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89
589회. 원영(元嬰)과 좌탈입망(坐脫立亡)
불우산.
소격각(昭格閣).
술시 정(오후 8시).
대라각의 고수는 연적하와 병휴를 소격각에 인계한 뒤 돌아갔다.
두 사람을 넘겨받은 소격각의 고수가 말했다.
“소격각에 온 걸 환영한다. 내 이름은 황인보다. 늦었으니 각주님에게는 내일 인사를 올리도록 하고, 일단 식사부터 하자. 따라들 와라.”
황인보가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던 연적하가 인상을 찡그렸다.
고수일수록 오감이 발달한다.
연적하는 황인보의 전신에서 풍기는 구린내에 입맛이 싹 달아났다.
황인보의 허리에 두른 띠가 청색이니 연단 오 성 아니면 육 성이라는 소리다.
오륙 년 동안 뒷간을 청소해서 냄새가 밴 것일까?
저게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하니 암울함을 넘어서 우울하기까지 했다.
동기인 병휴를 힐끔 보니 그의 안색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가 보다.
그때부터 연적하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황인보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멈춰 선 황인보가 불빛이 환한 전각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가 식당이다. 뒷문으로 가면 숙수가 먹을 걸 내줄 게다. 그걸 받아 바깥에서 먹으면 된다. 식당에서 먹어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니 꼭 밖에서 먹어라.”
그러자 병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겨울에도 밖에서 먹어야 합니까?”
“그럴 리가. 구주의 겨울은 한서불침의 몸으로도 견디기가 어렵지 않으냐. 겨울에는 식당 오른편의 자재 창고를 이용하면 된다.”
말과 함께 황인보가 널빤지로 만든 집을 가리켰다.
허름한 창고를 본 연적하가 푸념을 했다.
“아니, 종문의 제자가 저런 데서 식사를 해야 한다고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섭섭한 마음은 이해한다만 수련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여라. 수만 년 동안 소격각 선배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거다. 그분들이라고 자존심이 없어서 그렇게 했겠느냐? 몸에서 냄새가 나니까 서로를 위해 그러는 게지. ‘죽어도 나는 식당에서 먹어야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고수들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까.”
연적하가 황당한 얼굴로 황인보를 보았다.
“그런 일로 맞아 죽을 수도 있어요? 같은 소요종 제자끼리 그래도 됩니까?”
“네가 아직 종문을 잘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게다. 종문은 삼천(三天)의 신이 되기 위해 수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신위(神位)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영기가 필요하지. 영지 선초나 내단, 혼석, 영석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설마 사람의 영기를…….”
“종문에서는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강물이 합쳐져 바다로 나아가듯, 사람들의 영기도 여러 갈래의 영기가 합쳐지는 것뿐이라고 믿는다.”
“…….”
뜻밖의 소리에 연적하와 병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황인보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겁낼 것 없다. 공식적으로 동문의 영기를 취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니까. 동문의 수가 줄어들면 다른 종문과의 싸움에서 밀리게 되니 금지할 수밖에. 그렇다 해도 은밀하게 행해지는 일은 막지 못한다. 그러니 다른 고수들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은 하지 않는 게 낫다. 아직도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싶으냐?”
“아닙니다.”
“아니요.”
연적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고작 그런 문제로 다투다가 사람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황인보는 신입들을 데리고 식당 뒷문으로 갔다.
그리고 뒷문을 몇 번 두드렸다.
잠시 후 구요각의 숙수가 사람 수대로 음식이 담긴 식판을 가져다주었다.
황인보는 연적하와 병휴를 데리고 식당 아래 공터로 내려갔다.
“이 자리가 식당에서 가깝고 전망도 좋으니 이곳을 이용하면 될 게다. 이 자리는 우리 소격각 사람들만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더 늦기 전에 먹고 숙소로 가자.”
황인보는 묵묵히 식사에 집중했다. 그런 그와 달리 연적하와 병휴는 입맛을 잃었는지 깨작거렸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뒷간 청소나 하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황인보는 두 사람을 힐끔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도 처음 흰 띠를 매고 소격각에 배치받았을 때 저랬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황인보는 두 사람의 신입을 데리고 소격각으로 돌아갔다.
소격각 앞에서 황인보가 말했다.
“현재 소격각에 소속된 사람은 너희를 포함해 열셋이다. 그건 다시 말해 열세 명이 불우산의 모든 뒷간을 청소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적은 숫자에 연적하와 병휴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계속된 황인보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은 조금씩 풀렸다.
“불우산에 뒷간이 몇 군데나 있다고 생각하느냐? 천주봉, 삼신봉, 범천봉, 천수봉, 관음봉, 용화봉, 그리고 불우산 초입의 내문제자 숙소가 전부다. 대략 두 사람이 봉우리 하나를 맡는다고 생각해 봐라. 하루에 한 번 청소하고, 한 달에 한 번꼴로 변을 치우면 된다. 냄새가 나고 더러워서 그렇지 실상 시간은 구요각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남는다. 구요각에 가면 뭘 하는 줄 아느냐? 하루 종일 온갖 잡일에 불려 다니거나, 삼시 세끼 요리를 준비해야 한다. 소요종에서는 우리를 가장 밑바닥이라 말하지만, 그래도 구요각보다 낫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가뜩이나 귀가 얇은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이 싼 똥을 치우는 게 좀 걸리지만, 시간이 남는다는 건 마음에 들었다.
“소격각이 다른 곳보다 좋은 건 또 있다. 단 열셋이 이 큰 전각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구요각에서도 신입들을 보냈는데, 냄새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우리는 두 사람이 방 하나를 사용하지만 구요각은 다르다. 그들은 세 사람, 네 사람이 방 하나를 사용하는 형편이다.”
황인보는 구요각에 감정이 많은지 말끝마다 구요각을 물고 늘어졌다.
둔한 연적하도 ‘황 선배가 구요각에 원한이 있나?’ 생각할 정도였다.
잠시 후 황인보는 연적하와 병휴를 넓은 방으로 안내했다.
“여기가 앞으로 너희가 쓸 방이다. 갓 입문한 제자들에게 이런 방을 내 주는 곳은 소격각밖에 없다. 이 모두가 너희 선배들이 쌓은 냄새의 공덕이지. 그럼 잘 쉬도록 해라. 참, 소격각의 일과 시간은 다른 곳과 달리 정해져 있지 않다. 아침 식사 시간에 보도록 하자.”
황인보는 자기가 할 말만 하고 나갔다.
연적하는 얼떨떨한 얼굴로 눈만 끔뻑거렸다.
그 유명한 ‘비승과해’의 끝에 소격각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방은 넓었지만 공기는 쾌적하지 않았다.
킁킁거리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고 있는 그에게 병휴가 말했다.
“포기해요. 소격각 전체에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으니까. 난 소격각에 들어서면서부터 속이 울렁거려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벽과 바닥을 한 꺼풀 도려내도 냄새가 날까요?”
“오랜 세월 밴 것이니 한 꺼풀 정도로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럼 두 꺼풀?”
연적하가 집요하게 묻자 병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괜히 벽이나 바닥에 구멍이 뚫리면 우리만 손햅니다. 그냥 받아들이자고요. 최대한 빨리 소격각을 벗어나는 게 최선입니다.”
“소격각을 벗어난다고요?”
“십 년 동안 소격각에 머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빨리 인맥을 쌓아 다른 곳으로 탈출해야지요.”
연적하가 뜨악한 얼굴로 병휴를 보았다.
단호한 표정을 보니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커다란 창문 좌우편에 있는 침상을 하나씩 차지했다.
연적하는 침상에 길게 누웠다.
침상에 눕자 이불에 밴 냄새가 코로 밀려왔다.
그 집요하고 강렬한 악취에 나중에는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구요각의 신입들이 참지 못하고 떠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자신도 할 수만 있다면 냄새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병 형.”
“왜요.”
“내 무위가 ‘연허’보다 세다고 하던데, 나 같은 사람도 ‘연단’을 거쳐야 해요?”
“당연하죠. ‘연단’으로 원영(元嬰)을 만들지 못하면 상위의 존재가 될 수 없어요. 한계를 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한계요?”
“그야 당연히 인간의 한계지요. 연 형도 ‘삼천의 신’이 되기 위해 소요종에 입문하지 않았습니까? 평범한 인간과 종문 제자의 차이는 원영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어요. 원영은 종문 제자의 출발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원영을 만들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원영이 만들어지면 혼과 육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혼이 육신을 드나들게 되지요. 육신을 떠나 천지와 우주를 보게 되면 ‘연단’에 성공한 겁니다.”
“아하!”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째 귀에 익다 했더니 내가 수련법에 나오는 좌탈입망(坐脫立亡)이었다.
좌탈입망은 굳이 순서를 논하자면 반박귀진의 다음 단계다.
하지만 강호의 무인들은 반박귀진에 오른 뒤에는 좌탈입망을 수련하지 않았다.
좌도(左道)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서다.
좌도.
육에서 혼을 분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유계(幽界)를 접하게 된다.
자칫 무인이 무당과 같은 길을 가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사가 아닌 무인들은 좌탈입망의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그 좌탈입망이 종문 제자의 출발점이라니!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꺼림칙했다.
“병 형, 혼이 육신을 떠나면 귀신하고 친구 먹는 거 아니에요?”
“하하! 그럴 리가요.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의 육체로는 무한대에 가까운 영기를 담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혼과 육을 분리하는 겁니다. 처음에 원영은 주먹보다 작답니다. 하지만 수련을 계속하다 보면 육신만큼 커지지요. 그때 원영이 육신을 덮어쓰게 됩니다. 육체와 원영의 합일인 셈이지요. 그 경지에 오른 분들이 종문의 진인(眞人, 원영의 경지)들이십니다. 여하튼 원영을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영기를 담기 위해서입니다.”
“원영을 만들지 않고 영기를 담으면요?”
“곧 한계에 봉착하거나, 몸이 폭발하는 파국을 맞겠죠. 종문에서 입문 제자들에게 ‘연단’의 수련을 시키는 건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될 정도의 영기라면 확실히 육체가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병요가 기이한 눈으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종사 앞에서 여색을 밝히는 것도 그렇고, 종문에 대해 너무 무지해 보였다.
“연 형은 종문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몰라요.”
“그런 분이 어떻게 소요종의 제자가 될 생각을 다 했습니까?”
“구주에서 사람대접 받으려면 종문 제자가 되어야겠더라고요. 사람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미녀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연 형이 태을존자님 앞에서 소요종 최고의 미녀가 누구냐고 물었잖습니까.”
“아!”
“조심하십쇼.”
“왜요?”
“태을존자님이야 웃고 넘어갔지만 속으로 벼르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러라고 해요. 남들 눈치 보면서 어떻게 살아요?”
“조금은 보면서 사는 게 좋을 겁니다. 소격각 사람들이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것도 눈치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찍혀서 좋을 게 없습니다.”
“그런가.”
연적하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영기를 취하기 위해 혈안이 된 종문 고수들에게 찍혀서 좋을 일은 없다.
더구나 종문 고수들은 살인을 살인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상상을 초월한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된다.
그들은 ‘삼천의 신’이 되기 위해 모든 걸 던진 사람들이니까.
‘영기를 담으려면 원영을 이루어야 한다고?’
남궁연을 찾으려고 소요종에 왔다가 ‘삼천의 신’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삼천의 신’이 되면 정말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걸까?
별이 되면 연 누님을 쉽게 찾으려나?
아니지, 연 누님과 오순도순 살아야 하는데 무슨 얼어 죽을 별이란 말인가.
연적하는 별과 남궁연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