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84
584회, ‘천고기재’ 아니라 ‘만고기재’라도 의미 없다
소요종에는 세 명의 현인이 있다.
그중 차기 종사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알려진 이가 초요산이다.
본래 불우산 초입에 만들어진 진법에는 알려지지 않은 내력이 있다.
오백 년 전 천지종을 물리치고 난 직후의 일이다.
소요종 종사는 세 명의 현인에게 ‘불우산에 각각 하나씩의 진법을 설치하라’ 명했다.
물론 다른 종문이나 마천의 침입으로부터 소요종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한산월의 염념무상진(念念無常陳), 진곤의 상속무상진(相續無常陳), 초요산의 생주이멸진(生住異滅陳)이다.
세 개의 진법이 항상 불우산을 지키는 용도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일 년 중에 딱 하루, ‘비승과해’의 날에는 진법의 위력을 약화시켜 시험 무대로 사용됐다.
참가자들 대부분이 약화된 진법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백 년에 한 명꼴로 부분적으로나마 진법을 파괴하는 사람이 나왔다.
진법을 단지 유지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양의 영기가 소모된다.
하물며 파괴된 진법의 재건에는 얼마나 많은 영기가 들어가겠는가!
그래서 세 현인은 꼼수를 썼다.
일정 수준 이상의 영기를 품은 자가 들어오면 길이 열리도록 한 것이다.
불우산.
천주봉(天柱峰).
무궁전의 주인인 초요산은 약초밭을 손보고 있었다.
‘비승과해’가 시작됐지만 참가자들이 천주봉에 오려면 반 시진(1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흐음! 올해는 몇 명이나 진법을 통과하려나?’
그런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질 정도로 ‘비승과해’는 종문의 큰 행사였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좋다’고 생각할 때, 누군가 달려왔다.
표정을 보니 진법에 휘말려 약초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내버려 뒀다가는 약초가 짓밟힐 상황.
그래서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집어 그의 얼굴에 힘껏 던졌다.
물론 청년의 재주도 살필 겸 환영술을 살짝 가미했다.
나뭇가지라 해도 현인의 힘이 실린 것이니 낭패를 면치 못하리라.
내심 붉은 뱀과 바닥을 뒹굴며 엎치락뒤치락할 걸 기대했는데…….
따악-.
‘헛!’
청년이 단검으로 붉은 뱀을 쳐 냈다.
심지어 단검에 맞자마자 환영술까지 풀려 나뭇가지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청년은 환영술을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못 봤나?”
잘못 봤을 턱이 있나!
임기응변이라 해도 현인의 환영술은 저렇게 간단히 깨질 수가 없다.
차기 종사로 불리는 자신의 환영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윽고 두리번거리던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장난이 발동된 초요산은 청안승묘공(淸眼承查功)을 펼쳤다.
청안승묘공은 본래 마천의 마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공법이다.
사특함을 거부하는 이 공법과 마주하면 누구라도 몸이 굳는다.
경지가 낮은 종문 제자도 그럴진대 속인(俗人)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흠칫하던 청년이 물었다.
“거기 누구세요?”
어딘지 얼 띤 눈빛을 보니 자신이 누군지 짐작도 못 하는 것 같다.
순진한 청년의 황망한 표정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초요산이라고 한다. ‘생주이멸진’을 뚫고 내 앞에 이르다니, 너는 누구냐?”
“저는 연적하라고 합니다. 소요종의 ‘비승과해’에 참가하러 왔고요, 삼신봉으로 달려가던 중에……. 갑자기 이렇게 됐네요? 여기는 어디죠? 혹시 제가 불우산의 진법에 빠진 건가요? 그런데 신선님은 진법의 일부인가요? 아니면 신선님도 진법에 빠지신 건가요?”
“허허허! 내가 진법의 일부냐고? 실로 재밌는 발상이로구나.”
초요산은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웠다.
삼신봉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추천서 없이 ‘비승과해’에 참가한 모양이다.
그 말은 앞선 두 개의 진법을 뚫고 왔다는 소리다.
이제 반 시진(1시간) 남짓 지난 걸 생각하면 무서울 정도의 속도다.
백 년이 아니라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의 재능이라 할 수 있다.
‘이 녀석을 어쩐다.’
연적하는 가만히 서서 노신선의 대답을 기다렸다.
시간이 아까웠지만 그래도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난 이후에 움직이는 게 낫겠다 싶어서다. 잠시 생각하던 초요산이 입을 열었다.
“불우산에는 세 개의 진법이 펼쳐져 있느니라. 그중 ‘염념무상진’과 ‘상속무상진’은 추천서가 없는 자들을 걸러 내기 위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비승과해’의 참가자들을 위한 것이지.”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붉은 옷을 입은 신선에게 들은 내용과 같았다.
“세 번째 진법은 ‘비승과해’ 참가자들을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생주이멸진’이라 한다. 조금 전에 네가 지나온 진법이 그것이니라.”
“아……. 예?”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백의의 노신선을 보았다.
‘생주이멸진’이 ‘비승과해’ 참가자들을 시험하기 위해 만든 진법이라고?
“노신선님, 그럼 제가 잘못 온 건가요?”
자신이 가야 할 곳은 삼신봉인데 어째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큰일 났네. 시킨 대로 왼쪽, 왼쪽, 오른쪽으로 갔는데 왜 이렇게 됐지?’
본래 길눈이 어두운 연적하는 이번에도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초요산이 애매한 얼굴로 입을 뗐다.
“잘못 들어온 건 아니지만 정상적이라고 하기도 어렵겠구나.”
삼신봉 아래에 ‘염념무상진’과 ‘상속무상진’이 있고, 불우산의 주봉인 천주봉에 ‘생주이멸진’이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참가자는 천주봉의 ‘생주이멸진’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니 ‘삼신봉’을 지나 ‘천주봉’까지 와 버린 사람에게 잘못이라 하기도 뭐했다.
‘대체 영기가 얼마나 뛰어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기대감으로 들뜬 그는 서둘러 추도영법(追到靈法)을 시전했다.
그리고 이내 인상을 찡그렸다.
믿을 수 없게도 연적하의 영기는 칙칙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하품(下品)인 ‘오행간’에도 들지 못하는, 등급 외의 영기였다.
단순히 영기만 놓고 보자면 그는 탈락이다.
‘천고기재’ 아니라 ‘만고기재’라도 의미 없다.
종문이 원하는 것은 하늘의 문[天門]을 열어 줄 종사인 까닭이다.
‘허어! 저런 저급한 영기로 세 개의 진법을 무사 통과하다니…….’
자신이 보고 있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초요산이 아까부터 눈만 끔뻑거리자 연적하가 다급하게 말했다.
“노신선님, ‘비승과해’에 참가하려면 삼신봉으로 가야 하는 거죠?”
“그렇기는 하다만…….”
초요산은 말을 흐렸다.
현재만 놓고 보자면 연적하는 소요종의 제자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미래는 불확실하다.
아니, 태생부터 저급한 영기를 생각하면 한계는 명백하다 할 수 있다.
‘영원히 저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겠지…….’
아까웠지만 영기를 보니 적전제자로 거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군가 현재 그의 경지에 혹해서 거둘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삼신봉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초요산이 동쪽을 가리켰다.
“이리로 일각(15분)쯤 내려가면 삼신봉이 나올 게다. 일각 동안 길을 열어 둘 테니 편안하게 가거라.”
말과 함께 초요산이 손목을 가볍게 흔들었다.
순간 연적하의 앞으로 구불구불 뻗은 황톳길이 나타났다.
연적하는 초요산에게 머리를 꾸벅 숙여 보인 후 서둘러 길을 따라 내려갔다.
일각쯤 걸어갔을까?
길을 따라가던 연적하는 기이한 느낌에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헉!’
저 멀리서부터 길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심지가 빠르게 타들어 가는 것같이 보였다.
깜짝 놀란 연적하는 비연보를 펼쳐 황톳길을 내달렸다.
파파파팟-.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이를 악물고 미친 듯 달렸건만, 길이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스스스-.
마침내 발아래의 황톳길이 사라지자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순간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풍광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났다.
연적하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석비(石碑)를 올려다보았다.
석비 중앙에 ‘삼신봉’이라는 세 글자가 용사비등한 필체로 음각되어 있었다.
‘여기에 서 있으면 되나? 더 가야 하나?’
그가 석비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들판에서 사라졌던 심지호가 나타났다.
“입만 산 줄 알았더니 한 가닥 재간은 있었던 모양이구나. 곽종산, 그를 삼일각(三一閣)으로 안내해 주거라.”
그러자 사십 대 남자가 연적하의 앞으로 나왔다.
그가 따라오라는 듯 한쪽으로 턱짓을 해 보인 후 앞장서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두 사람의 앞에 거대한 전각이 나타났다.
곽종산이 전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삼일각이다. 삼일각의 뒤로 돌아가 다른 참가자들과 합류해라.”
막 삼일각으로 가려던 연적하가 물었다.
“이백 명 중에 몇 명이나 통과했어요?”
“네가 처음이다.”
고까운 눈으로 연적하를 흘겨보던 곽종산이 신형을 돌렸다.
막 떠나가려는 그를 연적하가 다시 불러 세웠다.
“곽 선배, 보통 삼일각까지 몇 명이나 통과해요?”
돌아선 곽종산이 살벌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네놈의 선배라는 거냐? 입문 제자들도 감히 그런 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곽 후배?”
“정녕 죽고 싶으냐!”
곽종산은 주먹을 들어 올렸지만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차마 내려치지 못했다.
불우산에서 ‘비승과해’의 참가자를 건드리는 일은 중죄인 까닭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뭘 그렇게 화를 내요?”
“누가 모른다는 거냐!”
“알면 말해 봐요. 보통 몇 명이나 통과하는지.”
이를 빠드득 갈던 곽종산은 연적하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참가자 신분일 때나 보호를 받지, 일단 입문하고 나면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한다.
간혹 영기가 뛰어난 자는 입문 단계부터 윗분들이 제자로 데려가니 손댈 수 없다.
하지만 저놈은 대부분의 입문 제자들처럼 말직(末職)을 떠돌 것 같았다.
‘운 좋게 입문하면 그때 갈아 먹어 주마.’
입문한 제자들은 초급 공법을 배우는데 그 시기를 ‘연단(鍊丹)’이라 한다.
‘연단’은 구체적으로 내단(內丹)을 완성해 나가는 기간이다.
내단이 완성되면 그때 비로소 ‘연허’가 된다.
연단의 기간은 대략 십 년.
십 년의 연단 기간 동안 입문제자들은 소요종의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이를테면 가장 밑바닥인 소격각(昭格閣)은 종문 제자들의 뒷간을 청소하고, 구요각(九曜閣)은 빨래와 밥 짓기 등을 하는 식이다.
왜 일반인을 쓰지 않냐고?
구주의 종산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종문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실은 종문의 비기가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곽종산은 청년의 합격을 기원하며 답했다.
“한 손에 꼽는다. 지난해에는 두 명이 제시간에 도착했다.”
“아, 그렇구나. 알았으니 가 봐요.”
연적하가 볼일 다 봤다는 듯 손을 흔들자 곽종산은 말없이 돌아섰다.
찢어 죽이고 싶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천주봉에 올라가다 뒈지지 말고 철썩 붙어라. 너는 내 손에 죽어야 하니까.’
연적하는 휘적휘적 삼일각 뒤편으로 걸어갔다.
삼일각 뒤편에는 아까 들판에서 먼저 올라간 천삼백여 명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인생 불공평하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문득 산 아래서 만났던 신이승의 말이 떠올랐다.
-형씨, 누구는 추천서 한 장 들고 삼신봉으로 가고, 누구는 삼신봉까지 가는 시험을 치러야 하고. 세상 참 불공평하지 않소?
그때는 뭐 새삼 그런 소리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개 발에 땀 나도록 뛰어와서 천삼백여 명을 보니, 허탈했다.
이제나저제나 그가 오기를 기다리던 공지유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연 대협! 오실 줄 알았어요.”
뒤이어 임정영도 다가와 친한 척을 했다.
“연 형, 축하드립니다. 저도 연 형이 올 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뭘 굳게씩이나.”
연적하는 축하를 받아도 기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더러운 세상, 더러운 소요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