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00
600회. 우리가 뭐 개예요?
주방으로 들어간 연적하는 ‘흥!’ 하고 냉소를 쳤다.
음식이 부족하다고 하더니 널린 게 음식이요, 식재료도 가득했다.
노란 띠의 방사 말대로 대라각에서 압력을 넣었던 모양이다.
연적하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때다.
“뭐야? 왜 갑자기 배식을 중단해?”
“안에 누구 없소?”
“구요각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왜 이래? 오늘?”
식당에서 배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원성이 주방까지 들려왔다.
갑자기 구요각 사람들이 사라져서 생긴 일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적하는 식판에 요리를 골라 담은 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사이 소격각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연적하는 적당한 곳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반각(약 7분)쯤 지났을까?
기절해 있던 구요각의 사람들(숙수와 잡일꾼)이 하나 둘 깨어나 식당으로 돌아갔다.
배식이 재개되자 식당의 소란도 이내 수그러들었다.
연적하는 빈 식판을 들고 부서져서 휑하니 뚫린 뒷문으로 다가갔다.
주방에서 일하던 숙수들이 흠칫 놀란 얼굴을 했지만 감히 덤벼드는 사람은 없었다.
허리에 청띠를 두른 견우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무, 무슨 일이오?”
“빈 그릇 반납하려고요. 그리고 만두 몇 개 싸 줘요. 거동하기 불편한 사람이 하나 있어서요.”
빈 식판을 받아 든 견우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왔나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천만다행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금방 드리리다.”
급하게 안으로 들어간 견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잎에 만두를 포장해 왔다.
그가 만두를 연적하에게 건네며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도 대라각에서 저녁을 주지 말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소. 내일부터는 이런 일이 없을 게요.”
“고생들 해요.”
연적하는 군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저녁을 주지 말라고 시킨 대라각이나, 그걸 따른 구요각이나, 찍소리 못 하고 돌아서는 소격각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빨리 위로 올라가야지.”
연적하는 소격각에 정내미가 떨어졌다.
코앞에서 자신과 구요각 사람들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들은 구경만 했다.
물론 황인보와 벽초의 언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심했다.
구요각의 숙수들이 소격각 사람들에게 식사를 주지 않은 건 큰 잘못이다.
그런데 소격각 사람들은 그걸 따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오랜 세월 밑바닥 생활을 하다 보니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게 몸에 밴 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소격각이다.
연적하는 방으로 들어가 병휴에게 연잎에 싼 만두를 건네주었다.
“병 형, 몸은 좀 어때요? 걸을 만해요?”
연적하가 병휴를 찬찬히 살폈다.
뒷간 청소를 언제부터 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것이다.
오후가 아니라 오전에도 천애곡에 있고 싶었다.
아무리 자신의 머리가 평범해도 진득하니 앉아 있다 보면 깨달음이 올 게다.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해 볼 요량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병휴가 하루라도 빨리 건강을 되찾아야 했다.
“예, 내일이면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속대로 내일부터 한 달간 연 형의 일은 내가 대신해 주겠습니다.”
“내일부터요?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사지가 멀쩡한 놈이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안 되죠. 오늘 저녁때 소담관에서 한바탕했다면서요?”
“누가 그래요?”
“차 사형이 그러더라고요. 소담관에서 저녁을 안 줘서 연 형이 싸웠다고. 이번에도 사형들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에요?”
“예, 칠각 간에 싸움이 되면 안 되니 어쩌니 하면서 구경만 하더라고요.”
“아니, 구요각 사람들이 시비를 걸었으면 이미 칠각 간의 싸움 아닙니까?”
“더 커지기 전에 조용히 덮자는 거죠.”
“그렇게 얻어터져도 참고, 밥을 안 줘도 참으니까 계속 당하죠. 연 형, 빨리 위로 올라갑시다. 여기는 사람이 있을 곳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러려고요.”
연적하와 병휴는 한참 동안 소격각의 사형들을 씹어 댔다.
대놓고 밟는 사람들보다 당하고도 감추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더 얄미워서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연적하는 건너편 침상을 힐끔 보았다.
인기척에 눈을 뜬 병휴가 부스스한 몰골로 침상에서 내려왔다.
연적하는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물었다.
“정말 오늘부터 괜찮겠어요? 세심정과 봉황정까지 하려면 힘들 텐데.”
“나도 한다면 하는 놈입니다. 한 달 그까짓 거 금방 지나갑니다.”
“알았어요. 세심정은 괜찮은데, 봉황정에서 이런저런 불만이 안 나오 게 신경 써 줘요.”
“걱정 마십쇼. 용화봉에서도 말 안 나오게 잘했습니다.”
“예, 예, 잘 부탁해요.”
연적하는 조금 불안했지만 병휴를 믿기로 했다.
‘병 형도 봉황정 여제자들의 까칠함을 잘 알고 있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연적하와 병휴는 대충 씻고 아침식사를 위해 소담관(식당)으로 이동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소격각 사람들은 두 사람이 나타나자 입을 다물었다.
차승언 방사가 병휴에게 알은체를 했다.
“병 사제, 이제 움직일 만하냐?”
“예, 오늘부터 다시 일하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사나흘은 쉬어야 한다고 했다면서?”
“괜찮습니다.”
“그래, 일하다 힘들면 말하고.”
차승언 방사는 면목이 없는지 꽤나 싹싹하게 그를 대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벽초 방사가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연 사제, 오늘도 오전에 일을 할 생각이냐?”
“왜요?”
“일하기 전에 소격각부터 들러야겠다. 각주님께서 너를 보자고 하신다.”
“백무영 진인요?”
“그래, 어제의 일이 각주님 귀에 들어간 것 같다.”
“무슨 일요?”
연적하가 벽초 방사를 빤히 보았다.
‘대라각의 천주금 노사’와 ‘구요각’ 중에 어느 것인지 궁금했다.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겠다. 각주님은 방사와 길게 이야기하는 분이 아니라서.”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격각의 방사들은 자기들 각주에게도 무시를 당하며 사는 것 같았다.
***
천주봉.
소격각.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곧바로 소격각 각주의 집무실에 찾아갔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얼른 해치울 생각이었다.
그가 들어갔지만 백무영 진인은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연적하가 빈 의자에 슬쩍 엉덩이를 붙이려는 순간이다.
백무영 진인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소격각의 방사들은 나를 딱 두 번 만난다. 소격각에 배치받는 날, 소격각을 떠나는 날. 그 아름다운 전통을 네가 깼구나.”
“…….”
연적하는 허리를 세우고 백무영 진인과 얼굴을 마주했다.
노골적으로 찡그린 얼굴을 보니 좋은 일로 부른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낮에는 향도관에서 대라각의 천주금 노사와 싸우고, 저녁에는 소담관에서 구요각 사람들과 싸웠다지?”
“그게 실은…….”
그러나 백무영 진인은 연적하의 변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소요종에서 소격각 방사의 말에 귀 기울일 진인은 없다. 그건 소격각의 각주인 백무영 진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백무영 진인에게 소격각은 마지못해 떠맡은 일에 불과했다.
“갓 입문한 방사 나부랭이가 한창 윗사람인 노사의 다리를 부러뜨려? 그러고도 부족해 구요각 사람들을 때려 저녁 배식이 늦어지게 해? 정녕 죽고 싶은 게냐?”
백무영 진인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렇지 않아도 미운털이 박힌 놈이었는데 하는 짓도 가관이다.
‘이참에 죽여 버릴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사실 별 이유 없이 연적하가 그런 짓을 했다면 벌써 죽이고도 남았다.
하지만 아무리 방사가 소요종의 천덕꾸러기라 해도 쉽게 죽일 수는 없다.
방사 역시 소요종의 일원인 까닭이다.
‘죽일까? 살릴까?’ 고민하는 백무영 진인 앞에서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말했다.
“각주님,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안 물어보시나요?”
“…….”
백무영 진인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다른 방사들 같았으면 무조건 ‘용서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놈은 ‘왜 그랬는지 안 물어보냐?’고 도리어 힐난한다.
참다못한 백무영 진인이 탁자를 ‘쾅!’ 하고 후려치며 소리쳤다.
“이유를 불문하고 네놈의 잘못이다! 하극상(下初上)은 어느 조직이건 죽어 마땅한 죄다! 네놈이 한 짓 때문에 내가 얼마나 윗분들에게 시달리고 있는지 아느냐!”
“각주라는 자리가 원래 그런 자리잖아요. 그게 싫으면 각주를 하면 안 되죠.”
연적하도 순순히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격각의 사람들이 당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각주가 나 몰라라 해서였기 때문이다.
“뭐라! 이 미친놈이!”
백무영 진인이 앉은 자리에서 손을 휘저었다.
시커먼 장영(掌影)이 연적하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소요종의 상급 무공 ‘암영무혼장’이다.
쉬이익-.
연적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오른손 검결지로 시커먼 장영을 콕 찍었다.
천둔검의 치심일허(置心一虛) 무사불변(無事不辨)의 요결에 장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차례의 공방이 벌어졌지만 실내는 고요했다.
자신의 ‘암영무혼장’이 무위로 돌아가자 백무영 진인은 함부로 발작하지 않았다.
설사 진인이라 해도 그처럼 쉽게 자신의 장법을 파괴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갓 입문한 방사가 그 일을 해내다니!
‘아니, 대라각에서는 왜 이런 놈을 소격각으로 내려보낸 거지?’
뒤늦게 연적하가 벌인 사고에 생각이 미쳤다.
그는 대라각 천주금 노사의 다리를 부러뜨렸고, 구요각 제자 열두 명을 다치게 했다.
그래 봐야 노사와 방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다.
‘절대 평범한 놈이 아니야.’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던 노기가 한순간에 스르륵 빠져나갔다.
만약 그가 검서린 진인과의 일까지 알았다면 암영무혼장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험, 내가 너무 흥분했구나. 그래, 이유라도 들어 보자. 너는 왜 그런 일을 벌였느냐?”
“더 해 보시지.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어허, 내가 흥분해서 그랬대도. 왜 싸웠는지 이유나 말해 보거라.”
연적하는 조금 전에 앉으려다가 말았던 의자를 쭉 뽑아 걸터앉았다.
연적하에게 관계라는 건 상대적이다.
그가 자신에게 살수를 썼으니 더 이상 각주라고 특별 대우해 줄 마음이 없었다.
연적하를 지켜보던 백무영 진인의 눈두덩이가 실룩거렸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는지라 그는 연적하의 시건방진 행동을 묵인했다.
연적하가 보란 듯 한쪽 무릎에 다리를 척 올려놓고 운을 뗐다.
“어제의 일을 설명하자면, 사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돼요. 사흘 전에 병휴 방사가 천애곡에서 천주금 노사에게 두드려 맞았어요.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그래서 내가 어제 그를 찾아가 따졌죠. 뒷간 청소를 해 줘서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냄새난다고 때려서야 되겠냐고. 그랬더니 천주금 노사가 ‘냄새를 피우면 맞아도 된다’고 뻔뻔하게 나오잖아요. 그래서 항의하다가 싸움이 난 거예요.”
“허면 소담관에서 구요각 사람들은 왜 때렸느냐?”
“어제 저녁에 사형들과 함께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음식이 다 떨어졌다고 안 주더라고요. 갑자기 음식이 떨어졌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진짜인지 들어가서 확인하려다가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진 거예요. 싸움 끝나고 보니까 음식이 막 쌓여 있어. 나중에 구요각 사람 하나가 그러더라고요. 대라각 사람들이 주지 말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
백무영 진인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대충 알고 있는 일이지만 소격각 방사를 통해 들으니 할 말이 없었다.
“소격각 사람들은 냄새가 난다고 때리면 맞고, 먹을 걸 안 주면 쫄쫄 굶어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뭐 개예요? 각주님도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