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81
581회. 신비지경(神秘地境)과 검령(劍靈)
양소룡은 자신의 앞에서 급작스럽게 전개된 일에 일순 정신이 멍했다.
허난설이 갑자기 칼을 빼 들고 달려든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청년의 대응이다.
일반인이 대낮에, 그것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종문 제자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싸가지 없는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미친!”
흥분한 양소룡은 검을 뽑아 들고 달려갔다.
‘연허 칠 성’의 허난설이 맥도 못 추고 당했지만 그런 건 보이지도 않았다.
순간 연적하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던졌다.
쐐애액-.
젓가락이 날아오자 양소룡은 몸에 익은 초급 검공 일파장천(一派長天)으로 받아쳤다.
콰직! 쾅!
폭발음과 함께 반탄력으로 검 끝이 제멋대로 춤을 췄다.
뒤늦게 번쩍 정신이 든 양소룡은 급히 멈춰 섰다.
부끄럽지만, 감정을 앞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한편 허난설은 검이 풀려나자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앞으로 쏘아 갔다.
쉬이익-.
찰나지간에 검신합일을 이룰 정도로 그녀의 검공은 뛰어났다.
조금 전과 달리 지금의 허난설은 연적하를 죽일 기세였다.
그때 공지유의 허리춤에 있던 검이 벼락처럼 튀어나와 허난설의 검신을 때렸다.
따앙-.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는가 싶더니, 허난설의 신형이 옆으로 주르륵 밀려갔다.
허겁지겁 자세를 바로 세우던 허난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헉! 이기어검?’
청년의 몸 앞에 검 한 자루가 꼿꼿하게 서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의 검신합일을 깨부순 바로 그 검이 분명했다.
‘비승과해’의 참가자라고 해서 무시했는데, 저 정도로 뛰어난 고수일 줄이야!
양소룡과 허난설은 청년을 노려보기만 할 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빨리 들어와. 안 들어오면 이번에는 내가 간다.”
그러자 양소룡이 급히 소리쳤다.
“귀하는 정말 ‘비승과해’의 참가자요?”
양소룡은 청년의 아래위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무슨 ‘비승과해’의 참가자가 종문 제자보다 강한지 모르겠다.
“그렇다니까.”
“그렇다면 귀하와 우리는 싸울 이유가 없소.”
“싸울 이유가 없는데 왜 덤벼들었어? 아까도 내가 ‘비승과해’ 참가자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양소룡이 허난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선공을 하는 바람에 이렇게 꼬였기 때문이다.
허난설은 한순간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삼켰다.
“이봐요! 내가 손을 쓴 건 당신의 그 입 때문이에요! 당신이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면 왜 내가 그랬겠어요!”
그러자 연적하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내 입이 어때서? 내 입이 칼을 부르게 생겼어?”
“당신이 나에게 생기다 만 여자라고 했잖아!”
허난설이 분을 참지 못하고 빽 소리쳤다.
지금 그녀는 미칠 것만 같았다.
소요종에 들기 전부터 모두가 자신의 미모를 칭송했다.
‘비승과해’를 통과하여 소요종 제자가 된 뒤로는 여신(女神) 대우를 받았다.
조서하만 아니었다면 후기지수뿐 아니라 소요종 제일의 여검선(女劍仙) 소리를 들었을 터였다.
그런 자신에게 생기다 만 여자라니?
그 말을 생각하니 억울하고 분해서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연적하는 전혀 그런 허난설의 심정을 생각해 주지 않았다.
“그쪽이 먼저 나한테 뒷배를 믿고 방자하게 구는 병신 같은 새끼라고 했잖아! 저런 개 같은 새끼는 다리를 부러뜨려야 된다면서!”
“…….”
허난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비슷한 말을 한 것 같기는 한데 내용이 너무 천박해서다.
양소룡은 적나라한 연적하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후벼 팠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먼저 욕을 한 건 허난설이었다.
심지어 칼질도 허난설이 먼저 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이 싸움 계속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양소룡이 슬그머니 검을 거두며 말했다.
“소형제, 나는 소요종의 양소룡이네. 그쪽 이름은 어찌 되나?”
“연적하.”
“연 형제였구먼. 저쪽은 내 사매로 허난설이라 하네. 허 사매는 연 형제가 종문 제자들을 ‘할 일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화를 냈던 걸세. 그런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을 종문 제자는 없지 않겠나?”
연적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요종 제자들과 사생결단을 낼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멈춰야 했다.
“허 사매도 그만 칼 치우자. ‘비승과해’ 참가자와 칼부림한 걸 위에서 알면 면벽으로 안 끝날 거야.”
허난설은 이를 갈았지만 양소룡의 말에 따랐다.
마음 같아서는 저 뻔뻔한 얼굴을 난도질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분이 풀리지 않은 그녀는 납검하자마자 음식점 입구로 걸어갔다.
“가요 사형. 이런 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아요.”
“어, 어. 그래. 연 형제. 인연이 닿으면 불우산에서 다시 만나자고.”
양소룡은 답도 듣지 않고 허겁지겁 허난설을 따라갔다.
한바탕 소란은 그것으로 끝났다.
점원들이 달려와 넘어진 탁자와 의자를 세우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치웠다.
연적하 일행의 탁자도 깨끗하게 정리됐다.
하지만 연적하는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이 놀란 얼굴로 튀어나왔다.
“어이쿠! 대협, 벌써 가시게요? 음식을 다시 해서 올리겠습니다.”
“됐어요. 입맛 버렸어요. 얼마예요?”
“식사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셨는데 제가 음식값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주인은 굽실거리며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알아서 준다면 모를까? 식사 중에 난장판이 된 걸 알면서 음식값을 다 청구할 담력은 없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
체면과 거리가 먼 연적하는 두 번 말하지 않고 휘적휘적 계산대 앞을 떠났다.
잠시 후 음식점 앞에 굵은 소금이 뿌려졌다.
***
영천주.
청산성.
낙일현 유명산.
무망각(无妄閣).
정오 무렵,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심통이 눈을 뻔쩍 떴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처럼 가벼운 것이 옥청 노조의 것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서둘러 전각 밖으로 마중을 나갔다.
그가 막 마당에 내려설 즈음, 월동문 아래로 옥청 노조가 들어왔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옥청 노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오는지 알고 마중을 나온 것이냐? 네 발전 속도가 실로 놀랍구나.”
옥청 노조는 진심으로 심통의 경지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전각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자신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다니!
이제 막 원영에 오른 사람치고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성취였다.
“모두 스승님께서 이것저것 챙겨 주신 덕분입니다.”
심통은 과거 구밀복검이라고 불릴 정도로 말을 잘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작정하고 비위를 맞추니 옥청 노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내가 챙겨 준 사람이 어디 너뿐인 줄 아느냐? 허나 너만큼 진전이 빠른 이는 없었다. 이제는 삼백 자 법문을 익히지 않는다고?”
“예,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천뢰일주공’을 연성하고 있습니다.”
옥청 노조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천뢰일주공은 천뢰종의 근간을 이루는 공법으로 천뢰종의 모든 제자가 익히고 있다.
하지만 심통처럼 진도가 빠른 사람은 아직 없었다.
심통은 벌써 ‘원영 삼 성’에 이르렀다.
일 성을 올리는 데 평균 팔십 년 쯤 걸리니 그야말로 미친 속도였다.
수명이 다하기 직전 원영에 도달한 사람치고 지나치게 빠르다.
자신이 직접 거두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게다.
“스승님은 삼백 자 법문을 수련해 보셨습니까?”
심통이 슬쩍 옥청 노조의 안색을 살폈다.
천뢰일주공을 배우던 날 자신도 삼백 자 법문에 대해 털어놓았다.
물론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다.
자신도 그걸 익히다가 뜻하지 않게 산공(散功)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수련은 하지 않았다. 천뢰일주공에 맞지 않는 부분이 좀 있어서.”
“어떤 점이 그런가요?”
“너도 알다시피 천뢰일주공은 흡자결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천뢰일주공의 요결은 ‘채운 것을 굳게 다지는 것’에 있다.”
“그렇지요.”
“그에 반해 삼백 자 법문은 ‘날마다 버리라[爲道日損]’고 하니 어찌 길이 같다 하겠느냐? 구주에서 ‘버린다’고 함은 곧 ‘먹혀 사라진다’는 뜻이다. 삼백 자 법문을 만든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몽상가임이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요설가(饒舌家)이든지.”
“맞습니다. 제자도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채우고 채워도 부족한 것을 버리라니…….”
심통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강호에서는 강호의 법을, 구주에서는 구주의 법을 따르는 게 현명하다.
구주에서 매일 버리다가는 야수나 다른 종문 제자의 밥이 되고 말 게다.
“법기가 반응하는 것을 제외하면, 삼백 자 법문을 굳이 수련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버림으로 채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니 너도 이후로는 천뢰일주공에 매진하도록 해라.”
“예.”
심통은 존경의 눈으로 옥청 노조를 보았다.
구결만으로 삼백 자 법문의 문제를 알아차리다니? 실로 인간의 경지가 아니다.
‘그러니 독요(獨羅)를 인선(人仙)이라 부르는 거겠지.’
만약 스승이 억지로 그걸 익히려 했다면 사달이 일어났을 터였다.
“정진하거라. 너의 속도로 볼 때 ‘원영 칠 성’도 머지않은 것 같구나. ‘원영 칠 성’에 들어야 진정한 천뢰종의 제자라 할 수 있느니라.”
“‘원영 칠 성’요?”
심통은 옥청 노조가 ‘원영 칠 성’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단(內丹)을 갈고닦으면 새로운 영체를 얻게 되는데 그것이 원영(元嬰)이다. 원영의 근원은 영기인지라, 영기에 따라 능력도 천차만별로 갈렸다.
아홉 종문에서 영기를 제자 선발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그래서다. 원영의 경지 이후부터 영기의 질에 따라 성취가 다르기 때문이다.
영기에는 높고 낮음이 있는데 태극, 음양, 오행, 오행간(五行間)의 순이다.
그런데 ‘영기 칠 성’이 진정한 천뢰종 제자라니?
생각에 잠긴 그의 귓가로 옥청 노조의 음성이 들려왔다.
“유명산에서 생활하면서 혹 ‘비경(秘境)’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금시초문입니다. 그게 뭡니까?”
“비경이란 신비지경(神秘地境)의 줄임말로 검령(劍靈)이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검령요?”
“그래, 검령. 천하만물에 신령스러 운 영이 깃들어 있는데, 어찌 검이라고 없겠느냐? 검령은 신령스러운 검의 영을 말하는 것이다.”
“아! 검에도 영혼이 있습니까?”
“있다마다. 정해진 날에 비경이 열린다. 검령은 그 비경 안에 있다. 혹자는 비경을 두고 신선의 원념이 만든 공간이라고도 한다.”
“원념요?”
“마치 지박령처럼 검의 혼이 그곳에 남아 있으니 그러는 것이지.”
“아! 그런데 ‘원영 칠 성’이 비경과 관계가 있습니까?”
“‘원영 칠 성’부터 비경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 종문 제자는 크게 검령을 얻기 전과 후로 나뉜다. 어떤 의미에서는 삼천의 신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지.”
“그렇군요.”
심통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삶의 목표를 검령으로 바꿔야 할 순간이 온 것 같다.
“자격을 ‘원영 칠 성’ 이상으로 제한한 것은 그만큼 위험해서다.”
“위험하다고요?”
“신비지경은 아홉 종문의 것이라, 모든 종문 제자들이 함께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 ‘원영 칠 성’을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옥청 노조의 말에 심통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저렇게 돌려서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