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71
571회. 움직임에는 때가 있다.
연적하 일행이 주막을 떠나자 한도경은 슬그머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호위, 유소삼이 침중한 어조로 운을 뗐다.
“들었소? 양도(兩道)에서 어디로 가느냐를 두고 떠드는 것 같던데…….”
그러자 또 다른 호위, 등심리가 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남쪽 길로 갈 게요. 수미성은 죄다 그 길로 다니니까.”
“그런 것치고는 북쪽 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소?”
“그게 다 허세외다. 막상 양도에 가면 군말 없이 남쪽으로 갈 거요.”
등심리는 기본적으로 연적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소요종의 제자라면 모를까?
일반인들에게 ‘죽음의 회랑’은 말 그대로 지옥인 까닭이다.
“한 형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유소삼의 질문에 한도경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되물었다.
“우리 생각이 중요하오? 유 형은 그자가 북쪽으로 가면 안 따라갈 거요?”
유소삼은 답하지 않았다.
삼 공자의 죽음은 즉, 호위의 실패다.
그들이 주천비를 만나러 가는 것은 그걸 연적하의 탓으로 돌리기 위함이었다.
그것과 ‘죽음의 회랑’을 통과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한 형은 끝까지 연적하를 뒤따라 갈 작정이오?”
“우리는 석경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오. 만에 하나 연적하가 불우산으로 가지 않고 사라져 버리면? 주 대협과 장 현령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소?”
“한 형은 연적하가 다른 곳으로 샐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오?”
“사람 속을 어찌 알겠소?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더러운 꼴 참아 가며 뒤따르는 게 아니었소?”
잠자코 듣고 있던 등심리가 한마디 했다.
“그래도 ‘죽음의 회랑’까지 따라가는 건 아닌 것 같소. 물론 연적하의 행선지를 끝까지 확인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나……. 이미 삼 공자님도 죽은 마당에, 우리 목숨까지 걸 건 없지 않소?”
너무 무리하지 말자는 얘기다.
한도경이 복잡한 눈으로 등심리를 보았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소. 그런데 말이오. 연적하가 돌연 잠적하면, 등 형은 뒷감당을 할 수 있겠소?”
“흐음.”
등심리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연적하가 사라지면 삼 공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호위들이 져야 한다.
장 현령의 불같은 성품을 생각하면 그것도 ‘죽음의 회랑’만큼이나 끔찍한 일이었다.
한도경이 유소삼과 등심리를 스쳐 지나며 말했다.
“아무튼 일단 갑시다. 여기까지 와서 연적하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
천벽현.
양도.
해거름 무렵, 양도를 두르고 있는 성벽으로 이 남 일 녀가 접근했다.
연적하와 공지유, 정덕행이다.
거대 도시에나 있음 직한 석벽을 보던 연적하가 정덕행에게물었다.
“정 형, 양도가 조양성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지 않았어?”
“예, 맞습니다.”
“그런데 웬 성벽이야? 저건 산음현보다 더 큰 것 같은데?”
“워낙 유동 인구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수미성을 오가려면 양도를 거쳐 가야 하니까요.”
“와아! 나는 변두리의 작은 마을이려니 생각했는데 장난 아니다?”
“관병들도 많이 옵니다. 지금쯤이면 한창 관병들이 남쪽 길의 야수를 토벌하고 있을 겁니다. ‘비승과해’에 맞춰 토벌을 하곤 했으니까요.”
“그렇구나. 이래서 말로만 들으면 모른다니까.”
연적하의 시선이 성문을 지키는 관병에게로 향했다.
무슨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겨우내 자경단 생활을 해서 그런지 성문의 경계태세에 절로 눈길이 갔다.
성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것은 까다롭지 않았다.
관병들은 오가는 사람의 얼굴만 쏙 쳐다보고 대부분 통과시켰다.
연적하 일행도 사람들 틈에 섞여 양도로 들어갔다.
성벽 안쪽의 양도는 산음현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와아! 엄청나다. 이게 무슨 변두리 마을이야? 성주가 사는 곳이라고 해도 믿겠다.”
“그러게요.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큰데요?”
연적하와 공지유는 도시를 처음 본 시골 사람처럼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번화가로 접어드니 길 좌우편으로 고층의 전각들이 즐비했다.
“공 소저, 더 어두워지기 전에 객점부터 찾아야겠어요.”
“네.”
다행히 객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유동 인구가 많다고 하더니 길가에 널린 게 객점이었다.
연적하는 그중에서 가장 크고 깨끗해 보이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대붕객점.
연적하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정덕행과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저녁 식사 시간이 임박한 터라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다행히 창가 쪽에 빈자리가 보였다.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밀물처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연적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정 형, 봤지? 이런 게 바로 ‘동선시(動善時)’라는 거야. 검법의 고수가 되려면 이 동선시를 잘 알아야 해.”
“동선시가 뭡니까?”
현천문의 제자인 정덕행은 ‘동선시’라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움직임에는 때가 있다’는 뜻이야. 때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이거지.”
“아, 때…….”
“치고 들어갈 때, 물러날 때, 봐 봐. 우리가 자리를 잡자마자 아슬아슬하게 사람들이 몰려오잖아. 검법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때맞춰 선수를 친 거야. 이렇게 좋은 자리가 거저 생기는 줄 알아?”
정덕행은 여기에 왜 검술의 이치를 가져다 붙이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공지유가 내려와 합류했다.
“용케 좋은 자리를 잡으셨네요?”
“운이 좋았어요.”
정덕행이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자신에게는 ‘동선시’라고 하더니 지금은 또 운이 좋아서란다.
오락가락하는 그의 말에 정덕행은 ‘동선시’의 가르침을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웠다.
자리는 남들보다 한발 앞서 잡았지만 음식은 금방 나오지 않았다.
손님들이 비슷한 시간에 우르르 몰려든 탓이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연적하 일행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빈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합석을 해도 되겠습니까?”
연적하는 공지유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녀가 불편해하면 거절할 생각이었다.
연적하가 바라보자 공지유는 고개를 까닥였다.
주루라면 모를까?
식당에서의 합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제야 연적하는 일행을 대표해 말했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사내는 정덕행의 옆에 앉자마자 간략하게 자신이 누군지 밝혔다.
“저는 최선상단의 조장(組長)인 진염백입니다.”
연적하가 공지유에게 슬쩍 상체를 기울였다.
상단의 조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다.
눈치 빠른 공지유는 그가 미처 묻기도 전에 먼저 설명했다.
“상단마다 무장 조직을 가지고 있어요. 가장 위가 대장, 그다음이 부장, 마지막이 조장이죠. 조장은 열 명의 사병을 지휘하는 자리예요.”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진염백에게 일행을 소개했다.
“나는 석경장의 장주인 연적하고, 이쪽은 현천문의 공 소저, 그리고 저 사람은 우리의 짐꾼이자 요리사예요.”
진염백이 기이한 눈으로 세 사람을 살폈다.
석경장, 현천문, 짐꾼 겸 요리사.
출신 배경이 각기 다른 이 세 사람은 어쩌다 함께 다니게 된 걸까?
“아, 석경장과 현천문의 분이시군요. 수약주의 무인이 양도에 오는 일은 한 가지뿐인데, 혹시 두 분도?”
진염백의 질문에 연적하가 답했다.
“맞아요. ‘비승과해’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에요.”
“헛! 제 예측이 맞았군요. 이거 영광입니다. 양도에 자주 들렀지만 ‘비승과해’ 참가자 분들과의 겸상은 처음입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 뭐…….”
연적하는 계면쩍은 얼굴로 말을 흐렸다.
‘비승과해’에 참가한다고 소요종 제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영광씩이나.
“이번에는 불우산까지 좀 수월하게 가시겠습니다? 이것도 다 좋은 징조겠지요?”
“예?”
연적하가 무슨 소린지 몰라 눈을 끔뻑이자 진염백이 설명하듯 말했다.
“저희 최선상단과 금왕상단, 신주상단이 ‘비승과해’에 쓸 물품의 배송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날짜가 촉박하다고 소요종의 고수분들이 마중을 나왔지 뭡니까? 그분들 덕분에 이번에는 북쪽 길로 가게 될 모양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공지유가 급히 끼어들었다.
“‘죽음의 회랑’으로요?”
“예, 소요종 고수들이 호위를 해 주시겠다고 하니 천금 같은 기회지요. 덕분에 양도의 상인들까지 아주 잔치 분위기입니다. 그 좋은 소식을 모르셨다니, 양도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입니다?”
“예, 조금 전에 도착했어요.”
“하늘이 도우시나 봅니다. 내일 아침에 세 개 상단이 출발할 예정입니다. 이참에 ‘죽음의 회랑’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봐 두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그 길로 다닐 일이 없으니까요.”
“그렇겠네요.”
공지유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연적하의 무위를 믿고는 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그가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자신과 정덕행은 사망 확정이다.
비록 연적하가 세운 계획은 엉망이 됐지만, 그래도 안전이 우선이었다.
공지유는 슬쩍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희희낙락한 정덕행과 달리 연적하는 똥 씹은 얼굴이었다.
‘연 대협, 미안해요. 이번에는 나도 정 사형과 같은 생각이에요.’
그러는 동안 음식이 나왔다.
늦게 합석한 진염백의 것까지 함께 내오자 연적하가 점원을 불러 세웠다.
“소형제, 잠깐.”
“예? 뭐 더 필요하신 거라도?”
“우리는 아까부터 기다렸고, 진 형은 조금 전에 합석했는데, 음식은 왜 같이 나와?”
“예?”
연적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점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저 온 사람의 음식이 먼저 나왔어야 하는 거잖아.”
그제야 그의 불만을 알아차린 점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주방에서 일행이신 줄 알고 음식을 같이 준비한 모양입니다. 오래 기다리셨는데 죄송합니다.”
점원이 머리를 꾸벅 숙였다.
연적하는 답답한지 손가락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어째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음식의 순서도, 북쪽 길도, 순전히 타의에 의해 제멋대로 굴러간다.
그렇다고 애꿎은 점원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
그는 손짓으로 점원을 돌려보냈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지자 진염백이 뻘쭘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나 때문에 괜히 연 소협이 손해를 보았군요. 미안해서 어쩐다.”
“괜찮아요. 살다 보면 덕 보는 사람도 있고, 손해 보는 사람도 있으니까.”
연적하는 애써 마음을 수습했다.
하지만 진염백은 자신의 합석으로 생긴 일이라 어떻게든 갚고 싶었다.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소요종 고수를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게 해 주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는 연적하가 당연히 응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운이 따르면 소요종 고수와 교분을 나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됐어요. 뭐 볼 게 있다고 그런 짓을 해요.”
단호한 거절에 진염백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짓이라니?
꼭 ‘비승과해’가 아니더라도 소요종 고수를 알아 두면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는데 거절하다니?
‘쯧! 아직 철이 덜 든 애송이구나.’
진염백은 더 이상 그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만 봐도 안다’고 하지 않던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나, 고작 음식으로 점원을 타박한 걸 보면 인물은 아니다.
평소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대충 음식을 먹고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공지유가 뚱한 얼굴로 음식을 깨작이고 있는 연적하에게 넌지시 물었다.
“내일 아침에 상단과 함께 가실 거예요?”
“공 소저 마음대로 해요. 난 이제부터 계획이라는 걸 하지 않기로 했어요. 힘들게 머리 굴려 봐야 그대로 되는 것도 없고.”
어딘지 자조적인 그의 말에 공지유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연 대협은 계획 같은 거 필요 없잖아요.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데, 굳이 계획을 세우고 싶으세요?”
그렇지 않아도 귀가 얇은 연적하다.
툭 튀어나왔던 입이 들어가고 다소 삐딱하던 눈매도 부드러워졌다.
“아침에 상단들과 함께 가죠 뭐. 겸사겸사 소요종 제자들 구경도 좀 하고.”
“잘 생각하셨어요.”
공지유가 연적하를 다독였다.
이럴 때 보면 참 다루기 쉬운 남자인데, 왜 그렇게 다가가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