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01
601회. 저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입니다.
연적하가 뜨거운 눈빛으로 보자 백무영 진인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확실히 칠각 중에 소격각의 대우가 가장 형편없지. 소격각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도록 하마.”
백무영 진인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매끄럽게 받아넘겼다.
연적하는 어딘지 개운치 않았지만 틀린 말도 아닌지라 반박하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뭔가 시들해지자 연적하는 한쪽 다리 위에 걸쳤던 발을 내렸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없는데요?”
“달리 어려움은 없고?”
“대라각이나 구요각에서 횡포를 부리지 못하게 각주님이 적극적으로 나서 줬으면 하는 것 외에는 딱히.”
“그 문제는 내가 대라각과 구요각의 각주님들을 만나 보도록 하겠다. 그 밖에는?”
“소요종의 무공은 언제 어디에서 배우는 건가요?”
“무공의 전수는 기본적으로 스승과 사형제들이 맡고 있다. 스승을 모셨으면 스승이, 모시지 못한 사람들은 사형이나 사저 들이 가르치지. 간혹 무궁전에 직접 가서 무경서를 읽고 스스로 터득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궁전요?”
“대라각 위로 한 식경(약 30분)쯤 올라가면 무궁전이 있다. 소요종의 모든 무경서가 그곳에 있지. 소요종 제자라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지위에 맞는 무경서만 열람할 수 있지만.”
“방사를 위한 것도 있나요?”
“소요종의 무공은 크게 초급, 중급, 상급으로 나뉘는데 방사는 초급까지 익힐 수 있다. 그보다 상위의 것을 배우고 싶으면 사형제들에게 부탁하면 되겠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다. 괜한 욕심일 뿐 자신의 경지에 맞는 것이 좋으니까. 너라면 초급 무공보다 ‘천애불문비’를 연구하는 게 좋을 게다. 그런데 너는 어느 문파의 무공을 배웠느냐?”
“가전 무공이에요.”
“대단한 가문인가 보군. 부친의 함자(銜字)가 어찌 되느냐?”
“유명하지 않아서 모를 거예요. 돌아가신 지도 오래됐고. 연 무 자 룡 자예요.”
“연무룡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로군. 알겠다. 용무가 없으면 그만 물러가라.”
“예.”
연적하가 미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찜찜한지 모르겠다.
마치 볼일을 보고 닦지 않은 기분이다.
***
천주봉.
대라각.
소격각 각주 백무영 진인은 연적하를 돌려보낸 뒤 대라각으로 향했다.
대라각의 각주인 주역봉 노조에게 일처리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다.
주역봉 노조의 집무실로 들어간 백무영 진인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연적하 방사를 만났습니다.”
“만났다고?”
무경서에 시선을 주고 있던 주역봉 노조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벌을 주라고 했더니 만났단다?
“부끄럽게도 연적하 방사의 무위는 저의 아래가 아니었습니다.”
순간 주역봉 노조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깃들었다.
백무영 진인의 경지는 ‘원영 삼 성’.
소요종에서야 그저 그런 무위지만 구주에서는 손가락 안에들 정도의 고수다.
연적하가 그런 백무영 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연적하는 이제 스물넷인데 그대의 아래가 아니라고?”
본래 노조들은 진인에게 하대를 한다.
하지만 주역봉 노조는 백무영 진인이 소격각의 각주인지라 존중했다.
“예, 제가 ‘암연무혼장’을 썼는데 손가락만으로 해소해 버렸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도 연적하가 어떤 공법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역봉 노조는 읽고 있던 무경서를 덮었다.
백무영 진인의 말은 연적하가 자신보다 위라는 고백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원영(元嬰)도 만들지 못한 방사가 ‘원영 삼 성’보다 뛰어나다니?
그건 종문의 오랜 전통에 없던 일이었다.
“물론 다른 종문의 공법과도 궤를 달리하는 것이겠지?”
한마디로 ‘천지종의 간자냐? 아니냐?’는 질문이다.
“예,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연적하의 말로는 가전 무공이라고 하더군요. 종문의 무공으로 ‘암영무혼장’을 파훼하려면 원영은 이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연적하는 아직 원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주역봉 노조가 인상을 찌푸렸다.
원영은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다.
추도영법(追到靈法)은 영기의 질뿐 아니라 원영의 유무(有無)까지도 알 수 있게 해 준다.
만약 연적하가 원영을 이루었다면, 그는 최소한 제군(현인)들의 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속세의 무공으로 소요종의 상급 무공인 ‘암영무혼장’을 상대했다는 말이다.
‘그게 가능한가?’
주역봉 노조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답은 ‘아니올시다’였다.
그게 가능하다면 종문이 구주의 주인으로 군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속세의 무공은 종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종문의 무공은 창조주로부터 기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있군. 그래서, 연적하가 뭐라고 하던가?”
“소격각의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하더군요.”
“허허헛! 원하는 게 고작 그거라고? 소격각의 처우를 개선해 달라? 부족한 게 뭐가 있었나?”
“소격각의 업무보다는 일상생활에서의 문제를 지적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대라각에서 소격각의 신입을 괴롭혀 왔는데, 그걸 막아 달라고…….”
“그런 일이 있었나?”
“예, 대라각의 방사들 중심으로 종종 그래 왔습니다.”
주역봉 노조는 피식 웃었다.
방사들의 일에는 관심이 없을뿐더러, 설사 그런 일이 있더라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아서다.
“능력이 부족하면 당하는 게 자연의 순리지. 종문은 약자를 보호하는 곳이 아님을 그대도 알지 않나.”
방사들끼리 알아서 지지고 볶으며 살게 그냥 내버려 두라는 말이다.
백무영 진인이 웃으며 화답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사실 너무 편안하면 위로 올라가려는 열망도 약해질 겁니다. 수련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채찍질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대가 뭘 좀 아는구먼. 본래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이지. 그래서 연적하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
“노조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백무영 진인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났다고 생각해 주역봉 노조에게 떠넘겼다.
“그의 무위가 뛰어남을 알면서도 소격각으로 보낸 이유를 아는가?”
“신입답지 않게 언행이 방자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맞네. 오만방자한 그의 기를 좀 꺾으려고 소격각으로 보냈지. 그런데 기가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좌충우돌 사고만 치고 있구먼.”
“외람된 말씀이오나 연적하를 소격각에 두면 계속해서 소란이 일 것입니다. 소격각은 칠각의 말단이라 사람들이 계속 무시할 텐데, 연적하는 그걸 받아들일 사람이 아닙니다.”
“허면 다른 각으로 보내자는 말인가?”
“대라각에는 고수가 많으니 그를 거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백무영 진인이 슬쩍 주역봉 노조의 안색을 살폈다.
자신은 그를 감당하기 어려우니 대라각에서 데리고 갔으면 해서다.
그런데 의외로 주역봉 노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연적하는 이미 대라각의 사람들과 척을 지고 있네. 그러니 그가 대라각에 오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아. 그대의 생각이 그렇다면 다른 각주들의 의견을 구해 보도록 하겠네. 그를 받아 주겠다는 각주가 있을지 모르겠구먼.”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하나쯤은 있지 않겠습니까?”
“검서린 진인과 싸우지만 않았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제는 없을 걸세.”
검서린 진인은 초월전 전주(殿主)인 한산월 제군의 제자다.
초월전 전주의 제자와 척을 진 방사를 맡겠다고 나설 각주가 있을까?
“그가 검서린 진인과 싸웠습니까?”
백무영 진인이 황당한 눈으로 주역봉 노조를 보았다.
검서린 진인은 무려 ‘원영 육 성’으로 자신보다 한참 고수였다.
그런 그녀가 연적하와 싸웠다니?
연적하와 검서린 진인의 싸움을 아직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백무영 진인은 그중에 하나였다.
“저런! 몰랐나? 이틀 전 천애곡에서 자리를 두고 두 사람 사이에 시비가 일어났었네. 그때 그가 검서린 진인의 천벽일홍(天碧日紅)을 맨몸으로 받아 냈다더군.”
“헉! ‘천벽일홍’을요?”
백무영 진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소요종에서 삼대 상급 검공이라 불리는 검공이 있다.
천벽일홍(天碧日紅), 요검탄주(曜劍彈誅), 낙일귀망(落日零罔)이 그것이다.
그중에 으뜸은 ‘천벽일홍’이다.
하지만 너무 난해해서 대부분의 진인들은 ‘낙일귀망’ 정도로 만족했다.
검서린 진인이 ‘천벽일홍’을 익힌 것도 놀라운데, 그걸 맨몸으로 받아 내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런 짓을 할까.
노조라면 혹 모를까? 진인 중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쩐지…….’
‘암영무혼장’이 손가락 따위에 파훼될 장법은 아니었다.
‘천벽일홍’을, 그것도 맨몸으로 받아 냈다면 확실히 자신보다 위였다.
각주보다 강한 방사라니?
그런 사람을 어떻게 데리고 있으란 말인가!
“그러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게.”
주역봉 노조의 말에 백무영 진인은 속이 달아올랐다.
“노조님, 솔직히 저로서는 연적하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부디 다른 전각으로 재배치를 해 주십시오.”
대라각에서 소요종 제자들을 관리하니 백무영 진인은 주역봉 노조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구요각이나 소격각의 각주는 진인이지만, 그 외의 다른 각들은 각주가 노조였다. 백무영 진인은 노조라면 연적하를 데리고 가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진인이 땅이라면 노조는 저 하늘 위의 존재인 까닭이다.
“말하지 않았나. 검서린 진인과 척만 지지 않았다면 다른 각주들이 그를 받아들였을 거라고. 자네는 노조가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잊었는가?”
“…….”
백무영 진인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노조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제군이다.
현인의 경지는 깨달음 저편에 있어서 노력만으로 갈 수가 없다.
그걸 가능케 하는 이가 제군이다.
달리 말해 제군이 이끌어 주지 않으면 노조는 말라 죽는다.
종문에서 경지가 높을수록 윗분들을 어려워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너무 실망하지 말게. 누군가 나서 줄지도 모르니.”
“아무쪼록 주역봉 노조님께서 잘 좀 말씀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입니다.”
백무영 진인은 노골적으로 애원했다.
검서린 진인과의 싸움 이야기를 들으니 연적하와 대면하기도 껄끄러웠다.
만에 하나 다시 그와 드잡이질 할 일이 생기고, 그걸 소격각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자신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었다.
주역봉 노조는 슬그머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도 한산월 제군의 눈치가 보이는데 다른 노조들은 오죽할까.
***
천주봉.
천애곡.
백무영 진인과 주역봉 노조가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연적하는 ‘천애불문비’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실낱같은 실마리라도 보인다면 ‘연구’든 ‘명상’이든 가능하겠지만, 그저 석벽에 새겨진 문양만으로는 어느 것도 쉽지 않았다.
연적하는 남들처럼 좋은 자리를 차지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오전은 금방 지나갔다.
백무영 진인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 얼마 앉아 있지도 않았는데 벌써 정오(正午, 낮 12시)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하나 둘 천애곡을 떠났다.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있던 연적하도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점심을 먹고, 말 나온 김에 무궁전까지 둘러본 뒤 다시 천애곡으로 올 생각이다.
소담관을 향해 타박타박 내려가는 그를 누군가 불렀다.
“연 사제.”
연적하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십 보쯤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 추레한 몰골의 벽초 사형이 서 있었다.
가슴이 철렁한 연적하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왜요? 혹시 봉황정 때문에 그래요? 병 형이 대신해 주기로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