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70
570회. 양도(兩道), 두 개의 길
공지유는 세 명의 사내와 장지안의 정확한 관계를 몰랐다.
장지안과 말을 많이 나눈 것도 아니고, 시비가 있은 뒤로는 장지안이 피해 다녔기 때문이다.
죽은 장지안이 ‘비승과해’에 참가하러 가던 중이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전부다. 그녀는-연적하를 제외한-남자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에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제까지 피해 다니던 사람들이 갑자기 뒤를 따라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지유는 사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왜 따라오는지 알고 싶어서다.
그런데 세 남자는 벙어리가 된 것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점원에게 주문할 때를 제외하면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유지했다.
‘뭔가 있구나!’
아무리 봐도 사내들의 행동은 수상쩍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다가가 ‘왜 따라오느냐?’ 물을 수도 없는 노릇.
공지유는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서만 고민했다.
평소와 다른 그녀의 행동은 금방 연적하의 눈에 띄었다.
“왜 그래요?”
“네?”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은 것 같아서요. 어디 불편한 데 있어요?”
“그런 거 없어요.”
“그래요?”
연적하는 더 묻지 않았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갑자기 공지유의 식사 속도가 빨라졌다.
그녀는 후다닥 그릇을 비우고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평소의 차분하던 것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그 바람에 연적하도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끝냈다.
물로 입가심을 하고 한숨 돌리려는 연적하에게 공지유가 말했다.
“가요.”
“차도 안 마시고요?”
“물 마셨으면 됐죠. 제가 뭘 좀 알아볼 게 있어서 그래요.”
“그래요?”
공지유의 채근에 연적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봉산에서 토벌대와 싸울 때도 식사만큼은 여유 있게 먹었는데 참 별일이다.
식당을 나간 세 사람은 공도를 따라 서쪽으로 부지런히 이동했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일까?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석양에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공도 좌우편을 살피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표지목이 안 보이네. 가까운 곳에 마을이 없나 본데 노숙을 해야 하나?”
노숙이라는 말에 정덕행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노숙을 하면 음식뿐 아니라 잠자리까지 준비해 줘야 하는 까닭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공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가도 인가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쉴 곳을 찾는 게 낫겠는데요?”
“역시 그런 것 같죠?”
연적하는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좌우편으로 계속 첩첩산중이라 사람 사는 곳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연적하는 아늑한 자리를 찾아 짐을 풀었다.
정덕행은 불을 피워 요리를 하는 한편, 세 사람의 잠자리까지 준비했다.
그래도 연적하는 그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에게 잔소리를 해 댔다.
“정 형, 국이 짜다.”
“아, 예, 주의하겠습니다.”
수고한 보람도 없이 지적질을 받았음에도 정덕행은 미친놈처럼 실실 웃었다.
‘정 씨’라던 그가 드디어 ‘정 형’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정덕행은 연적하가 상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호칭이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경험에 의하면 ‘정 씨’는 위험한 호칭이다.
거기서 한풀 꺾인 게 ‘정 형’이다.
예컨대 자신을 야수에게 던질 때 ‘정 씨’라고 했지만, 그 일이 끝난 뒤에는 ‘정 형’이라 불렀다.
“짜다는데 뭘 그렇게 좋아해?”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더 잘 만들겠습니다.”
정덕행은 얼른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괜히 그의 비위를 건드렸다가 다시 ‘정 씨’ 소리를 들을까 봐 겁이 나서다.
연적하가 식사를 마칠 즈음에는 이미 주변이 어두워진 뒤였다.
그때 멀리서 두런두런 남자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도경 일행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연적하가 빤히 바라보자 한도경이 변명하듯 말했다.
“불빛이 보여서 와 봤습니다. 이곳에서 쉬고 계신 줄은 몰랐네요. 그럼 이만.”
한도경과 두 사내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떠났다.
곧이어 공도 건너편 어둠 속에 작은 불빛이 생겨났다.
가까운 곳에서 노숙을 할 모양이다.
새로 생긴 불빛을 응시하던 공지유가 신경 쓰인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상하다니까요.”
“뭐가요?”
“우리가 맞는지 확인하고 간 느낌이 들어서요.”
“에이, 설마요.”
연적하는 그녀가 조금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저들이 불우산으로 가고 있다면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지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항상 우리보다 앞서갔잖아요. 그러던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 주변을 맴도는데, 이상하지 않으세요?”
“목적지가 같으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는 거겠죠. 저 사람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 이유가 없잖아요.”
“그럴 이유가 없는데 그러니 이상하다는 거예요. 지금도 굳이 우리를 확인하고, 가까운 곳에서 노숙을 하잖아요.”
그러자 솥단지와 그릇을 정리하던 정덕행이 한마디 했다.
“사매, 밤중에 불빛이 보이면,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는 게 당연한 거야. 현천문에서 그렇게 배웠잖아.”
“…….”
공지유는 반박하지 못했다.
과거 자신도 현천문도들과 노숙을 할 때 그랬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연적하는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럴 때 보면 정덕행도 제정신이 박힌 사람 같기도 하다.
***
조양성.
천벽현.
연적하 일행과 한도경 일행은 무려 칠 일간이나 동행 아닌 동행을 했다.
그쯤 되자 매사에 긍정적인 연적하도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피차 원만한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날짜가 촉박한 것도 아닌데, 너무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점심 무렵.
공도 옆의 허름한 주막.
간단하게 국밥으로 끼니를 해결한 연적하가 뒤쪽을 힐끔 보았다.
세 남자가 열심히 국밥을 먹고 있었다.
무량하를 함께 건넌 이후로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 이젠 일행 같은 느낌이다.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가 정덕행에게 물었다.
“정 형, 갈림길이 어디에 있다고 했지?”
“반나절만 더 가면 양도(兩道)라는 마을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양도라. ‘두 개의 길’이라는 뜻인가 보네?”
“예, 양도에 수미성으로 넘어가는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옥이고, 다른 하나는 천당이지요.”
“지옥과 천당이라고?”
“예, 조양성과 수미성 사이에는 갈마산맥이 있습니다. 양도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이 갈마산맥을 일직 선으로 관통하는 협곡이 나옵니다. 하루면 그 협곡을 지날 수 있는데, 야수를 만나면 피할 길이 없어 일명 ‘죽음의 회랑’으로 불립니다. 그래서
지옥이라고 합니다.”
“아하!”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협곡에서 야수를 만났으니 외통수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리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죽음의 회랑’이라니.
‘그 길로 다니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은 양도 남쪽에 있습니다. 갈마 산맥의 험지를 우회하는 길인데, 사흘이 걸리지만 북쪽 길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천당이라고 불릴 정도로요. 저도 삼 년 전에 이 길로 갔는데, 딱 한 번 멀리서 초목급 야수를 본 게 전부였습니다.”
“헐! 사흘 동안 산맥을 관통하는데 초목급 야수 한 마리를 봤다고?”
“예. 교역을 위해 천벽현에서 주기적으로 야수를 토벌해 준다고 들었습니다.”
“아하! 조금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게 다니라 이건가?”
“그렇습니다.”
“양도라. 재밌네.”
연적하가 눈을 반짝였다.
양도에서 ‘죽음의 회랑’이 있는 북쪽 길로 가도 저 사내들이 따라올까?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연적하의 표정을 본 공지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 대협, 설마 이상한 생각 하시는 거 아니죠?”
“이상한 생각이라뇨?”
“아뇨, 그냥 갑자기 느낌이 싸해서 여쭤 보는 거예요. 우리 남쪽 길로 가는 거 맞죠?”
정덕행이 놀란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기껏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공지유는 왜 저런 소리를 할까?
“날짜도 넉넉하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거듭된 공지유의 질문에 연적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지? 남쪽으로 가겠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정덕행은 감히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두 사람의 눈치만 살폈다.
“연 대협?”
역시 공지유다.
그녀는 연적하가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정덕행은 속으로 공지유를 응원했다.
‘그래, 끝까지 파고들어. 연적하가 어영부영 넘어가지 못하게 하라고.’
그제야 연적하가 마지못한 얼굴로 답했다.
“음, 그건 양도에 가서 생각해 볼게요.”
“네? 생각해 보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요? 우린 서두를 이유가 없고, 남쪽 길이 현에서 관리하는 안전한 길이라는데. 천당을 두고 굳이 지옥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공지유가 황당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아무리 그의 무위가 높다 해도 그건 만류하고 싶었다.
아니, 만류하는 게 옳았다.
천벽현에서 관리하는 안전한 길을 두고 굳이 ‘지옥의 회랑’이라니?
그러자 연적하가 나직이 말했다.
“저 사람들이 우리를 따라오는 거 같다고 한 말 기억나요? 양도에서도 그러는지 보려고요.”
“아무리 그래도 북쪽 길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궁금하면 그냥 붙잡고 물어봐도 되잖아요.”
“물어보면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죠. 그럼 어떻게 해요? 우리가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때려요? 따라오는 게 무슨 죄라고.”
“그건 그렇지만…….”
공지유는 말을 흐렸다.
맞다.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물며 목적지가 같음에야, 그걸 ‘왜 따라오냐?’고 따지는 쪽이 이상한 거다.
“만약 북쪽 길까지 오면 정말 문제가 있는 거죠. 목숨 걸고 쫓아올 정도로 뭔가 있다는 거니까. 뭐, 거기서는 남쪽 길로 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단지 그걸 알기 위해서 북쪽 길로 가겠다는 것도 좀 심한 거 아닌가요?”
“그곳에 빠른 길이 있고, 갈 능력이 되니까, 가 볼까? 생각해 본 거예요.”
‘갈 능력이 된다’는 말에 공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마물인 독안귀마까지 퇴치한 그의 눈에 갈마산맥의 야수가 보이기나 할까.
자신이야 ‘지옥’이니 ‘죽음의 회랑’이니 하는 말에 지레 겁을 집어먹었지만, 그는 별 느낌도 없었을 것이다.
“아, 그러시구나. 그렇다면 뜻대로 하세요. 하기야 빠른 길을 두고 굳이 돌아가는 것도 좀 그러네요.”
“그렇죠?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길이니까 어쩌면 영지 선초가 바글거릴지도 몰라요.”
“훗! 저 사람들은 핑계고, 실은 영지 선초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은데요?”
“반반이에요. 산맥이라고 불릴 정도면 영지 선초를 기대해도 되겠죠?”
그러자 정덕행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연 대협, 남쪽으로 가도 갈마산맥을 통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쪽은 틀렸어.”
“예? 무슨 말씀이신지?”
“상인들이 다니고, 주기적으로 현에서 토벌을 나간다면서? 그런 곳에 영지 선초가 남아 있겠어? 눈이 닿는 곳에 있는 것들은 이미 다 캐 갔을 거라고.”
“남쪽 길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험준한 산길입니다. 상인들과 관병이 다니면서 죄다 캐 갔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솔직히 그는 북쪽 길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위험한 곳에 등짐을 가득 지고 들어갈 걸 생각하면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자아, 이제 그만 일어나 볼까나! 해가 있을 때 양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겠는데?”
생사의 갈림길을 앞에 두고 그는 마치 나들이 나온 사람처럼 굴었다.
‘개놈아,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좀 들어 처먹는 시늉이라도 해라.’
정덕행은 벌써부터 땀이 차오르는 손으로 뻑뻑한 무릎 관절을 부지런히 주물렀다. 여차하면 믿을 건 두 다리밖에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