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80
580회. 그야 할 일 없는 사람들 얘기고
갑자기 연적하가 소리를 지르자 식당 손님들이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들보다 더 놀란 사람이 공지유다.
그의 앞에 앉아 있던 그녀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왜요? 연 대협, 무슨 일이에요?”
망상에서 깨어난 연적하는 놀란 공지유를 보고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아, 아니에요. ‘비승과해’를 생각하다가 조금 흥분했네요. 떨어지면 안 돼! 뭐 그런 거였어요.”
연적하가 얼버무렸다.
처가 재가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 그러셨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연 대협 같은 분이 떨어지겠어요? 모셔 가려고 한다면 모를 까?”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연적하가 손사래를 쳤다.
구주에서 자신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강호의 천하십대고수들도 구주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 게다.
“아니긴요. 연 대협께서 지금까지 하신 일을 생각해 보세요. 모셔 가고도 남음이 있다니까요.”
공지유는 연적하가 너무 겸손하다고 생각했다.
은급 야수와 마물이 된 신수, 심지어 종문 제자들까지 격파한 그를 소요종에서 떨어트릴 리가 없지 않은가!
“모셔 갈 정도는 아니에요. 내가 보니까 종문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 상이 따로 있더라고요.”
“그게 뭔데요?”
공지유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연적하를 보았다.
종문에 대해 눈곱만큼도 모르던 그가 그 비밀을 어떻게 안다고?
“사람이 타고난 영기요. 공 소저도 곽 진인이 하는 말을 들었잖아요.”
“에이, 저는 또 무슨 말씀이시라고. 당연히 영기가 뛰어나니까 그렇게 고절한 무공을 터득하신 거죠. 보통 사람은 절대로 연 대협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요.”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럼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은 오히려 저 같은 사람이 해야죠. 연 대협이 소요종에 들어가면 혼자서 현천문까지 가야 하잖아요.”
공지유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요즘 그게 걱정이었다.
물론 정덕행이 있지만, 그와 단둘이 그 먼 길을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비승과해’에 떨어진 상태로는 더더욱.
“공 소저는 ‘비승과해’를 통과할 거예요. 왠지 느낌이 그래요.”
“정말요?”
“그렇다니까요. 문제는 공 소저가 아니라 나예요, 나.”
“연 대협이 어때서요?”
“내가 사실 자질이 그렇게 뛰어난 사람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평범하달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연 대협은 절대 평범하지 않아요. 평범한 사람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 정도 무위에 오르지 못한다고요.”
“그야 내가 무공을…….”
연적하는 말을 흐렸다.
그녀에게 거울과 구천현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헛소리인 줄 알 게다.
때마침 정덕행이 돌아왔다.
연적하는 정덕행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죠!”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던 공지유가 실망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가죠’란다.
그에게 자신이 별거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이럴 때는 좀 섭섭하다.
***
수미성.
탁주현.
화창한 봄날 정오.
탁주현의 자랑인 삼보문(三寶門)으로 이 남 일 녀가 들어왔다.
연적하와 공지유, 정덕행이다.
성문 입구에 새겨진 글을 힐끔 돌아보던 연적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삼보문이 뭐지? 무슨 보물이라도 있다는 소린가?”
그러자 뒤따르던 정덕행이 알은체를 했다.
“탁주현에는 세 가지 절경이 있습니다. 워낙 유명해서 ‘수미삼보’로 불리지요. 그걸 구경하러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정 형도 봤어?”
“예, 저뿐만 아니라, 시무현으로 가는 사람들은 꼭 들러서 보고 갑니다. 날짜가 많이 남았으니 연 대협께서도 보고 가시지요?”
“됐어.”
연적하는 남궁연에 대한 걱정으로 경치 따위를 감상할 마음이 없었다.
그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정덕행은 ‘쩝쩝’ 입맛만 다셨다.
이번에는 공지유가 연적하의 얼굴을 슬쩍 살폈다.
그와 함께 ‘수미삼보’라 불리는 절경을 보고 싶어서다.
그런 추억이라도 남겨 놔야 나중에 후회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저어, 연 대협. 어차피 지금 시무현으로 가도 보름은 객점에서 지내야 하잖아요?”
“예.”
“‘수미삼보’를 보고 가면 객점에 있을 시간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내가 지금 뭘 보고 즐길 마음이 아니라서요.”
“아, 네에.”
공지유가 탄식하듯 답했지만 둔감한 연적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설사 알았다 해도 그러자고 할 사람도 아니었다.
수미삼보 때문인지 탁주현은 다른 도시와 달리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리 양편에 늘어서 있는 주루나 기루, 음식점 등도 손님으로 들끓었다.
연적하는 가까운 음식점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공지유는 그의 침울한 분위기에 눌려 말 한마디 못 하고 조용히 따라 갔다.
***
‘수미삼보’란 탁주현의 세 지역을 말한다.
백담(白魂)이라 불리는 신비한 호수, 산 하나가 천 개의 봉우리를 품었다는 천봉(千峯), 만 개의 달이 비친다는 소(沼), 만월(滿月)이 그것이다.
백담, 천봉, 만월이 더 유명해진 것은 그곳에 야수가 없어서다.
야수에 대한 걱정 없이 편안하게 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사시사철 여행객들로 들끓었다.
수미삼보가 일반인들에게만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미삼보의 수려한 풍광은 소요종의 젊은 제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혈기 왕성한 그들은 신행부까지 써 가며 탁주현을 오갔다.
소요종 제자 양소룡이 웃으며 허난설의 잔에 술을 따랐다.
“사매, 어때? 괜찮았지? 신행부가 아깝지 않은 절경이지?”
그러자 허난설이 새초롬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요. 백담은 그냥 쌀뜨물 같아서 별로였어요.”
“쌀뜨물이라니? 그보다는 오히려 공청석유에 가깝던데. 공청석유인 줄 알고 마시는 사람 봤잖아?”
“그 사람이 이상한 거죠. 공청석유로 된 호수가 말이나 돼요?”
“그냥 색깔이나 분위기가 닮았잖아. 조 사저도 백담을 보고 손으로 떠서 먹어 봤다던데.”
“조 사저가요? 눈이 삐었나 보네.”
허난설의 독설에 양소룡은 ‘아차!’ 싶었다.
허난설은 재능과 미모에서 소요종 제일이라 불리는 조서하를 질투하고 있었다.
그런 허난설 앞에서 조서하를 들먹였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그, 그렇지. 냄새만 맡아도 아닌 걸 알았을 텐데 왜 그랬나 몰라.”
양소룡의 말에 허난설의 표정이 풀렸다.
양소룡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허난설에게 수미삼보의 뛰어남에 대해 늘어놓았다.
오가는 데 신행보가 몇 개나 드니 그만한 보람이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때 멀리서 그런 그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가 들려왔다.
국수를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운 정덕행이 다시 한번 운을 띄웠다.
“연 대협, 수미삼보는 수약주에서도 알아줍니다. 한번 보고 가셔도 좋을 겁니다.”
“그런 거 다 의미 없어.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야.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백담, 천봉, 만월이라고? 그래 봐야 호수와 산과 고인 물이잖아. 내 말 틀려?”
“그래도 심심파적 삼아 볼 만은 할 겁니다. 종문의 제자들도 시간 내서 구경한다고 하던데요?”
“그야 할 일 없는 사람들 얘기고.”
연적하의 말에 허난설이 한마디 했다.
“미쳤나 봐. 신행부까지 쓰고 와서 저런 소리를 듣다니. 기분 참 별로네요.”
“잠시만.”
똥 씹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양소룡이 연적하 일행에게 다가갔다.
“소요종 제자를 조롱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뭐 하는 연놈들이냐!”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한순간 입을 닫았다.
사람들의 이목이 연적하 일행의 자리로 쏠렸다.
소요종 제자를 희롱했다는 말이 나온 걸 보니 누군가 입방정을 떨었던 모양이다.
종문을 입에 올렸던 정덕행은 뜨끔해서 어깨를 움츠리고만 있었다.
젓가락으로 돼지고기 볶음을 집어 가던 연적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형씨, 누가 누구를 조롱했다고 그래? 우리는 소요종의 소 자도 안 꺼냈구만.”
“뭐? 형씨?”
파르르 떨던 양소룡이 이를 빠드득 갈며 말했다.
“조금 전에 소요종 제자들을 두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거참, 소요종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니까. 우리는 그냥 종문의 제자들이라고만 했어. 잘 생각해 봐. 우리가 소요종이라고 그랬는지.”
“…….”
양소룡이 곰곰 되짚어 보니 그의 말대로다.
‘종문 제자들’이라는 말을 흥분해서 ‘소요종’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그가 멈칫하자 허난설이 말했다.
“흥! 종문 제자들 속에는 우리 소요종도 포함되니 같은 말이잖아. 감히 그런 말을 하고도 살아남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순간 양소룡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맞다.
애송이의 시건방진 태도와 종문을 희롱한 것은 죽어 마땅한 죄였다.
금방이라도 살수를 쓸 것 같은 양소룡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이봐 형씨, 소요종 제자야?”
“…….”
양소룡은 소요종의 후기지수답게 금방 살기를 누그러뜨렸다.
일반인이라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저런 식의 질문은 할 수가 없다.
틀림없이 저들은 소요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리라.
어쩌면 종사나 현인의 혈손(血孫)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후손이라면 선대의 힘을 믿고 방자하게 굴 수도 있었다.
“그렇소. 나는 소요종의 양소룡이오. 당신들은 누구요?”
“우리는 ‘비승과해’의 참가자야. 형씨의 후배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이런 미친 놈.’
양소룡은 할 말을 잃었다.
‘비승과해’의 참가자면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소리다.
그런 놈이 아까부터 자신에게 ‘형씨’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너 이놈! 죽고 싶으냐!”
피가 끓는 양소룡의 외침에 탁자가 들썩였다.
몸이 허약한 몇몇 사람들은 그 자리에 머리를 박고 기절하기도 했다.
“죽인다고? 곽 진인은 ‘비승과해’ 참가자들을 보호하는 게 소요종 제자들의 의무라고 하던데? 막 살수를 써도 괜찮은 거야?”
“곽 진인?”
양소룡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냥 일반인으로만 생각했는데 소요종에 지인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곽 진인이라니 누굴까?
“어, 곽상문 진인이 그랬는데, 거짓말이었던 거야?”
상대가 곽상문의 이름을 들먹이자 양소룡은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렸다.
그러자 허난설이 쏘아붙였다.
“사형! 생명을 해하지 않으면 괜찮아요! 뒷배를 믿고 방자하게 구는 놈을 그냥 내버려 둘 거예요? 다리라도 부러뜨려 가르침을 내려 줘야죠!”
그녀의 말에 자존심 강한 연적하가 펄쩍 뛰었다.
“뒷배를 믿다니? 저 생기다가 만 여자가 어디서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있어!”
순간 분노한 허난설이 섬전처럼 연적하에게 날아갔다.
“죽어!”
그녀는 양소룡과 달리 말보다 행동이 빨랐다.
언제 뽑았는지, 허난설의 검이 앉아 있는 연적하의 어깨로 파고들었다.
드드드득-.
연적하는 의자에 앉은 채 뒤로 물러났다.
그의 뒤쪽에 있던 탁자가 뒤집히고, 사람과 의자가 사방으로 튕겨났다.
공간을 벌린 덕분에 검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 틈에 연적하는 젓가락으로 눈앞에서 멈춘 허난설의 검을 턱 잡았다.
허난설이 가소롭다는 듯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검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연허 칠 성’인 자신의 검을 젓가락으로 잡다니?
분수를 모르는 칠칠맞은 놈이거나,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 틀림없다.
‘응?’
그런데 이게 웬일?
마치 거대한 암벽 사이에 낀 것처럼 검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래서 내가 여자를 싫어하는 거야!”
연적하가 버럭 소리 지르며 젓가락을 끌어당기자 허난설의 몸이 딸려 갔다.
철썩-!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허난설의 머리가 한쪽으로 홱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