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08
608회. 네 검이 말해 줄 게다.
소격각에도 좋은 점이 있다.
소격각의 사람들은 다른 육각과 달리 시간과 장소에 딱히 구애받지 않았다.
정기적인 회의나, 보고가 없기 때문이다.
무공을 지도함에 있어서도 그랬다.
황인보 방사는 그 자리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천산검영’을 펼쳐 보였다.
“어떤 검공인지 알겠느냐?”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궁연이라면 모를까?
자신은 단 한 번의 시연을 본 것만으로 검의(劍意)를 알 수는 없었다.
황인보는 이해가 느린 그를 위해 세 번 연거푸 검법을 펼쳤다.
느리게. 느리게, 그리고 본래의 속도로.
그제야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번 보니 ‘천산검영’이 품고 있는 뜻을 알 것 같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황인보는 나뭇가지를 숲으로 집어 던진 후에 말했다.
“헉! 헉! 원영의 현묘한 법체(法體)를 이루면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을 내보낼 수 있다. 그것이 천산검영의 검의라 할 수 있지.”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그거였다.
왜 백무영 진인이 ‘천산검영’을 콕 찍어 배우라고 했는지 알겠다.
유체이탈에도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하나의 원신(元神)’이 육체를 빠져나간다.
하지만 수련을 쉬지 않고 반복하다 보면 두 개, 세 개, 네 개……. 그런 식으로 원신의 숫자를 점점 늘릴 수 있다. 물론 그다음에는 다시 늘어난 원신을 합일해야 한다.
여러 개의 원신으로 속세를 주유할 때 ‘신출귀몰’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걸 검공으로 끌어온 것이 ‘천산검영’이었다.
원영(元嬰)으로 원신의 숫자를 늘리듯 ‘천백억화신’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형은 몇 개나 만들었어요?”
순간 황인보 방사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나는 단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아직 원영조차 이루지 못했는데 화신(化身)을 무슨 수로.”
“아…….”
연적하는 새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원영을 이루어야 가능한 검공인데 ‘몇 개를 만들었냐?’고 묻다니.
미안한 마음에 연적하는 황인보 방사가 내려놓은 똥장군을 대신 맸다.
“사형, 어디로 가면 돼요?”
“그냥 가도 되는 데 뭘.”
그러면서도 황인보 방사는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았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연적하 같은 고수가 자신을 돕는다는 게 좋아서다.
“따라오거라.”
앞서가는 황인보 방사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연적하는 황인보 방사가 안내한 곳에 똥장군을 내려놓고 그와 헤어졌다.
한참 산을 내려가던 그가 멈칫했다.
“아니, 그런데 화신이 뭐지?”
‘천백억화신’ 소리에 숫자만 생각했는데 정작 그 실체를 모르겠다.
다시 돌아가려던 그는 내친김에 무상각으로 향했다.
모처럼 관음봉에 왔으니 겸사겸사 스승인 한마관 진인을 찾아가 볼 생각이다.
***
관음봉.
무상각.
장부를 들여다보던 한마관 진인은 ‘방사가 찾아왔다’는 말에 밖으로 나갔다.
섬돌 아래 연적하가 있었다.
멀뚱멀뚱 서 있는 그를 보니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됐다.
“네가 웬일이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냐?”
“제자가 스승님을 만나러 오는데 꼭 무슨 일이 있어야 하나요?”
“허허,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일을 하다가 왔느냐?”
연적하의 몸에서 생생한 냄새가 났지만 한마관 진인은 유난을 떨지 않았다.
“예, 조금 전에 북명전에서 일하는 사형을 잠깐 거들었어요. 사형이 초급 검공을 가르쳐 줘서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랬구나.”
한마관 진인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갓 입문한 방사들이 한창 초급 무공을 배울 시기였다.
“그나저나 ‘천애불문비’가 깨져서 고민이 많겠구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나를 찾아오거라. 내 비록 진인에 불과하지만 네 궁금증은 풀어 줄 수 있을 게다.”
“예. 아, 혹시 사부님도 ‘천산검영’을 익히셨어요?”
“그야 이를 말이냐? 그것으로 원영을 증명해야 하는데 당연히 익혔지.”
“요즘도 수련하세요?”
“그건 아니다. 천산검영이 뛰어난 무공이기는 하지만 뭐랄까, 한계가 분명해서. 진인들은 대부분 상급 검공을 익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계요?”
“너도 배웠다니 알겠구나. ‘천산검영’의 검의가 무엇이냐?”
“‘천백억화신’요?”
“맞다. ‘천백억화신’이야말로 ‘천산검영’이 추구하는 바이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도리어 ‘천산검영’의 한계가 더욱 분명해졌다.”
“왜요?”
연적하는 스승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검의로 인해 한계가 더욱 분명해졌다니?
“‘원영지체’를 어느 정도 완성한 뒤에도 화신(化身)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았으니까. 네 개도 힘든데 ‘천백억화신’이라니? 그 전에 그게 가능하리라고 보느냐?”
“말씀 도중에 죄송한데, 화신이 뭐예요?”
“‘천백억화신’은 출신(出身)한 원영을 의미한다. 그것을 보고 원영의 유무를 아는 게지.”
“몸 밖으로 나온 원영요?”
“그렇지. 원신과 합일한 내공은 모습부터가 다르다. 좀 더 깊고 은근하달까? 노사는 진검기, 진인은 진검강으로 나타나지. ‘천산검영’을 펼치면 네 검이 말해 줄 게다. 화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그럼 진인의 경우 ‘천백억화신’이면 진검강 숫자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순간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백억 개의 진검강이라니!
“아니, 그게 가능해요?”
“불가능하다. ‘원영지체’를 완성했다는 노조들조차도 백여 개가 전부인데 천백억 개라니. 그렇게 입문 단계에서 끝날 검공이기에 다들 포 기했지. 상급 검공으로 십 성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데, 입문 단계로 끝날 검공에 매달린다는 건 시간의 낭비이니까.”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까 포기했다는 말이다.
‘천백억화신’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검공을 왜 입문 단계에서 가르쳐요? 종사는 돼야 뭐가 돼도 될 것 같은데.”
“방사 시절에 소요야사(逍遙野史)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 의하면 ‘천산검영’을 만든 이는 최초의 종사다. 창조주를 모시고 다녔다는 최초의 종사라면 ‘천백억화신’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
“와! 저도 한번 찾아 읽어 봐야겠네요.”
“말 그대로 야사니까 믿지는 마라. 네 말대로 검의를 생각하면 종사에게나 어울릴 만한 검공이기는 하다만.”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물었다.
“스승님은 ‘천산검영’의 화신을 몇 개나 만들 수 있어요?”
“나는 네 개가 전부다. 그래서 ‘원영 사 성’이라고 말하는 거고.”
“설마 ‘천산검영’의 화신으로 원영의 경지를 나눈 거예요?”
“그런 셈이지. ‘천산검영의 화신’이 곧 ‘원영의 화신’이니까. 물론 천지종 같은 경우는 화신이 아니라 진검강의 숫자로 구분을 하지만.”
“진검강의 숫자요?”
“천지종은 ‘천지뢰행’이라는 검공으로 원영의 경지를 판별한다. 진검강으로 그 검의를 드러내면 진인이라 인정해 주지. 힘을 앞세우는 조금 무식한 방법이랄까.”
“어차피 ‘원영의 화신’이나 ‘진검강’이나 같은 소리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자면 다르다. ‘원영의 화신’이 ‘질’을 강조한 것이라면, ‘진검강의 숫자’는 ‘영기의 힘’을 강조한 것이니까. 일견 천지종의 수행법이 무난해 보이지만, 사실 ‘영기가 가진 힘’은 ‘원영의 화신’에 비할 것이 못 된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일로 싸운다고요?”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스승을 보았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많은데,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고 싸울 필요까지야.
“지금도 그런 이유로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천문(天門)을 빼앗는 것에 있지만, 노골적으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종문마다 천문이 있다면서요? 자기들도 가지고 있는데 왜 소요종의 천문에 욕심을 내요?”
“고작 진인이 다른 종문의 내밀한 사정까지야 어찌 알겠느냐. 하지만 종문들이 천문에 욕심을 내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종사라면 그 이유를 알겠지.”
“그렇구나.”
연적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천산검영’에 소요종과 천지종의 싸움이 얽혀 있는 줄은 몰랐다.
게다가 종문들이 천문에 욕심을 내고 있다니.
종문에 대해 알아갈수록, 모르겠다.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귓가로 한마관 진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서 나의 ‘천산검영’을 보여 주랴?”
그제야 연적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스승을 보니 자신의 경지를 보여 주고 싶어 안달이 난 얼굴이다.
“시간이 되세요?”
“뭐 잠깐 산책하고 오는 것 정도야 가능하지. 따라오거라.”
연적하가 사양할 틈도 없이 한마관 진인은 휘적휘적 앞서 걸어갔다.
산 위로 반각(약 7분)쯤 올라가던 한마관 진인이 한적한 곳에서 멈춰 섰다.
한마관 진인은 말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바로 ‘천산검영’을 펼쳤다.
고오오오-.
묵직한 대기의 울림과 함께 검에서 네 개의 강기(罡氣)가 일어났다.
심해를 보는 듯한 검강의 색깔을 보니 진검강이다.
이윽고 한마관 진인이 맞은편 절벽으로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유려하게 날아간 진검강이 절벽을 강타했다.
쿠쿠쿠쿵-.
천둥소리와 함께 절벽이 한 꺼풀 흘러내렸다.
돌아선 한마관 진인이 검을 갈무리하며 설명하듯 말했다.
“일반적인 검강이라면 저렇게 먼 거리까지 힘이 미치지 못하지. 거리가 멀어지면 이기어검을 쓰는 것도 그래서가 아니냐? 하지만 보다시피 진검강의 파괴력은 거리와 무관하다.”
스승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적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저런 진검강 천백억 개가 머리 위로 떨어진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틀림없이 망할 게다.
아무래도 종문의 무공에 대한 평가를 바꿔야 할 것 같다.
구천구검보다 못하다에서 비벼 볼 만한 것으로.
“네가 보기에 ‘천산검영’의 위력이 어떠냐?”
“굉장하네요.”
“언젠가 너도 알겠지만, 상급 검공 중에는 이보다 더 뛰어난 위력의 검공도 많다.”
“‘천산검영’을 대성할 수 없다면 다른 걸 익혀야겠죠.”
“맞다. 나 역시도 그런 이유로 ‘천산검영’을 포기했다. ‘원영 사 성’에 불과한 내가 매달려 봐야 아무 의미 없으니까. 너도 언젠가 ‘천산검영’과 중급 검공 사이에서 고민할 날이 올 게다. 중급 검공 중에도 ‘천산검영’보다 위력이 뛰어난 게 있으니까.”
“그래도 저는 ‘천산검영’을 수련할 것 같아요.”
“그것도 괜찮겠지. ‘천백억 개의 화신’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한마관 진인이 말끝을 흐렸다.
‘천산검영’은 ‘천 개의 산에 검의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뜻이다.
그 속에 담긴 검의도 이름처럼 광오 하다.
검공 자체만 놓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도 자신의 경지가 받쳐 주지 못하면 그림의 떡.
그는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목이 쉬도록 ‘천산검영’의 한계를 설명했는데 그래도 수련하겠단다.
‘아직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지 못해서 그러는 거겠지?’
“왜 그렇게 보세요? 하실 말씀 있어요?”
“없다. 열심히 해 보거라.”
“예.”
연적하는 스승인 한마관 진인에게 인사를 올리고 관음봉을 내려갔다.
***
천주봉을 오르던 연적하는 나무 그늘에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무당산이 떠올랐다.
오룡궁의 오룡칠사와 천지상인, 그리고 천둔검.
‘어라? 그러고 보니 천둔검과 천산검영이 묘하게 닮았네.’
천둔검은 ‘선천의 기는 한 알갱이에 불과하지만 능히 하늘과 땅을 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뒤에 나온 구결이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로 ‘대지와 만법은 많지만 하나’다.
그 하나가 천둔검이다.
그에 반해 ‘천산검영’은 ‘천백억화신’을 추구한다.
다(多) 혹은 만법(萬法)인 셈이다.
수없이 쪼개진 원신(元神)의 목표는 결국 귀일(歸一), 즉 하나됨이다.
‘일즉다 다즉일’로 보면 ‘천둔검’과 ‘천산검영’은 같을지도 모르겠다.