 노인에게서 받았다고 했더냐?”
“예.”
심통의 눈을 응시하던 옥청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심쩍은 구석이 있으면 그를 제자로 거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 법기는 내가 보았던 다른 법기들과 조금 달랐다.”
“어떤 점에서 달랐습니까?”
“천뢰종의 공법에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혈주종의 노괴는 그 법기에 당해 달아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네 법기가 천뢰종의 공법에 반응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오직 흡자결에만 반응을 했는데……. 오히려 나의 영기가 흩어졌다.”
순간 심통의 입이 쩍 벌어졌다.
흡자결은 말 그대로 영기를 흡수하는 공법이다.
그러니 빨아들였다면 모를까? 영기가 흩어졌다는 건 실로 믿기 어려운 소리였다.
‘그건 그렇고 내 법기에 흡자결을 쓰다니 미친 거 아냐?’
아무리 옥청 진인이 스승이라 해도 그건 도를 넘어선 행동이었다.
만에 하나 옥청 진인의 흡자결이 통했다면 자신의 법기는 파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왕들의 하늘에서 법기는 생명과도 같다.
최고의 검령이라는 ‘천검령’을 얻기 전까지는 누구라도 법기에 의지해야 한다.
옥청 진인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이던 혈주종의 우이단녹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옥청 진인도 당해 내지 못한 그의 ‘살검령’을 물리친 게 자신의 법기였다.
그런 법기에 흡자결을 사용하다니?
아무리 옥청 진인이 자신의 스승이라 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옥청 진인은 그런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종문 제자들처럼 약육강식에 철저한 사람들도 없다.
옥청 진인에게는 심통과 그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는 혹시 법기를 받으면서 특별한 공법을 배우지 않았느냐?”
“법기만 받았는데요?”
“어쩌면 네가 익힌 공법이 법기에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옥청 진인이 심통을 빤히 보았다.
그의 눈은 공법에 대한 욕심으로 번들거렸다.
하지만 심통은 지금 그에게 삼백 자 법문을 가르쳐 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신의 수명이 늘어난 뒤라면 모를까?
기껏 죽을 쒀서 개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제자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셨지요? 원영에 들지 못한다면 어차피 죽을 몸. 그때 스승님께 제가 익힌 공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다.
심통은 자신이 원영의 경지에 들면 삼백 자 법문을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원영에 오르지 못하면?
당연히 그냥 무덤까지 안고 갈 생각이다.
어차피 죽으면 그만인데 왜 옥청 진인에게 법기와 삼백 자 법문을 넘긴단 말인가.
“허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너는 곧 원영에 오르게 될 테니까. 천뢰종의 흡자결은 구주의 종문 중에 으뜸이라 마음만 먹으면 못 이룰 것이 없느니라.”
옥청 진인은 아쉬웠지만 재촉하지 않았다.
공법을 넘겨받는다는 것은 꽤나 섬세한 작업이었다.
우선은 상대가 흔쾌히 내어줄 마음을 먹게 만들어야 한다.
행여나 강압에 의한 것이면 공법에 무슨 장난을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글자 한 자만 바꾸어도 의미가 달라지니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옥청 진인은 법기를 넘기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홀로 남겨진 심통은 창가로 다가가 맞은편 봉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승인 옥청 진인이 탐내는 삼백 자 법문을 생각하니 연적하가 떠올랐다.
그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자신에게 삼백 자 법문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도 사제지간도 아닌 상태에서.
아니, 그때는 오히려 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오봉산채를 집어삼키려다 실패하고 어정쩡하게 남아 있을 때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게 삼백 자 법문을 아낌없이 가르쳤다.
어찌 보면 원수에 가까운 사이였는데 그랬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연적하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그를 따르게 되었지만 지금도 모르겠다.
그가 왜 구천현녀에게 배웠다는 그 귀한 법문을 아낌없이 퍼 주었는지.
“이상한 사람이란 말이지.”
삼백 자 법문에 욕심내는 옥청 진인과 함께 지내려니 연적하의 행동이 더 크게 느껴진다.
“연 공자, 어디에 있는 거요?”
오늘따라 그가 그립다.
죽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더 봤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원영에 경지에 올라 그를 다시 만나고 싶기도 했다.
그가 고마우면서도, 그의 위에서 보고도 싶으니 사람 마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보름이 더 지났다.
무망각에 앉아 내부를 관조하던 심통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산 위로 달려 올라갔다.
옥청 진인이 ‘천지뢰행(天地雷行)’의 검법을 시전해 보였던 그 봉우리다.
심통은 정상에 올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며칠 전부터 백회혈이 간질간질하더니 오늘 갑자기 활짝 열렸다.
아까부터 숨만 쉬어도 백회혈이 화끈거리더니, 이젠 아예 달구어진 꼬챙이로 찌르는 느낌이다.
꼬챙이는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머리통을 들락거렸다.
그럴 때마다 몸이 뜨거워졌고, 더는 견디기 어려워 얼어붙은 산 위로 올라왔다.
평소 같으면 오래 나와 있지도 못할 날씨인데, 몸은 점점 달아올랐다.
의아한 마음에 손을 들어 보니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고 있다.
이제는 피부까지도 검붉게 변했다.
이러다가 녹아내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혹감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이 맞은편 절벽으로 향했다.
‘천지뢰행’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문득 ‘천지뢰행’의 구결을 떠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백회혈의 열기가 반응했다.
열기가 ‘천지뢰행’의 구결에 따라 온몸을 한 바퀴 돌았다.
마침내 열기가 장심(掌心, 손바닥 한가운데)에 이르자 심통은 벼락처럼 유엽도를 뽑았다.
몸속의 열기를 내뿜어야 살 것 같았다.
그는 열기를 유엽도로 밀어 넣으며 허공을 향해 난폭하게 휘둘렀다.
쿠르르-.
허공에서 짧은 우렛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세 가닥 검강이 맞은편 절벽에 내리꽂혔다.
꽈과광!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뢰(雷) 자가 부서졌다.
그래도 흉중의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심통은 미친 사람처럼 연거푸 허공에 칼질을 해 댔다.
세 가닥, 네 가닥, 다섯 가닥…….
마침내 열 개의 진검강이 절벽에 떨어졌다.
‘천지뢰행’의 글자는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깎여 나갔다.
열 개의 진검강을 흩뿌리자 열기는 겨우 수습이 됐다.
영기를 소진하고 헐떡거리는 심통의 뒤로 옥청 진인이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장하다. 이제야 천문(天門)을 열었구나. 진검강은 그처럼 천문을 열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절기니라. 네가 열 개의 진검강을 썼으니 이제 원영 일 성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입문 단계를 건너뛰어 바로 일 성에 도달하다니, 가히 하늘이 내린 재능이다.”
심통이 멍한 눈으로 옥청 진인을 보았다.
뜨거워서 한바탕 난리를 친 것 같은데 원영에 도달했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스승님, 제가 원영에 도달한 겁니까?”
“말하지 않았더냐. 진검강을 하나라도 쓰면 원영의 경지라고. 그런데 너는 무려 열 개의 진검강을 썼으니, 입문을 지나 일 성의 성취를 이루었느니라. 삼천(三天)이 되는 길에 첫걸음을 내딛은 셈이지.”
“정말 원영이라고요? 보름 후에 죽지 않아도 되는 거 맞습니까?”
“너는 모르겠지만 네 양미간에 어려 있던 사기(死氣)가 사라졌다. 삼백 년의 수명이 늘어났으나 그렇다고 방심하지 마라. 나도 독요에 오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칠백 년이 지났다. 앞으로 이백 년 안에 현 인이 되지 못하면, 티끌이 되어 사라지고 말 테지. 우리 앞에는 ‘존재하느냐? 죽어 사라지느냐?’만 있을 뿐이다.”
허허로운 옥청 진인의 얼굴을 보고 심통은 크게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오래 살수록, 살고 싶다는 욕망은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자신만 봐도 그랬다.
늙어 죽을 때가 되었지만 더 살고 싶었다.
‘독요’에 올라 구백 년을 더 살게 된 옥청 진인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루살이든, 구백 년을 살고 죽든, 죽으면 말짱 황인 거다.
‘쌍놈의 거, 그냥 삼천의 신이 되어야겠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더니.
자신을 ‘왕들의 하늘’로 보내 준 팔황신모가 고맙기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