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72
572회. 피차 신경 쓰지 말자고요
다음 날 아침.
양도의 북문에 약 삼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가 북쪽 길로 가기 위해 모인 상인과 상단의 호위들이다.
이처럼 대규모의 사람들이 북쪽 길로 가려고 모인 것은 양도가 생겨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질서 정연했다.
그 중심에는 최선상단, 금왕상단, 신주상단이 있었다.
세 개 상단 뒤에 소요종 고수들이 있었기에 외부인들은 자발적으로 세 개 상단의 지시를 따랐다.
물론 모두가 다 세 개 상단의 지시를 따른 것은 아니다.
세 상단의 호위들이 양도에서 합류한 상인들을 한쪽으로 따로 불러 모았다.
최선상단의 부장(副將)인 원천석이 타지 상인들에게 행동 요령을 가르쳤다.
“잘 들으시오! 여러분이 우리 상단의 뒤를 따라오는 것은 막지 않겠소! 그러나 어디까지나 우리 상단이 먼저 가고, 여러분은 뒤를 따라와야 하는 거요! 만에 하나 저 사람들처럼 상단보다 먼저 가려고 하면 안 되오! 상단 앞에서 얼쩡거리면 안 된다는 말이오! 아시겠소?”
원천석이 북문을 가리켰다.
때마침 이 남 일 녀가 관병들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 아침에 북문으로 나가는 상인이 없다 보니 그들의 행동이 더 두드러져 보였다.
“알겠습니다.”
“거참! 눈치 없는 사람들이로세. 티 안 나게 뒤를 따라가야지, 무슨 주제로 앞장을 서?”
“저런 사람들은 좀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 차린다니까.”
“저희는 절대 저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상인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원천석이 슬쩍 겁을 줬다.
“우리 상단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보호해 주지 않을 겁니다! 보호받고 싶으면 얌전히 뒤를 따라오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예!”
“당연하지요!”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상인들은 큰 소리로 대답한 뒤에 하나 둘 지고 있던 등짐을 내려놓았다.
세 개 상단이 움직인 뒤에 가려면 미리부터 힘을 뺄 필요가 없어서다.
상인들이 순순히 통제에 따르자 원천석은 조장들을 남겨 두고 북문으로 달려갔다.
세 개 상단에 묻어 가면서 감히 앞장서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다.
이 남 일 녀가 성문으로 다가오자 북문의 관병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멈추시오.”
연적하가 관병에게 다가갔다.
겨우내 성문의 관병들과 생활했던 그는 그리 불쾌한 얼굴이 아니었다.
“왜요?”
“보아하니 ‘죽음의 회랑’으로 가려는 것 같은데, 맞소?”
“맞아요.”
“허면 상단과 함께 가야지 왜 먼저 가려는 거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지 않소?”
연적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젊은 관병의 말투와 표정을 보니 걱정이 돼서 그러는 게 느껴져서다.
연적하가 대답하려고 할 때다.
뒤쪽에서 한 중년인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최선상단의 부장 원천석이었다.
관병의 앞에 멈춰 선 그가 말했다.
“나는 최선상단의 부장 원천석이오. 최선상단과 금왕상단, 신주상단이 소요종 고수들과 함께 ‘죽음의 회랑’을 건널 거외다.”
그러자 관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관병과 이야기를 끝낸 원천석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있는 이 남 일 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젊은 사람들이 이 무슨 경우 없는 행동인가? 세 개 상단에 묻어서 갈 요량이면 얌전히 뒤를 따라가야지. 저기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상인들을 보게. 저분들은 생각이 없어서 저러고 있는 줄 아는가?”
그의 말에 연적하가 반박했다.
“저기, 원 부장님. 우리는 묻어 갈 생각이 없는데요?”
“이런! 경우만 없는 게 아니었군. 다른 상인들에게 말했다시피 상단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보호해 주지 않을 걸세. 그래도 괜찮다면 앞서가게. 그것까지는 말리지 않겠네.”
원천석의 협박에 관병이 슬쩍 끼어 들었다.
“이쪽 분의 말에 따르도록 하시오. 상단에서 보호해 주지 않으면 산맥을 통과하지 못할 게요. 종문 고수들은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고 하지 않소?”
그의 말대로였다.
종문 고수들은 일반인의 생사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상단의 눈 밖에 나면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연적하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쩌면 서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바였다.
“원 부장님, 그러니까 상단이나 우리나 피차 신경 쓰지 말자 이거죠?”
“자네들이 앞서간다면 그렇게 되는 걸세. 소요종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상단의 뒤를 따라오게. 세상의 이치가 본래 그런 것이라네. 도움을 기대하면서 어찌…….”
원천석의 말이 길어지려 하자 연적하가 끊었다.
“그렇게 해요. 우리는 그냥 알아서 갈 테니까 피차 신경 쓰지 말자고요. 나도 상단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을게요. 됐죠?”
“…….”
원천석이 황당한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피차 신경 쓰지 말잔다.
양도에 모여 있던 백여 명의 상인들이 상단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보호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죽음의 회랑’을 가겠다면서 보호를 거부하다니?
‘객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말이 통하지 않자 원천석은 청년의 동행인들을 살폈다.
어디 하나 특별한 구석이 없는 구성이었다.
그나마 여자의 얼굴이 반반한 걸 빼면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애송이들이다.
이야기가 길어졌기 때문일까?
최선상단의 대장(大將) 금진이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대장님, 그게…….”
원천석은 그간의 일을 짤막하게 보고했다.
그러자 금진이 연적하 일행을 힐끔 보더니 ‘쯧쯧!’하고 혀를 찼다.
“원 부장.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너무 무르구먼. 그래 가지고 아랫사람들 잘 관리하겠어? 원 부장이 저치들의 친척이라도 돼?”
“아닙니다.”
“그런데 왜 남의 일에 신경을 쓰나? 죽고 싶다면 죽으라고 내버려 둬. 만리성에 기근이 들면 원 부장도 밥 굶다 죽을 거야? 그런 거 아니잖아?”
만리성은 조양성 북쪽 지역으로 땅이 척박해 먹고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굶어 죽는 이야기를 할 때면 만리성을 인용하곤 했다.
“예.”
“원 부장은 최선상단만 지키면 되는 거야. 왜 오지랖을 부리고 그래?”
“죄송합니다.”
원천석은 금진의 다그침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금진은 공지유만 한번 더 본 후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돌아갔다.
금진이 사라지자 원천석의 어깨가 다시 펴졌다.
“자네 때문에 나만 욕을 먹었군. 대장님 말씀 들었지? 죽고 싶다면 먼저 가도 좋네. 자네들이 죽어 나자빠져도 상단은 도와주지 않을 걸세.”
“네, 네, 절대 상단의 발목 잡고 늘어지지 않을게요. 그럼 먼저 갑니다?”
말과 함께 연적하는 휘적휘적 앞서 걸어갔다.
공지유가 원천석과 관병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정덕행만 미련이 남는지 가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원천석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저거 뭐 하는 놈이지? 장사꾼 같지는 않은데…….”
동행한 미모의 여자와 짐꾼을 생각하니 생각은 점차 한량으로 굳어졌다.
가끔 저런 애송이들이 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는 하룻강아지들.
그런 하룻강아지들의 운명은 야수의 밥으로 정해져 있다.
‘죽음의 회랑’이 무서운 것은 야수와의 만남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직선으로 뚫린 협곡 사이의 길이라 운도 작용하지 않는다.
양도의 상인들이 통제에 따르는 것도 앞서가면 가장 먼저 야수와 만나기 때문이다.
‘여자가 아깝군.’
혹시나 관병이 속물이라고 욕할까 봐 그건 속으로 말했다.
***
“저건 뭔가?”
소요종 고수 곽상문이 턱짓으로 성문을 빠져나가는 이 남 일 녀를 가리켰다.
최선상단 상단주 이곤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양도에 있던 자들 같습니다. 소요종의 신선들께서 북쪽 길로 간다는 것을 알고 끼어든 모양입니다.”
“감히 우리를 앞서가다니 염치 없는 자들이로군.”
“그렇지 않아도 상단의 대장들에게 통제를 하라고 일렀는데 송구합니다. 사람을 보내 행렬의 후미로 보내겠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게. 저들이 야수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보고 싶군.”
곽상문의 눈에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감히 소요종 고수보다 앞서갔으니 대가를 치르게 만들 셈이었다.
“예.”
이곤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가 인원 통제 실패의 책임을 물으면 곤란했는데 차라리 잘됐다 싶다.
“가지.”
곽상문은 이 남 일 녀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그들의 처참한 말로를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다.
곽상문과 다섯 명의 소요종 고수들이 걸어가자 그 뒤를 짐마차와 짐꾼들이 따라갔다.
소요종의 본산인 불우산에는 일궁(一宮), 삼전(三殿), 팔각(八閣)이 있다.
본래 십이각이었는데 오백 년 전 천지종과의 싸움에서 오각을 잃고 팔각이 남았다.
곽상문은 그중에서도 ‘제행각(諸行閣)’에 속한 ‘원영’의 고수였다.
제행각은 속세와 소요종을 잇는 다리와도 같았다.
소요종의 고수라고 해서 속세와 완전히 연을 끊은 것은 아니다.
속세가 야수와 마천(魔天), 수인(獸人)들의 침탈 때문에 종문을 필요로 한다면, 종문 제자들은 속세의 공양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도와주고, 기부금을 받는 셈이다.
성주나 현령 들은 끊임없이 종문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때마다 종문에서는 적당한 제자를 파견했다.
속세에 파견 나가고 싶어 하는 제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제행각’이었다.
그럼 속세를 떠난 종문 제자들은 왜 제행각에 이름을 올렸을까?
소요종뿐 아니라 종문에서는 제자들을 공짜로 부려 먹지 않았다.
종문의 제자들은 성과에 따라 포상을 받았다.
포상은 일의 난도에 따라 ‘갑을병(甲乙丙)’으로 나뉘었는데, 최하위인 병(丙)에는 ‘황금’, 을(乙)에는 ‘혼석’, 갑(甲)에는 ‘영석’이 지급됐다.
‘혼석’과 ‘영석’은 영기를 늘리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최상급의 보물이다.
그렇다면 황금은?
속세와 거리를 둔 종문 제자들에게 황금이 필요한가?
정답은 ‘필요하다’이다.
종문의 제자들은 영기를 늘리기 위해 ‘영지 선초’나 ‘내단’을 구매해 복용했다.
그런 이유로 후원자가 없는 소요종 제자들은 ‘제행각’에 몰려들었다.
참고로 영지 선초와 내단의 도움을 받는 것은 딱 ‘원영’까지다.
‘독요’부터는 ‘영지 선초’나 ‘내단’으로 영기를 늘리기 어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복용해 봐야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혼석’과 ‘영석’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평범한 소요종 제자가 ‘혼석’과 ‘영석’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제행각’이 아니라 ‘무상각’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무상각’에서 맡기는 일의 난도는 말할 수 없이 높아서, 독요 이상의 고수만 받았다.
위험할수록 보상이 큰 셈이다.
그러므로 소요종 고수의 소속만 알아도 그의 무위를 얼추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아래가 ‘제행각’이고, 그 위가 ‘무상각’이며, 나머지도 최소한 ‘무상각’보다는 윗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오늘 양도의 곽상문이 무리 중에 최고수라는 말도 된다.
다섯 명의 소요종 고수들은 곽상문보다 무위가 떨어졌고, 그러다 보니 곽상문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소요종 고수 이휴는 곽상문의 안색을 슬쩍 살폈다.
이 남 일 녀를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는 걸 보니 꽤나 불쾌한 모양이다.
하기야 무슨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상단과 아무 상관도 없는 젊은것들이 계속 앞에서 알짱거리니 그럴 만도 하다.
‘죽음의 회랑’으로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더 눈에 띈다.
‘야수를 만나면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고 했지만 그때까지 갈 분위기가 아니다.
‘내가 걷어 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