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79
579회. 내 손에 있는 건 다 내 거다.
우두커니 서 있던 원요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누가 자신을 탈탈 털어 갔는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그는 마구간 밖으로 튀어 나가 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트기 직전의 어스름함이 느껴졌다.
‘제길! 서둘러야겠군!’
원요는 세 개 상단이 간 서쪽으로 미친 듯 달렸다.
그는 곽상문 진인에게 욕심 많은 사람으로 찍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소요종 고수들이 깨어나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연허 팔 성’의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는 어스름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삼십 리(약 12킬로미터) 길을 돌아갔다.
도화촌.
원요는 소리 없이 대망객점의 담을 넘어갔다.
새벽부터 일꾼들이 마당을 돌아다녔지만 그를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그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다.
“새벽부터 어딜 그렇게 다니는 것이냐?”
흠칫 놀란 원요는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새 뒤에 곽상문이 서 있었다.
‘이런 제길. 들켰구나.’
곽상문의 눈빛은 담담했지만 기이하게 온몸이 난자당하는 느낌이다.
“잠시 백산현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잠시는 아니다.
어젯밤에 나가서 이제 돌아왔으니까.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잠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다녀오려다가 기절하는 바람에 늦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연적하를 만났더냐?”
“……예.”
곽상문이 야릇한 눈으로 원요를 살폈다.
흐트러진 머리에 황망한 표정을 보니 크게 낭패를 당한 것 같았다.
“대화가 잘 안 되었나 보구나.”
순간 원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소요종의 제자가 ‘비승과해’ 참가자에게 패했으니 이런 개망신도 없었다.
“제가 방심하는 바람에…….”
“그의 무위가 어느 정도나 되는 것 같더냐?”
“반각 동안 검을 나누었으나 한 번도 승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연허 십 성’이라 사료됩니다.”
“만약 그가 너를 상대로 전력을 기울인 게 아니라면? 그래도 ‘연허 십 성’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
“그의 나이가 이제 이십 대 초반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일반인이 스스로 ‘원영’의 경지에 오른 예는 없지 않습니까?”
원요는 곽상문이 연적하를 너무 높게 평가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원영’은 지나친 비약이었다.
원요의 반문에 곽상문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확실히 원요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나이도 그렇고, 구주의 역사상 일반인이 ‘원영’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원영은 반선(半仙)의 경지로 종문의 비전이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반각 동안 검을 나누었다면서 왜 지금에야 온 것이냐?”
“실은 정신을 잃었다가 조금 전에 깨어났습니다.”
“정신을 잃어?”
곽상문이 기막힌 눈으로 원요를 보았다.
그건 승기를 잡지 못한 게 아니라 완전한 패배인 까닭이다.
승기를 잡지 못한 것과 맞아 기절한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이렇게 되면 ‘연허 십 성’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원요는 고개를 떨구었다.
여기서 물건마저 강탈당했다고 하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할 게 분명했다.
“쯧!”
혀를 차던 곽상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우두커니 서 있던 원요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난 며칠간 그의 제자가 되는 꿈을 꿨었는데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단검에 욕심내지만 않았어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왜 곽상문이 이 새벽에 나와 있었는지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
백산현.
날이 밝자마자 연적하는 근처의 무구상을 찾았다.
강호와 달리 구주에서는 무구상에서 무기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구주에서 아홉 개의 종문에 맞설 단체는 없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 불리는 성주조차 해마다 종사에게 공물을 바친다.
역모나 반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자기들끼리 툭탁거리다 마는 정도다.
당연히 무기 소지를 금지시킬 수 있을 정도의 권력자가 나올 리 없다.
거기다 도처에 들끓는 야수를 생각하면 무기의 소지는 논란거리도 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무구상이 있었다.
오죽하면 ‘시골에 호미보다 도검이 더 많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검을 이리저리 살피던 주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손님, 이런 명검을 왜 처분하려고 하십니까?”
“돈이 필요해서요.”
“아…….”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현답이었다.
애초에 뭔가를 팔려고 할 때는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겠는가.
“손님의 물건이 맞으시겠지요?”
주인이 청년의 아래위를 슬쩍 살폈다.
명검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행색이라 조금 마음이 찜찜했다.
“아저씨.”
“예?”
“‘내 손에 있는 건 다 내 거다’라는 말 몰라요?”
“아, 예, 물론 그렇습죠. 제가 바보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금 다섯 냥에 사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좋아요.”
연적하는 간밤에 얻은 검을 처분하고 유유히 객점으로 돌아갔다.
식당에 나와 앉아 있던 공지유는 연적하가 들어오자 반색을 하고 맞이했다.
“연 대협, 아침은 드셨어요?”
“이제 먹으려고요.”
연적하가 공지유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공지유는 그가 아침도 거르고 돌아다니다가 왔음을 알았다.
“급한 일이 있었나 봐요?”
“뭘 좀 파느라고요.”
“뭘 파셨는데요?”
공지유가 눈을 반짝였다.
그처럼 뛰어난 사람이 가진 물건은 또 얼마나 대단할지 궁금했다.
“어젯밤에 산책을 나갔다가 칼 한 자루를 주웠거든요. 그걸 팔았어요.”
“아! 칼……. 얼마에 파셨어요?”
“금자 다섯 냥요.”
“어머! 꽤 좋은 칼이었나 보네요? 누가 그런 귀한 칼을 칠칠맞게 흘리고 다녔을까?”
“부적도 주웠어요.”
“부적요?”
“예, 버릴까 하다가 혹시 돈이 될까 싶어서 말았는데, 부적을 거래하는 곳도 있어요?”
무구상은 점포 밖에 무구를 전시해서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부적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부적이 거래나 되는지 모르겠다.
소요종 고수가 들고 다니던 것이라 돈이 될까 싶어 챙겨 뒀지만…….
“종문의 부적은 비싸게 팔리지만, 일반 부적은 거래가 안 돼요. 어떤 부적이에요?”
“이건데요. 이거 소요종 부적 맞죠?”
연적하가 품에서 한 뭉치의 부적꾸러미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부적을 본 공지유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머! 소요종의 신행부(身行符)네? 맞아요. 혹시 이것도 주운 거예요?”
“네.”
순간 공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칼에서 부적까지. 소요종 제자가 그런 걸 흘리고 다 녔다고?
일반 문파 사람들도 흘리고 다니지 않을 텐데, 하물며 소요종 제자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공지유에게 연적하가 다시 물었다.
“신행부도 팔려요?”
“그, 그럼요. 얼마나 인기가 좋은데요.”
“어디에 쓰는데 인기가 좋아요?”
“신행부를 몸에 붙이면 엄청 빨리 달릴 수 있어요.”
“몸에요?”
연적하가 가슴을 툭툭 쳐 보였다.
그제야 공지유는 그가 신행부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구주에 살면서 종문의 신행부를 모른다니?
“옷이 아니라 피부에 직접 붙이는 거예요. 부적의 영기가 다 빠져나가면, 저절로 떨어져요. 한 번 사용한 부적은 다시 몸에 붙지 않고요. 영면 주사의 색깔이 붉죠? 그건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사용한 건 영기가 빠져나가서 회색으로 바뀌거든요.”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괴황지(부적의 재료)에 영기를 담을 수 있다니 과연 종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거 정말 파시게요?”
“난 경신술을 쓸 줄 아니까 쓸데가 없잖아요.”
“종문 제자들이 신행부를 가지고 다닐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흠! 그런가?”
“당연하죠. 정말 급하게 돈이 필요하지 않으면 부적은 팔지 마세요.”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한 장에 얼마 정도 하려나요?”
“못해도 은자 열 냥은 받을 거예요.”
“와아! 비싸네요?”
연적하가 눈대중으로 신행부의 숫자를 세 보았다.
대충 봐도 스무 장은 넘는 것 같았다. 부적만도 최소 은자 이백 냥이다.
혹시 돈 때문에 종문 제자들이 싸우는 건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하던 연적하는 신행부 몇 개를 뽑아 공지유에게 내밀었다.
“저 주시는 거예요?”
“네, 혹시 알아요? 쓸 일이 있을지.”
“감사해요. 연 대협 덕분에 제가 소요종의 신행부를 다 가져 보네요!”
공지유는 신행부를 접어 품에 갈무리했다.
신행부도 귀한 물건이지만 그보다 연적하에게 받았다는 사실이 더 좋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방에서 쉬고 있던 정덕행을 불러냈다.
“정 형, 지금 불우산으로 가면 최소한 보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럼 먼저 시무현으로 가야겠네?”
“예, 삼 년 전에 저도 시무현에서 사흘 정도 머물렀습니다. 시무현은 ‘비승과해’ 참가자들로 가득하니 무료하지는 않을 겁니다.”
“무료하지 않을 거라고?”
“예, 기예꾼, 만담가 등 수약주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이 죄다 모여들거든요.”
“기예꾼은 뭐야?”
“온갖 신통한 기술을 선보여 주는 자들입니다. 입으로 불을 뿜기도 하고, 십 장(약 30미터) 높이의 허공에 외줄을 매 놓고 그 위로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아하! 재밌겠네.”
“예,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기예일수록 돈을 잘 벌지요. 그리고 이 시기의 시무현은 수미성에서 모여든 아름다운 여자들로 가득합니다.”
“아름다운 여자?”
남궁연을 떠올린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정덕행은 그가 ‘아름다운 여자’라는 말에 반응하자 실실 웃었다.
“예, ‘비승과해’ 참가자는 문파나 지역에서 인정받은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잘하면 소요종 제자도 될 수 있고요. 그러니 어떻게 한번 인연을 맺어 볼까 싶어서 꼬이는 거지요.”
“아…….”
연적하는 자신이 기대한 내용과 거리가 멀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남궁연이 그럴 목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설 리가 없으니까.
그런 사정도 모르고 정덕행은 신이 나서 계속 떠벌렸다.
“묘령의 아가씨들뿐 아니라 늙은 매파들도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닙니다. 중신만 잘 서도 신부 집에서 사례를 크게 하니까요. 그래서 숙소만 벗어나면 아주…….”
“됐어. 뭘 그렇게 신이 나서 떠벌려? 밤에 힘이 남아돌아? 짐이 좀 가볍지?”
“어이쿠! 아닙니다. 연 대협께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나 혼인한 거 알잖아? 날 아주 이상한 남자로 만들려고 그러네?”
“그, 그게 아니라……. 저는 단지…….”
“아 됐고. 가서 짐이나 확인해. 요리 재료 빠짐 없이 챙기고. 며칠 사 먹으니까 유람 나온 것 같지?”
계속된 다그침에 정덕행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물러났다.
그런 그를 향해 연적하는 독설을 퍼부었다.
“저렇게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까 떨어지지. ‘비승과해’는 핑계고 즐기지 못해 안달이 났어. 짐꾼인데도 저러니 삼 년 전에는 침을 줄줄 흘리고 다녔겠네.”
연적하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남궁연이 ‘왕들의 하늘’로 간 뒤로 벌써 해가 두 번은 바뀐 것 같다.
구주의 남자들도 눈이 있으니 그녀 주변을 맴돌리라.
최악의 경우 자신이 찾는 줄 모르고 재가(再嫁)를 했을 수도 있다.
“안 돼!”
연적하가 탁자를 후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제멋대로 요동쳤다.
생각할수록 자신이 없다.
강호에서야 자신이 제법 뛰어났지만, 이곳에서는-종문의 제자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를 정도로-그저 그런 사람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