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83
583회. 거기 누구세요?
시무현.
불우산.
정오.
불우산 아래 십만 평(약 33만m2) 넓이의 들판.
약 천오백여 명의 소년 소녀, 그리고 청년들이 모였는데 무덤처럼 조용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연적하가 공지유에게 속삭였다.
“시작도 안 했는데 너무 조용한 거 아니에요?”
“…….”
공지유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천오백여 명의 경쟁자들 속에 있다 보니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다들 그런 기분으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는 연적하가 대단한 거다.
연적하가 다시 말하려고 입을 움찔거릴 때 불우산 위에서 형형색색의 광채가 날아왔다.
대낮에도 환히 보일 정도로 밝은 광채는 들판 위에서 급격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광채의 정체는 검을 타고 날아온 소요종의 고수들이었다.
이윽고 백 명의 소요종 고수들이 부드럽게 지면에 내려섰다.
스스스슥-.
그렇지 않아도 조용하던 들판은 이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검비행이라는 신선들의 절기에 ‘비승과해’ 참가자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둔감한 연적하조차 놀라 멍하니 바라볼 정도였다.
청색 옷을 입은 노인, 백제의가 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항거할 수 없는 경력이 들판의 중심을 수직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중심부에 서 있던 사람들은 등이라도 떠밀린 듯 한쪽으로 밀려났다.
들판 한복판에 마치 쟁기로 갈아엎은 듯 일 장(약 3미터) 넓이의 길이 파였다.
푸른 초원에 황토색 줄이 일직선으로 새겨진 셈이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백제의가 말했다.
“‘비승과해’의 도전자들은 들어라. 추천서를 가진 자들은 우측에, 가지지 않은 자들은 좌측에 서라.”
너무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사람들은 서로를 힐끔거렸다.
십만 평이 넘는 들판에 서 있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다.
신선들의 능력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사람들은 이내 좌우편으로 재빨리 갈라섰다.
추천서를 가진 공지유는 연적하에게 눈인사를 보낸 후 우측으로 이동했다.
공교롭게 연적하가 선 자리는 좌측이었다.
그는 뻘쭘한 얼굴로 좌측으로 넘어오는 청년들을 구경했다.
이윽고 우측에 천삼백여 명, 그리고 좌측에 이백여 명이 자리를 잡았다.
백제의는 추천서 없이 온 이백여 명을 힐끔 보고는 이내 우측으로 걸어갔다.
“너희는 나를 따라오거라.”
말을 마친 백제의가 산 위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천삼백여 명의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팔십 명의 소요종 고수들은 천삼백여 명을 에워싸고 그들과 보조를 맞춰 움직였다.
반각(약 7분)이 못되어 백제의와 천삼백여 명의 참가자들은 들판에서 사라졌다.
천삼백여 명이 사라진 들판 위로 거센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다.
휘이이잉-.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세차게 흔들렸다.
연적하는 몰아쳐 오는 큰 바람에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털었다.
바람은 마치 추천서 없이 온 사람들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너희들의 앞길은 평탄치 못할 거야’라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남겨진 이백여 명의 얼굴은 묘한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잡초가 떠오른다.
자력으로 운명을 개척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저 잡초들 중에 몇이나 성공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 있는 연적하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속삭였다.
“형씨, 누구는 추천서 한 장 들고 삼신봉(三神峰)으로 가고, 누구는 삼신봉까지 가는 시험을 치러야 하고. 세상 참 불공평하지 않소?”
삼신봉은 불우산의 중봉 이름으로 ‘비승과해’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추천서가 있는 사람들은 삼신봉까지 곱게 모셔 가지만, 없는 사람들은 삼신봉까지 가는 게 시험이었다.
천삼백여 명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남아 있던 스무 명의 소요종 고수들은 장승처럼 서 있기만 했다.
맹숭맹숭한 얼굴로 소요종 고수들을 보던 연적하가 옆사람에게 되물었다.
“공평한 세상도 있어요?”
연적하의 말에 남자, 신이승이 머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없나? 없었네. 젠장. 난 원천성에서 온 신이승이오. 그쪽은?”
“조양성에서 온 연적하요.”
“연 형은…….”
그가 말을 하려는데 소요종 고수 중에 하나가 참가자들 앞으로 나왔다.
붉은 옷을 입은 소요종 고수, 심시호가 무덤덤한 어조로 물었다.
“너희는 추천서 없이 참가한 사람들일 테지. 맞느냐?”
“예!”
이백여 명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들판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패기 있는 목소리였다.
심시호가 불우산으로 향하는 산길을 가리켰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세 번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처음에 왼쪽, 그다음에도 왼쪽, 마지막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라. 삼신봉까지 한 시진(2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한 시진을 넘기면 탈락이다. 질문 있느냐?”
그러자 나서기 좋아하는 누군가 용감하게 물었다.
“그냥 올라가면 됩니까? 다른 건 없습니까?”
“곳곳에 진법이 펼쳐져 있어 너희가 가고자 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삼신봉에 도달하겠지만,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나오겠지. 재주가 부족한 자, 죽음이 두려운 자는 불우산에 오르지 마라.”
심시호는 참가자들을 격려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춘 자들은 죽을 일이 없다.
하지만 분수를 모르고 소요종에 도전한 자들은 반드시 죽어 나갔다.
‘쯧! 추천서도 받지 못한 것들이 욕심만 많아서…….’
심시호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이백여 명을 둘러보았다.
저들 중에는 정말 출중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가뭄에 콩 나기.
실제로는 어쭙잖은 실력이 절대다수다.
죽음은 거기에서 더 아래로 처지는 자들의 몫이었다.
이백여 명이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자 심시호가 다시 말했다.
“소요종 제자들이 구해 줄 거라 기대하지 마라. 소요종에서는 너희를 돕지도, 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면, 가라.”
순간 기다렸다는 듯 이백여 명의 청년들이 산길로 질주했다.
심시호가 불나방처럼 정신없이 뛰어가는 청년들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뭘 그렇게 서둘러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지 모르겠다.
욕심도 분수에 맞게 부려야 하는데 말이다.
‘응?’
무심코 들판을 돌아보던 심시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한 사람이-다른 청년들에 비하면 거북이라 생각될 정도로-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불나방처럼 정신없이 몰려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것도 눈에 거슬린다.
심시호는 소요종 고수들을 먼저 보낸 후에 청년에게 다가갔다.
“너는 포기할 생각이냐?”
“아닌데요?”
“네 동료들은 이미 산 위로 올라갔다. 너는 왜 서두르지 않는 거냐?”
“제가 번잡한 걸 싫어해서. 어차피 삼신봉까지 한 시진 정도 거리라면서요?”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이냐. 내 분명 진법이 있다고 했거늘.”
“아아, 알아요, 진법.”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삼신봉까지 진법이 깔려 있다는 것은 진즉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십전무후 남궁연이라면 모를까?
자신은 진법의 진 자도 모르는, 그 방면으로는 그야말로 일자무식이었다.
때로는 알아도 무대책으로 나가야 할 때가 있다.
진법이 그랬다.
그러니 일단 번잡함을 피한 뒤에 몸으로 깨부술 생각이었다.
안 되면 마는 거고.
심시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진법이 있음을 알면서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자신이 없으면 그냥 돌아가도록 해라. 괜히 애꿎은 목숨을 잃어서야 되겠느냐?”
심시호는 ‘포기하고 꺼지라’는 말을 돌려서 말했다.
해마다 불우산 아래의 들판에서 돌아가는 한심한 종자들이 꼭 나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놈도 그럴 모양이다.
“걱정해 줘서 고마운데 진법에 자신이 없다고 못 깨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될 즈음 운 좋게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통과한들 무엇에 쓰겠느냐? 너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 시진이라는 걸 잊었느냐?”
“신선 어르신. 제가 진법에 대해 아는 게 딱 하나가 있거든요. 그게 뭔지 아세요?”
“말해라.”
“진법을 펼치려면 뭔가 필요하다는 거죠. 석주(石柱)든, 산(算)가지든, 나무든, 하여튼 이 땅바닥에 뭔가 박더라 이 말이죠.”
“흥! 그래서, 그걸 부수겠다? 그게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염념무상진(念念無常陳)’과 ‘상속무상진(相續 無常陳)’은 소요종의 신묘지술이라, 영통(靈通)에 이른 자만이 실체를 볼 수 있거늘.”
모든 종문은 무공과 더불어 술법을 가르친다.
그중에서도 ‘영통’은 ‘원영’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아하! 영기를 기반으로 만든 진법인가 봐요?”
이놈의 세상은 한가락 한다 싶으면 영기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심시호는 어린놈이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슬쩍 호기심이 생겼다.
‘재주가 있는 놈이야? 아니면 그냥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거야?’
궁금해진 그는 추도영법(追到靈法)을 펼쳤다.
이윽고 어린놈의 칙칙한 회색빛 영기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 색깔을 갖추지 못한 저것은 하품인 ‘오행간’에도 들지 못할 것 같았다.
저 정도 영기로는 ‘비승과해’를 통과하기 어렵다.
이렇게 허접한 놈과 오랫동안 말을 섞었다니? 누가 알까 두려울 정도다.
그는 청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아이고 그 신선 할아버지, 대답도 하지 않고 가 버리네. 뒷간이 급했나?”
구시렁거리던 연적하는 이내 비연보로 산길을 달려 올라갔다.
스스슥-.
그런데 한참을 가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불우산의 진법이 이백여 명의 청년들을 모두 삼켜 버린 것일까?
초조해진 연적하는 더 빨리 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사람은 물론 이젠 좌우편의 나무까지도 점점 사라져 갔다.
마치 구름 위를 달려가는 느낌이다.
‘젠장! 진법에 빠진 건가?’
불안해진 연적하는 통천안(通天眼)의 술법을 펼쳤지만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식경(약 30분)쯤 지났을까?
미끄러지듯 전진하는 그의 얼굴로 갑자기 붉은 뱀 한 마리가 날아왔다.
휘리릭-.
대경실색한 연적하는 반사적으로 청사를 꺼내 붉은 뱀을 쳐 냈다.
따악-.
‘응?’
청사로 붉은 뱀을 찍었는데 도끼로 나무 패는 소리가 났다.
청사에 맞고 튕겨 가 저 앞에 떼 구르르 굴러떨어지는 물체를 보니 나뭇가지다?
“잘못 봤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연적하의 눈에 웬 노인이 보였다.
백의(白衣)에 하얀 수염을 배꼽까지 늘어트린 노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머릿속이 비워졌다.
순간 구천기가 단전에서 솟구쳐 올라 백회를 건드렸다.
‘쾅!’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정신이 번쩍 든 연적하가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물었다.
“거기 누구세요?”
그러자 백의의 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초요산이라고 한다. 생주이멸진(生住異滅陳)을 뚫고 내 앞에 이르다니, 너는 누구냐?”
“저는 연적하라고 합니다. 소요종의 ‘비승과해’에 참가하러 왔고요, 삼신봉으로 달려가던 중에……. 갑자기 이렇게 됐네요? 여기는 어디죠? 혹시 제가 불우산의 진법에 빠진 건가요? 그런데 신선님은 진법의 일부인가요? 아니면 신선님도 진법에 빠지신 건가요?”
“허허허! 내가 진법의 일부냐고? 실로 재밌는 발상이로구나.”
초요산은 웃으며 연적하를 보았다.
삼신봉으로 달려가던 중이라는 걸 보니 추천서 없이 ‘비승과해’에 참가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